[미술관 탐방] 제주생활의 중도中道를 그리다: 서귀포 왈종미술관 & 화가 이왈종
[미술관 탐방] 제주생활의 중도中道를 그리다: 서귀포 왈종미술관 & 화가 이왈종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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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서귀포로 넘어가는 1131번 길은 계절에 상관없이 늘 예쁘다. 가을 단풍으로 곱게 물들었을 때만 지나던 길을 초록이 푸릇푸릇한 계절에 오니 색다른 풍경으로 다가온다. 성판악 입구를 지나면 나타나는 숲 터널과 주변 원시림은 내 맘대로 ‘제주드라이버길 1위’로 꼽아보며, 야자나무가 즐비한 아열대분위기의 서귀포 앞바다 풍경은 해외휴양지에 온 기분마냥 들뜨게 한다.

봄에는 붉은 동백꽃, 여름에는 푸른 바다 위 물꽃, 가을에는 주황 귤, 겨울에는 하얀 눈꽃 풍경으로 가득한 제주 서귀포에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중섭미술관’이 있지만, 정방폭포 근처에 자리한 독특한 모양의 ‘왈종미술관’이 있다. 왈종미술관은 서귀포에 정착하여 살면서 보고, 듣고, 경험하고, 체득한 제주의 일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화가 이왈종李曰鍾(1945- )이 2013년에 설립하여 개관한 미술관이다.

서귀포에 그동안 내가 살던 집을 헐고 큰 작업실이 갖고 싶다는 생각에 도자기를 빚어 건물모형을 만들었다…. (중략) 처음엔 새들이 날아와 놀 곳 없어진 것이 아쉬웠지만 예전 뜰에 있던 나무들을 그대로 옮겨다 심었으니 봄이 오면 새들도 기억하고 찾아오지 않을까? 작업실뿐 아니라 전시공간과 어린이 미술교육실까지 마련하였으니 이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20여 년간 나에게 행복을 주었던 제주 서귀포에 작은 선물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1

언덕 위, 아래는 좁고 위는 넓은 둥근 찻잔모양의 건물을 바라보며 대문을 들어서면 현무암 경계석을 쌓아 잘 꾸며놓은 화단과 잔디마당이 우리를 맞이한다. 울타리 가장자리에 유자, 동백, 매화, 바나나나무 같은 열대나무가 심겨 있고 마당 한쪽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화단에는 수선화와 백합 같은 꽃과 화초들이 즐비해 있다.

전체 넓이 300평 규모의 3층 건물인 미술관은 큰 벽돌을 쌓아 벽돌 사이 흰 줄눈을 손으로 문지르듯 발라서인지 겉으로 드러난 건물 외벽은 조선백자처럼 밝은색을 띠며 투박하다. 여러 방향으로 나 있는 창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오며 습도 높은 제주환경에 대비해 공기순환과 환기에도 신경을 썼다. 제주 돌로 만든 내부 계단도 주변과의 조화를 위해 직접 붉게 칠했다고 한다.

미술관 1층은 수장고와 도예실,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는 화가 이왈종의 평면회화, 도자기, 목조각, 판화, 미디어아트 등의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실이 있으며, 3층은 화가의 작업 공간과 그가 사용하는 명상실로 관람객이 함께 공유 할 수 있다.

1층에서 안내를 받은 뒤 바로 2층 전시실로 향했다. 2층은 로비, 전시실, 복도라는 공간 구분 없이 전체가 그의 작품들로 배치해 놓았다. 작품의 내용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섬이라는 공간과 제주를 상징하는 유자, 동백, 매화 나뭇가지 위에 화가와 주변 인물들의 일상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고, 하늘을 나는 새와 물고기, 곤충, 강아지, 주거공간인 집과 장독대, 자동차 등이 등장하는 평면회화와 입체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마당에서 보았던 나무와 꽃들이 그림 속에 모두 등장하고 작가의 취미활동인 요가나 골프하는 모습도 표현되어 있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주 생활을 시작한 이왈종은 제주의 자연을 화폭에 담아 ‘제주생활의 중도’시리즈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이다. 민화와 풍속화에 뿌리를 두고 제주의 꽃과 나무, 하늘과 바다, 사람과 동물, 생활모습을 천연덕스럽고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품에는 제주의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이 있고, 삶과 이상향이 있다.

제주에 정착하여 20여 년이 넘게 그동안 나는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란 주제를 가지고 한결같이 그림을 그리면서 도대체 인간에게 행복과 불행한 삶은 어디서 오는 가를 깊게 생각해왔다. 인간이란 세상에 태어나서 잠시 머물다 덧없이 지나가는 나그네란 생각도 해보았고 세상은 참으로 험난하고 고달픈 것이 인생이라는 것도 생각해 봤다. 살다보니 새로운 조건이 갖춰지면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또 없어지는 자연과 인간의 모습들에서 연기라는 삶의 이치를 발견하고 중도와 더불어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려고 하루도 쉬지 않고 그림 그리는 일에 내 인생을 걸었다…. (중략) 행복과 불행, 자유와 구속, 사랑과 고통, 외로움 등을 꽃과 새, 물고기, TV, 자동차, 동백꽃, 노루, 골프 등으로 표현하며 나는 오늘도 그림 속으로 빠지고 싶다.2

전시실에 걸린 글을 통해 그의 예술철학과 신념을 엿볼 수 있으며, 작품명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중도’는 불교용어로 ‘자연과 인간을 하나로 보고 어느 것에든 집착을 버리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삶’을 뜻한다. ‘바르게 보고, 평등하게 본다.’는 의미는 생명에 대한 존중이라고 한다. 그러하기에 작가는 사람이나 동물, 식물과 곤충, 집과 자동차 등의 소재를 부각시키거나 특별히 강조하지 않고 같은 크기로 표현함으로서 세상 모든 것들이 동등하고 하나가 됨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주의 일상과 풍경을 그만의 시선으로 재구성하여 익살스럽고 이상적인 풍경으로 화면에 구현하고 있다.

다른 전시공간에는 연꽃, 학, 노루, 잉어, 새 등 우리의 민화民畵에 등장하는 소재를 한지부조와 입체화한 작품도 있다. 민화에 반영된 의미가 부귀영화, 장수, 다복, 풍요, 번창이기에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화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미성년자 관람불가’구역이 있다. 신윤복의 그림처럼 춘화春畵 화첩과 춘화가 그려진 도자기가 전시된 곳으로, 에로틱erotic하며 좀 민망한 장면들이 있어 태연한 척 얼른 나왔다.

예술이든 상업성이든 그런 개념에 개의치 않고 즐겁게 그렸고 그것으로 나는 만족할 수 있었다. 예술의 길이 한시적인 평가로 점쳐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삶이 녹아드는 그림, 그래서 즐거움과 안식을 줄 수 있는 그림이면 그런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3

왈종 화가의 그림은 하늘과 바다, 대지위에 나무라는 공간에 다른 소재들을 작은 형태로 화면에 배치하여 ‘숨은그림찾기’ 하듯 그림 내용을 발견하게 하고, 작품에서 보인 일상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인 양 편안하고 친숙하게 느껴진다. 또한 민화적 요소도 함께 첨가하여 상징적 의미를 부가시키고, 익살스럽고 해학적이어서 보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것은 마치 현대판 탈춤이나 마당놀이 공연의 한 장면처럼, 현대판 풍속화를 보는 것처럼 현재 우리의 생활모습을 표현하여 공유하고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미술관 3층은 화가의 작업공간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게 통유리로 되어 있다. 관람객이 많아 현재 이곳에서 작업하시지는 않는 듯하다. 3층 테라스 옆 좁은 계단을 올라가면 서귀포 앞바다와 섶섬, 문섬, 새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옥상정원이다. 이곳은 꽃과 나무가 있는 정원은 없고 각기 다른 봉황과 작품에 등장하는 조형물이 설치된 조형물정원이 있다. 각 층마다 테라스가 있어 서귀포 앞바다 경치를 볼 수 있지만,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가장 인상적이다.

이렇듯 이왈종 화가는 평면회화뿐만 아니라 부조, 입체, 도자기, 판화, 설치작품까지 다양한 미술 장르를 넘나들고, 색감 또한 아크릴물감으로 색채감을 주어 밝고 화사한 색이 주는 생동감과 활발함도 작품에 엿보여 ‘작품 활동을 정말 즐기면서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작업하는 동안 즐겁고 행복해하는 화가의 모습이 상상된다.

‘왈종미술관’처럼 작가의 이름을 건 미술관은 작가와 관련한 연구와 학술활동 및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전시를 기획하는 등 그야말로 작가를 위한 미술관이다. 국내에는 지자체에 소속된 공립 형태의 작가미술관과 가족이 운영하는 재단이나 작가 개인이 직접 운영하는 미술관이 지역마다 있다.

공립 작가미술관은 지자체에서 나오는 국비로 운영·관리되기에 미술관 경영에 큰 무리가 없어 보이고, 해당 지역의 문화예술분야 인프라 구축과 문화 확산, 지역 알리기 등으로 연결되기에 지역마다 유명 예술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유치하려 노력을 많이 한다. 그러나 작가와 지자체 간의 행정업무 및 의견 불일치로 무산되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그리고 인지도 낮은 지방보다는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이나 경기, 제주에 미술관이 많이 편중된 경향을 보게 된다.

또한 개인이나 재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작가미술관 같은 경우, 경제적으로 든든한 재단이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미술관을 종종 보아 왔다. 특히 작가는 작품제작도 중요하지만, 사후 작품을 보존하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미술품을 공공미술관에 기증하려 해도 유명 작가가 아니면 받아주지 않거나, 작가 작고 후에 후손들이 개인미술관을 설립하여 유지하고 이끌어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나마 왈종미술관은 “미술관이 작가의 색이 진한 공간이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자신이 미리 미술관을 설계하고 건립한 점은 다행이고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제주의 미술관들은 ‘저지문화예술인마을’과 ‘서귀포’라는 두 곳에 집중되어 있다. “예술이 주는 에너지 ‘제주 미술관 여행’4”이라는 관광 코스도 새로이 편성되어 있어, 조용한 공간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사색의 시간을 갖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고자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그런가하면 내년(2024)에 서귀포에 ‘박서보미술관’이 들어설 예정이라 우리 미술계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기대가 크다. 그러한 만큼, 이제 ‘제주도’하면 이국적 자연경관의 관광지이기보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미술관 특구’로 관심 받길 기대해 본다. 

 


1 〈미술관 설립배경〉 중에서. 2013년 5월 31일 서귀포 왈종
2 〈제주생활의 중도와 연기〉 중에서. 2013년 5월 서귀포 왈종
3 이왈종, 〈제주생활에서 중도의 삶〉, 《LEE WAL CHONG》 도록
4 제주관광정보센터 https://www.visitjeju.net/


참고자료 왈종미술관 http://walartmuseum.or.kr/
이미지 제공 왈종 미술관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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