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낭만닥터, 나를 '호되게' 사랑해주세요: 〈낭만닥터 김사부3〉 〈닥터 차정숙〉
[드라마 월평] 낭만닥터, 나를 '호되게' 사랑해주세요: 〈낭만닥터 김사부3〉 〈닥터 차정숙〉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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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닥터’ 김사부가 시즌 3으로 돌아왔다.

금의환향이 따로 없다. 시즌3이 시작되고 시즌1과 시즌2, 그리고 시즌3이 웨이브에서 시청 순위 1·2·3위를 사이좋게 차지했으니 말이다. 나의 경쟁자는 어제의 나 자신밖에 없는 것처럼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 시리즈는 위풍당당하다. 아, 김사부님~ 저도 호되게 꾸짖어주세요.


‘욕쟁이 할머니’ 김사부

시즌제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이하 〈김사부〉)의 주인공은 당연히 ‘낭만 닥터’ 김사부(한석규 분)다. 겉으로 보기에는 까칠한 욕쟁이 같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진정한 의사. 그냥 욕쟁이가 아니라 맛집에만 있는 ‘욕쟁이 할머니’ 느낌이랄까. 김사부의 입담은 저승 문 앞까지 걸어간 환자를 뒷걸음질 치게 할 정도로 맛깔나다. “그냥… 아이그 아주 그냥 대놓고 조지는 게 내 전공이거든, 알아둬라.”

시즌3은 탈북자들이 탄 어선에서 총상 환자가 발생하면서 시작한다. 모처럼 휴가중이던 김사부도 긴급 연락을 받고 급히 출동한다. 김사부의 천재적인 의술로 겨우 위기를 넘기고 2차 수술을 하기 위해 돌담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근엄한 표정의 함장이 그의 앞을 막아선다. 탈북 문제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탈북민이 남한으로 들어오는 순간, 현재 서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남북 실무자 회담이 무산될 수 있습니다. 아, 이를 어쩔 것인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속 사랑에 빠진 남북의 두 연인처럼 제 3의 나라 스위스에 갈 수도 없고.

우리의 ‘욕쟁이 할머니’ 김사부는 ‘대한민국의 아킬레스건’ 북한 앞에서도 물러섬이 없다. “그런 거까지 의사가 고려해야 하는 겁니까?” 그에게는 남과 북의 위태로운 경계선보다 삶과 죽음 사이에 흐르는 요단강이 훨씬 더 중요하다. 1) “전쟁터에서도 부상자는 아군, 적군 안 따지고 치료해 주는 게 인지상정” 2) “정치적 상황 어쩌고 저쩌고 갖다 붙이는 거 반칙” 3) “사람부터 살리고 보는 게 우선” 3단계의 찰진 호통으로 김사부는 돌담병원으로 탈북민을 이송하고, 수술하고, 환자를 살리는 데 성공한다. 아, 우리의 김사부.

낭만에 대하여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의사가 환자를 살리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하고 되물을 수 있다. 하지만 의사도 사람이고 병원도 누군가의 직장이기에 현실의 논리, 자본의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지난해 ‘젠틀함의 대명사’ 배우 이서진이 대머리 의사로 변신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의사는 의사인데, 환자를 손님이라 부르며 폐업할까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자영업자’ 의사로 나와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던 드라마 〈내과 의사 박원장〉. ‘보조개 미남’ 배우 이서진의 파격 변신 탓(?!)에 전 재산 탕진하고 출연 결심한 거 아니냐는 풍문까지 돌았다. 극중 개인 병원을 개원한 의사의 ‘피땀눈물’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나를 ‘3초 진료’한 그 매정한 정형외과 의사도 사람이었구나. 아. 그랬구나.

드라마 〈비밀의 숲〉으로 유명한 이수연 작가의 또 다른 명작 〈라이프〉(2018)도 〈김사부〉 시리즈와 함께 보면 그 재미가 두 배다. 차원이 다른 메디컬 드라마라는 극찬을 받은 드라마 〈라이프〉는 병원을 영리 기관으로 보는 병원 경영진과 병원의 공익성을 중시하는 의사들의 치열한 대립을 주요 사건으로 다룬다. 극 중 병원 경영진의 대표 인물이 배우 조승우가 연기하는 대학병원 총괄 사장 구승효다. “의사라서, 병원이라서, 특별하다고요? 뭐가 그리 특별한지 내가 직접 봅시다.”

김사부와 구승효, 한석규와 조승우, 뜨거운 감성과 차가운 이성의 대결. 상상만 해도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라이프〉 2화에 의사 100명과 구승효 신임 사장이 설전을 벌이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1:100 맞짱’이란 타이틀로 지금까지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아, 〈낭만 닥터 김사부〉와 〈라이프〉의 세계관 통합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K- 메디컬 유니버스.

전설의 도장 깨기
나만 이런 이상한 상상을 한 건 아닌 모양이다. 〈김사부〉 시즌3에는 구승효를 닮은 차진만이 새로이 등장해서 김사부와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시즌2 마지막 장면에서 계획했던 외상센터가 드디어 시즌3에 세워지는데, 그 센터장 자리에 앉은 사람이 김사부가 아니다. 차진만 교수다. 매사 김사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최악의 ‘빌런’각인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악역과는 다르다. 사실 〈김사부〉 시리즈의 매력포인트 중 하나가 바로 빌런의 품격이다. 무조건 악행을 일삼는 저렴한 평면적인 악역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즌2의 악역 ‘박민국 교수’도 김사부의 수술 장면을 보고 그 전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김사부와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 (나중에 시즌3에서 그는 김사부의 조력자로 신분 전환하여 재등장한다.) 차진만 교수도 박민국 교수와 비슷한 길을 걷는다. (배우 이경영이 연기하는 탓(?!)에 평면적인 빌런 같아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긴 하지만) 돌담병원 의료진들과 수술해보고는 그들에게 매료되어 김사부로부터 권역외상센터는 물론이고 이 팀까지도 완전히 빼앗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진짜 칼잡이를 만나 아주 즐겁다면서. 이쯤되면 <김사부> 시리즈는 메디컬드라마가 아니라 무협물이다. 도장깨기하듯 고수들이 김사부를 찾아 돌담병원에 오는 느낌.

과연 김사부는 이번에도 돌담병원을 수호할 수 있을 것인가. 예상컨대, 쉽지 않을 것이다.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신념(가치관)의 대립이라고 해야 할까. 김사부와 차진만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의사상이 다르다. 그래서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기보다는 두 사람의 관점에서 함께 고민하게 된다. 시즌3에서 김사부도 이전 시즌들과 다르게,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신념을 되돌아보면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네가 보여줘 봐. 넌 어떻게 해낼 수 있는지. 어떤 답을 가지고 있는지.”

또 한 명의 낭만 닥터 ‘연하남’

또 한편의 메디컬드라마가 요즘 화제다. 20년 차 전업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46살 차정숙의 흥미진진한 성장 서사를 그린 드라마 〈닥터 차정숙〉. 첫 방송 시청률 4.9%. 하지만 점점 상승세를 타다가 6회에서 드디어 10%대를 돌파했다.

극중 차정숙은 20년 동안 가족들에게 헌신하며 가정주부로 살다가 급성 간염으로 간 이식이 필요한 위기 상황에 놓인다. 다행히도 남편의 간이 안성맞춤. 하지만 죽음의 벼랑 끝에서 살 희망이 생긴 것도 잠시, 이놈(?!)의 남편이 망설인다. 다른 사람의 간을 받아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 차정숙은 각성하고 180도 달라진다. 간 이식 수술 후 남편에게 건넨 차정숙의 첫 마디가 바로 “개새끼”다. 욕을 내뱉고 속이 후련하다는 듯 미소짓는 차정숙의 얼굴로 1회가 끝난다.

다시 태어난 차정숙은 친정엄마의 조언으로 다시 병원에 복귀한다. “니가 제일 좋아하는 게 공부잖아. 노는 것보다 공부를 좋아했어.” 그렇게 차정숙의 엘리트 인생이 다시 시작한다. 아,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음냐. 차정숙의 나이 46살. 전공의 시험을 봤는데, 50점 만점에 49점. 20년만에 몇 달 공부하고 받은 점수가 만점에 가깝다. 같은 시험을 본 의대 아들은 45점. 아흑.

그렇다고 차정숙의 병원 생활이 순탄한 건 아니다. “젊은 친구들이 잘못하면 실수지만, 나이 먹은 사람이 못하면 무능인 거야”라면서 그만둘 것을 강권하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의대 교수 남편과 전공의 아들과 여러 사건에 얽히면서 고난과 역경이 3단 쓰리콤보로 찾아온다. 무엇보다 차정숙을 힘들게 하는 것은 남편의 첫사랑이 의대 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단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그 첫사랑에게는 딸이 있는데, 그 딸이 남편을 닮았고, 그리고 그 딸이 차정숙의 딸과 친구이고... 음, 뭔가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지 않는가. 개새…

걱정하지 마시라. 중년 여성의 자아 찾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이름, 연하남. 우리의 차정숙에게는 로이킴이 있으니까 말이다. “봄봄봄, 봄이 왔어요~” 지금은 여름인데 봄이 왔어요.

차정숙의 간 이식 수술을 담당했던 해외파 의사 로이킴은 기존의 연하남들과 비교했을 때 여러모로 우월하다. 능력 착하고 얼굴 착하고 성격 착하고. 모든 것이 착한 그는 차정숙에게 착한 얼굴로 묻는다. “근데 언제 이혼할 거예요?” 바이크 타고 등장한 이 착한 연하남이야말로 ‘낭만 닥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낭만 닥터 로이킴, 나를 호되게 사랑해주세요.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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