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바람이 분다 첫사랑이 돌아왔다: 〈웰컴투 삼달리〉 〈마에스트라〉
[드라마 월평] 바람이 분다 첫사랑이 돌아왔다: 〈웰컴투 삼달리〉 〈마에스트라〉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4.01.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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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와 〈마에스트라〉는 얼핏 보기에 전혀 다른 내용 같은데, 곰곰이 살펴보면 참 비슷하다. 두 드라마의 중심 사건은 ‘바람’과 ‘첫사랑’이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벌써 감을 잡았을 것이다. 그 ‘바람’ 맞다. 절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비루한 그 ‘바람’과 산뜻한 ‘첫사랑’이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면, 이제부터 소개할 두 드라마에 주목하시라.

바람이 불고 첫사랑이 돌아왔다. 바람이 불어서 첫사랑이 돌아왔다. 바람이 불기 때문에 첫사랑이 돌아왔다. 바람이 불었으므로 첫사랑이 돌아왔다. 바람이 불었음에도 첫사랑이 돌아왔다. 접속사 하나가 달라졌을 뿐인데 의미가 제각각 다르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 마음속의 접속사도 수시로 바뀌었다. 개인의 취향과 삶의 경험에 따라 접속사 선택이 달라지고 그 선택에 따라 드라마에 대한 해석도 달라질 수 있음을 미리 양해드린다. 음흠.

바람이 분다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도의 작은 어촌마을 삼달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따뜻한 로코물이다. 한 줄의 소갯글만으로도 36.5도의 인간적인 온기가 느껴진다. 〈동백꽃 필 무렵〉의 차영훈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고 해서 더욱 화제가 되었다. 〈동백꽃 필 무렵〉의 제주도 버전이 될 거라는 기대가 몽글몽글 차올랐는데, 아쉽게도 감동은 그때보다 조금 약하다. 하지만 겨울 동안 꽁꽁 얼어버린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는 충분하다.

〈웰컴투 삼달리〉의 주인공 조삼달(신혜선 분)과 조용필(지창욱 분). 제주도 삼달리에서 한날 한시에 태어난 두 사람은 제주도에서 살다가 대학을 서울로 진학한다. 친구이자 연인으로 함께 일상의 모든 희로애락을 공유하던 그들은 ‘성격 차이’로 이별을 맞이한다. ‘개천을 사랑한’ 조용필은 제주도로 돌아가 제주기상청 예보관으로 일하고, ‘개천에서 난 용이 되고 싶었던’ 조삼달은 새 이름 ‘조은혜’로 서울에서 성공한 패션 사진작가로 살아간다.

각자의 기질과 꿈에 맞게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던 둘은 뜻밖의 사건으로 다시 조우하게 된다. 조삼달 남친의 바람. 남편 외도도 아니고 남친의 바람이라니. 이런 것쯤은 막장의 축에는 끼지도 못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던 ‘자존감 최강 여전사’ 조삼달에게 인생 최대의 위기가 몰려온다. 이름하여 ‘막장을 막장답게 하라’.

남친의 바람은 소소한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것은 조삼달이 피·땀·눈물로 이루어 낸 세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진원지였다. 지진의 규모는 그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남친의 바람 상대는 조삼달의 퍼스트 어시스턴트였고, 조삼달에게 공적 열패감과 사적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앙심을 품고 거짓 갑질 폭로와 거짓 자살 시도로 ‘후배를 괴롭힌 사진작가’라는 거짓 프레임으로 조삼달을 옭아맨다. 동료와 업계로부터 외면당하고, 정성 들여 준비한 사진작가 15년 기념 전시회는 무산된다. 그렇게 한순간에 모든 것이 날아가버린다. 가벼이 여긴 그 바람 때문에. 아, 바람이 거세게 분다.

첫사랑 사용법

남친도 잃고 명예도 잃고 동료도 잃고 그 모든 것을 다 잃고 나서 조삼달은 깨닫는다. 사진작가 ‘조은혜’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진짜가 아닌 가짜였음을. “내가 죽어라 달려온 이 길이 빈 껍데기 같다.” 사소한 그 바람은 결국 조삼달로 하여금 다시 제주도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만든다. 그녀의 고향 제주도로. 모든 것이 시작된 근원적 공간으로. 다시 시작할 결심. ‘가짜 나’와 헤어지고 ‘진짜 나’와 만날 결심. 그렇게 ‘조은혜’가 사라진 자리에 ‘조삼달’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한 조용필도 함께 돌아온다.

그녀와 이별한 8년 동안 “한 번도 잊어보려 한 적 없다”는 그는 상처 입고 돌아온 조삼달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안는다. “너 괜찮아?” 드라마 방영 동안 시청자들 사이에서 몸과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조용필의 ‘난로 어록’이 화제였다. 인생의 겨울에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따뜻한 공감이다. 이것이 바로 ‘얼굴이 따뜻한 배우’ 지창욱을 통해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가 보여주는 첫사랑 사용법이다. 아, 바람이 불어서 첫사랑이 돌아왔구나!

아무리 드라마지만 너무 판타지 아닌가. 저런 첫사랑이 어딨어 하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드라마 작가는 제주도 해녀의 말을 빌려와 치밀하게 심리적 개연성을 보강해놓았다. “해녀들을 교육할 때 가장 강조하는 말이 있다. 오늘 하루도 욕심내지 말고 딱 너의 숨만큼만 있다 오라고. 평온해 보이지만 위험천만한 바다속에서 당신의 숨만큼만 버티라고. 그리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땐 시작했던 물 위로 올라와 숨을 고르라고.” 다시 물속에 들어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시간, 그 짧은 시간이 바로 우리가 첫사랑과 조우하는 시간, 〈웰컴투 삼달리〉를 시청하는 시간이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딱 16시간.

춥다고 난로 옆에만 계속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언젠가는 밖으로 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삶의 감각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봄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주어진 작은 손난로를 마음껏 누려보자. 마음의 온도가 36.5도 정상 체온을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너 괜찮아?” 아니, 아직.

바람이 또 분다

전 세계에 단 5%뿐인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 성공의 성공을 이루어낸 최정상의 넘사벽 여성 캐릭터. 문제는 또 남자의 바람이다. 30대 조삼달에게 바람난 남친이 있다면 tvN 〈마에스트라〉의 40대 차세음에게는 바람난 남편이 있다. ‘오케스트라 드라마의 탈을 쓴 막장 불륜’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있을 만큼 남편의 바람, 내연녀의 임신, 살인 사건 등 지극히 상투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그렇다고 고구마 전개로 답답하게 드라마가 진행되진 않는다. 극중 차세음을 첫사랑이라 부르는 ‘진정한 드라마 남주’ 유정재(이무생 분)가 막강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20여 년이 흘렀지만 차세음을 잊지 못한 유정재는 그녀의 곁으로 가기 위해 그녀의 오케스트라를 통째로 사버린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사랑은 집착에 가까울 만큼 집요하다. 차세음의 관심을 끌기 위해 화재 경보벨을 누르는 것부터 공연을 빌미로 이혼을 강요하는 것까지 못된 괴롭힘으로 관심을 끄는 초등학생식 구애작전의 스케일이 점점 커져가는데…

이혼하지 않으면 오케스트라 공연을 무산시키겠다고 협박하는 유정재의 번득이는 눈빛이 소름 끼치게 느껴질 무렵, 유정재가 차세음 남편과 오케스트라 단원의 외도 사실을 먼저 눈치채고 차세음이 상처받을까 봐 이혼하라고 협박한 것임이 밝혀진다.  협박이 협박이 아니었던 셈이다. 아하, 바람이 불어서 첫사랑이 또 돌아왔구나!

〈마에스트라〉에서 바람피운 남편은 필요악과 같은 존재다. 남편의 불륜이 있기에 유부녀 차세음을 향한 주영재의 사랑이 지고지순한 순정으로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온라인 리뷰를 보니까 칭찬이 자자하다. ‘사랑하는 여자밖에 모르는 플러팅남.’ 흥미로운 점은 유정재의 매력 포인트가 ‘집착’이라는 점이다. 유정재는 20살 우연히 만난 차세음에게 끌려 연인이 되었고, 이별 후에도 첫사랑 차세음을 잊지 못해 뜨겁게 집착한다.

일이 년 전만 해도 드라마 남주의 자격은 ‘무해함’이었다. 〈그해 우리는〉의 최웅(배우 최우식)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백이진(배우 남주혁)… 청량감 넘치는 레트로 감성의 20대 남주, 멍뭉미 넘치는 ‘무해한 남자’ 캐릭터가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집착남’이다. “이제 넌 내 거야.”

한 사람을 향한 집착은 사랑과 범죄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집착의 공격성이 외부로 향하면 위험으로부터 여자를 지키기 위한 보호본능으로 발현되지만, 내부로 향하면 스토킹과 같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위험한 경계선에 서서 유정재는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마에스트라〉는 ‘마에스트라’ 차세음이 해체 직전의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으면서 그를 둘러싼 비밀을 파헤치게 되는 스릴러 드라마다. 잊지 말자. 스릴러. 유정재의 집착은 핏빛 치정 싸움 덕분에 확실하게 안전한 보호색을 입는다. 이것이 40대 중년 첫사랑의 ‘유해하지만 유익한’ 사용법이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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