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세계_막_나: 하이디 부허의 스키닝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세계_막_나: 하이디 부허의 스키닝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3.06.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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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부허Heidi Bucher(1926-1993)는 스위스 출신의 네오아방가르드 미술가다. 우리에게 낯선 서유럽 현대 미술가인데, 그도 그럴 것이 작가 생전에는 자국 내에서나 국제 미술계에서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여성이었고, 1971년에야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사회에서 성장했으며, 결혼해서는 예술가 남편의 조력자 정도 역할이었고, 이혼 이후에 비로소 자신의 의지와 욕망에 집중하며 작업할 수 있었던 때문이다. 게다가 부허는 서구 부르주아 남성 중심의 질서가 요구하는 정형적 미술 규범을 따르는 대신 자신만의 전위예술을 고집했다. 그러니 미술계 내에서는 존재감이 약한 아웃사이더 여성미술가였을 것이고, 대중에게는 이해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는 예술가였을 것이다. 그런 부허가 타계 후 십년이 지난 시점인 2004년부터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를 비롯해 유럽 대표 미술관들에서 개인전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본격적인 작가연구가 진행 중이다. 두 아들이 ‘하이디 부허 에스테이트1’를 통해 유작 관리를 해왔고, 유력 미술관들과 적극 협력해왔기에 가능해진 일이다. 덕분에 부허는 바야흐로 국제 미술계가 주목하는 여성 현대미술가 중 한 명으로 사후적 삶을 살고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올해 3월부터 6월까지 아시아 최초로 이 작가를 조명하는 회고전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를 개최함으로써 그에 동참했다. 아트선재센터 1전시실에서는 부허의 대표작인 1970-80년대 〈건축적 스키닝〉과 〈소프트 오브젝트〉가 대규모로 전시되었다. 더불어 그 창작 행위를 담은 영상이 상영되어 감상자 입장에서는 수십 년 전 작가가 건축물의 표면을 라텍스로 떠내는 현장을목격하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 2전시실은 작가의 초기작인 1950년대 〈실크 콜라주〉와 〈인체 드로잉〉을 비롯해 퍼포먼스 의상 및 드로잉, 1960-70년대 초 입을 수 있는 조각으로서 〈바디쉘Bodyshell〉과 〈바디랩핑Bodywrapping〉등이 전시돼 작가의 창작 여정을 따라가 보게 한다. 그렇게 총 130여 점의 출품작을 통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부허의 예술세계가 얼마나 흥미롭고 풍부한지 체감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물론 이 전시가 단순히 한국의 미술 대중에게 다소 낯설고 별 상관도 없는 여성미술가를 유명하게 만들거나 영웅화하기 위해 기획된 것은 아니다. 《하이디 부허》전은 우리 감상자로 하여금 시각적 즐거움만이 아니라 인문적 사고활동을 촉진하고 색다른 관점과 지각으로 예술현상을 경험하도록 이끈다. 이전에 몰랐던 지식이나 어려워했던 철학을 미술작품으로 주입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보다는 작가가 몸, 물질, 공간, 행위, 의도와 개념을 혼합하면서 세상 밖으로 펼쳐낸 미적 표현의 결과이기에 독특한 지각경험과 생각의 과정을 제공한다는 의미다. 부허의 전위예술이 출현한 배경과 문제시한 이슈들, 특별한 목적에 따라 선택한 질료 및 표현법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음미한다면 충분히 그 뜻에 공감할 것이다.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스키닝; 세계와 나 사이의 막 작업

부허의 미술을 네오아방가르드로 분류할 수 있는 근거는 크게 미술사적 관점과 조형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일의 미학자 페터 뷔르거Peter Bürger는 20세기 초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이탈리아의 미래파, 러시아의 구성주의, 그리고 다다이즘을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의 역사적 원류로 정리했다. 네오아방가르드는 이러한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미술사적 후속이자 저항으로서 포괄적으로 말하자면 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서유럽의 반미학적 미술을 가리킨다.2 미니멀리즘, 예술제도비판미술, 대지미술, 건축적이고 장소 특정적인 미술, 해프닝, 바디아트, 팝아트, 차용미술, 혐오미술 등이 쏟아진 1960-80년대를 포함시킬 수 있다. 요컨대 네오아방가르드 미술가들은 역사적 아방가르드 선배들처럼 예술과 삶의 변혁적 관계를 주창하는 대신 “아방가르드를 예술로서 제도화함으로써” 미술의 폭발적 확장과 변주를 꾀했다.3 그것은 내용 면에서 기성의 미술 규범에 대한 비판이자 도전이었다. 그런데 더 명징한 사실은 네오아방가르드가 미술 형식의 차원에서 주어진 경계를 일탈하고, 개념에 근거한 물질적 구현으로서 작품/작업이라는 패러다임을 열어젖혔다는 점이다. 네오아방가르디스트로서 부허는 그 패러다임 이행에 포함되는 작가다. 그녀가 전위예술 운동에 앞장섰다는 뜻이 아니라 조형성이 그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부허를 대표하는 표현기법 인 ‘스키닝skinning’에 주목하면 그 맥락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이디 부허, 〈작은 유리 입구〉 &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1988),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피 막, 피부》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아트선재센터 2층의 넓은 전시공간을 압도하듯 두 채의 거대한 건물 형상이 공중에 매달려있다. 부허가 1988년 작업한 〈빈스방거 박사의 진찰실〉이다. 건물 형상이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건축물의 껍데기라 해야 맞다. 벽체는 물론창문의 창살까지 정확히 재현되었다. 그러나 속은 텅 비었고, 천장의 고리에 매달린 부분 말고는 중력 탓에 축 늘어져 바닥에 끌린 부분도 적잖다. 게다가 전체가 노랗게 변색되었다. 그렇기에 그 건물 형상은 늙은 유령 혹은 쇠락한 망령의 마지막 자취처럼 보인다. 작품에 대한 이러한 시각적 인상은 그 건물의 정체를 알고 나면 더욱 강렬한 느낌과 호기심으로 증폭된다. 스위스의 정신과의사 루트비히 빈스방거Ludwig Binswanger(1881-1966)가 아버지 로베르트 빈스방거의 대를 이어 정신질환 환자들을 진료하고 입원 관리했던 크로이츠링겐 벨뷰 정신병원이 모델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병원은 프로이트와 브로이어가 공동 연구한 히스테리아를 치료하는 곳으로 유명했고, 그 둘의 연구대상이었던 안나 오Anna O(독일 페미니스트 베르타파펜하임Bertha Pappenheim)가 입원 치료받은 사실로도 유명하다. 부허는 그곳이 문을 닫고 폐허로 방치된 상태에서 ‘스키닝’ 작업에 착수했다. 건축물의 표면에 부레풀을 발라거즈를 입히고 그 위에 라텍스를 도포한 후 건조가 끝나면 떼어내는 방식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건물의 피부 만들기 혹은 거꾸로 건물의 피부 벗기기다. 같이 전시된 영상을 보면 부허는 그 ‘라텍스-피부’를 뜯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마침내 벗겨낸 그것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다. 감상자의 가슴을 무겁게 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힘겨운 작업 행위와 눈앞의 거대한 건축물 피막이 교차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어떤 억압과 굴레, 폐쇄와 은폐, 단절과 부자유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서구 근대 유럽의 정신의학이 여성의 질환으로 정의한 히스테리, 의학의 이름으로 실행된 그 정신병원의 보호감호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부허의 스키닝은 온몸으로 그 외관을 덮고 또한 벗겨냄으로써 한편으로는 세계와 여성 주체 사이를 막았던 남성적 가로막을 들춰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부터의 능동적 탈피와 해방의 가능성을 자극할 수 있었다.

하이디 부허, 〈작은 유리 입구 스키닝〉(1988),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상영 장면, 2023 photo by 강수미

인터페이스 혹은 가로막

아트선재센터가 해설한 바에 따르면 “부허에게 스키닝 행위는 세계와의 인터페이스로서 건축의 피부를 생성하는 것이었다.”4 그렇다. 나와 세계 사이에는 인터페이스가 존재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모두 실재와의 직접 접촉으로 타버리거나 미쳐버릴 것이다. 혹은 실재에 먹혀버리거나 압도당할 것이다. 정신분석학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상징계적 질서를 받아들이되 분열을 겪는 신경증자와 아예 상상계에서 나오지 않는 정신증자를 구분하는 경계도 그와 같다. 말하자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언어, 규범, 제도, 질서, 윤리, 도덕은 우리와 세계를 매개하는 인터페이스로서 우리를 보호하는 동시에 사회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일정한 문법과 형식, 의식과 기제로 우리의 자유를 제한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부허가 건축물의 외관을 라텍스로 떠내는 작업을 “세계와의 인터페이스” 만들기로 이해하는 일은 반대 의미와 반정립 할 때만 타당하다. 요컨대 부허의 스키닝은 세계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아주 얇고 비가시적인 막, 강력하고 전면적인 그 막을 드러내고 벗겨내는 행위기도 하다고 말이다. 〈신사들의 서재〉(1977-79)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부허는 대대로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독점한 공간이고 여자인 자신에 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공간인 고향집 서재를 라텍스로 스키닝했다. 원목 널조각을 기하학적으로 짜 맞추는 파르케트parquet 공법으로 시공된 서재 마룻바닥을 라텍스로 떠낸 것인데 그 자체로 가족 내 성적 위계질서를 해체하는 시도처럼 보인다. ‘파르케트’가 유럽 부르주아 남성의 공간에 주로 세공되었기에 부허는 그러한 상징성을 이용해 과거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해진 억압과 차별을 눈에 보이게 만든 것이다. 빈스방거의 진찰실을 라텍스 피막으로 세상에 드러냈듯이 말이다. 이렇게 기성의 질서와 구조를 내면화하는 대신 그것을 딛고 서서 전위적인 예술을 산출해내는 일이야말로 탈피이자 변신이다. 작가 스스로 그 점을 명확히 했다. “전형적인 부르주아의 상징인 파르케트 마루에 얹힌 유충의 껍데기는 잠자리가 해방의 비행을 위해 에너지와 힘을 쏟아 탈피하고 탈출(탈-유충)해야 하는 근원지 (…) 한 개인이 자율적인 자아로 나아가는 길이 마련되는 것”5이라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지점에서 한 쌍을 이루는 부허의 다른 작품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시기 작업한 〈소프트 오브젝트〉가 그것이다. 부허는 남편이자 동료미술가였던 칼 부허와 이혼한 후 미국에서 다시 스위스로 돌아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서 작업을 개시했다. 자신이 입던 속옷, 앞치마, 나이트가운, 심지어 침대에까지 라텍스를 부어 부조를 만든 것이다. 작가는 그 작업을 “피부의 방부 처리”라 비유하고 “남자들의 집에서 살아남아야만”6 했던 여자들, 즉 자신을 포함해 가정 내에 박제된 삶을 수용하고 견뎌야 했던 여성들을 상징적으로 기념비화 했다.

하이디 부허, 〈신사들의 서재 파르케트 플로어링〉(1979),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전 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20세기 초 유럽 부르주아 집안에서 태어난 여성미술가에게 아버지의 서재, 히스테리아 전문 정신과 의사의 진찰실은 그저 하나의 공간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앞치마, 팬티스타킹, 이불과 침대 또한 그저 입고 쓰는 용품에 불과하지 않다. 전자가 가부장적 질서가 주도하는 남성 우위의 위계적 공간으로서 전문성과 확장된 사회관계를 대변하는 권위의 장소라면, 후자는 정반대로 가부장제로 억압된 여성의 폐쇄 공간으로서 그 몸과 정신이 강도 높게 관리되고 축소되는 기제mechanism다. 이렇게 비판적 사고를 통해 부허의 스키닝과 소프트 오브젝트 작업이 내포한 콘텍스트를 엮어내면서 《하이디 부허》 전시를 보면 한 인간이 삶을 살아내는 데 얼마나 고군분투해야 하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또 우리의 약하디 약한 살갗은 얼마나 그 힘듦과 애씀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선명하고 솔직하게 밖으로 드러내는지 느끼게 된다.

미국 미시간의 밀퍼드에서 대를 이어 장의사 일을 하며 시를 쓰는 토머스 린치Thomas Lynch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는 신체 부위 각각의 조합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살 속에서 홀로 분투하는 독립 개체”7라고. 서글픈 말이다. 하지만 진실을 찌르기에 우리에게 힘이 되는 어구로 새기고 싶은 말이다. 부허의 전시는 스위스 오베르뮐 빈터투어에 있는 선대의 집을 라텍스로 스키닝한 후 공중에 들어 올린 장면을 찍은 사진 〈플라잉 스킨룸〉(1981)으로 끝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가롭게 떠있는 아이보리색 집 껍데기는 마치 폐쇄병동의 실내를 벗어나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로운 여정의 애드벌룬처럼 보인다.

하이디 부허, 〈플라잉 스킨룸〉(1981) & 〈오늘 물은 항아리 밖으로 흘러나온다〉(1986), 아트선재센터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1 Indigo Bucher & Mayo Bucher, The Estate of Heidi Bucher https://heidibucher.com/
2 요컨대 “네오아방가르드란, 1910년대와 1920년대의 아방가르드적인 고안들, 즉 콜라주와 앗상블라주, 레디메이드와 그리드, 모노크롬 회화와 구성 조각 같은 것들을 재활용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북미와 서유럽 미술가들을 느슨하게 묶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핼 포스터, 『실재의 귀환』, 이영욱, 조주연, 최연희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3, p. 27.
3 페터 뷔르거, 『아방가르드의 이론』, 최성만 옮김, 지만지, 2009, pp. 111-114.
4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전시도록, 아트선재센터, 2023, p. 5.
5 하이디 부허, “하이디 부허 매니페스토 파르케트 잠자리”,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p. 54.
6 1983년 마르틴 샤우브(Martin Schaub)와 부허의 대담. 《하이디 부허: 공간은 피막, 피부》, p. 120에서 재인용.
7 토마스 린치 외, 『살갗 아래』, 김소정 옮김, 아날로그, 2020, p. 19.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3년 7월호(통권 1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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