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예술의 원천을 찾아서: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미술관 탐방] 예술의 원천을 찾아서: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3.06.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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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이 국내에서 큰 붐을 일으켰다. 이 영화를 보고 온 중학생 딸이 영화 속 장소에 가고 싶다 해서 일본 도쿄로 향했다. 딸은 막연하게 일본이라는 곳에 가고 싶어서, 필자는 두말할 것 없이 미술관 탐방을 위해 무작정 간 것이다. 대구공항에서 나리타공항까지 비행기로 2시간.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도시다. 나리타공항에서 케이세이Keisei 우에노행 열차를 타면 종점인 ‘우에노역’에 도착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일정을 잡은 곳이 우에노역 바로 옆, 우에노공원 내에 위치한 ‘국립서양미술관’1이다.

도쿄 우에노上野는 에도시대(1603-1868) 이래 번화가이면서 일본 근대기 문화예술의 중심지 역이었다. 교통의 요지이기도 한 이곳에 위치한 국립서양미술관은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증 반환된 ‘마츠카타 컬렉션’을 바탕으로 서양미술 작품을 널리 대중에게 소개하기 위해 1959년 4월에 설립, 6월에 개관한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의 원점인 ‘마츠카타 컬렉션’을 만든 마츠카타 코지로(1866-1950)2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조선 사업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둔 사업가로 런던에 체재하던 1916년부터 미술품 수집을 시작해 10년 동안 3천 점이 넘는 서양미술 작품을 사 모았다. 그러나 1927년에 닥친 경제공황으로 회사는 경영위기를 맞았고, 수집한 미술품은 경매와 화재로 모두 흩어지거나 소실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적대국의 재산으로 취급되어 프랑스정부에 접수 보관하던 ‘마츠카타 컬렉션’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이후 양국의 우호 관계의 증표로서 일본에 다시 반환되었고, 지금의 국립서양미술관이 전시하고 있다. 개관 초기의 ‘마츠카타 컬렉션’은 프랑스 근대회화작품이 주였으나, 그후 자체 구입과 독지가들의 기증으로 현재는 회화, 조각, 소묘, 판화, 공예 등의 분야에 걸쳐 약 6,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3.

특히 미술관 본관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가 설계를 맡아 준공한 역사적인 건축물로 새로운 시대의 건축의 기본이 되는 이론과 시스템이 집약되어 있다. 기둥·바닥·계단이라는 단순한 구조를 기본 단위로 하는 ‘돔이노 구조Dom-Inno System4’와 1926년에 창안한 ‘근대 건축의 5원칙5’을 접목하였고, 건축과 신체의 조화를 목표로 고안한 ‘모듈러’까지 구비한 건축물이다. 또한 2007년 일본 중요문화재(건조물)로 지정, 201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작품-근대건축운동에 대한 현저한 공헌) 목록에 기재되었다.

국립서양미술관 전경

국립서양미술관 설립 20주년 되던 해에 지어진 신관은르 코르뷔지에의 제자인 마에카와 구니오前川國男(1905-1986)가 설계했다. 본관과 하나로 연결되게 지어진 신관은 세 그루의 느티나무·은행나무·녹나무 등을 감싸듯이 본관 옆에 배치함으로써 신록이 우거진 넓은 안뜰이 조성되었다. 신관은 본관과 함께 마츠카타 컬렉션의 작품과 창립 이래 매년 구매하는 르네상스 이후 20세기 초까지의 작품 및 기증·기탁 작품을 연중 상설 전시해 오고 있다 .

본관 앞, 오픈된 넓은 공간인 앞뜰에 자리 잡은 로댕Auguste Rodin(1840-1917)의 조각품 〈생각하는 사람(확대 주조작)〉(1926)6과 <칼레의 시민(주조작)〉(1926)을 지나 본관입구에 들어서면 필로티 구조를 통해 중앙 홀로 입장하게 된다. 미술관 본관의 중심에 배치된 중앙 홀(일명 19세기 홀)은 천장(2층과 2.5층)까지 탁 트인 높은 공간, 건물을 지탱하는 2개의 기둥과 들보, 자연광이 들어오는 삼각형 천창, 지그재그 모양의 경사로 등 예상치 못한 내부 구조가 등장한다. 이곳은 로댕의 조수였던 조각가 부르델Émile-Antonie Bourdelle(1861-1929)의 조각 〈목이 있는 아폴로의 두상〉(1900) 외 5점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어 조각전시실로 안성맞춤이다.

19세기 홀에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2층 전시실로, 이곳은 14-16세기 후기고딕·르네상스·매너리즘 회화와 17-18세기 바로크·로코코 시기의 인물화와 정물·풍경화를 전시하고 있다. 14-16세기 유럽은 중세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르네상스’라는 새롭고 활기찬 시대로 들어섰다. 피렌체·로마·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예술가들은 새로운 양식의 그림을 창출하고 천재화가-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미켈란젤로(1475-1564), 라파엘로(1483-1520)-의 등장으로 서양회화의 새로운 혁명을 만들었던 시기이다.

19세기 회화(후기 인상주의) 전시

이 전시실에는 이들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화가 셀라리오의 〈성 삼위일체〉(1480-1485) 제단화, 티치아노의 〈세례자 요한의 목을 든 살로메〉(1560-1570경), 클레베의 〈세폭 제단화: 십자가형〉(16세기 전반), 크라나흐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1530경) 등의 작품이 제일 먼저 전시되어 있다.

17-18세기 미술은 바로크와 로코코 시기이다. 바로크회화가 밝음과 어둠의 대조로 작품을 승화시킨 빛의 시기라면, 로코코회화는 귀족적인 우아함과 화려함을 강조한 색채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빛과 색채를 강조한 성자聖者와 귀족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으며, 네덜란드와 영국을 중심으로는 정물과 풍경을 그리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 루카스 크라나흐(1472-1553),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든 유디트> 1530년경 제작, 패널에 유채.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제공

돌치의 〈슬픔의 성모〉(1655경), 수르바란의 〈성 도미니쿠스〉(1626-1627), 반 다이크의 〈레가네스 후작〉(1634)등의 인물화와 도우의 〈비누방울 부는 소년이 있는 정물〉(1635-1636), 바스케니스의 〈악기가 있는 정물〉(1660) 등의 정물화, 코닝크슬로의 〈파리스의 심판-산악풍경〉, 오스타테의 〈여인숙 앞의 여행자들〉(1645) 등의 풍경화가 당시 회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 작품들이다. 특히 프랑스혁명 전후에 파리에서 활약한 여성화가인 카페Marie Gabrielle Capet(1761-1818)의 〈자화상〉(1783)은 그녀가 22살 때의 모습으로 자신에 넘친 화가의 젊고 풋풋한 모습을 뛰어나게 포착하고 있다. 당시 유행했던 파란 새틴 드레스는 머리장식인 파란 리본과 어울려 로코코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로코코회화의 전형이다.

마리 가브리엘 카페(1761-1818), <자화상> 1783년경 제작, 캔버스에 유채.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제공

본관 2층에서 연결된 통로를 지나면, 신관 2층 전시실이다. 이곳은 19세기 초·중기회화인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작품들로, 들라크루아의 〈시리아의 아랍인과 말〉(1829), 밀레의 〈봄-다프니스와 클로에〉(1865), 도레의 〈시에스타-스페인의 추억〉(1868), 쿠르베의 〈덫에 걸린 여우〉(1860), 카미유 코로의 〈나폴리항구의 추억〉(1870-1872)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다가 전시는 19세기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로 연결된다. ‘마츠카타 컬렉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인상주의 회화는 이 미술관을 대표하는 그림들이다. 이름만 봐도 우리가 잘 아는 화가—마네, 세잔느, 모네, 르누아르, 드가, 시슬레, 보나르, 고흐, 고갱, 피사로—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14-16세기 회화
18세기 회화 전시

특히 20년 동안 자신의 연못에 수련을 그려온 클로드 모네의 〈수련〉(1916)은 관람객들에게 인기 있는 작품이다. 다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작품 앞에서 한참 서 있곤 한다. 일본인들도 예술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서인지 한국인 못지않게 전시관 어딜 가도 붐비었다. 신관 2층에서 신관 1층 전시실로 내려오면, 역시 후기 인상주의 회화와 20세기 초기회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큐비즘의 창시자인 피카소의 〈누워있는 여인〉(1960), 레제의 〈빨간 수탉과 파란 하늘〉(1953), 초현실주의 화가 호안 미로의 〈회화〉(1950), 원시적이고 본원적인 미술에 역점을 둔 앵포르멜 미술운동의 창시자 장 뒤뷔페의 〈어떤 여자의 몸〉(1950) 등의 작품까지, 책에서만 보았던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작품이 얼마나 많은지 사실 다리도 아프고, 눈도 아팠다. 하지만 전시가 이게 끝이 아니다. 1997년에 지하1-2층에 증축된 기획전시실이 또 있다.

기획전시실 입구

기획전시 《영감의 원천 브르타뉴》전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프랑스 브르타뉴에 모여들었던 화가들을 중심으로, 브르타뉴의 자연, 유적지, 풍습,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소개하면서 이들이 미지의 땅에서 무엇을 추구했으며 무엇을 찾았는지를 살펴보는 전시라고 한다. 약 30개의 국내 컬렉션에 더해 두 개의 외국 미술관에서 모은 160여 점의 작품과 다양한 관련 자료로 이루어져 있으며 예술가들의 눈을 통해 브르타뉴를 둘러보면서 그 예술을 키워낸 깊고 다채로운 풍토를 체험할 수 있다7.

기획전시 작품은 앞서본 상설전시에 비해 사진 찍을 수 있는 작품이 제한되어 있다. 고갱의 아이티 시절 화풍이 느껴지는 〈해변가에 서 있는 브르타뉴 소녀들〉(1889), 색다른 색감과 분위기가 느껴지는 클로드 모네의 〈폭풍우 치는 벨일 해안〉(1881), 파스텔톤의 색채와 동양화의 필선이 어우러진 모리스 드니의 〈젊은 모친〉(1919), 샤를 코테의 〈비탄-바다의 희생자〉(1908-1909), 환한 태양아래 일상을 포착한 뤼시앙 시몽의 〈브르타뉴의 축제〉(1919), 일본 ‘근대회화의 아버지’ 구로다 세이키의 〈브레하의 소녀〉(1891) 등의 작품을 감상하고 사진 찍을 수 있다. 위와 같이, 도쿄국립서양미술관은 마츠카타 코지로가 구상했던 ‘쿄라쿠共樂미술관’의 이념을 계승하여 서양미술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컬렉션을 널리 공개하고 앞으로도 서양미술 작품 및 자료수집, 조사연구, 보존복원, 교육보급, 출판물 간행을 하면서 미술관을 유지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모리스 드니, <젊은 모친>, 1919년 제작, 캔버스에 오일
에두아르 마네(1832-1883), <꽃속의 소년(쟈크 오슈데)>, 1876년 제작, 캔버스에 유채.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제공

도쿄에 도착한 첫날부터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우에노 공원은 에도시대 도쿠가와 가문의 무덤자리였는데, 1873년 메이지시대 초기에 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은 국립서양미술관 외에도 국립과학박물관, 도쿄국립박물관, 도쿄도미술관 등의 문화예술과 교육시설이 있으며, 사찰, 신사, 동·식물원, 둘레 2km의 연못도 있어 도쿄시민들의 문화공유 공간이자 휴식처이기도 하다.

하늘을 가릴 정도로 웅장하게 자란 나무들이 만든 숲에 ‘세기의 건축가’가 지은 건축물과 유럽에 가지 않아도 서양미술작품을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는 미술관이 일본 도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실 굉장히 부럽다.

 


1 일본 도쿄도 다이토구 우에노공원 7-7
2 메이지기에 총리대신을 역임한 마츠카타 마사요시의 세째 아들로, 1896년 코베의 가와사키조선소〔현 가와사키중공업(주)〕 설립자
3 미술관 소개/미술관 개요 중에서
4 라틴어로 ‘집’을 뜻하는 ‘dom’과 ‘혁신’을 뜻하는 ‘innovation’의 합성어. 철근콘크리트제 기둥과 마루판으로 건물의 하중을 견디게 하고, 계단으로 상하층을 이어주는 단순한 구조로 건물을 만드는 발상으로 1914년 르 코르뷔지에가 창안한 건축양식
5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수평창, 자유로운 파사드
6 이 거대한 청동상은 로댕의 협력자였던 앙리 르보세가 로댕이 1881년에서 1882년에 걸쳐 만든 원형을 모델로 1902년에서 1903년에 걸쳐 확대 제작한 작품을 1926년에 주조(鑄造)함
7 기획전시 서문 참고


참고자료 일본 도쿄 국립서양미술관 /www.nmwa.go.jp

 

 

* 《쿨투라》 2023년 7월호(통권 10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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