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만병통치 락/약: 안은미의 아트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만병통치 락/약: 안은미의 아트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3.07.31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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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2023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동시대 예술은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미술도 그 중 하나다. 현대미술은 주제나 대상은 물론 표현 재료나 기법 면에서 종횡무진 한다. 모든 ‘미술’에서 모든 ‘미술 아닌 것’까지 가로지를 수 있고, 이질적인 파편들을 융합할 수 있는 만큼이나 무수히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분할할 수도 있다. 미술사와 미학 전통에 입각한 작업도 얼마든 새로운 미술로 평가될 가능성이 있다. 정반대로 기존 순수미술과 강단미학의 틀을 깨부수는 작업도 확장된 영역의 현대미술로 언제든 수렴/융합한다. 단 그것이 ‘미술’로서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는 잠재 조건과 맥락을 갖췄을 때, 그럴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유효한 이야기다. 예컨대 몇 달 전 이 연재 지면에서 다룬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WE》 리움미술관 전시작들 여럿이 바로 그런 조건과 맥락을 바탕으로 ‘[논쟁적이어서 대단한] 현대미술 작품’ 자격을 부여받았다. 회색 테이프로 벽에 부착한 바나나가 얼마 안 가 썩고 말 흔한 과일이 아니라 〈코미디언〉(2019)이라는 제목의 개념적 설치미술인 이유가 뭔가. 카텔란의 경력, 미술관 공간과 제도, 큐레이팅, 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 계보, 반미학 옹호 미술비평, 관객의 사전 이해와 열린 감상 자세 등이 그것을 문제적 작품으로 형질 변경하는 요소로써 촘촘히 배치되고 조직되었기 때문이다.

안은미,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2023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안은미,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2023 photo by 강수미

여기서 말하는 현대미술의 자격 조건은 어떤 행정 절차나 법률적 근거, 학술 정의나 비평적 논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반드시 시공간적 배경이나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형식을 구비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맥락context의 경우를 이해하면 조건의 의미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역동적인 미술계vibrant art scene에서 무언가가 미술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특정한 의도, 작품 개념, 새로우면서도 기성 미술의 내러티브와 연루되는 상관성(따라하든 조롱하든, 참조든 비판이든, 조형성이든 탈 조형예술이든…정반합을 이루는)이 있어야 한다. 이런 변증법적 관계들이 바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미술작품’으로 탈바꿈하는 맥락이다. 또 그러한 맥락이 조직화되는 환경이 곧 현대미술 조건contemporary art condition이다. 현대미술에서는 한때 한국사회가 당연한 듯 호칭했던 ‘화가/화백’은 거의 사라졌고 ‘작가’나 ‘아티스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사실 ‘아티스트’는 현재 미술계뿐만 아니라 영화, 음악, 연극, 춤, 연예 분야에서 구시대의 비하 별칭인 ‘딴따라’를 지우고 ‘예술주체’, ‘창작자’, ‘인플루언서’, ‘프리랜서’ 등 상대적으로 급을 높이는 어감을 담은 대명사 중 하나로 쓰인다. 그와 대칭적으로 구경꾼으로서 ‘관객’, 수동적 ‘감상자’, 무지한 ‘소비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작품의 능동적 주체로서 ‘참여 관객’이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관객의 개입과 참여, 나아가 “관객의 독재”1까지 의제로 내놓은 현대 예술계에서 감상자는 작품의 작용인이자 의사결정권자다.

안은미,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2023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만병통치 즐거움의 만능 예술

서론이 길었다. 그래도 독자들의 현대예술 이해에 도움 되는 ‘즐거운樂 약’이었기를 희망한다. 이제부터 비평할 대상은 현대무용계와 대중음악계의 아티스트들이 협업한 공연예술 작품이다. 하지만 그것을 ‘현대미술’ 관점에서 해석할 맥락이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 미술 구조의 현황 및 동적 변화를 먼저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요컨대 “세계적인 현대무용가” 안은미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서도밴드의 프런트맨이자 일명 “조선팝의 창시자”라는 서도가 음악감독 및 메인 가수/퍼포머로 나선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7. 7 - 7. 9,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을 현대미술로 비평하자는 것이다. “쿼드초이스” 된 이 작품의 태생적 배경을 중심으로 한 비평은 무용과 대중음악 영역에서 생산할 일이다.2 그러니 우리는 곧바로 왜, 그리고 어떻게 《만병통치樂》이 현대미술계와 네트워킹 하는지에 집중하자. 나는 특히 1980-90년대부터 유연해지고 확장된 한국 현대미술 지형과 한국의 현대무용가 안은미 특유의 시각 형식 및 아방가르드 태도가 맞닿아 전개 발전했음을 강조하고 싶다. 단적으로 탈 문법적 안무, 통속적이면서 새뜻한 의상, 설치미술과 미디어아트의 매체 표현법을 채택한 무대디자인 및 소품이 안은미 공연의 시그니처다. 이는 90년대 중후반 이불, 최정화, 이수경, 이형주, 백현진 등이 한국식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다원주의를 모색하며 도발적이고 탈 장르적인 시각예술을 전개한 지류와 이접移接한다. 그렇게 이 아티스트들은 삼십여 년 전에 이미 벌써 한국 현대예술의 헤테로토피아를 시험했고, 현재의 백화난만百花爛漫에 이르렀다. 보수적 분류법으로 보자면, 《만병통치樂》은 노래와 춤이 주축이고, 대부분의 공연예술이 그렇듯 공연장에서 특정 시간에 상연되며, 관객은 그 제한된 환경과 조건에 맞게 작품을 감상하는 구조다. 하지만 이런 의미망으로는 《만병통치樂》에서 시각예술적인 구성과 조형에 의한 미감, 다중 감각 이미지를 통한 의사소통, 퍼포머의 돌발 액션과 관객의 즉흥적 참여가 상호작용해 발생하는 특별한 지각경험의 순간이 평가받지 못하고 누락된다. 다음과 같은 미학적 성질도 그 작품의 역량인데 말이다.

안은미,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2023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무엇보다 《만병통치樂》에서 의미부여할 요소는 1시간 상연에서 공연예술과 조형예술, 몸과 사물들, 신체와 이미지, 콘텐츠와 액션, 사운드와 언어용법이 관습적 경계를 탈주해 변이, 융합한다는 점이다. 작품은 신체를 과장되게 부풀린 형태와 화려한 색, 패턴, 질감의 의상을 입은 안은미가 객석 사이를 춤으로 헤집고, 옵아트optical art 그래픽이 투사되는 무대에 다다르며 시작한다. 그녀는 곧이어 사라졌다가 공연 막바지에야 나와 출연자와 관객 모두가 어우러지는 춤판을 벌인다. 외적으로는 서도를 주축으로 한 공연을 통해 젊은/다음 세대의 예술을 키운다는 선배/중견 예술가 안은미의 의도가 깔려있다. 하지만 작품 내적인 맥락을 분석해보면, 안은미의 표현처럼 “비주얼-사운드-보디의 총체극”으로서 미술, 음악, 무용을 크로스 오버하는 기획 내용을 서도라는 하나의 행위체로 집약해 전개하기 위함이다. 서도는 안은미와 발코가 “때때옷”으로 디자인 한 의상을 바꿔입어가며 스스로의 몸과 움직임을 통해 작품의 시각성과 조형성을 구현하는 동시에 과거 윤시내, 정미조, 정훈희, 김추자의 히트가요를 국악 창법에 합성시켜 노래함으로써 음악성과 퍼포먼스를 변주했다. 이렇게 메인 싱어이자 《만병통치樂》의 명시적 주연인 서도는 안은미컴퍼니의 무용수 8명과 함께 상이한 성적 정체성, 다채로운 취향의 몸짓, 시대착오적(1970-80년대 대중가요가 현재 MZ세대의 뉴트로 감성으로) 사운드, 격렬한 움직임과 변주하는 코스튬플레이의 시각성을 체현한다. 그것은 현대미술의 비주얼리티가 기존의 조형예술로서 질료를 통한 제작을 넘어 시간성을 도입하고 사운드에 접속하고 수행성을 드러냄으로써 다원적이고 다공적인porous 미술3에 이른 과정의 역방향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설치미술, 실험미술, 퍼포먼스아트, 미디어아트, 융합미술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것이며, 그 중에서도 특히 ‘퍼포먼스아트’라는 용어로 응집된 시각성을 떠올리면 말뜻에 공감할 것이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격이자 반미학 계보의 가장 센 캐릭터인 마르셀 뒤샹은 이미 1968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짚었다. “어원학적으로 예술이라는 단어는, ‘행하기’를 의미한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기’인 것이다.”4 요컨대 ‘하는 행위’가 오늘날 만능의 아트를 생성한다.

안은미,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2023 photo by 강수미

새뜻한 예술 속에서 잘 노는 향유

그런데 달리 보면 《만병통치樂》에서 서도와 은미의 퍼포먼스는 명시적으로만 주인공이다. 작품에서는 여러 무용수들이 기성품 연통으로 만든 무대의상에 들어가 그것을 끌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액션-춤을 춘다. 또 어떤 댄서는 우산과 우비를 조형요소인 양 장착하고 다른 댄서의 몸과 함께 파드되pas de deux를 한다. 이를 두고 오스카 슐레머Oskar Schlemmer(1888-1943)의 바우하우스 실험예술 〈3부작 발레Triadic Ballet〉를 연관시키면 다소 현학적으로 비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예술사 지식을 모르더라도 관객들은 안은미의 디렉팅이 지향하는 초점이 무엇인지 공연의 순간순간마다 감지할 수 있다. 고급예술과 대중문화의 혼성은 물론 예술을 통한 일상의 전환, 키치적 삶의 질료를 예술로 변용하기, 아티스트와 감상자의 위계질서 어지럽히기 같은 것이 창작의도라고 말이다. 그러니 아티스트와 주인공 퍼포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뒤섞여 노는 행위 전체, 시공간적 조건, 서로가 만들어내는 현장의 맥락이 관건이라고 말이다. 포장마차나 편의점 노변에 흔하지만 이번 작품에는 관객에게 객석으로 제공된 빨갛고 파란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 댄서들의 발에 청색 박스테이프로 묶여 댄싱슈즈가 된 목욕탕 의자, 군무를 위한 의상으로서 홍학과 유니콘 튜브 등등. 여기서 다 열거할 수도 없는 다양한 질료, 다수의 형상, 다성多聲의 음악이 곧 《만병통치樂》이라는 예술의 조형적 디테일이다. 퍼포머들은 무대와 관객석을 마치 구멍 많은 돌처럼 들고나며 그 디테일들을 사용하고 바꾼다. 그러는 동안 작품의 내용은 출연자와 감상자의 행위 자체를 통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해체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점에서 창작자와 감상자, 주인공과 엑스트라, 무대와 객석, 완결된 작품과 한낱 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는 이분법은 병病적인 요소를 버리고 서로 얽히고설켜 서로를 어루만지는 약藥이 된다. 《만병통치樂》이 만병통치약藥처럼 락樂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자는 뜻으로 작명한 제목이라는 말은 그래서 촌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눈에 거슬리고 요사스럽다는 의미의 사특邪慝한 것이 아니라 새뜻하다. “새롭고 산뜻하다”는 순우리말 뜻처럼 안은미의 변용은 새뜻한 것이다.

안은미,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 쿼드, 2023 photo by 강수미

안은미는 올해 초 EBS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해 “내가 가지고 있는 경계에서 벗어나는 것. 계속 끊임없는 새로운 시도가 뿌리를 내리고 그 뿌리를 또 흔들면서 다음 세대가 또 어떤 질문을 하는, 그런 걸 끊임없이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있는 마티리얼과 잘 놀자”는 자신만의 예술론을 피력했다.5 나는 현대미학과 미술비평 논리로 보면 지극히 동시대적이고 크게 놀라울 것 없는 안은미의 예술가적 정체성과 예술론이 귀하게 여겨진다. 그녀의 창작 이력과 작품들이 한국 현대예술의 맥락과 미학적 속성을 오늘에 이르게 한 실증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미처 설명하지 못했지만 안은미는 지난 수십 년 간 꾸준히 미술계와 동행했다. 최근의 굵직한 예만 들어도 2015년 코리아나미술관 기획전 《댄싱마마》에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출품했다. 2019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안은미래》개인전을 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낯선 전쟁》전에서는 〈타다다다〉 퍼포먼스를, 2022년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나는 미술관에 ●●하러 간다》의 개막공연을 했다. 이렇게 기성의 분과 예술들을 횡단해온 안은미의 과거 경력과 현재 활동이 《만병통치樂》에서처럼 젊은 세대의 예술을 위한 안은미의 “아는 미래known future”라는 점을 생각하면 새로운 기대가 싹튼다.6 우리는 잘 노는 향유의 주체로 새뜻해지면 될 일이다.

 


1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가 기획한 2003년 제50회 베니스비엔날레 주제는 《꿈과 갈등: 관객의 독재 Dreams and Conflicts: The Dictatorship of the Viewer》이었다. 강수미, 「읽기와 먹기: 벤야민 미학에서 학제적 의미의 ‘수용’」, 《미학예술학 연구》, 한국미학예술학회, 2019(56권), pp. 35-66.
2 연재인, “‘무’와 ‘무한’이 만나 펼치는 난장: 쿼드 초이스-서도와 은미”, 《문화+서울》, 서울문화재단, 2023년 6월호,
http://magazine.sfac.or.kr/html/view.asp?PubDate=202306&CateMasterCd=300&CateSubCd=3255&Page=1
3 강수미, 『다공예술: 한국 현대미술의 수행적 의사소통 구조와 소셜네트워킹』, 글항아리, 2020 참고
4 Marcel Duchamp, “Interview with Joan Bakewell,” The Late Show Line Up, BBC(June 5, 1968)를 Jean-Philippe Antoine, “The Historicity of the Contemporary is Now,” Alexander Dumbadze, Suzanne Hudson (eds.), Contemporary Art: 1989 to the Present, Wiley-Blackwell, 2013, p. 31.
5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VOICE]-춤의 대화”, EBSCulture 유튜브, 2023. 1. 27. https://www.youtube.com/watch?v=laR8K-YB-5E 
6 안은미가 2019년 8월 5일 월간 《객석》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3년 8월호(통권 1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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