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일본 근대미술의 흐름을 보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
[미술관 탐방] 일본 근대미술의 흐름을 보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3.07.3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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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제공

에도 막부(1603-1868)시대부터 형성된 도쿄는 420년 동안 우여곡절이 많은 도시이다. 일본의 작은 해안마을에 불과했던 이곳은 산업혁명기인 메이지시대明治時代(1868-1912)가 시작되고, 새로운 국가가 건설되면서 일본인들은 거센 기세로 밀려오는 서양 문물과 접하게 되면서 급성장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다 간토대지진(1923)과 도쿄대공습(1945)으로 폐허지가 되었다가 일본의 경제 복구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고층의 현대적 건물들을 지어 올리면서 현재의 도쿄 모습으로 바뀌었다. 구도심(치요다구, 주오구, 미나토구)에 왕궁, 신사, 사찰, 박물관 등의 오랜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신도심(신주쿠, 시부야, 이케부쿠로, 롯폰기)에는 현대식 건물과 마천루를 세우면서 도쿄는 현재 세계 3대도시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전경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전경

미술에 있어서도 메이지시대는 ‘근대’의 형태가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로,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표현에 서양식 표현을 결합하거나 서양기술을 습득하여 개인적인 표현을 개척하는 등 일본 근대미술의 개막을 알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근대기를 시작으로 현대에 이러기까지 일본의 근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고 다량의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 있는데, 바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이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1952년 도쿄 교바시에 개관하여 작품수집과 전시를 해오다 1969년 지금의 기타노마루北の丸공원1으로 이전하여 일본의 근현대미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획전시를 하는 일본 최초의 국립미술관이다.

도쿄지하철 도자이선 ‘다케바시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1분 거리에 위치한 미술관은 푸른 하늘과 초록 대지를 배경으로 건물이 들어서 있고 외벽에 설치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이라는 글귀가 선명하여 한눈에 찾을 수 있다. 미술관주변에는 도쿄의 중심부 황궁이 있는 에도성 해자가 바로 앞에 띠처럼 연결되어 있고 멀리 도쿄역을 중심으로 우뚝 솟아있는 마천루들과 미묘하게 잘 어울린다. “다케바시는 과거의 일본과 현대도시 도쿄의 교차점”이라고 했던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로谷口吉郎(1904-1979)2가 이곳 근대미술관을 설계할 때 했던 말처럼, 직접 와서 보니 그의 말에 공감이 된다.

건물 면적 3,328㎡의 지상 4층 건물은 필로티 구조를 지탱하는 두꺼운 콜로네이드colonnade3와 빔beam의 요철표현이 특징이며, 깔끔한 리듬의 콘크리트로 마감하여 일본다운 외관이다. 사업가 이시바시 쇼지로石橋正二郞(1889-1976)4가 지어서 나라에 기증한 미술관이기도하며, 컬렉션의 증가와 특별 전시회의 확장으로 인해 리노베이션이 자주 이루어졌지만 완공 당시 건물 안에 있던 아트리움을 내진성 때문에 없앤 것 외에는 원래 모습 그대로다.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개관 이래 다양한 분야의 작품 13,000점을 수집하여 보관해오고 있으며 매년 200여점의 작품을 선별하여 일본 최대의 컬렉션 전시를 개최해 오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MOMAT(도쿄국립근대미술관) 컬렉션》전이 바로 그러하며, 지상 2층에서 4층까지 총12개의 전시실에서 작은 ‘테마의 방’으로 운영하며 해외 작품을 포함한 일본근현대 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작년(2022)부터는 개관 70주년을 기념하여 전시실 한쪽 코너에 MOMAT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연대기 및 관련 자료도 리뉴얼되어있으며, 관람순서는 4층으로 먼저 이동한 후에 3층, 2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이다.

4층 1전시실
4층 1전시실

4층의 1전시실은 컬렉션의 걸작을 전시하는 “modern-highlight” 방이다. 이곳은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작품 하라다 나오지로原田直次郞(1863-1899)의 〈기룡관음騎龍觀音〉(1890), 기시다 류세이岸田劉生(1891-1929)의 〈언덕길 사생〉(1915), 나카무라 츠네中村彝(1887-1924)의 〈예로셴코선생의 초상〉(1920)과 메이지시대 말기작품인 이시이 하쿠테이石井柏亭(1882-1958)의 〈초원에서의 휴식〉(1904), 인상파적 인물작품 후지시마 다케지藤島武二(1867-1943)의 〈비몽사몽〉(1913), 사실적 인물을 브론즈로 조각한 신카이 다케타로新海竹太郞(1868-1927)의 〈목욕〉(1907)을 감상할 수 있다.

후지시마 다케지의 〈비몽사몽〉, 1913, 유채
후지시마 다케지의 〈비몽사몽〉, 1913, 유채
신카이 다케타로의 〈목욕〉, 1907, 브론즈조각
신카이 다케타로의 〈목욕〉, 1907, 브론즈조각

4층 2-4전시실은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이하여 재해와 재건, 사회 왜곡 등의 주제에서 재해와 예술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간토대지진 100년, 1923년 예술”전으로, 간토대지진 당시에 전시회를 하고 있던 작품 중 하나인 츠다 세이카에데津田靑楓(1880-1978)의 〈이즈모자키의 여인〉(1923)과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1886-1968)의 〈다섯 명의 나부〉(1923)가 있다. 또한 1차세계대전의 황폐 속에서 다다이즘이 생겨난 것과 비슷하게 간토대지진에 의한 황폐는 전위예술운동이 고조되는데, 이러한 아방가르드예술의 움직임이 보인 무라야마 도모요시村山知義(1901-1977)의 작품 〈Constrution〉(1925)과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기울어진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예술을 대표하는 모치즈키 하루오望月晴郎(1898-1941)의 〈야마모토 주헤이 동지의 추억〉(1931)도 있다.

알렉산더 칼더의 〈몬스터〉, 1939 외.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제공
알렉산더 칼더의 〈몬스터〉, 1939 외. 도쿄국립근대미술관 제공

5전시실은 추상적이면서 식물이나 생물, 인간의 형태를 떠올리게 하는 ‘바이오모픽biomorphic5 이미지 작품을 소개하는 “무엇인가 될 것 같은 형태”라는 주제로, 메이지 말기부터 쇼와 초기(1900-40)까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1898-1976)의 모빌작품 〈몬스터〉(1939), 한편의 시와 드로잉이 인상적인 호안 미로Joan Miró(1893-1983)의 〈회화 시〉(1925), 탱크와 기차를 타고 산을 오르는 정복자를 선적요소로 표현한 파울 클레Paul Klee(1879-1940)의 〈산의 정복〉(1939)과 일본 초현실주의 작가 요시하라 지로吉原治良(1905-1972), 오카모토 타로岡本太郎(1911-1996)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4층 전시장을 관람 후, “전망이 있는 방”이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와서 화살표 방향으로 따라가니, 테라스가 있는 휴게공간이다. 커다란 창턱에서 내려다본 에도성 주변 황궁의 녹지풍경과 일본 금융경제구역인 오테마치大手町와 마루노우치丸の内의 건물들이 탁 트인 전망으로 한 눈에 들어오고 에도성을 휘어 감는 해자의 물줄기도 시원하다.

계단을 내려와 3층 전시장으로 들어선다. 6-8전시실은 쇼와 초기부터 중기까지(1940-60)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6전시실은 1920-1940년대 구상회화를 중심으로 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는 계속되는 전쟁과 재난으로 인한 혼돈의 시기로, 전통 존중과 일본회귀와 같은 시대의 흐름과도 겹치면서 서양의 모방에 그치지 않는 ‘일본 회화’를 만들려고 한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전시이다. 즉 대상과 주위의 자연을 일원적으로 파악하는 동양적 자연관을 그린 아오키 시게루靑木繁(1882-1911)와 사카모토 한지로板本繁二郞(1882-1969)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투명한 색채와 검은 선묘로 자신의 외로운 내면을 반영하는 듯 고요한 세계를 그린 마츠모토 슌스케松本竣介(1912-1948)와 어둠을 배경으로 늠름하게 먼 곳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자신을 그린 아이미쓰靉光(1907-1946)의 〈자화상〉(1944)을 통해 전쟁시기의 답답함이 감도는 무거움 속에서도 자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화가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쓰다 세이카에데의 〈이즈모자키의 여인〉, 1923
쓰다 세이카에데의 〈이즈모자키의 여인〉, 1923

7-9전시실에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사진작가 오츠지 기요지尾辻喜代次(1923-2001)의 발자취와 그의 예술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로 구성되어 있다. 1950년대 오츠지가 무대공연을 제작하는 실험공방과 그래픽 디자이너, 화가, 사진작가들이 공동으로 전시와 출판물을 기획 제작하는 그래픽 집단에 참여해 남긴 사진작품 “실험과 공동”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의 대표작 〈예술가의 초상화〉(1950)가 있다.

또한 “구체와 물질”전에는 1970년 도쿄비엔날레 《인간과 물질》전에서 “모노하”로 알려지게 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촬영하여 동시대의 국제적 동향과 함께 처음으로 소개한 중요한 전시회로, 기성 예술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기록하고 있으며, “우에하라 2초메”전은 오츠지가 오랫동안 살았던 우에하라의 집 안팎에서 많은 작품을 촬영한 과정과 결과물로, 업무용 책상 위에 놓인 ‘물건’의 사진에 대한 사색으로 시작하여 재건축을 위해 집을 철거하는 기록으로 끝나는 사진과 문장 그리고 영상물로 구성되어있다.

10전시실은 “신소장 & 특별공개/이케다 쇼엔”전으로, 일본 여류화가 이케다 쇼엔池田蕉園(1886-1917)의 여성적이고 사랑스럽고 로맨틱하게 표현한 그녀의 작품 〈귀로〉(1915) 병풍 작품과 함께 전통일본화인 우키요에浮世絵6와 공예를 중심으로 한 여성작가를 소개하고 있다.

2층 11전시실
2층 11전시실
히스다 노부야, 〈풍경의 단편〉, 1984, 유채
히스다 노부야, 〈풍경의 단편〉, 1984, 유채

2층 11-12전시실은 미로를 묘사한 작품부터 미로와 같은 구조의 회화까지 시각을 미로로 초대하는 작품들을 모아놓은 “시각의 미로”전으로, 마우리츠 에셔Maurits Escher(1898-1972)7를 포함한 그림, 조각, 비디오 등의 미로 같은 예술 작품들이 등장한다. 즉 특정 사물이나 풍경의 세부 사항을 파헤친 히쓰다 노부야柜田伸也(1941- )의 〈풍경의 단면〉(1984), 서로 다른 사물과 풍경을 결합하여 허구를 만들어 보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엔도 아키코遠藤彰子(1947- )의 〈먼 옛날〉(1985)과 작가의 컨셉, 제작과정, 구성과 같은 공간적 요소들로 이루어진 오카자키 겐지로岡崎乾二郎(1955- )의 〈음식 냄새가 싫어진 걸까〉(1996), 우사미 게이지宇佐美圭司(1940-2012)의 〈돔: 안으로 열린 밖〉소장하여 전시하고 있는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은 근현대 일본의 작품에 초점을 맞추면서 같은 시대의 해외작품도 적극 수집하고 있으며, 교토에도 국립근대미술관이 있어 이곳에서도 소장품 위주의 기획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의 미술관들은 전시공간이 넓은 만큼 전시실 내부에 앉을 수 있는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거나 전망 좋은 테라스 같은 휴식공간이 층마다 있어 쉬엄쉬엄 여유롭게 관람할 수 있어 좋다. 또한 교통이 편리한 지하철역 인근이나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원 안에 위치해 있어 관람객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점도 좋다.

도쿄에는 꼭 방문하고 싶은 미술관들이 아직도 많은데 이틀간의 일정으로 미술관을 많이 관람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아름다운 물결모양의 유리벽과 원뿔형 정문의 독특함이 인상적인 ‘도쿄국립신미술관’. 사업가 네즈 카이치로根津嘉一郎(1860-1940)가 수집한 일본과 동양의 고대 유물 컬렉션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해 건립된 ‘네즈미술관’, 둥근 사각기둥 모양의 하얀 외벽 물방울dots무늬가 돋보이는 ‘쿠사마야요이미술관’, 애니메이션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1941- )의 작품 세계를 체험할 수 있는 ‘지브리미술관’ 등 다음 방문 때 꼭 들리고 싶은 곳이다.

도쿄여행 마지막 날 늦은 오후에 롯폰기의 랜드마크인 모리타워에 들렀다. 모리타워는 지하 6층, 지상 54층의 주상복합빌딩으로 전망대 및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 있다. 미래지향적인 건축 디자인과 광장의 거미상8이 인상적인 이곳에서 사진도 찍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한참 동안 ‘멍 때리기’했다. 도쿄의 번화가 중심지에 온 것을 만끽하고 싶어서였는데, 젊고 활달한 기운이 서울 홍대나 이태원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시끄럽고 복잡할 뿐…. 나이가 많이 들었나보다. 새로운 현재의 것보다는 예스러운 과거의 흔적이 더 끌리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니까.

 


1 일본 도쿄도 지요다구 기타노마루공원 北の丸公園. 원래 에도성 유적지의 일부였다가 1969년 일반에게 공개한 도심의 유적 공원.
2 일본현대건축계를 대표하는 건축가, 일본국립박물관 동양관 설계.
3 건설 건축에서, 수평의 들보를 지른 줄기둥이 있는 회랑(回廊).
4 타이어 제조업체인 ‘브리지스톤’을 창업한 일본의 기업인
5 생물 형태적. 추상예술에서 비기하학적인 표현경향을 가리키기 위해 1930년대부터 미술 분야에서 사용되기 시작한 예술사조
6 일본 에도시대 서민 계층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목판화, 주로 여인과 가부키 배우, 명소의 풍경 등 세속적인 주제를 담음.
7 네덜란드 출신의 판화가.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에서 수학적 변환을 이용한 창조적 형태의 테셀레이션 작품 세계를 구축.
8 프랑스태생 여성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1911~2010)가 1999년 제작한 대형 ‘엄마(프,Maman)’란 제목의 이 청동조각상은 높이9m, 지름10m가량의 크기로 총6점(edition)이 제작되었는데,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도 있음.

 


참고자료 도쿄 국립근대미술관 www.momat.go.jp

 

* 《쿨투라》 2023년 8월호(통권 1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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