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아무튼 금‘주먹’상담소 - 〈사냥개들〉
[드라마 월평] 아무튼 금‘주먹’상담소 - 〈사냥개들〉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07.31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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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제공

K-드라마의 오랜 염원이었던 장르 다양화에 드디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로맨스와 가족을 시작으로 판타지와 범죄수사, SF, 그리고 이제 액션까지. 이보다 더 다채로울 수 있을까. 넷플릭스 글로벌 1위. 전 세계 88개국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그중 프랑스, 브라질, 싱가포르 등 22개국에서 정상에 오른 ‘K-액션’ 〈사냥개들〉을 찬양할지어다.

쉭쉭. 퍽퍽.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맨주먹이 만들어내는 타격감 넘치는 소리의 향연. 드라마 OST는 필요 없다. 큰 주먹, 작은 주먹, 단단한 주먹, 물렁물렁한 주먹, 귀여운 주먹, 잘생긴 주먹…. 다양한 주먹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리듬이 절로 생겨난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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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개들〉과 K-액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사냥개들〉은 목숨보다 돈이 먼저인 사채업의 세계에 휘말린 두 청년이 목숨 걸고 싸우는 이야기다. 한여름에 보기 딱 좋은 시원시원한 액션물이다. 1대1로 싸우고 1대 2로 싸우고 1대 10로 싸우고 3대 20으로 싸운다.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드라마 몰아보기하다가 내 안에 숨은 폭력성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맨주먹 싸움질이 이렇게 매혹적일 줄이야. 쉭쉭. 퍽퍽.

극 중 복싱 유망주 건우와 우진은 건우 엄마가 사채업자의 사기에 휘말려 감당 못 할 빚을 떠안게 되면서 본격적인 '사적' 복싱의 세계에 입문한다. 심판도 관중도 없는 목숨을 건 잔혹한 생존 싸움. 건우(우도환 분)가 답답할 정도로 세상 물정 모르는,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고지식한 청년이라면 우진(이상이 분)은 수완 좋은 달변가로 겉보기엔 건들대는 듯하지만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두 사람은 상반된 성격처럼 구사하는 ‘주먹’의 스타일이 다르다. 건우의 주먹이 우직하고 묵직하다면 우진의 주먹은 날렵하고 경쾌하다.

〈사냥개들〉은 무기 없이 주먹만으로 들이박는 ‘맨몸 액션’을 전면에 내세우는 만큼 ‘주먹질’에 대한 남다른 전문성을 자랑한다. 영화 〈범죄도시〉의 배우 마동석처럼 큰 덩치에서 나오는 핵펀치와는 구분되는 섬세한 주먹질이랄까. 박영식 무술감독이 캐릭터의 개성을 살린 액션 스타일을 정성 들여 구상했다고 하는데, 드라마에서 직접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백문이 불여일견!

한국 최초로 미국 에미상 ‘최고의 스턴트 퍼포먼스’ 부문 후보가 된 〈오징어 게임〉의 무술팀을 진두지휘한 분이 바로 박영식 무술감독이다. ‘캐릭터에 잘 맞는 액션을 만들어달라’는 황동혁 감독의 주문을 받고 캐릭터의 감정과 육체적 능력까지 고려해서 액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상8체질이나 MBTI처럼 나에게 맞는 주먹질은 과연 어떤 스타일인지 상담받고 싶을 정도로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음,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상담소 대신 박영식 박사님의 금‘주먹’상담소랄까.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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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사냥개들〉은 힘든 서민들에게 접근해 부당한 대출 계약을 하고, 이를 빌미로 거액의 수수료와 이자를 받는 극악무도한 사채업자를 호되게 응징하는 내용을 다룬다. 뚜렷한 선악 구도 속에서 인물 구도도 굉장히 단순하다. 이렇게 등장인물들이 평면적이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드라마의 시작부터 끝까지 캐릭터의 기본 설정값이 그대로 유지된다. ‘선한 사채업자’ 최 사장 역할을 맡은 배우 허준호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느라 괜히 나만 에너지를 두 배로 썼다. 한때 악역 전문으로 맹활약한 배우 허준호 때문에 뭔가 반전이 있겠지, 설마 이렇게 단선적인 인물 구도로 진행된다고, 설마, 설마, 하면서 잔뜩 긴장한 탓이다. 역시 고생은 사서 하는 게 제맛이다. 어이쿠.

등장인물들이 평면적이다 보니 주제도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돈을 중심으로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가 잔혹하게 펼쳐지는데, 자본주의 혹은 자본과 관련된 그 어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혹은 철학적인 성찰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세. 선은 선이고, 악은 악이로세. 이게 드라마에 담긴 주제의식의 전부다. 너무 단순해서 얼핏 심오해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

작품적으로 새로움이나 깊이는 없다. 하지만 흥미진진하고 재밌다. 오늘이 폭염이라면 폭염이라서 시원하고 장마라면 장마라서 시원한, 딱 타임킬링용 액션물이다. 이보다 시원시원할 수가 없다. 드라마 스토리가 복서들의 주먹처럼 속도감 있게 빠르게 진행된다.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 구축도 20세기 최고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급이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쏴라.” 건우와 우진은 우연히 한 번 삼겹살 같이 먹었을 뿐인데 피를 나눈 형제처럼 친해진다. 삼겹살이 한국인의 소울푸드라서 그런가. 극중 우진의 입을 통해 김주환 감독은 살짝 해명을 곁들인다. 관계는 시간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고. 인물관계뿐 아니라 인물에게 부여된 아픔과 슬픔의 사연도 잽 날리듯 재빠르게 치고 빠진다. 절대 눈물겨운 신파로 빠지지 않겠다는 김주환 감독의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쉭쉭. 퍽퍽.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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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의 공포

뻔한 스토리와 단순한 플롯에도 불구하고 드라마 〈사냥개들〉은 높은 몰입감과 극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이면에는 온몸 세포를 자극하는 극도의 공포감이 자리하고 있다.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전쟁”은 극중 핵심인물인 최 사장의 대사로 드라마를 관통하는 중심 메시지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등장인물 중 ‘누가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법이든 돈이든 권력이든 그동안 우리가 보호막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이 한낱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떻게서든 살아남아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가 되는 살벌한 적자생존의 세계가 바로 드라마 〈사냥개들〉의 세계관이다.

극중 배우 최시원이 연기하는 재벌 3세가 있다.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경찰서든 검찰이든 세무서든 모조리 다 불러서 상대방을 제압해버리는 최강 갑질러. K-세계관에서 천하무적으로 군림해온 ‘재벌’은 그러나 드라마 〈사냥개들〉에서 무참히 짓밟힌다. 자본금 천억도 없는 사채업 대표 김명길(박성웅 분)은 재벌에게 모욕을 당하자 바로 그 재벌에게 응징을 가한다. “짐승은 강하든 약하든 맞으면 문다.” 감금, 구타, 나체 동영상, 협박… 그렇게 맨주먹을 앞세워 호텔 꼭대기 층에 카지노를 열고 호텔을 헐값에 매수할 큰 그림을 거침없이 실현해간다.

‘아무튼 주먹’이 불러일으키는 단순함의 공포는 천만 관객 영화 〈범죄도시 3〉의 세계관과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역시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도대체 우린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걸까. 극중 중국, 한국, 일본, 아시아 빌런이 총집합한 가운데 한국 부패 경찰 주성철(이준혁 분)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는 거침이 없다. 거침이 없어도 너무 지나치게 없다.

그동안은 주먹에도 뇌가 있어서 주먹이 생각이란 걸 했다. 하지만 이제는 주먹에 뇌가 없다. 그냥 주먹이다. 물리적인 힘 그 자체.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무조건 주먹을 날리고 본다. 모든 일의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사이사이에 주먹이 빼곡하게 자리한다. 마약수사팀 팀장이자 글로벌 마약상으로 1인 2역의 삶을 살려면 분명히 뇌섹남이어야 할 텐데, 주성철은 러닝타임 2시간 내내 좋은 머리는 안 쓰고 주먹만 냅다 날린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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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범죄도시 3〉의 주성철과 드라마 〈사냥개들〉의 김명길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주먹을 날리고 보는 ‘아무튼 주먹’ 캐릭터의 등장, 그리고 그 캐릭터가 대중적 인기를 끈다는 것이 장마철 안 마른 셔츠를 입은 것처럼 마음이 꿉꿉하고 찝찝하다. 2023년 상반기를 접수한 영화 〈범죄도시〉와 드라마 〈사냥개들〉은 단순하면서 통쾌한 권선징악의 이야기를 내세워 국내를 넘어 글로벌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 단순함이 참 무섭게 단순해진 느낌이다. 단순해도 너무 지나치게 단순하다.

그럼에도 우선 시원하니까. 우리 몸과 맘을 시원하게 해주니까 어쩔 수 없이 ‘아무튼 주먹’을 보고 또 보는 수밖에. 영화 〈범죄도시 3〉에서 ‘아무튼 주먹’ 세계관의 창시자 배우 마동석은 금고가 안 열리자 비번 푸는 걸 포기하고 금고문을 통째로 시원하게 뜯어버린다. 아하! 이제는 마동석 박사님의 ‘아무튼’ 상담소가 문을 열 차례다. 자, 줄을 서시오. 아무튼, 줄을 서시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8월호(통권 11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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