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가수 겸 배우 김창완] 허공이 그릇이다
[시로 만난 별 Ⅱ 가수 겸 배우 김창완] 허공이 그릇이다
  • 장재선(시인)
  • 승인 2023.09.0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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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김창완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김창완.

허공이 그릇이다
- 가수 겸 배우 김창완

 

태풍 지나간 마룻바닥에 엎드려 시집을 읽은 후 그가 중얼거린다. 시에 얻어맞은 이 기분은 무언가. 사람 되려면 한참 멀었구나.
세상에게도, 스스로에게도 고분고분한 적 없으나 세월 흐르는 것엔 속절없다. 오르막 오르는 것처럼 힘들여 준비한 무대에서 노래를 마치고 나면 며칠이 내리막으로 쏜살같다.
뒤를 쫓아오던 젊은이의 자전거가 쌩하니 앞질러 갈 때 쫓아갈 힘은 없지만, 빈 공간의 막막함에 도전하기 위해 캔버스 앞에 스스로를 세워둔다는 그에게

오래 함께 살아온 음악은
허공이 그릇이다.
그것이 지나간 자리엔
기도가 머무른다.

 


시 작 노 트

시 「허공이 그릇이다」는 순수한 창작물이 아니다. 가수 겸 화가이자 배우이며 방송 MC이고 무엇보다 자전거꾼인 김창완 선생의 말과 문자 메시지들을 재구성한 것에 불과하다. 누가 저작권을 문제 삼으면(김 선생께서 그럴 리가 없기 때문에) 술 한 잔 사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겠다. 선생은 흔쾌히 좋다고 하실 것이다.

김 선생과 술자리를 한 사람들이 유쾌했다고 읊조리는 것을 수차례 들었다. 최근 서울 인사동의 어느 술집에서 자리를 함께 한 후 나도 똑같이 읊조리게 됐다. 그의 ‘꽉 찬 허적虛寂’ 덕분이다. ‘자유는 인내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철학을 지닌 분이니 사유와 언행이 충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에겐 탈속의 도인 같은 분위기가 있어서 그 충실의 답답함을 꽤 풀어주며 주흥酒興을 돋운다.

그는 반세기 가까이 한국 포크 록의 중심을 지켜 온 뮤지션이다. 지난 8월에 자신의 이름을 건 밴드를 이끌고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무대에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올라젊은 음악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는 라디오 아침 방송 프로그램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23년째 진행하고 있다. 20km 넘는 출근길은, 악천후가 있는 날 아니면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간다.

오랫동안 연기 활동도 해 왔는데,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을 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왜 그러냐고 그에게 물었더니, “지나간 것을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나이보다 훨씬 젊게 살아가는 비결이 거기 있는 듯싶다. 근년에 화가의 영역을 새롭게 개척한 그가 앞으로 어떤 세상을 더 펼쳐보일지 기대가 된다.

 


장재선 문화일보 선임기자.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9월호(통권 11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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