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드라마 두 편으로 읽는 ‘하룻밤’ 경제사와 문화사: 〈셀러브리티〉, 〈무빙〉
[드라마 월평] 드라마 두 편으로 읽는 ‘하룻밤’ 경제사와 문화사: 〈셀러브리티〉, 〈무빙〉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09.01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입증한 또 하나의 K-드라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셀러브리티〉는 21세기 ‘신흥귀족’으로 불리는 ‘인플루언서’들의 화려한 일상을 앞세워 전 세계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라마에서 인플루언서는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엄청난 홍보 효과를 내고, 사업을 해서 막대한 이익을 보는 권력자로 묘사된다. 물론, 그들 사이에서도 팔로워 수와 재력에 따라 '급'이 나뉜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K-갑을관계와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신분제를 인정하고 심지어 찬양까지 한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 〈빈센조〉… 위대한 혁명을 꿈꾸던 K-‘사적 복수’의 장인들이 보면 경악할 노릇이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갑과 을, 상과 하로 구분된 이분법적 세계관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 마디로 누구나 ‘갑’이 될 수 있다. 유명해지기만 하면 아무나 ‘갑’이 될 수 있고 그래서 팔로워를 끌어모으기 위해서라면 유명 인플러언서들의 '시녀'가 되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다. 누구나 혹은 아무나 왕비로 신분 상승할 수 있는데, 무슨 혁명이 필요하겠는가 .

넷플릭스 제공

〈셀러브리티〉와 ‘하룻밤’ 경제사

체제 순응적이라는 점에서 드라마 〈셀러브리티〉는 이제까지 보아왔던 비판적 현실 인식에 기반한 K-드라마와는 결이 많이 다르다. 하지만 “온라인의 세계는 오프라인의 세계와 다르다”라는 극중 대사처럼 두 세계의 ‘다름’은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오프라인 세계가 ‘물질 자본’을 갑을관계의 중심축에 둔다면, 온라인 세계의 중심에는 ‘관심 자본’이 있다. 관심을 주고받는 과정 가운데 새로운 권력관계가 형성되고 새로운 자본이 축적된다. 음, 자본? 권력? ‘하룻밤’ 경제사라더니 ‘한숨’ 경제사라고 한탄하며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자, 릴렉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떠올려보라. 신의 손끝에서 창조된 최초의 인간. 그리고 우리의 손끝에서 창조된 최고의 SNS셀러브리티. 온라인의 세계에서 우리의 ‘관심’은 권력이다. ‘구독’ 한 번, ‘좋아요’ 한 번으로 우리는 손쉽게 누군가를 ‘셀럽’으로 만들고 ‘갑’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손가락만 있으면 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의 출현. 이게 천지창조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보다 체제전복적인 상상력이 또 있겠는가. 그렇다. 온라인의 세계는 오프라인 세계와 ‘완전히’ 다르다.

넷플릭스 제공

극중 주인공 서아리(박규영 분)는 어린시절 금수저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섬유공장이 망하면서 흙수저가 된다. 하지만 고졸 출신 화장품 방문 판매원에서 다시 130만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인생 역전에 성공한다. 파란만장한 서아리의 인생에서 우리는 ‘물질자본에서 관심자본·매력자본으로 이동하는 권력의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오프라인 세계의 을’에서 ‘온라인 세계의 갑’이 될 수 있었던, 극적 반전의 중심에는 새로운 자본 ‘관심’이 있다. 관심 자본의 화려한 등장. 두둥.

최근 경제학 흐름이 궁금하다면 두꺼운 경제학개론 말고 〈셀러브리티〉를 눈으로 읽으시길. 드라마에는 유명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는 ‘치트키’도 소개되어 있다. 인플루언서를 꿈꾸는 분들도 〈셀러브리티〉를 공부하시길. 이쯤되면 드라마월평이 아니라 드라마 PPL인가 싶을 텐데, 음,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린 광고 하나에 수백 수천 만원이라고 하던데, 이 글은, 음, 얼마짜리일까 .

Disney+ 제공

650억 원

650억 원의 물질 자본은 얼마만큼의 ‘매력 자본’으로 환산될까.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한국드라마 역사상 최고 제작비 65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기획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타 OTT 플랫폼과 비교해 적은 구독자 수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무빙〉 보려고 디즈니 구독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꿀잼이라고 입소문이 났다. 근데 그 꿀값이 좀 비싸긴 하다. 한달에 만팔천 원이라니! 27% 구독료 인상이라니!

줄거리는 간단하다. 초능력을 물려받은 아이들과 그들에게 평범한 삶을 살게 하고픈 부모들의 이야기. 드라마는 초능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들의 희생 서사와 자신의 초능력을 각성하는 청춘들의 성장 서사, 이렇게 두 세대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된다. 그런데 청춘들이 그냥 성장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풋풋한 10대들인데…

어느 날, 봉석(이정하 분)이 다니는 고등학교로 희수(고윤정 분)가 전학을 온다. 초능력을 감추기 위해 혼자 외롭게 지내던 봉석과 희수는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빠르게 가까워진다. 그렇게 시작된 봉석과 희수의 핑크빛 썸. 봉석은 기분이 좋으면 몸도 마음처럼 붕 뜨는데, 희수의 사소한 말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몸이 자꾸 붕붕 뜬다. 이성에게 설레는 마음을 두둥실 떠오르는 몸으로 시각화한 하이틴 로맨스. 부끄러워서 어쩔줄 몰라 하는 봉석을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몽글몽글해진다. 물론, 그 둘을 바라보며 질투에 불타는 또 한명의 초능력 소년 강훈(김도훈 분)의 존재 또한 하이틴 로맨스 그림체에 딱이다.

Disney+ 제공

〈무빙〉과 ‘하룻밤’ 문화사

‘몽글몽글한 청춘’ 사이사이에 그들의 일상을 지켜주고픈 부모들의 고군분투가 펼쳐진다. 부모들은 초능력을 감춘 채 치킨집 주인, 슈퍼마켓 주인, 돈가스집 주인 등등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으로 국가와 정부로부터 자녀들이 이용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숨어 산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의 대척점에 사악한 악당이나 무서운 악귀가 아니라 정부와 국가가 있단 점이다. 국가와 정부로부터 자녀들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중년 히어로들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런데 모성애나 부성애, 그런 거룩한 감정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랄까. 그동안 한국 드라마는 너무 정의로웠다. 정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타인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자신의 삶을 희생해왔다. K- 사적 복수는 늘 공적 복수로 연결되어 사회 질서 확립과 정의 구현을 성취해내곤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적 복수는 누군가의 사적 희생에 의해 완성되었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은 젊음을 걸었고,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는 생명을 걸었다. 이러한 K-드라마의 거룩한 행보에 〈무빙〉은 제동을 건다.

드라마 〈무빙〉은 집단에서 개인으로, 사회와 시대의 아픔에서 개인의 삶과 슬픔으로의 ‘무빙’하며 ‘지금 여기’의 시대정신을 보여준다. ‘하룻밤’에 읽는 문화사의 흐름이랄까. 괜히 드라마 제목이 ‘무빙’이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무빙’의 중심에는 ‘프랭크’가 있다. 이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거룩한 사명이 아니라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을 글로벌 빌런 프랭크는 자신의 삶을 통해 폭로하듯 보여준다.

Disney+ 제공
Disney+ 제공

드라마 속 ‘몽글몽글함’을 위협하는 글로벌 빌런 ‘프랭크’. 웹툰에는 없는, 정체불명의 택배 기사 프랭크(류승범 분)가 나타나면서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초능력자들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프랭크가 은퇴한 요원들을 하나씩 처리하면서 드라마의 극적 긴장도가 높아지는데, 모든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프랭크는 정작 고요하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 받고 미국으로 입양되어 잔혹한 서바이벌 훈련을 통해 살인 병기로 길러진 글로벌 초능력자 프랭크. 그는 아픔을 느낄 수 없다. 칼에 찔리고 허리가 부러져도 뛰어난 회복력 덕분에 아픔을 느낄 새도 없이 몸이 다치기 전으로 돌아온다. 마음은 다쳤는데, 몸은 이미 치료가 끝난 상황이 반복되고, 프랭크의 보이지 않는 상처는 점점 곪아간다. 너희는 왜 자식을 지키려고 하지. 프랭크의 혼잣말은 곪아버린 상처에서 나오는 진물과 같이 애잔한 여운을 남긴다. 드라마 속 부모 세대가 지키고픈 것은 그냥 자식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향유할 일상의 감각이다.

삶의 ‘몽글몽글함’을 빼앗긴 채 프랭크는 살인 병기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그 죽음 위에서 드라마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의 ‘몽글몽글함’을 위협하는 글로벌 빌런들이 국가 단위로 등장한다. 미국 CIA와 중국 국가안전부, 그리고 북한까지. 과연 우리의 ‘몽글몽글함’은 어떻게 될 것인가. 웹툰 원작이긴 하지만 드라마는 웹툰과 좀 다르게 전개된다. 어쩌겠는가. 꿀이 비싸도 꿀을 빨아야지. 하룻밤이 참 비싸게 달다. 달어.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9월호(통권 111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