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배우 한효주]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시로 만난 별 Ⅱ 배우 한효주]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 장재선(시인)
  • 승인 2023.10.06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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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지 않는다는 것
- 배우 한효주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꼭 나아간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제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이며
오늘의 외로움과 동행한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뒷면에서 온힘을 들여
앞면으로 색을 밀어내듯
시간의 공력으로
백지를 짓는 것이다
그 백지에 천 개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어디로든 여행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은
매번 백지 위의 얼굴이 달라서
그 모든 얼굴로
한 사람을 이루는 마법을 꿈꾸는 것이다.

 


시 작 노 트

“저 배우가 한효주라고?”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을 본 시청자 중 많은 이가 이렇게 감탄을 했다. 극중 안경을 쓴 모습으로 전직 국정원 직원 이미현 역을 한 배우가 한효주라고 생각을 못한 것이다. 드라마가 화제에 올라 이런저런 기사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한효주는 평소 “작품마다 얼굴이 달라서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어?’하는 느낌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성공한 셈이다. 드라마 제목 〈무빙〉은 마치 한효주의 연기 신념을 대변한 것처럼 보여서 흥미롭다.

한효주는 20대에 드라마 〈동이〉로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영화 〈감시자들〉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 직전인 2009년에 한효주를 처음 봤다. 영화 〈천국의 우편배달부〉 시사회에서였다. 2006년에 데뷔해 막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던 그는 웃는 얼굴이 상큼한 젊은이였다. 이후 그는 영화와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며 자신만의 연기 역사를 만들어왔다.

어느덧 데뷔 20년에 가까워오는 ‘중견 배우’가 됐으나 아직 30대 중반이다. 그가 고교생 어머니 역할을 할줄은 몰랐다. 그 역할을 그렇게 능숙히 해 낼 줄은 더더욱 몰랐다. 한효주가 한정된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틀을 깨는 모습이 아름답다.

 


장재선 문화일보 전임기자(부국장).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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