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어느 완벽함: 아니쉬 카푸어의 예술 역량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어느 완벽함: 아니쉬 카푸어의 예술 역량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3.10.0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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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3관(K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세계를 상으로 뒤집기

스테인리스 스틸을 얼마만큼 갈고 닦아야 다이아몬드처럼 빛날까? 그렇게 빛나는 것들을 얼마만큼 가지면 세상을 전복할 수 있을까? 다 헛된 생각이다. 두 질문이 물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거나 쓸데없이 꾸는 망상과 같아서 헛되다. 하지만 어느 미술가가 이미 예술을 통해 그 일을 해내 왔다면 어떤가. 그렇다면 우리 문명은 헛된 것이 아니라, 불가능성이 가능해지고 꿈이 현실이 되는 실증적인 사례 하나를 더 얻은 셈이다. 요컨대 그 미술가는 1990년대부터 이미 스테인리스 스틸을 정련해서 다이아몬드만큼 반짝이고 단단하며 완전무결한 조각을, 그것도 경외심이 일만큼 초대형으로 제작해서 세계 곳곳을 랜드 마크로 빛나게 만들었다. 또 같은 질료로 인간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숨 막히는 반사율reflexibility을 가진 거울 작품을 실현시켰다. 그렇게 해서 이미지가 실재세계를 압도하는 힘의 장force-field을 축성해냈다.

인도 출신의 영국 미술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가 그다. 1954년 인도 뭄바이에서 출생했고, 197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예술가로 성장했다. 공식 기록 상 1974년 런던 서펜타인갤러리가 기획한 《풍경 속으로의 미술 ⅠArt into Landscape Ⅰ》전시에 참여한 것이 경력의 시작이다. 이후 50여 년 동안 회화, 조각, 설치, 공공미술을 관통하며 자신의 예술적 독창성을 전방위로 펼쳐냈다. 그렇게 카푸어는 70세를 앞둔 현재, 의심할 바 없는 세계 미술계의 거장이자 컨템포러리 아트의 초 슈퍼스타가 됐다. 또 영국 내에서는 기사Sir 작위까지 받은 문화계 거물이다. 사실 동시대 국제 미술계는 전통적 경전으로 삼아온 아티스트의 명성, 미술사적 위치와 작품의 미학적 가치만이 아니라 주요 국제전 참여 빈도, 공공미술 프로젝트 위촉, 미술시장 작품가, 판매지수, 미디어 노출, 사회적 영향력까지 평가기준으로 삼는다. 그 프레임에서 볼 때 카푸어는 질적으로 최고 수준의 미술가임은 당연하고, 양적으로도 전 세계를 가로질러 강력한 문화적·경제적 파급력을 확보한 현대미술의 빅 마스터다.1 그런 카푸어를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으로 유명하고 미학적으로도 중요한 작품 특징이 바로 앞서 말한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의 표면 반사율과 그로 인해 창출되는 경이로운 장관spectacle이다. 서펜타인갤러리는 2010년, 이미 미술가로서 높은 입지를 확립한 카푸어를 초대해 그의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 세 점을 켄싱턴가든 내 호수와 숲에 장소 특정적으로 설치했다. 〈하늘 거울, 붉은색Sky Mirror, Red〉(2007), 〈비오브제_첨탑Non-Object_Spire〉(2007), 〈C커브C-Curve〉(2007)로 구성한 《세계를 뒤집기 Turning the World Upside Down》 프로젝트였다.2 문학적으로 근사한 수사법 같은 제목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은유를 넘어, 카푸어가 수십 년간 강력한 물질성을 추구하고 실현해옴으로써 자기 작품에서 세계의 위아래를 뒤집는 미학적 성과를 거둔 힘과 그에 의한 감각의 전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아니쉬 카푸어, 〈In-between II〉, 2021, Oil, fibreglass and silicone on canvas, 244 x 305 x 46cm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사진: Dave Morga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그 미학적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카푸어의 공공미술 대표작 중 하나인 〈구름 문Cloud Gate〉(2004-2006)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에 설치된 공공미술작품인데, 110톤의 스테인리스 스틸이 초정밀하게 용접되고 연마되어 신이 깎은 듯한 거울 표면을 가진 폭 20미터, 높이 10미터의 거대한 무한루프로 탄생했다. 작품이 시카고 하늘의 80%를 반영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거울 같은 표면이 얼마나 투명하고 광대한지를 상상하게 해준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처음 논해진 1997년으로부터 9년이 걸려서야 완성됐고 애초 예산을 세 배나 초과하는 막대한 자금이 투여됐기에 초기에는 부정적인 여론이 높았다. 반면 현재는 “콩The Bean”이라는 귀여운 애칭으로 불리며 전 세계로부터 연간 2천만 명의 관광객/감상자를 끌어 모은다. SNS 피드에서도 도시 스펙터클의 현대미술 아이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아가 시카고의 성공 사례에 이어 뉴욕 맨해튼의 주상복합빌딩에 카푸어의 신작(일명 “작은 콩The Mini Bean”)이 유치돼 올해 2월 공개됨으로써 이 미술가의 예술적 힘이 동시대 사회로 뻗어나가 흡수되는 강도를 실감나게 한다. 이를테면 금속의 엄청난 질량이 이미지의 얇은 표피로서 사라지고, 작품에 의한 가상적 반영 이미지가 인간과 세상의 실재를 집어 삼키는 예술적 권능 말이다.

아니쉬 카푸어, 〈Sky Mirror, Red〉, 2007, Kensington Gardens, London 설치 전경(28 September 2010 – 13 March 2011) ⓒAnish Kapoor.
photo by 강수미. 2010.

카오스의 극한

그런데 카푸어의 예술은 신과 같이 완전무결한 표면의 조형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와 정반대로 이를테면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쪼개져 나가 서로의 이질적 부분들과 혼란스럽게 결합하는 카오스, 혹은 피가 낭자하고 살점이 튀고 내장이 얽히고설키는 디스토피아 같은 미학의 구현 또한 카푸어의 예술이다. 그가 국제미술계에서 최상위 단계에 오른 성공한 현대 미술가를 넘어 강렬한 미적 감각의 집행관, 무서운 카리스마의 예술가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 요컨대 카푸어는 미의 한 극에서 다른 극까지를 횡단하고, 각각의 극단極端에서 가장 강력한 시각성을 창작해낸다. 이번 국제갤러리 개인전 《아니쉬 카푸어》(2023. 8. 30. - 10. 22.)가 감각적으로 매우 자극적인 동시에 의미 차원에서도 한도를 넘는 가치를 띤 이유가 여기 있다.

카푸어는 국제갤러리에서만 네 번의 개인전을 가졌다. 이번 전시는 2016년에 이어 7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개인전이다. 그런 만큼 이번에 선보이는 카푸어의 대형 조각 설치와 회화 및 드로잉 작품들은 그 동안 작가가 새롭게 탐색하고 발전시킨 예술의 다른 국면을 유감없이 전달한다. 특히 2022년 6월 베니스의 갤러리 델 아카데미아와 팔라초 만프린(이 궁전은 카푸어가 매입한 건물이자 앞으로 아니쉬 카프어 파운데이션으로 출범한다)에서 동시에 개최한 개인전에 나온 강렬한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그것은 앞서 논했듯 절대적으로 매끈하고 경탄할만한 투명도로 세상을 비추는 카푸어의 ‘포스트미니멀리즘postminimalism’ 미술과는 감각 지각적 차원이 다르다. 기하학적 형태와 형이상학적 관념을 최소한의 시각적 표현으로 출현시키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달리 카푸어의 최근작들은 유기체의 살肉과 비천함의 양태를 넘치도록 재현한다. 아니, 보다 정확히는 작품이 재현하지 않고 보는 이의 상상력이 그렇게 재현하도록 견인한다. 이미지가 표상하는 성질은 더더욱 그 이즘과 대극對極이어서 표현주의적이라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다. 대표작으로 〈달그림자Moon Shadow〉(2018), 〈그림자Shadow〉(2017), 〈섭취Ingest〉(2016)를 들 수 있다. 그것들은 유기물질의 무겁고 둔탁한 질료적 속성과 육신의 피비린내 나고 취약한 기관organs으로서 한계가 거대한 검은 덩어리, 붉은 덩어리 조각품에 내속하는 형국을 만들어냈다.

아니쉬 카푸어 스튜디오 전경, 2017,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전시에 나온 회화 또한 관습 파괴적이고 경계를 넘는 역동성을 구현한다. 회화의 시각언어를 대표하는 붓질보다는 물리적 자국들, 물질의 파편들, 지체의 부속들이 화면을 잠식한다. 부조처럼 튀어나온 형상들은 평면과 입체의 구분선을 관통하며 날뛴다. 검고 붉고, 검고 푸르고, 나아가 검붉거나 검푸른 색채들의 역동성은 또 어떤가. 〈무제〉(2021)는 절대적 무혹은 완전한 공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검푸른 색의 응집이 교교한 배경을 전개하는 가운데 익명의 시신처럼, 혹은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처럼 웅크린 유기체를 선반에 떠받들고 있다. 제목부터 ‘사이’를 뜻하는 〈In-between〉 시리즈 회화에서는 평면을 찢고 나오는 반구와 사체死體의 내부 같은 어지러운 형상 때문에 이차원과 삼차원의 질서는 물론 생명과 죽음의 유착까지 철학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이렇게 카푸어의 2010년대 후반 이후 최근 작품은 그 자체로 도발적이고 강렬하다. 헌데 그것들이 국제갤러리 서울의 K1, K2, K3 전시장 각각의 건축적 규모와 공간의 무브먼트에 스며들어 드라마틱한 존재감을 뿜어내도록 대범하면서도 정숙하게 디스플레이 되었다. 때문에 감상자에게는 더욱 큰 충격을 선사한다. 이를테면 카오스의 지극한 고요, 카오스의 끔찍한 아름다움이 그런 종류의 충격일지 모른다. 육신 같고 내장 같은 것들이 무서우리만치 포위해 들어올 때 드는 기분, 우주의 중핵이 공허의 모양새를 하고 제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될 묵시록의 분위기 같은 것.

아니쉬 카푸어, 〈Untitled〉, 2021, Oil, silicone and Wood on canvas, 244 x 305 x 76cm
ⓒAnish Kapoor. All rights reserved DACS/SACK, 2023, 사진: Dave Morgan
이미지제공: 국제갤러리

창작의 경이로운 지점

카푸어의 인터뷰를 보면 이 현대미술가가 상당히 높은 수준의 미술사 및 미학 지식을 갖췄음을 알 수 있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이론적 경전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얼마나 깊이 자유로워지려 노력해왔고 실제로 성취했는지 가늠할 수 있다. 가령 그는 이런 발언을 했다.

“회화의 역사는 사물들을 어떻게 나타나게 할 것인가에 관한 역사다. 나는 정확히 그 반대로 작업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사물들을 사라지게 할까? 분명히 나는 수년 간 다양한 물질로 작업해왔다. 검은색은 그 중 하나이고, 파란색 안료를 쓰기 전에는 흰색 작품들과 거울작품이 있었다. 특히 거울은 나의 작품들처럼 오목할 때 이상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볼록거울은 모든 것을 더 작게 보이게 하고 방 전체를 반사시키는 반면, 오목거울은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사물의 공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전통적인 회화의 공간이 아닌 것이다.”3

위 인터뷰 인용문에서 읽을 수 있듯 카푸어는 원근법의 질서와 광학의 원리를 충분히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했다. 하지만 그것을 이어나가기보다는 동시대의 물질공학과 건축공법 수준으로 끌어올려 회화예술의 역사를 지금여기의 것으로, 자신만의 것으로 분절해낸다.

내가 2010년 가을, 켄싱턴가든에서 카푸어의 〈하늘 거울, 붉은색〉을 보며 창작자의 능력에 감탄한 이유도 거기 있다. 그 작품은 공원의 호수 한가운데 설치돼 런던 하늘을 비췄다. 그런데 커다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붉은 원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표면에 반사된 하늘은 더 이상 지구상에 실존하는 하늘과 같지 않았다. 그런 하늘은 사라지고, ‘비현실’ 이나 ‘초현실’ 같은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찬란한 공허의 하늘이 나타났다. 그렇게 카푸어의 예술은 고전적인 오목렌즈 광학을 이용해 세상의 구성과 인간 시선의 습관을 뒤집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현대미술의 단편적 기교나 재기발랄함의 수준을 넘어선 것, 종합적으로 세계를 유희하는 종류의 감각 지각이다.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전시 전경, 국제갤러리 2관(K2), 2023
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1 Artfacts, 2023. 9. 12 검색 https://artfacts.net/artist/anish-kapoor/2053
2 https://www.serpentinegalleries.org/whats-on/anish-kapoor-turning-world-upside-down/
3 Anish Kapoor & Thibaut Wychowanok interview, “Anish Kapoor dissects the bowels of the world in Venice”, Numero (June 1, 2022) https://www.numero.com/en/art/anish-kapoor-venice-visconti-freud-psychanalysis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3년 10월호(통권 11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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