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수직의 새 지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수직의 새 지도: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3.11.01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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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의 코페르니쿠스

2세기 경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였던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을 포함해 우주의 천체는 지구 주위를 공전한다는 선대들의 주장을 정리했다. 그것이 ‘천동설’로 알려진 고대 천문학의 관점인데, 과학적으로는 오류다. 16세기 초에 이미 폴란드 출신 신부이자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천동설을 지동설로 뒤집었다. 지구 주위로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우주적 사실이, 실증은 아니지만, 이론적 관점의 전환을 통해 명시된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전회轉回’라고 불리는 인류 역사의 혁명적 순간이자 인간 지성의 거대한 전환점이 그렇게 이뤄졌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고 저녁에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본다. 그렇기에 학습된 지식으로는 당연히 천동설이 틀렸음을 알아도 직관적으로는 내 눈앞에서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느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20세기 중반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주저 『개인적 지식The Personal Knowledge』(1958)에서 코페르니쿠스 때문에 인간이 “우주안의 중심적 위치”에서 내쫓겼다고 썼다. 그에 따르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사실상 “세계에 관한 우리의 그림에서 우리 인간의 관점을 엄격히 제거”한 이론이다. 마치 신처럼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초월적 관점에서만 추론 가능한 논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동설을 통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이 드러났듯, 신이 아닌 인간에게 초월적 관점이란 추구할 이상이지 획득한 실재가 아님을 깨닫게 됐다. 근대 과학은 그 초월적이고 관념적인 이상을 지식의 궁극적 목표로 삼았기에 객관성을 중시했다. 지구 중력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고 육체를 저버리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절대적 준거로서 말이다. 폴라니는 코페르니쿠스가 지구에 붙박인 채 태양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천상의 파노라마”, 이를테면 절대적 시선의 거리를 상상하며 “대단한 지적 만족”을 누렸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때문에 그가 보기에 지동설 또한 인간중심적 사고에 속한다. 다만 사고의 가설과 기준점이 다르다. 요컨대 같은 인간중심적 우주론이라 해도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인간 신체의 감각적 경험을 근거로 했다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우리 감각의 증거를 거절”하고 그 자리에 “추상적 이론”을 세웠던 것이다.1 그때 인간 문명은 몸에서 정신으로의 강력한 전환을 일으켰다.

놀란 오스왈드 데니스, 〈아토피아 필드〉, 2021, 바닥 다이어그램, 500X750cm.
서울시립미술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수직세상

그런데 새삼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환경을 둘러보면, 수십 세기 이전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이 도달하지 못했던 차원을 우리가 이뤘구나 싶지 않은가? 폴라니가 지동설에는 배제됐다고 비판적으로 지적한 인간 감각의 우주적 차원이 현재 우리의 일상 경험에 포함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여러분은 오늘 하루 최소 한 번 이상 GPS 인공위성이 제공하는 지도를 보고, 통신위성인 무궁화위성을 통해 모바일 소통을 했을 것이며, 기상위성인 천리안위성 2호가 관찰한 기상예보를 확인했을 수 있다. 또 운전을 하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걷거나 하면서 수직으로 솟아오른 고층빌딩(롯데타워!)의 스카이라인과 지하로 길고 깊이 파인 공간 및 그 내부에 가설된 구조들infrastructures을 이용했을 것이다. 미처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때 우리가 보고 느끼고 사용한 공간과 각종 시청각정보는 결코 수평적이지 않다. 오히려 지표면을 기준으로 위로는 250~3만 6,000km 높이까지2, 아래로는 최소 5~최대 50m3 심도까지 수직으로 뻗어나간 공간의 정보를 숨 쉬듯 송수신하며, 그 상하부구조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에 동시대는 물리학적·지리학적으로 수직적vertical 공간이라는 규정을 내릴 수 있다. 또한 그렇게 물리적이고 지리적으로 수직적인 공간에서 부, 권력, 생명, 삶의 질과 안전성, 향유 등등 사회적이고 정치경제적인측면 또한 극단적으로 위계화 된다는 점에서 “수직사회”라는 인식은 타당하고 중요하다. 4

Pierre Bélanger, 〈Airport Landscape: Altitudes of Urbanization〉, 2013,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 Harvard University
https://www.gsd.harvard.edu/exhibition/airport-landscape-altitudes-of-urbanization/

하지만 나는 거기서 논의를 좀 더 진전시켜, 폴라니가 지적한 반쪽짜리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을 넘어 우리가 이제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차원과 신체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이 합쳐진 수직적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공위성과 드론 같은 기술(장치)이 그야말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히는 관점을 객관적으로 실현시켜 우리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말 그대로 지구 표면의 거의 모든 존재와 사물, 사건과 체계에 중추적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지표면을 뚫고 심도 깊은 곳으로 파고드는 기술력 또한 엄청난 수준이어서 희토류 등의 희귀광물 채굴이나 심해 송유관 설치는 물론이고 해저 케이블과 네트워크 선에 포화된 지하 공간 또한 빽빽하다. 우리는 이제 그렇게 위아래로 수직 팽창된 공간에서, 하지만 그 공간을 감각적으로나 의식적으로나 크게 의식하지 않은 채, 먹고 마시고 자고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전에 폴라니가 근대 정밀과학이 객관성을 추구하느라 후순위로 떨어뜨렸다고 비판한 신체적이고 주관적인 차원까지 현재 우리의 수직세상에서는 일체화되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사샤 리트빈체바 & 베니 바그너, 〈콘스탄트〉, 2022. 비디오 설치.
서울시립미술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지도와 우리의 무지

올해로 제12회를 맞이한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이하 ‘미디어시티’) 전시 《이것 역시 지도This too, is a Map》(2023. 9. 21. - 11. 19.)가 특별한 이유가 여기 있다. 이번 미디어시티는 물리적이고 지리적인 수직성, 사회학적인 수직성, 구체적 현존 차원의 수직성이 부정할 수 없이 현실화된 동시대 도시를 논하기에 매우 적절한 기획을 했다. 벌써 주제로 제시한 ‘지도’가 우리로 하여금 이 전시에서 무엇을 들여다봐야할지 안내해준다. 사전적 정의로 지도란 “지구 표면의 상태를 일정한 비율로 줄여, 이를 약속된 기호로 평면에 나타낸 그림”이다. 그런데 전시 전체 주제/제목은 《이것역시 지도》다. 제목의 논리가 맞으려면 이번 미디어시티전은 최소 두 가지 지도를 상정해야 맞다. 그 하나는 앞서 인용처럼 지구 표면을 축소시켜 기호화한 이차원 그림으로서 통상 우리가 길 찾기를 할 때나 해외여행 등에서 사용하는 그것(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세계전도, 지도앱)이다. 그럼 그것 아닌 “이것 역시 지도”는 무엇일까? 예술감독인 레이첼 레이크스Rachael Rakes의 말을 빌리면 전시는 “초국적인 양상으로 진행되는 연대, 지하자원의 채굴, 코드화된 방식의 데이터·인프라 구축과 예술적·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등 국경을 넘어 생성되었거나 때로는 강요되기도 하는 여러 시스템을”5 다룬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지도”는 레이첼의 말 순서 상 정치사회학적 지도, 경제적이고 유물론적인 지도, 심리적이고 문화적인 지도, 주관적이고 경험적인 지도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해볼 수 있다. 요컨대 지구의 가시적 땅과 바다를 영토적 표기법으로 시각화한 지도부도가 아니라 그것의 대안이자 보충으로서 보이지 않는 범위까지, 암묵적 속성과 작용까지 담은 복합지도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전적으로 무지한 세계의 면모를 담은 지도일지 모른다.

사샤 리트빈체바 & 베니 바그너, 〈콘스탄트〉, 2022. 비디오 설치.
서울시립미술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실제로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서 시작한 전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호로 단정하게 축소되고 조형적으로 상징화된 세계상-지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여러 국가 출신의 작가 40여 명/팀이 제시한 70여 작품의 콘텐츠와 매체, 발화형식과 표현법, 질료와 프레젠테이션 유형에 따라 다성적이고 다층적인 세계의 형상들을 펼쳐낸다. 작품들 각각이 다루거나 보여주는 이미지는 ‘지도’라는 전시 모티프와 일차원적으로 결부되지 않는다. 또 ‘지구Globe’의 어느 공간, 장소, 지대, 지역, 지점과 일대일 대응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지도”라는 화두에 숨겨진 의미는 그렇게 직접적이고 지구 표면적인 지리학에는 표시될 수 없는 삭제된 과거, 현재 진행형의 사건, 아직 파악 안 된 세상의 이면 등을 내용으로 담은 또 다른 형식의 지도를 보자는 뜻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놀란 오스왈드 데니스Nolan Oswald Dennis의 〈아토피아 필드Atopia Field〉(2021)는 전시장 바닥에 깔려 관객이 밟고 지나다닐 수 있도록 카페트로 만든 다이어그램이다. 인류 문명사에서 심대한 식민지 상흔을 간직한 땅, 아프리카 대륙을 가상의 영토로 재구성한 지도 이미지다. 데니스의 카페트는 작품을 밟고 수직적 시선으로 작품의 내용을 내려다보는 경험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신선한 현대미술이다. 동시에 거기 표시된 세계가 흑인 해방의 역사를 상상의 궤적으로 번역한 것이라는 점에서 지리부도와는 다른 비판적 인식의 지도다. 게다가 〈아토피아 필드〉에는 의도치 않게 우리를 자극하는 요소가 있다. 그 작품은 하버드대학 건축조경학과의 피에르 벨랑제Pierre Bélanger가 2013년 기획한 전시에 나온 그래픽 단면도 〈도시화의 고도들Altitudes of Urbanization〉과 매우 유사하다. 벨랑제는 위로는 인공위성, 헬기, 항공기 등의 궤적을, 아래로는 지하의 인프라스트럭처와 광산, 심해 잠수함의 위치를 한 화면에 중층으로 표기했다. 그럼으로써 근대적 지도를 압도하는 현 세계의 복잡하고 상호 각축적인 레이어를 ─실제적으로 거의 완벽히 체화되었기에 오히려 우리가 인지하기 힘든─ 가시화했다. 때문에 〈아토피아 필드〉와 〈도시화의 고도들〉이 학술적 객관성이나 역사적 사실성을 목표하지 않았더라도, 이 둘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동시대의 구조적 특징과 과거로부터 축적된 세계의 속성을 지도 그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벨랑제의 다음과 같은 주장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의 정형성을 탈주한 형식과 내용의 지도들이 잠재한 진실성, 사실성, 그리고 통찰적 가치를 긍정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도시 생활을 지원하는 인프라는 해저 10,000m부터 지표면 위 궤도 35,000km까지 지하, 수중, 우주를 가로질러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 우리가 여행하는 공간의 전통적인 윤곽을 다시 프로파일링하는 이 다이어그램은 지난 3,000년 동안 우리가 도달하고 탐구한 깊이와 차원의 범위를 보여준다.”6

찬나 호르비츠, 〈오렌지 그리드〉, 2013-2023. 벽과 바닥면 설치, 격자무늬 벽지와 검은 목재.
서울시립미술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수직의 새 지도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관점, 기준, 측량법, 표기법에 따라 세계/세상을 들여다보고, 재현하고, 재단하고, 표상하는가에 있다. 이번 미디어시티 전이 ‘이것 역시 지도’를 제시한 것 또한 큰 틀에서 보자면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이 세계/세상을 탐구하고 주제화 하는 실천이다. 이사샤 리트빈체바 & 베니 바그너Sasha Litvintseva & Beny Wagner의 영상설치 〈콘스탄트Constant〉(2022)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할 작품이다. 40분 분량의 영상은 배우의 연기와 공간 연출을 통해 서구 유럽의 토지 측량부터 무게를 재는 단위의 변경까지를 흥미롭게 쟁점화 한다. 18세기 유럽 과학자 분장을 한 연기자들은 현대의 유튜버처럼 셀프 영상 촬영을 하며 고성古城의 비좁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광활한 평지를 360도 돌며 자신이 자의반타의반 조작한 세계의 측량 표준을 수정하려 애쓰다 쓰러진다. 그에 이어 저울을 든 손을 그린 옛 학술 도판과 지구그림이 화면에 나타나고 자막에는 “측량은 비유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뜬다. 이로써 두 작가는 통상 사람들이 믿고 준수하는 표준들, 지표들, 이론들 내부에 깔려있는 임의성과 자의성을 꼬집은 것이다. 또한 작품 자체가 그 비유의 한 줄기임을 기꺼이 긍정한다.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 〈중위-수녀가 지나가네: 카탈리나, 안토니오, 알론소 외 여러 명의 자서전〉, 2021, 자카드 태피스트리.
서울시립미술관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전경, 2023. photo by 강수미

이외에도 우리는 찬나 호르비츠Channa Horwitz의 〈오렌지 그리드Orange Grid〉(2013/2023)설치 공간, 전현선의 〈이 선을 넘어도 돼〉(2023) 회화 설치,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Mercedes Azpilicueta의 〈중위-수녀가 지나가네The Lieutenant-Nun Is Passing〉(2021) 태피스트리 설치를 관심 있게 볼 수 있다. 이 세 작품은 논제가 다르고 매체와 표현법 또한 상이하지만 감상자에게 공통적으로 보통의 시선과는 다르게 본 세계/세상의 이미지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르네상스시대 발명된 수평 원근법 자체를 거니는 몸, 고전 유클리드기하학과 디지털그래픽 기술과 풍경화 형식의 혼종같은 그림-벽의 지형지세, 1600년 경 바스크 지방에서 전해진 여성 서사와 식민정복의 파노라마 같은 것. 《이것 역시 지도》는 물리적이고 지리학적인 차원에서 수직적 현재를 표상하지는 않았다(그래야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비유”의 차원에서 저 밑의 역사 시간과 저 위의 가상적 시간까지 건드린 현재 전시라는 점에서 나는 수직의 새 지도를 떠올려본다.

 


1 마이클 폴라니, 『개인적 지식』, 표재명·김봉미 옮김, 서울: 아카넷, 2001, pp. 21-22.
2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인공위성의 궤도와 속도”, (2023. 10. 17. 검색) https://www.kari.re.kr/prog/stmaplace/view.do?stmaplace_gubun=3&stmaplace_no=28&mno=sub07_02_03
국가기상위성센터, “위성 영상”, (2023. 10. 17. 오후 6:30 검색) https://nmsc.kma.go.kr/homepage/html/satellite/viewer/selectSatViewer.do?dataType=operSat
3 서울열린데이터광장, “서울교통공사 지하철역사 깊이(심도) 정보”, (2023. 3. 10. 수정) https://data.seoul.go.kr/dataList/OA-13305/F/1/datasetView.do
4 스티븐 그레이엄, 『수직사회』, 유나영 옮김, 서울: 책세상, 2019.
5 레이첼 레이크스, “About SMB12 소개”, 《이것 역시 지도》 안내 책자, 서울시립미술관, 2023, p.
6 〈Airport Landscape: Altitudes of Urbanization〉(2013. 10. 16. - 12. 19.),
Pierre Bélanger(Curator), Department of Landscape Architecture, Harvard University
https://www.gsd.harvard.edu/exhibition/airport-landscapealtitudes-of-urbanization/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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