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연극인 윤석화] 기막힌 동행
[시로 만난 별 Ⅱ 연극인 윤석화] 기막힌 동행
  • 장재선(시인)
  • 승인 2023.11.03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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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동행
- 연극인 윤석화

 

반세기 가깝게 무대에 서며
아낌없이 땀과 눈물을 흘렸다
그것들이 거름 되어
당신 안에서 늘 무엇이 자라났고
신생의 설렘과 기쁨으로 퍼져나갔다

덜 여문 씨앗 같은 것도 있어
때로 후회의 두엄자리에 떨어지기도 했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혹이 함께 컸음은 몰랐기에
당신은 기 막혀 웃음이 났다고 했다

이왕 만났으니
싸우지 말고 잘 지내다가
떠날 때 말없이 가자고 다독이며
맨발로 마당을 걸을 때

당신에게서 독한 기운은 빠져 나가고
몸과 마음이 더불어
더 간절하게 원하게 된 그분의 향기가
걸음걸음마다 배일 것이다.

 


시 작 노 트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 윤석화씨가 뇌종양 수술을 받은 후 퇴원을 청하며 한 말이다.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 치유의 방법으로 집에서 맨발 걷기를 하는 이유이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답다는 생각을 했다. 연전에 남산 자락의 어느 식당에서 그를 만나 길게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항상 최선을 다해왔다는 자족과 직결돼 있는 듯싶었다.

1975년 민중극단 ‘꿀맛’으로 데뷔한 그는 1983년 〈신의 아그네스〉를 통해 연극계 디바로 떠올랐다. 이후 뮤지컬 배우로도 활약했고, 제작자·연출가로도 이름을 떨쳤다. TV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으며 음악잡지 발행인과 극단 대표도 지냈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등을 맡기도 했다.

그런 윤 씨를 만났을 때, 그로부터 가장 많이들은 이야기는 뜻밖에도 아들과 딸에 대한 것이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의 희로애락을 말하는 그는 여느 엄마와 다를 바 없었다. 직접 낳지 않았어도 입양을 통해 가슴으로 키워온 아이에 대한 사랑이 넘쳐났다.

그런 온기가 그의 공적 활동에서도 바탕이 되고 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그가 이렇게 다짐했던 걸 기억한다. “앞으로도 제 작은 달란트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면, 바로 그 자리에 있겠습니다.”

 


장재선 시인.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문화일보 대중문화팀장, 문화부장 등 거쳐 현재 전임기자.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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