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당신의 마스크는 무엇인가요: 〈아라문의 검〉 〈마스크걸〉
[드라마 월평] 당신의 마스크는 무엇인가요: 〈아라문의 검〉 〈마스크걸〉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11.03 15: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드디어 시즌2가 돌아왔다.

자그마치 4년 만이다. 2019년 〈아스달 연대기〉의 제작비는 540억. 화려한 출사표를 내고 시작한 시즌1의 반응이 애매한 탓이었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최초로 시도된 ‘고대 판타지 서사극’. 상고시대와 철기시대의 모습이 뒤섞인 낯선 시공간. 무슨 뜻인지 자막을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낯선 언어.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공부하듯 메모를 끄적이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감을 잡기 어려웠던 시즌1의 아픈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육룡이 나르샤〉, 〈뿌리깊은 나무〉, 〈선덕여왕〉… 사극 최강 콤비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세계관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아스달 연대기〉는 거대한 스케일 탓에 진입장벽이 높아 평범한 사람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시즌2에서 남녀 주연배우 교체, 그리고 드라마 제목까지 바꾸는 파격적인 변화를 앞세워 포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꽤 성공적이다.

〈아라문의 검〉은 ‘아스달 연대기’로부터 8년이 지난 후 아스 대륙에서 일어난 새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아스 대륙의 강력한 도시국가인 아스달과 그에 맞서는 아고 연합의 대전쟁이 스펙타클하게 벌어진다.

tvN 제공

타곤의 ‘인간’ 마스크

〈아라문의 검〉은 꼼꼼하고 느린 호흡의 전작 〈아스달 연대기〉와 결이 많이 다르다. 우선, 제목부터 ‘검’이다. 영화 〈안시성〉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은 장기자랑하듯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을 선보인다. 몸관리를 위해 탄수화물을 7년째 끊었다는 배우 이준기의 화려한 몸놀림은 액션 장인의 손길에 힘입어 대중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토리 전개가 느슨하다는 인상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렵다. 이 모든 것이 드라마의 ‘과도한 착함’ 때문이다. “칼과 방울 그리고 거울의 상징인 세 명의 아이들이 한날 한시에 태어나 이 세상을 끝낼 것이다.” 주인공 은섬과 사야, 그리고 탄야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너무 단순명료하다. 방대한 양의 드라마 배경지식과 비교했을 때 서사 전개가 너무 평이하달까. 드라마를 이해하는 데 들인 노력 대비 정서적 아웃풋이 적은, 한 마디로 가성비가 좋지 않다.

이때 〈아라문의 검〉을 구원할 자가 하늘로부터 강림하는데, 그가 바로 아스달의 왕 ‘타곤’이다. ‘하늘 아래 가장 강인한 꿈을 꾸는 아스달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타곤.

tvN 제공

자, 주목. 지도자 아니고 지배자다. 한 마디로 빌런. 뭇 여성들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던 2000년대 최고의 ‘로맨스 남주’ 배우 장동건이 ‘빌런’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드라마가 흥미진진해진 가운데, 그는 너무 착해서 밍밍해진 〈아라문의 검〉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극중 아사달의 왕 ‘타곤’은 인간과 뇌안탈 사이의 혼혈족 이그트 출신이다. 뇌안탈은 몸집이 거대하고 힘이 세고 발이 빠르고 그래서 육체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한 사람 위의 사람이다. 당연히 인간 중심의 사회에서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 그리하여 뇌안탈은 인간으로부터 혐오와 무시를 받으며 멸족 위기에 놓이고, 타곤은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로서 이그트의 보라색 피를 수치로 여겨 평생을 숨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의 수치심은 동족을 향한 맹렬한 적개심으로 거칠게 발현된다.

tvN 제공

‘인간’이란 이름의 마스크를 쓴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애써 부정하며 누구보다 잔혹하게 뇌안탈과 이그트를 학살한다. 이그트의 상징인 보라색 피를 목격한 친구를 죽인 첫 살인 이후, 그는 뇌안탈에게는 치명적인 병으로 뇌안탈을 전염시켜 집단학살을 계획한다. 그렇게 인간 세상에서 승리자로 등극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인간 여자에게서 얻은 배다른 동생이 있었던 것. 끝나지 않는 전쟁. 그는 또다시 이전보다 더 강력한 ‘인간’ 마스크를 쓰고 비극적인 운명으로 뛰어든다. ‘타곤’의 시선으로 재구성된 〈아라문의 검〉은 스릴러와 공포가 가미된 한 편의 정치드라마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 어떠한가. 심장이 쫄깃쫄깃해지지 않는가. ‘아라문의 검’이라 쓰고 ‘타곤의 마스크’라고 읽으면 드라마가 한결 재밌어진다.

넷플릭스 제공

마스크 전성시대

넷플릭스 시리즈 〈마스크걸〉은 부족한 외모 때문에가수의 꿈을 거부당한 주인공 김모미가 얼굴을 가린채 ‘마스크걸’이란 이름으로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다 끔찍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김모미는 처음부터 마스크를 쓰고 나와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숨긴다.

주인공이 얼굴을 가린 채 등장하지만, 드라마의 지향점이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외모가 서열이 되고 권력이 되는 사회에서 주인공 김모미는 저항하거나 변화를 꿈꾸기보다는 철저하게 그 질서에 복종하고, 그 질서에 의해 파멸한다. 김모미의 삶 안에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가 공존한다. 그래서 선과 악의 구분이 애매하고, 옳고 그름의 경계가 모호하다.

넷플릭스 제공

김모미를 포함한 주요 인물들이 모두 자기만의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그들의 마스크는 등장인물의 외양을 가리기 위한 유형有形의 마스크이기도 하고, 등장인물의 내면을 가리는 무형無形의 마스크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가짜든 진짜든, 김모미와 그녀가좋아했던 유부남 직장상사, 그리고 그녀를 좋아하는 직장 동료 주오남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가리고 마음을 가린다.

드라마는 총 7부작으로 매회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진다. 사회적 표준으로 봤을 때 모두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 이상하고 기괴하다. 마스크에 가려진 삶의 불편한 진실을 몰래 엿보는 듯한 느낌. 그래서 드라마 〈마스크걸〉은 보는 내내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계속 보게 된다.

넷플릭스 제공

당신의 마스크

〈마스크걸〉은 매회 개인들 서사를 하나씩 주목하여 풀어내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부제목으로 붙어 있다. 주인공이 바뀔 때마다 산만하거나 어지럽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꼼꼼하게 마련해 전체적으로 스토리 몰입도가 좋다.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는 공감할 수 있다. 그래서 자극적 소재와 선정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뭔가 애잔하고 짠한 느낌이다. 사건이 아니라 사건을 겪는 개인이 보인다.

‘사회적 표준’에서 엇나간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분노. 현대사회의 징후를 보여주는 징후적 인물들로서 그들에게는 강박적이고, 편집증적 면모가 도드라진다. 그래서 드라마에 빠져들수록 생각이 점점 복잡해진다. 〈마스크걸〉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마스크를 쓴 채 살아가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만, 진짜 나를 숨겨야만 이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탄식 그리고 집요한 자기성찰. 과연 우리는 어떤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고 있을까. 혹은 우린 어떤 마스크를 강요받고 있는 것일까.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드라마의 첫 장면과 같다. 이걸 말해도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다. 드라마를 다 봐야 마지막 장면에 대한 해석을 할 수 있고, 보는 사람마다 정서적 해석이 다 다르다. 그 점이 〈마스크걸〉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 한 번 보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7시간 동안 드라마를 몰아보기하게 된다.

〈마스크걸〉은 어린 시절 김모미가 학예회 무대에서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테이프에 녹화된 홈비디오 형식으로 김모미의 딸 미모에 의해 다시 한번 그 모습이 재생된다. 영상 속 어린 모미는 꿈이 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답한다. “제 꿈은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넷플릭스 제공

자, 여기서 문제. 지금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지금 당신이 느끼는 그 감정이 당신이 쓰고 있는 마스크에 가려진 당신의 진짜 얼굴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마스크를 쓰고 있나요요요요~~? 내가 쓴 이 글에서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관심을 돌리는 ‘절단신공’으로 나는 이만 조용히 물러나겠다. ‘못생긴’ 나의 감정을 슬며시 덮고 이만 총총. (드라마평론가는 내가 가진 625개 마스크 중 하나다. 음흠.)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11월호(통권 113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