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도드라진 면의 안쪽: 이정배 작가와의 대화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도드라진 면의 안쪽: 이정배 작가와의 대화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3.12.0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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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배 작가는 1974년 생으로 동양화를 전공했고, 2005년 문화일보 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다수의 굵직한 전시를 이어오며 회화, 조각, 설치, 사진, 영상, 전시기획 등으로 예술적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현재 서울 아리리오미술관 스페이스Arario Museum in Space에서 《문지르고 끼이고 빛이 나게Rub, Jam and Glimmer》(23. 9. 21. - 24. 2. 11.)라는 수행적인 제목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그에 맞춰 10월 26일 아티스트 토크가 열렸다. 이정배 작가와 강수미 미술비평가는 작가의 신작들이 전시공간을 특별한 색과 형태, 빛과 질감으로 변화시킨 현장 한가운데 마주앉아 대화를 나눴다. 작가의 전공이었기에 미감의 뿌리 같은 것이면서도 스스로의 미술을 탐색하며 지속적으로 비판적 성찰을 해온 ‘동양화’가 첫 대화 주제였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우리가 도시를 건물이나 도로 같은 도드라진 면을 중심으로 보느라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공간 안쪽의 산수山水, 일광日光 같은 것들이 어떻게 이정배 작가의 작품들 속에서 존재가치를 발휘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 그 일부를 재구성해 여기 옮긴다.

이정배 & 강수미, 《문지르고 끼이고 빛이 나게》연계 아티스트 토크, 2023. 10. 26 ⓒ 2023 ARARIO MUSEUM

‘동양화’와 산수의 아름다움

강수미(이하 SM) 오늘의 대화에 주안점이나 키워드가 있는 건 아닙니다. 작품을 가지고 이야기하지만, 작가의 예술에 대한 생각이나 작가의 근본, 작업의 토대와 지금까지의 작업성과를 분석하는 식으로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대화의 장을 여는 차원에서 본인의 작업이 가진 중요한 목표나 지향점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정배(이하 JB) 뚜렷한 목적의식이나 지향 의식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양,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서양에는 없는, ‘동양화’라고 하는 특수한 학과가 우리나라 미술대학에는 있습니다. 저는 현대미술과 대척점에 있는 동양화과를 나왔고 동양화의 매력에도 푹 빠졌었습니다. 개인사로 보면 제 대학 은사님이 청전 이상범 선생님의 제자이고, 운보 김기창 선생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면서 자연적으로 산수화에 몰입하게 되었고, 자연이 제게 의미하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밖에 나가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많아졌고, 좋은 풍경을 만나러 다니길 기대했고, 거기서 그림을 그리는 일이 매우 큰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20대 후반, 어느 순간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왜 동양화는 동시대 미술로 다루어지지 않느냐는 문제였습니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산수화의 동시대성에 관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개념적으로 접근을 했는데 현재는 아름다움을 표면으로 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년 넘게 작업을 하다 보니 깨우친 건 ‘미술은 단순하지 않구나. 무엇으로 무엇을 탁 자를 수 없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술의 모호함을 긍정하면서, 산수화의 동시대성을 개념과 미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정배, 〈금의 인왕산〉, 〈은의 인왕산〉, 금, 은, 각 9.5x4.5cm, 2023. 사진: 작가 제공.

SM 우리에게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럽거나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무엇이라는 생각이 강하죠. 흔히들 태생적으로 아름다움을 경험하는 능력을 타고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오늘 우리가 보는 이정배 작가의 작품은 어떻습니까? 눈앞에 보이는 이 작품 〈찬란한 햇빛〉은 입체이지만 벽에 걸린 노란색의 단순한 평면으로도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작가가 일상적 공간 속에서 세계를 보는 관점을 담은 흥미로운 작품이죠. 그 작품에서는 ‘관점perspective’ 자체가 가시화되었다고 평하고 싶습니다. 관점은 결국 입장이고 세계관이고 철학입니다. 그 차원에서 봤을 때 이정배 작가의 작업은 곧 그가 보고 있는 세계인 것이죠. 우리는 도시 공간을 포지티브하게 드러난 걸 중심으로 보는 데 익숙하지만, 이정배 작가는 그것들의 네거티브, 음각의 차원들을 봅니다. 네거티브 면은 마치 세계의 비밀처럼 보게 되는 부분들입니다. 알고 나면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기도 하죠.

JB 산수화를 그리려면 자연을 많이 대했어야 했고 그러려면 필연적으로 명승지를 많이 다녔어야 했습니다. 제 부인이 이진주 작가인데 고향이 부산이어서 부산에 내려갈 일이 많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수없이 많은 아파트 사이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거예요. 아파트 사이에 산이 끼어 있더라고요. 아주 조그맣게. 큰 충격이었어요. 이 시기 저의 작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대립적으로 해석하고, 욕망의 상징적 도상들을 나열하는 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작업의 구조가 언어에 기댄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없이 많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조그맣게 끼어 있는 그 자연을 보고는 ‘산수가 저기에 저런 형식으로 들어가 있구나. 나는 이제 설명 구조를 떠날 수 있겠다’는 직감에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렇게 자연의 부분이 제 작업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최초에 부산에서 보았던 기하학 형태의 산이 눈에 들어왔을 때, 작품은 금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대수필가 이양하의 1935년 작 〈신록예찬〉에서처럼, 차가운 겨울을 뚫고 나오는 새순의 연두색과 생동하는 생명들이 추위와 대비돼 너무나 아름답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찬란한 신록은 고민할 필요 없이 금빛이었습니다. 그 생각을 이번 전시에서 〈금의 인왕산〉으로 구현했습니다. 원서동에서 경복궁을 바라 볼 때 건물들 사이에 끼어있는 아주 작은 기하학의 인왕산을 모티프로 만든 것입니다. 〈찬란한 햇빛〉의 주제인 햇빛도 사실 대도시 빌딩들 사이에서 쉽게 관찰되는 태양의 빛입니다.

SM 작가가 어디서 모티프를 얻어 물질적인 차원으로까지 구현했는지 하나하나 다 안다고 해서 작가를 철저하게 잘 이해한다든가 작품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정보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정배 작가에게 직접 말할 기회를 드리는 이유는 이 작가가 보고 있는 도시라든가 산수 —산수라는 말 자체가 도시와는 시공간적 차이가 있게 느껴집니다─ 가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죠. 작가가 보고 있는 실체를 통해서 우리도 다시 한 번 세계를 다르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작가로부터 〈찬란한 햇빛〉에 대해 들었을 때 흥미롭게 귀에 꽂힌 내용은 ‘눈부심’입니다. 햇볕도 아니고 태양도 아니고 눈부심이요. 그 눈부심은 지각의 상태이고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이정배 작가는 그것을 마법처럼 봤고, 그 일시성을 조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그것은 사실은 사라질 것이니 저렇게 금으로, 은으로 조형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요.

JB 재미있는 지점은 새로운 기하학적 형태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만들거나 그려내지 않은 단계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SM 세계의 비밀이지요.

이정배, 《문지르고 끼이고 빛이 나게》 설치전경 ⓒ 2023 ARARIO MUSEUM

문지르고 끼이고 빛이 나게

SM 이정배 작가의 특이성은 자신이 동양화를 전공했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그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부분이 강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면 여기 전시하고 있는 작업까지 오는 데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변화가 어쩌면 이 작가가 자신의 근거인 동양화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여정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여정은 예술가로서 스스로를 정립하는 데 쉬운 길이 아닌 길, 가령 사람들이 딱 보면 멋지다고 느끼고 만족할 지점에서 더 나아간 작업을 하는 것이죠. 이번 개인전 제목 “문지르고 끼이고 빛이 나게”처럼 스스로를 연마합니다. 이정배 작가가 그간 자기를 정련해 온 것, 이를테면 동양미학의 차원에서 자기를 갈고닦는다는 수신제가修身齊家의 의미보다는 자기를 둘러싼 세계, 도시 그것도 아니면 재료에 대한 탐구와 실행이 그 진짜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JB 미술가로서 재료, 물성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김일성 동상을 금으로 만든 것과 버터로 만든 것은 매우 다릅니다. 똑같은 동상인데 물질이 개념을 바꾸어 놓습니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미술가한테 많은 영감을 주고, 예술가가 크게 기대기도 하는 것, 절대적이기도 하고 가능성으로 가득 찬 것들입니다.

SM 현대미술계에는 개념으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이정배 작가는 물질을 가지고 개념을 실현하는 식으로 작업해왔다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JB 결국에 예술가의 고유성은 손을 통해 드러납니다. 손의 고유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그림을 수집하는 컬렉터라고 가정을 해본다면, 예술품을 수집하는 자체가 큰 기쁨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차별성을 유지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미술형식을 기쁘게 맛보는 것일 겁니다. 이 지점이 예술가들의 차별성이 고유성으로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저는 손이 하는 예술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편식하듯이 여타 장르를 가리거나 대립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데뷔한 시기에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조명을 받기 시작했는데, 대부분 사회적 주제나 비판적 메시지를 다루었습니다. 저도 거기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크리티컬한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 굉장히 헛헛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제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품 앞에서 언어에 기댄 채 현란하게 설명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언어 이전으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이정배, 〈삼각산-토르소〉, 알루미늄, 우레탄 페인트, 26x15x15, 2021. 사진: 작가 제공.

SM 이정배 작가는 자기 작업에 대한 의미를 풍성하지만 무겁고 신중하게 가져가는 작가입니다. 이정배 작가의 〈빛의 산〉은 단순해 보이죠. 하지만 시각적으로 위태로울 정도로 높게 솟아 있습니다. 또 두께는 얇고, 얼핏 산뜻한 녹색의 단면 같은데 눈에 거슬리는 흰색 흔적들이 있습니다. 얼룩과 같은 흔적이죠. 미국식 미니멀리즘을 잘 알고 계신 분들한테는 이 작가가 감상자를 시험하는 것 같은 게 그런 면이죠. 전시장 안쪽의 작업도 마찬가지인데, 얼핏 도널드 저드Donald Judd나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의 작품처럼 보이기도 하죠. 저같이 서양미술과 서양미학을 한 사람들한테는 그런 레퍼런스가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작업인 셈이죠. 하지만 이정배 작가는 거기서 알게 모르게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지점을 만들고 있어요. 이 작가의 작업을 저드의 ‘특정한 사물specific object’이나 스텔라의 ‘유형의 캔버스shaped canvas’라고 말하면 이상할 것 같은 지점들이 있는 거예요. 다른 한편으로 저는 이정배 작가가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고 봅니다.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불신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자신이 절대자, 신 같은 창조자가 아님을 드러내는 거지요. 결과적으로 몸을 쓰고 경험을 거쳐 만들어 낸 물질적 작품임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잖아요.

JB 동의합니다. 완벽한 아름다움은 없지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더더욱 없고요. 재미난 일화가 있는데요. 예전에 예술의 전당에서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그 전시를 알리기 위해서 많은 연예인을 불렀어요. 특정 작품 앞에 의자를 갖다 놓고 연예인들을 앉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감상평을 물어보는 식의 인터뷰였는데 다들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건이 벌어져요. 기사화된 일화입니다. 환불 소동이 벌어졌어요. 초등학생을 데리고 온 엄마가 자신의 아들보다 로스코가 못 그렸다고 환불해 달라는 소동이었습니다. 만약 아름다움이 절대성을 갖고 있다면 이와 같은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름다움이 상대적인 건 바로 각자의 내면에 작동하는 불완전한 미의 기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초등학생 어머니가 이야기한 걸 보고 현대미술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 같기도 해서 재미나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상대성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움이라도 언제나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이정배, 〈찬란한 햇빛〉, 220x118x10t, 알루미늄, 우레탄 페인트 , 삼베, 아크릴, 2023. 사진: 작가 제공.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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