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영혼이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집: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 조각가 권진규
[미술관 탐방] 영혼이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집: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 조각가 권진규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3.12.0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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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전경사진 ⓒ Kim YongKwan)

서울메트로 2호선 사당역 6번 출구에서 남현예술공원을 지나가다보면 활짝 열린 대문사이로 잔디와 수목으로 된 야외 조각 뜰의 전면에 화강암과 붉은 벽돌 벽면이 발코니의 석주와 조화를 이룬 고전주의적 양식의 단아한 1900년대 근대식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이다.

‘남서울미술관’ 역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과 마찬가지로 서울근현대사의 정취가 가득하여 오래 머물고 싶은 미술관이다. 이 건물은 원래 대한제국(1897-1910) 시기 서울 중구 회현동 2가 78번지 (현 우리은행 본점 사옥)에 1905년에 완공하여 벨기에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다가 1919년 벨기에 영사관이 충무로 1가로 이전한 뒤 일본 요코하마 생명보험회사 사옥과 일본 해군성 무관부武官部 관저로 연달아 쓰였고. 광복 후에는 우리나라 해군군악학교, 공군본부, 해군헌병대로 사용되다 1970년 상업은행(우리은행 전신)이 이 건물을 사들였다.

1977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 제254호로 지정됐으며 1983년 남현동으로 이축할 당시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외관은 원 모습을 유지하면서 2층 일부 평면을 변경하면서 현재 모습이 되었다. 상업은행 사료관으로 사용하다 2004년 우리은행이 서울시에 무상임대하면서 그해 9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붉은 벽돌과 화강석을 혼용하여 지었고, 건물의 외관은 당시의 일반적인 근현대 건물들과는 달리 비대칭형이다. 현관 앞에 있는 두 개의 돌기둥과 발코니에 길게 늘어서 있는 돌기둥들은 고전주의적이며 전면의 창 부분은 르네상스식 분위기를 띠고 있으며 1·2층에 설치된 베란다의 기둥들은 이오니아양식1으로 되어있다.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현관으로부터 길게 뻗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자유롭게 배열된 방들과 높은 천장, 실내 기둥, 벽난로 등 고전주의적 양식의 기존 건축물을 그대로 유지한 채, 최소한으로 보완하여 고전적 건축물과 현대미술이 소통하는 예술적 공간으로 재구성되어있다.

아틀리에서의 권진규.

현재 남서울미술관에서는 《권진규의 영원한 집》이라는 전시명으로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한일국교단절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을 어렵게 오가며 활동한 작가로, 흔히 리얼리즘 조각가로 알려져 있다.

2021년 7월 (사)권진규기념사업회와 유족은 많은 사람이 권진규의 작품을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 총 141점의 작품을 기증했다. 기증한 작품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조각, 소조, 부조, 드로잉, 유화 등 다양하며 특히 1950년대 주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22년 서울시립미술관 측은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대규모 회고전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22. 3. 24.-5. 22.)를, 이어 순회전으로 《영원을 빚은, 권진규》(22. 8. 2.-10. 23. 광주시립미술관)를 공동 개최하였다. 또한 올해(2023) 권진규 작고 50주기를 맞아 남서울미술관 1층 5개의 전시실을 상설전시실로 조성하여 《권진규의 영원한 집》을 개최하여 현재 진행 중이다.

현관 입구 복도 왼편에 위치한 1·2전시실에는 권진규 작가가 일본 도쿄 무사시노미술학교 시기(1949-1956)의 작품들로, ‘새로운 조각’, ‘오기노 도모’, ‘동등한 인체’ 등의 소주제에 맞는 작품과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실에서 제일 먼저 마주하는 작품은 1953년 제38회 니카전2에서 특대를 수상한 작품 〈기사騎士〉(1953)와 〈마두馬頭B〉(1953)로, 이 작품들은 자유롭게 제작된 새로운 조각이다. 〈기사〉는 육면체의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다섯 면을 각기 다른 깊이와 형태로 조각해 마치 입체파의 작품처럼 다양한 형태를 한 몸에 가진 비대칭의 작품이고, 〈마두B〉는 양 옆의 모습이 비대칭이지만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인상의 작품이다. 권진규는 학교에서 최초로 석조와 테라코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뛰어난 기량을 가진 조각가로 그만큼 일본 미술계에서도 빠르게 인정받았다.

〈도모〉(1951)는 일본 유학 시절 만난 후배 오기노 도모를 모델로 제작한 두상이다. 좌우 엄격한 대칭구도로 이루어진 이 두상에는 얼굴의 정중앙에 석고 뜨기 과정에서 발생하는 쪼갬 볼을 꽂았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 또한 테라코타를 마치 브론즈처럼 채색한 점이 특이하다. 당시 권진규에게 도모는 훌륭한 모델이었고 예술적 교감과 생계를 나누었던 동료이자 연인으로 그의 작품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내 돌기둥이 인상적인 2전시실에는 4점의 인체상이 있다. 인체의 사실적 구조와 섬세한 근육을 느낄 수 있는 작품 〈남성입상〉(1953)은 초기 일본학교에서 배운 조각 기법과 양식의 일면을 엿볼 수 있으며 거친 표면 처리에서 개성이 엿보이는 브론즈 조각상이다. 〈나부〉(1953–54)는 두 다리를 땅에 단단하게 딛고 선 당당한 자세가 인상적이고, 〈여성입상〉(1954)은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3 자세로 신체 각각 부분이 조금씩 틀어져있고 석고의 거친 질감과 어두운채색이 눈에 띈다. 〈웅크린 아프로디테〉를 모본으로 한 〈나부〉(1954)는 아프리카 원시 조각처럼 얼굴과 머리 형태가 투박하다. 네 개의 나상은 남녀의 신체적 차이보다 인체의 공통적인 구조와 본질을 구현하고자 했으며 생명력을 강조한 강건한 인체상으로 제작하였다.

맞은편 3-5전시실에는 권진규의 서울 아틀리에 시기(1959—1973) 작품들로 ‘내면’, ‘영감’, ‘인연’, ‘귀의’ 등의 소주제로 구성되어 아틀리에의 목조 가구, 선반, 창틀 등에서 영감을 받은 좌대를 배치하여 마치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권진규는 여느 작가들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자화상, 자소상, 자각상 등을 남겼다. 형태는 마스크, 두상, 흉상 등으로, 재료는 테라코타, 나무, 석고, 건칠 등으로 다양하다. 테라코타 〈두상〉(1958)은 부드러운 인상과 그윽한 눈빛을 갖고 있으며, 〈자소상〉(1968)은 세상을 초탈한 듯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고, 1970년대 자소상은 고뇌에 차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시기별로 양식과 표현의 차이가 있는데 이는 작가의 개인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내면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또한 권진규는 1965년부터 여성 두상과 흉상을 본격적으로 제작했다. 당시 대학후배와 제자들을 모델로 제작한 테라코타 작품 〈선자〉(1966)와 〈예선〉(1968), 테라코타 작품의 틀을 이용해 건칠乾漆4로 제작한 〈경자〉(1971) 등의 작품도 볼 수 있다. 특히 제자 장지원을 모델로 한 〈지원의 얼굴〉(1967,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스카프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약간 들어 시선을 위로하고 긴 목을 앞으로 살짝 뺀 모습에 단정한 이목구비가 주는 강한 정신성으로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져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곳에 전시된 그의 흉상들 역시 정면을 향한 단정한 얼굴, 먼 시선, 앞으로 살짝 뺀 긴 목과 단순화된 흉부 형상으로 대상의 정수를 드러낸 작품들이다.

모두 모델을 두고 제작한 것인데, 단순한 초상만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불필요한 살을 최대한 깎아내고 요약할 수 있는 포름forme을 최대한 단순화하여 극한까지 추구한 얼굴 안에 무서울 정도로 긴장감이 표현되어 있다. 중세 이전의 종교상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극적 감정의 고양이 느껴진다.5

나무로 제작한 〈입산〉(1964-65)은 목조로 된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형태를 볼 때 사찰로 들어가는 첫 대문인 일주문一柱門을 표현한 것으로, 사찰에 들어가기 전 세속의 번뇌를 끊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라는 뜻이 담겨 있는 이 작품은 권진규의 불교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또한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1m가 넘는데다 한옥의 결구結構처럼 못을 사용하지 않고 각각의 자재를 서로 연결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간결하고 소박한 형태와 나뭇결을 최대한 살리면서 목재를 우아하게 다듬은 흔적 등 목조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불교적 세계관을 가졌던 그의 삶이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렇듯, 일곱 개의 소주제로 전개하여 구성한 전시를 통해 굴곡진 그의 삶과 조각만큼은 변하지 않는 영원성을 담고자 한 권진규의 예술 세계를 조망할 수 있었으며 자료실에 진열된 작품제작 관련 자료와 사진, 창작의 순간에 남긴 메모와 기록이 있는 드로잉 북을 살펴보면서 그의 영혼이 영원히 이곳 남서울미술관에 머물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진규가 추구한 것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눈에 보이는 사물 너머 존재하는 본질이다. 그래서 그는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종래는 이를 무화無化하는 작품으로 자신만의 모더니티를 구현하고 강건하고 응축된 형태를 통해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 영원성을 구현하고자 했다.

드높은 하늘 아래서 비바람을 맞으며 층층이 큰 돌을 쌓아가며, 그 돌에 사람의 모습과 동물과 식물을 새겼던 옛 시절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결코 영적인 느낌 같은 것으로 작업을 하지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자기 주변의 자연을 관찰하면서 재현을 위한 노력을 담담하게 계속함으로써, 비로소 그와 같은 영원한 미의 전당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6

세속적 삶을 떠나 고독한 미술의 세계로 입문하여 평생을 수행하듯 작업에 임했지만 살아생전 대중적 몰이해로 좌절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스스로 세상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권진규의 삶은 허무했지만 그의 작품에 스며있는 예술혼과 예술적 가치는 영원히 빛날 것이다.

 


1 고대 그리스 미술의 장식양식으로 건축에서는 대접받침 장식에 전아(典雅)한 소용돌이 모양을 받아들여 날씬한 기둥에는 주춧돌을 앉히고, 대들보를 부조(浮彫) 로 장식하는 특징.
2 1914년 신진작가들이 새로운 미술의 확립을 표방하고자 결성한 일본의 재야 미술단체
3 인물상을 만들 때에 신체에 율동감과 곡선미를 주기 위한 S자형 자세, 한쪽 다리에 무게 중심을 두어 몸이 목과허리에서 한 번씩 꺾임으로 형성됨.
4 점토나 나무 등으로 만든 원형 위에 모시나 삼베를 바르고 그 위에 칠을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하여 기형을 만들고, 칠과 삼베 부분만 남기고 원형을 떼어내 버리는 탈건칠 기법.
5 1968년 일본 니혼바시 화랑 권진류개인전 관련, 7월 18일자 『요미우리신문読売新聞』 기사
6 권진규 드로잉 북 메모에서 발췌


참고자료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https://sema.seoul.go.kr/kr/visit/namseoul
《권진규의 영원한 집》 전시안내책자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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