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만난 별 Ⅱ 그룹 god] 이십 오년의 조각
[시로 만난 별 Ⅱ 그룹 god] 이십 오년의 조각
  • 장재선(시인)
  • 승인 2023.12.01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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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오년의 조각
- 그룹 god

무슨 일을 십 년 쯤 하면
한다고 말할 자격이 생긴다고 하더라
이십 오년의 시간 동안
늘 함께였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모여 산티아고 길을 순례했듯
한 순간, 또 한 순간
다섯 남자의 빛을 모아왔으니
걸작 조각이라고 스스로 불러도
오늘은 넘치지 않는다
지금 돌아보는 세기말의 가난이
추억일 수 있는 것은
독한 풍문에 떠밀려가지 않고
하늘색 풍선을 지킨 덕분이니
여기서 같이 부르고 같이 뛰며
오늘을 기쁘게 누리자
그 때 그 약속을 아로새긴 조각이
또 다른 이십 오년의 조각으로
이어지길 기다리며.

 


시작노트

“와우, 이렇게 젊은 팬들이 많다고?”

그룹 god(박준형·데니안·윤계상·손호영·김태우)의 서울 공연에 갔다가 놀랐다. 25주년 기념 콘서트이니 당연히 올드 팬이 주된 관객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20대, 혹은 3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공연장(올림픽공원 KSPO DOME)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지어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god의 상징인 하늘색 형광봉을 들고 설레는 표정이었다.

공연장에 들어가서 보니 역시 올드 팬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중년으로 보이는 남녀 관객들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들의 환호에 맞춰 함께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불렀다. 공연자인 god가 이끄는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20세기 말에 데뷔한 그룹 god가 21세기에 세대 간 소통을 이뤄낸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니까, 다섯 멤버가 각자의 사정으로 헤어졌다가 다시 모여서 공연을 한 의미가 각별하게 느껴졌다.

멤버 중 맏형인 박준형이 50대 중반인 만큼 이들의 공연이 이전처럼 박력이 넘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땀을 흠뻑 흘리면서도 최선을 다해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실수를 하면서도 그것을 자책하기보다는 팬들을 웃게 하는 계기로 삼는 여유가 좋았다. 무대 미술에 신경을 써서 볼거리를 만들고, 멤버들이 각자 도슨트가 되어서 공연 내용을 이끌어가는 등 팬 서비스에 정성을 다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god의 공연을 즐긴 후에 그들이 앞으로 25년 후에도 ‘완전체’로 남아주길 바라게 됐다. 60-70대에 접어든 뮤지션들이 살아온 만큼의 공력으로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축제를 펼친다면 얼마나 멋지겠는가.

 


장재선 시인. 시집 『기울지 않는 길』, 시·산문집 『시로 만난 별들』, 산문집 『영화로 보는 세상』 등 출간. 한국가톨릭문학상 등 수상. 문화일보 대중문화팀장, 문화부장 등 거쳐 현재 전임기자.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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