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월평] 2023년 최강의 싸움캐는 누구인가: 〈힘쎈여자 강남순〉 〈도적: 칼의 소리〉
[드라마 월평] 2023년 최강의 싸움캐는 누구인가: 〈힘쎈여자 강남순〉 〈도적: 칼의 소리〉
  • 김민정(드라마평론가, 중앙대 교수)
  • 승인 2023.12.0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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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JTBC, 넷플릭스

모든 창작의 기본은 인물이다.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냈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승패가 갈린다. 최근 나의 관심사는 ‘최강의 싸움캐를 찾아라’다. 누가 누가 싸움을 잘하나. 맨몸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피의 게임’ 드라마 버전을 혼자 상상하고 혼자 연출하고 혼자 감상하는 중이다. 2023년 12월 내가 기획한 연말 특집 결승전에 오른 최강의 싸움캐는 〈힘쎈여자 강남순〉의 ‘강남순’과 〈도적: 칼의 소리〉의 ‘언년이’다. Let’s fight!

tvN 제공

‘힘쎈 여자’ 시리즈 세계관

〈힘쎈여자 강남순〉은 2017년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핀오프다. ‘힘쎈여자’ 시리즈 세계관은 장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전작 〈힘쎈여자 도봉순〉에 따르면 ‘힘쎈여자’들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돌을 던지며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힘쎈여자’ 모계 유전의 괴력은 2017년 제일 먼저 도봉구에 사는 ‘도봉순’을 통해 존재감을 발산한다. 그런데 왜 하필, 왜 굳이, ‘도봉구’일까. 구로구도 있고, 성북구도 있는데.

도봉구하면 한국인에게 자동으로 떠오르는 연관 검색어가 있다. 둘리! 레전드 만화 ‘둘리’의 배경이 되는 곳, 한국인의 국민 만화 주인공 ‘둘리’가 사는 곳이 바로 도봉구다. 한국인의 레트로 감수성을 자극했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주요 배경도 도봉구(쌍문동)다. 도봉구는 우리 안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 어릴 적 꿈꾸었던 그 무엇, 무엇이든 상상하고 꿈꿀 수 있는 우리 마음속 고향의 이름이다.

tvN 제공

힘들고 괴로울 때 고향을 찾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힘쎈여자’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얼핏 보면 굉장히 유치해 보인다. 힘센 여자라는 설정과 그걸 영상적으로 구현하는 연출기법, 그리고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까지 드라마의 모든 것이 한 편의 명랑 만화 같다. 무엇보다 정의감 넘치는 전형적 영웅 캐릭터가 너무 도드라져서 촌스럽다는 인상까지 준다. 2023년 드라마인데 20세기 슈퍼맨이나 배트맨과 동년배로 느껴진달까. 하지만 그 단순하고 유치한 ‘올드함’이 코믹함을 유발하고 그 코믹한 영웅담이 톡 쏘는 사이다처럼 시원시원하다. ‘뇌를 빼고 보는 드라마’라는 평가는 그래서 욕이 아니라 칭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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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눈의 괴력 광인

〈힘쎈여자 강남순〉은 도봉순과 친척 관계인 길중간과 그의 딸 황금주, 그리고 손녀 강남순으로 이어지는 3대 모녀가 주인공이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 ‘강남순’이다. 몽골에서 날아온 엉뚱 발랄한 괴력 소녀. 강남순은 5살 때 아버지와 여행 갔던 몽골에서 미아가 되었다가 한국에서 가족을 만난 뒤 좋은 일에만 힘을 사용해야 하는 집안 내력대로 사회악을 일망타진해 나간다. 사실 ‘몽골’ 출신이라는 것만으로 괴력을 가진 영웅 캐릭터 세팅은 이미 끝났다.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제국 아닌가.

2023년 ‘힘쎈여자’ 시리즈는 강남구로 세계관을 확장하면서 전작을 훌쩍 뛰어넘는 역량을 영웅들에게 부여한다. 풍요로움의 수혜를 잔뜩 입은 여성 영웅들은 힘만 센 게 아니라 돈도 많다. 엄청난 괴력을 도드라지게 해주는 귀여운 외모는 캐릭터 디폴트값이다. 추가적으로 도봉순에게는 없고 강남순에게만 있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맑은 눈의 안광이다. 아, 이 오묘한 눈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23년 최고의 매력자본은 ‘맑눈광’이 분명하다.

tvN 제공

주인공 강남순은 배우 이유미가 연기하는데, 〈오징어 게임〉(2021), 〈지금 우리 학교는〉(2022)에서 선보였던 강렬한 연기와는 완전히 결이 완전히 다르다. 발랄하고 엉뚱하고 순수하고, 가끔은 지나치게 천진난만하여 소름을 유발하는 ‘맑눈광’의 배우 이유미는 사랑스럽게 표현해낸다. 자신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을 속여 정보를 빼내는 데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지난번 ‘도봉순’도 그랬지만 이번 ‘강남순’도 우수에 젖은 사연 많은 회사 대표들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다. ‘힘쎈여자’들의 진정한 필살기는 바로 남심 저격이 아닐까 싶다. 일격필살, 백전백승, 그녀들이 매력 자본 시대의 진정한 위너들이다. 도봉순과 강남순을 잇는 다음번 히어로는 누가 될 것인가. 자, 줄을 서시오.

넷플릭스 제공

1920년대 간도 세계관

〈도적: 칼의 소리〉(이하 ‘도적’)는 1920년대 무법천지의 땅 간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하나 된 이들이 벌이는 액션 활극이다. 일제 강점기 배경 드라마는 그동안 독립운동가가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도적〉은 그 전형성을 살짝 비켜나가며 낯설게 하기에 성공한다.

1920년대는 식민지 조선인에게 카오스 그 자체였다. 나라가 망하고, 신분제가 없어지고, 그 가운데 세계열강의 이권 다툼까지 아수라장이었다. 특히 그 시절의 간도는 당시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격동의 땅이었다. 중국의 땅, 일본의 돈, 그리고 한국의 사람. 자신의 터전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죽고 죽이는 싸움에 내던져진, 격동기의 간도,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도적〉이다.

넷플릭스 제공

〈도적〉의 ‘도적’은 남의 것을 빼앗는 도적盜賊이 아닌 ‘칼의 소리’를 뜻하는 ‘싸움 잘하는’ 도적刀嚁을 의미한다. 화려한 액션의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많다. 활, 도끼, 총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스펙터클한 액션신을 선사한다. 곡예를 하듯 날렵한 몸놀림으로 상대방의 머리에 도끼를 내리꽂는 도적이 있고 괴력의 맨주먹 격투를 주특기로 삼은 ‘조선 시대 마동석’도 있다. 이런 도적, 저런 도적, 이런 액션, 저런 액션, 다양한 볼거리가 넘쳐난다.

그렇다고 그냥 맘 편히 볼 수 있는 가벼운 액션물은 아니다. 당시 독립군들이 처한 상황을 보면 저절로 애국심이 불타오른다. “독립군은 사람이 아니야.” 극중 독립군은 일본과 마적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다. 조선 독립에 관련된 일을 하다가 잡히면 십자가 나무에 못 박혀 죽을 때까지 고통과 치욕을 당한다. 가족들 앞에서 잔혹하게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죽여 다시는 조선 독립을 꿈꾸지 못하게 공포심을 유발한다. 〈도적〉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를 사실적으로 재현해내며 ‘생존’을 위한 조선인의 각개전투가 항일무장투쟁의 일환이었음을 가슴 아프게 보여준다.

살인청부업자 언년이

〈도적〉의 도적단 리더 이윤(김남길 분)은 조선인 출신 일본군으로 활동하다가 도적단 리더가 된 인물이다. 드라마 첫 회에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며 한 손으로 윈체스터(장총)를 돌리며 굉장히 멋있게 등장한다. 극 중 이윤은 칼과 총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인간 병기로서 ‘싸움캐’의 매력을 발산한다. 간도의 조선인을 괴롭히는 일본 정예군과 중국의 마적단을 쳐부수는 이윤의 활약을 보면 저절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우리도 한 번쯤은 사람답게 살아봐야지.” 〈힘쎈여자 강남순〉이 청량한 사이다라면 〈도적〉은 오랫동안 묵은 체기를 풀어주는 소화제에 가깝다. 백 년 넘게 묵은 트림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온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웨스턴 장르의 특성상 싸움 잘하는 캐릭터가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싸움캐’가 있었으니 바로 ‘언년이’(이호정 분)다. “돈이 되면 어떤 일이든 다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언년이는 앳된 외모의 살인청부업자로 이름부터 너무나 싸움을 잘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름 안에 파이터의 본능을 탑재한 듯하다. 이름이 욕처럼 들리는 건 나의 탓이 아니다.

극 초반 언년이는 주인공 이윤을 죽이라는 살인 청부 의뢰를 받은 빌런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언년이의 현란한 액션씬을 볼수록 점점 마음이 짠해진다. 비정한 살인 병기가 될 때까지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언년이란 이름에서 이미 ‘사연 많은 노비’ 출신임을 커밍아웃당한 그녀는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이윤의 싸움 파트너가 되고 그렇게 〈도적〉의 공동주연으로 자리매김한다. 언년이의, 언년이를 위한, 언년이에 의한 진정한 배틀은 시즌2에서 시작될 예정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천한 종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자고.” Let’s fight!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두빛 캠퍼스물과 회색빛 오피스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다. 언젠가는 내 인생이 장르가 판타지로맨스코미디홈드라마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022년 중앙대학교 교육상과 제4회 르몽드 문화평론가상을 수상하였다. 현재 《쿨투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크리티크 M》 편집위원과 KBS World Radio 〈김형중의 음악세상〉 고정 게스트로 활동하며 자발적 드라마 홍보대사로 열일하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 캐릭터 비평집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여러 권의 책이 있다.

 

* 《쿨투라》 2023년 12월호(통권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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