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지속과 발전: 〈올해의 작가상 2023〉
[강수미와 '함께 보는 미술'] 지속과 발전: 〈올해의 작가상 2023〉
  • 강수미(미학. 미술비평.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 승인 2024.01.02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내 미술 수상제도다. 2012년 출범해서 십 년 넘는 역사를 쌓았다. 그 사이에 《올해의 작가상》은 명실 공히 대한민국 미술계에서 작가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이자 동시대 한국 미술의 현재를 가늠하는 중요 기획전으로 자리 잡았다. 명칭은 ‘상’이지만, 국내외 미술전문가의 추천과 심사 절차를 거쳐 선정된 수상 후보 4명(팀)이 해당 연도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각자의 전시를 공동으로 ─4개의 개인전이 〈올해의 작가상〉 기획에 수렴─ 열기 때문이다. 그 개인전의 성과를 심사해서 ‘올해의 작가’ 1명(팀)을 최종 선정하고 상금 천만 원을 수여한다. 그런데 이 수상제도의 10주년을 계기로 주최 측은 2023년 버전부터 운영 방식 일부를 개선했다. 작품 제작 후원금을 작가 1인당 4천만 원에서 5천만 원으로 상향했고, 작가의 작업세계를 종합할 수 있도록 신작뿐만 아니라 기존 작품을 전시로 구성할 수 있게 했다. 또 일반인이 참여하는 공개 워크숍을 열고, 작가와 심사위원이 열린 대화를 나누는 절차를 거쳐 최종 수상자를 판정하는 체제로 바뀌었다. 작가에게 보다 풍성한 창작 자금과 유연한 전시 구성 및 프레젠테이션의 권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면 전소정, 갈라 포라스-김, 이강승, 권병준 이상 4명이 최종 후보로 선정된 〈올해의 작가상 2023〉에는 특별하지만 어려운 과제가 주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작가 수준, 작품성, 기획력 등에서 그간 이 상이 쌓아올린 위상에 버금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도가 더욱 작가 중심으로 개선되었기에 이전 수상자들의 성과를 뛰어넘는 특별한 예술성과 창조력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3〉은 그런 맥락에서 《올해의 작가상》이라는 수상제도의 ‘지속’과 ‘발전’을 헤아리는 시험대다. 그리고 4명의 작가에게는 각자의 작업을 전시로 구현하는 데 집중하는 일은 물론이고 다른 후보작가와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전체 기획에 융합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나아가 자의든 타의든 역대 《올해의 작가상》 후보 및 수상자들의 예술 유산과 자신의 창작이 비교될 수밖에 없는 비평적 조건에 놓였다.

전소정 〈싱코피〉 photo by sumi kang.

지금 여기 작업의 사후성

그런데 내가 〈올해의 작가상 2023〉이 역대 성과를 지속시키고 동시에 더 발전된 수준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한 데는 더 심층의 이유가 있다. 이번에 선정된 후보들의 작업이 앞선 시기의 미술과 특별한 연관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관계는 시간적 선후 또는 인과성은 아니다. 미술계의 선후배 관계는 더욱 아니다. 역대 〈올해의 작가상〉과 비교해서 〈올해의 작가상 2023〉에는 독창성이 부족하다거나 선행 미술을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는 식의 부정적 평가를 내포하지도 않는다. 그와 달리 양자 사이에는 내적 연속성과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물리적 시간성이나 독창성과는 다른 기준으로 판단할 점이라는 의미다. 요컨대 이번 후보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앞선 시기의 작가들이 탐구한 현대미술의 주제, 논쟁화한 사회문화적 이슈, 시각적으로 활용한 매체와 장르 형식 등이 연속한다. 그러나 주제의 초점, 모티프를 미적으로 전환하는 방식, 이슈를 해석하고 가시적으로 제시하는 면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잠시, 핼 포스터Hal Foster가 20세기 중후반 북미와 서유럽의 미술을 20세기 초 유럽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와 결부시켜 “네오아방가르드”로 명명하면서 구사한 논리를 살펴보자. 그는 미술비평가로서 특히 자국 미술의 현대적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의 사후성Nachträglichkeit/Afterwardsness 논리를 빌렸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과 그것을 계승한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이론에서 ‘사후성’은 시간의 선후/인과관계를 벗어난 심리적 작용을 가리킨다. 우리에게는 외상trauma과 신경증neurosis에 대한 논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론적으로 설명하면, 주체에게 정신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자극이 가해졌을 때 당시에는 무의식에 억압되는 사건이 이후 특정한 계기를 통해 변형된 형태로 반복 출현하는데, 그것이 시차적으로는 지연된 신경증이다. 때문에 정신분석학은 그 과정을 ‘반복’과 ‘지연된 작용deferred action’이라는 세부 개념으로 설명한다. 이를 포스터는 미니멀리즘, 팝아트,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다수가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구성주의 등 유럽 아방가르드에 비선형적이고 비인과적인 계보로 연결된다는 자신의 논리 구성에 갖다 썼다.1 나는 기본적으로 포스터의 비평이 미국 미술의 서사를 구성하기 위한 다소 무리한 전개라고 본다. 하지만 그런 방법론으로 ‘가까운 과거의 미술’과 ‘현재의 미술’이 주고받는 내적 역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효한 면이 있다. 그래서 나 또한 사후성을 염두에 두고 〈올해의 작가상 2023〉을 역대 전시와 상관시켜 볼 때 판단은 이렇다. 〈올해의 작가상 2023〉은 이전 〈올해의 작가상〉 에 나타난 현대미술의 전형적 작품 형식이나 전시 설치 방식을 잇되 보다 즉물적이고 직접적인 제시presentation로 나아간 것 같다. 또 전자는 후자가 문제시했던 현실들, 의미들, 상상들, 가치들을 여전히 문제시하되 엘리트예술가의 미학적 제스처나 비판적 지성의 가르치는 듯 한 목소리 대신 ‘오늘의 미술’을 하는 현장 작업자의 관심, 채집, 구성/재구성, 과잉과 삭제의 경로를 따라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전경. 전소정. 사진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먼저 전소정의 전시부터 주목하면, 이 작가는 신작 〈싱코피Syncope〉를 통해 “시간, 속도, 이동성에 관한 작가의 관심”2을 주제화했다. 이렇게만 보면 후기구조주의 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이후 지난 수십 년간 정신사와 문화예술사에서 다뤄온 논제와 변별성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전소정은 비디오와 구조물 설치, 조각, 출판물 등 현대미술의 거의 모든 표현매체를 활용한 신작과 구작을 전시공간에 삼분할 해 꽉꽉 채워 넣음으로써 주제의 일반성을 초과한다. 물론 물리적으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싱코피’는 음악에서 ‘당김음’을, 언어학에서 ‘모음 탈락’을, 의학에서 ‘실신/의식소실’을 각각 의미한다. 전소정은 그에 착안해서인지 비단 같은 제목의 신작 영상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전시 전체를 통해 감상자가 복잡한 시청각 경험을 하도록 유도한다. 감상자는 건축적으로 구획된 전소정의 전시장을 돌며 생경한 악기 연주 장면, 소음과 묵음의 순간, 광인에 관한 서사, 근대 조선의 흑백 영상,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이의 운동, 히드라처럼 사방으로 촉수를 뻗친 조각 등을 접한다. 그때 전시는 양적으로 과도하게 느껴지고, 내용은 비유기적으로 읽히며, 형식은 부분들의 재구축으로 파악된다. 반면 각 부분들, 특히 영상 속 시청각 이미지들의 자극에 따라 감상자는 의식의 싱코피/정신분산 상태에서 강박적 집중성을 발휘한다.

한국계 콜롬비아 작가인 갈라 포라스-김은 작품 표현법의 다양성과 전시 규모로 볼 때 전소정과 유사하다. 그녀의 전시는 드로잉 작업부터 오브제 설치까지 ‘장르 횡단’이라는 현대미술 방법론을 충실히 따랐으며, 그것을 물리적으로나 개념적으로 한 장에 수렴시킨다는 점에서 규모의 과잉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력 초기부터 고고학적 대상을 미술로 전유하되 자신의 의견에 입각해 유물, 역사, 문화예술제도에 대한 새로운 접근 경로를 꾀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러니까 작품/전시의 외관과는 달리 갈라 포라스-김의 미술에는 개념적이고 이지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제도 비판과 거대서사에 대한 해체로 이미 범주화되었다. 그런데 갈라 포라스-김의 작업은 앞선 미술과 연속하면서 일종의 지연된 작용을 발생시킨다. 작가가 객관적 자료의 증빙 대신 주관적 해석과 표현에 힘을 준 이미지를 제작해 제도(박물관)와 소통함으로써 비판보다는 심미적 설득의 길을 취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번 전시의 신작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는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라북도 고창의 고인돌을 주제로 한 세 폭의 라지 스케일 회화다. 세 그림은 각각 흑연으로 전면을 칠한 검은 화면, 풀숲에 둘러싸인 고인돌과 그 옆에 방치된 자그마한 등재 표식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면, 검푸른 이끼가 수직으로 늘어뜨려진 화면을 보여준다. 작가의 의도를 해석해보면 그 삼면화는 고인돌에 묻힌 고대 인류의 시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역사공원이 된 고인돌의 현재, 그러한 문명과정과 상관없이 스스로 작용하는 자연을 함축한다. 이렇게 인문학적으로 명시할 수 없는 정서적 울림과 시각에 의한 생각거리를 가장 오래된 미술 장르로서 회화 기법이 매개하는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전경. 갈라 포라스 김. 사진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의미의 감각

〈올해의 작가상 2023〉의 또 다른 후보인 이강승에게 미술의 주제는 사회 속 마이너리티다. 구체적으로는 호모섹슈얼리티, 즉 동성애 공동체가 이 작가의 작업을 견인하는 핵심 주체-소수자다. 이 또한 현대미술의 가까운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으로 다뤄졌으며 반복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역대 〈올해의 작가상〉에서도 마찬가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데, 2015년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인 오인환의 〈사각지대 찾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하지만 오인환의 전시에서 퀴어 코드는 명시적이지 않았다. 다만 작가는 ‘사각지대’라는 광의적이고 은유적인 주제어를 통해 사회 전반의 소수자, 약자, 배제되거나 비가시적이게 된 존재들을 작품 속에 포함시켰다. 반면 2023년의 이강승은 그런 언어적 은유 대신 동성애에 관한 아카이브와 퀴어 공동체가 제공한 실물 자료를 모아 전시의 일부로 제시한다. 또 그것을 직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영상작품과 함께 하나의 전시로 꾸려냄으로써 감상자가 입체적으로 해당 주제를 판단하거나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이강승이 싱가포르 안무가 고추산과 브라질의 개념미술가 호세 레오닐슨에게 헌정한 ─그들이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실과 그들이 남긴 예술 유산을 기리며─ 영상설치 신작 〈라자로〉가 정서적으로 강도 높다. 작품은 두 남성 무용수의 애절한 몸짓과 작곡가 키라라가 협업한 서정적 음악이 어우러진 비디오, 그리고 생전에 레오닐슨이 두 개의 남자 드레스셔츠를 잇대 만든 작품 〈라자로〉(1993)를 재제작한 의상 설치로 구성되었다. 그렇게 둘이 하나가 되는 스크린 속 이미지와 옷을 보며 관객은 사랑에 대한 (이성애적) 편견이 용해되는 자기 감각의 수위를 느낄 것이다.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다양한 관계로 맺어지는 인간의 사랑이 관념적으로나마 인류애적이라면 그 대척점에는 기계/기술의 사랑이 있다. 사실 예술에서 인간과 기계/기술의 관계 이슈는 고색창연할 만큼 오래되었다. 하지만 로봇과 생성형 AI가 삶 전반에서 작동하는 현재, 권병준이 〈올해의 작가상 2023〉 후보작가로서 구현한 전시는 ‘예술’이라는 범주가 괄호 쳐지는 동시에 ‘기계/기술’의 목적이 비틀리는 상태를 연상시킨다. 애초 사운드 장치 연구자로 활동한 권병준은 융합예술의 경로에서 미술 분야로 특화돼 나와 미술관 전시를 해오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에 제작한 〈춤추는 사다리들〉과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로봇〉을 새로운 설치방식으로 선보였다. 커다란 전시장 전체에 레일을 깔고 사다리 몸체의 로봇들이 자극적인 소리를 내며 그 위를 삐걱대며 달리도록 한 것이다. 그것은 미학적으로 그로테스크하고, 조형예술의 매체로는 반인간적이며, 인문학적으로는 의미의 삭제를 목표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기괴함, 반인간성, 의미를 삭제하고자 하는 창작자의 욕망이 공학과 예술의 알리바이일 수 있다. 즉 공학에서 예술의 부재를, 예술에서 공학의 부재를 증명하려는 듯 말이다. 권병준이 이러한 개념 틀을 전제하고 작업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다만 작품들의 양상에 비춰볼 때 이 작가에게 주어진 창작의 조건은 동시대 기술공학을 비가시적 배경으로 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전경. 이강승. 사진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지연된 작용

사실 이 글은 지난 2023년 10월 20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한 〈올해의 작가상 2023〉에 관한 예술비평이다. 새해 첫 연재 글에서 묵은해에 시작한 전시를 다루다니...어떤 독자들은 아무리 그 전시가 2024년 3월 31일까지 이어지더라도 뒤늦은 리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 명백히 전시에 비해 지연된 글쓰기다. 나아가 사람들이 비평을 언제나 창작의 후위後衛, rear-garde로 여겨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글은 작품 제작과 전시 오픈이라는 ‘사건 이후의 사건’인데다가 그마저도 시기상 꽤 뒤늦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 왜 굳이 여태 〈올해의 작가상 2023〉을 논했는가. 왜 나는 내 리뷰가 전시에 비해 시차時差 상 뒤에 일어남을 강조하는가. 라캉은 트라우마를 실재와의 어긋난 만남으로 정의한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는 결코 실재와 같을 수 없고, 또한 그렇기에 트라우마는 더욱 반복해서 작용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반복을 얼마나 창조적으로 할 것인가에 달려있지 않은가. 같은 맥락에서 현대미술 내부의 은밀한 모방관계도 그 반복과 창조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전경. 권병준. 사진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전경. 권병준. 사진 제공_국립현대미술관

 

 


1 핼 포스터, 『실재의 귀환』, 이영욱·조주연·최연희 옮김, 경성대학교 출판부, 2003, pp. 66-74 참고. 인용은 71.
2 〈올해의 작가상 2023〉 전시자료에서 인용, 국립현대미술관, 2023.


 

 

강수미 미학. 미술평론. 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부교수. 『다공예술』,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등 다수의 저서, 평론, 논문 발표. 주요 연구 분야는 동시대 문화예술 분석, 현대미술 비평, 예술과 인공지능(Art+AI) 이론, 공공예술 프로젝트 기획 및 비평. 현재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심의위원,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쿨투라》 편집위원.

 

 

* 《쿨투라》 2024년 1월호(통권 115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