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동·서양미술을 아우르다: 청송 남관생활문화센터 & 화가 남관
[미술관 탐방] 동·서양미술을 아우르다: 청송 남관생활문화센터 & 화가 남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01.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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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경북 영천을 지나 청송으로 가는 국도는 굽이굽이 휘어진 골짜기 길이다. 겹겹이 들어선 산등선이의 앙상한 가지들이 계절의 흐름을 말해주고 첩첩산중의 골은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험준하다. 그런 만큼 병풍을 친 것처럼 늘어져있는 병암 절벽과 얼음골 빙벽은 압도적인 크기로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을 사로잡고, 끊임없이 나타나는 사과밭 행렬과 오랜 고목들은 고즈넉한 산골의 풍경을 더욱 운치 있게 해준다.
청송으로 가는 길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보이는 곳곳의 멋진 풍광에 신세계를 발견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차 창문으로 들어오는 공기는 차갑지만 맑은 공기 마시려고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열심히 숨 쉬기를 해본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 곳은 우연히 알게 된 ‘남관생활문화센터’이다. 이곳은 청송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남관南寬(1911-1990)을 기리기 위해 경북 청송군 부남면의 폐교된 대전초등학교 건물과 부지를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공간으로 2021년 3월에 개관하여 청송군에서 운영 중인 문화센터이다. 센터는 총 2천95㎡ 면적에 본관과 별관으로 구분하여 전시실, 자료실, 문화교육실, 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지역문화활력촉진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되어 남관생활문화센터 2층에는 ‘남관 미디어아트홀’을 지난 2023년 7월 개관하였다.

미디어아트홀은 전시공간을 리모델링해 미디어아트 소프트웨어 및 인터렉티브 체험형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곳은 남관의 작품을 활용한 인터렉티브 실감형 미디어아트홀로, 화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홀로그램을 비롯해 그의 작품과 그림 기법의 변화를 시대적 흐름으로 표현한 미디어아트와 관람객이 직접 작품을 터치해 보는 상호작용 실감콘텐츠, 화가의 화풍을 활용해 문자를 출력할 수 있는 인공지능 키오스크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미디어아트홀에 활용한 작품과 동시대에 작업한 남관 화가의 실제 작품 30여 점을 전시하는 특별전도 열려 예술가 남관의 수준 높은 작품을 다양한 관점에서 관람할 수 있다.

작업중인 남관 선생님.

남관은 경북 청송군 부남면 출신으로 14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 미술학교東京太平洋美術學校를 졸업하고 일본 화단에서 활동하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하였다. 1954년에는 프랑스로 건너간 우리나라 최초의 화가로 파리의 아카데미 드 라그랑드 쇼미엘Academie de la Grande Chaumiér에서 수학하고, 1968년 귀국과 함께 개인전을 열었고 1977년까지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 전시실에 전시되어있는 작품들은 프랑스 유학시기인 초기 추상으로 전환된 작품 4-5점과 귀국 후 남관의 입지를 굳힌 70-80년대 작품 10여 점과 연대 미상인 판화, 수채화, 수묵화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프랑스로 건너간 후 국제미술무대에서 한국의 감성과 예술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남관 작품세계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신비한 청색을 배경으로 온갖 기이한 형상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고,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왕관이나 마스크 같기도 하고 별자리나 행성 또는 미지의 존재를 떠올리게도 하며 간혹 다양한 얼굴 표정이 보이기도 한다. 화가 남관의 초기 작품은 인물화, 풍경화 등 구상미술에 주안점이 있었다. 그러나 1954년 파리체류기간 중 유럽의 미술을 접한 이후 추상화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프랑스 생활 초기 작품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파리야경〉(1955), 〈시장〉(1955), 〈파리에서〉(1957), 〈허물어진 고적〉(1964) 등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나는 나를 추상화가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몇 천 년을 내려온 내 고국의 오랜 테마들. 즉 돌, 고대의 유품, 데스마스크, 나아가서는 옛 식물의 문양 및 옛 문명의 기호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현대적인 묘법으로 옮기려 노력하는 것이다.1

한국적인 정서에 뿌리를 두고 서양미술과 결합한다는 인식, 이것이 한국적 추상의 대표적 성격이었다. 무엇보다도 시대감각에 부합하는 한국적 미술을 창조하고 전통에 대한 자각을 당대의 정신 속에서 이어나가는 것이 절실한 과제였던 당시에 이 경향을 대표하는 작가인 남관의 그림에는 고대 유물이나 안동하회탈, 상형문자를 떠올리는 암시적인 기호 등을 표현함으로써 그 시대의 호흡과 정신, 일상적 삶의 모든 것이 스며들어 있다. 작품 〈문자와 공간1972〉, 〈색에 덮인 형태들〉(1974), 〈친구를 위한 기념비〉(1975-1976)에서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또한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작가는 상처로 가득한 삶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으며 전쟁의 비극과 생명에 대한 갈망 등의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기나긴 시간 속에 쌓인 기억이자 삶의 기억으로 작가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화시키고, 시간과 공간 및 역사의 표상을 내재화시킨 추상회화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환상〉(1977), 〈중세의 인물〉(1977), 〈대화〉(1977), 〈묵상〉(1978), 〈꿈의 형상들〉(1983), 〈작품84-1〉(1984)에서 드러나는 마스크 표정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남관 〈환상〉 1977, 캔버스에 유채, 61-51cm.

남관의 작품 중 〈마스크〉의 아름다움은 저 신비로운 파크섬에 있는 조각들의 아름다움이요. 침묵에 잠겨있는 성스러운 우상의 아름다움이다. 시간을 초월한 인위적인 시간의 단위를 부정하는 비통한 음악이 참으로 이 시대에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 회화의 행렬을 반주한다.2

문자를 연상시키는 형상과 리듬은 동양적인 정신의 울림을 반영하고, 콜라주 기법을 응용한 독창적인 표현방법과 채색의 광채는 서양미술의 체험을 반영한다. ‘동양의 신비한 사상을 서양의 세련된 기법을 통해 마스터한 화가’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의 화풍은 추상 표현주의의 흐름을 따르면서 동·서양 문화를 아우르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예술가라는 평도 받고 있다.

남관 미디어아트홀. 남관생활문화센터 제공.

예술이라는 것이 하나의 마약이다. 몸이 아프고 배가 고파도 일단 화실에만 들어가 있으면 잊게 된다.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모든 것을 잊는다.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이것은 마술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보는 사람들, 즉 그림의 관객은 마술사의 마술에 걸리게 된다.3

그렇다. 화가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그의 말대로 색의 마술에 걸려들었다. 특히 남관은 색채의 미묘한 힘이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색채의 주술사였다. 색채의 심리적 효과는 남관 예술의 독특한 아름다움의 요체이며, 그 색은 신비와 영원불멸을 상징한다. 특히 푸른색으로 물든 화면에 일정한 형태의 물질을 붙였다 떼고 그 위에 다시 물감을 칠하는 방법으로 생긴 희끗희끗한 여백이 매력적이다. 남관은 데칼코마니 기법을 반복하여 얼룩을 만들기도 하고, 물감을 흘리는 드리핑으로 유동적 이미지를 만드는 한편, 번지거나 스며들게 하는 발묵으로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경험을 신비스럽게 표현하려 했다.4

남관 미디어아트홀. 남관생활문화센터 제공.

2층 미디어아트홀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이곳 미디어아트홀에서는 전체를 네 가지 부분으로 나눈 미디어아트로 구성되어 있다. part1은 남관 화가의 초기 구상회화작품과 청송 주왕산·주산지 풍경, 청송사과를 미디어아트로 구성하였다. part2 색채추상에서는 추상회화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앵포르멜 화풍으로 유럽 활동시기 구상회화에서 추상회화로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표현된 물성과 질감의 마띠에르와 색채추상의 환상적인 조화로 구성되어 있다. part3 군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경험했던 전쟁의 아픔을 회화로 승화, 작가에게 새로운 화풍의 전환점이 되는 작품으로 전쟁과 피난하는 사람들의 슬픔을 해학적으로 표현하여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재탄생시켰다. part4 문자추상은 남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문자추상계열에서 작가가 창작한 독특한 상형문자들을 강조하여 연출한 콘텐츠다.

이러한 콘텐츠의 미디어아트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상으로 벽과 바닥을 오가며 미끄러지듯 펼쳐져 관람객의 혼을 빼놓는다. 광활한 평야와 소나무 숲, 주왕산의 높은 암벽이 펼쳐진다. 어느덧 작가의 문자추상이 하늘을 날고 터치를 하면 사라지다 색주머니 속 색들이 터져 나와 황홀한 밤하늘을 수놓기도 하고, 수묵으로 표현된 병아리와 인간 군상이 아장아장, 성큼성큼, 절도 있게 박자에 맞춰 행진도 한다. 황홀하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꾸며놓은 미디어아트다.

남관 〈흰공간 속〉 1984, 캔버스에 유채, 130-162cm.

우리의 고유한 형태나 전쟁의 체험들을 환상적으로 표현하여 기호화하거나 비형상적非形相的으로 해체하고, 투명하고 밝은 색채와 다양하고 풍부한 톤으로 발전되면서 앵포르멜에서 출발하면서 독자적인 세계로의 심화에 도달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화가 남관. 한국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느낌을 서정성 있는 색채로 승화시키고 색채를 통해 미지의 세계, 영원의 세계를 동경하고 꿈과 희망의 세계를 보여주려 한 화가 남관. 청송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는 그가 태어난 부남면 구천리에 편히 잠들어 있다.

남관 〈파리에서〉 1957, 캔버스에 유채, 73-92cm.

가 흐르는 모습이 아홉구자 형태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 구천리에 가면 마을 경로당 옆으로 보이는 빈터가 남관 화가의 생가 터라고 한다. 이 마을은 남관의 고향일 뿐만 아니라 숙종 28년(1702)에 세워진 사액서원 병암서원과 화강함 절벽인 병풍바위, 옛날에 호랑이가 놀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해서 불리는 ‘범덤’ 숲이 있는 청송의 새로운 핫플레이스이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인 만큼 남관 화가와 그의 작품도 많이 알아봐줬으면 한다.

 


1 1984년 중앙갤러리 전시도록 중에서
2 《‘마스크’ 속의 그 무엇...》, 미술평론가 쟝 작끄 레벡끄, 1968
3 남관, 〈화가의 일기〉, 《화랑》, 1984 겨울
4 김영순, 〈남관의 회화세계〉, 《현대미술》. 1990(봄호), 5-13쪽


참고자료 남관생활문화센터 https://namkwan.cctf.or.kr/
《남관미디어아트홀 개관기념 특별전》 카달로그. 2023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 박영택, 2014, (주)휴머니스트

 

 

* 《쿨투라》 2024년 1월호(통권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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