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은의 시조 안테나] 송정란 시인의 「추억을 재생하다」
[이승은의 시조 안테나] 송정란 시인의 「추억을 재생하다」
  • 이승은(시인)
  • 승인 2024.01.0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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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달을 맞이하는 볕바른 오후, 진행 중인 겨울은 어디를 들추어도 따스한 쪽으로 몰립니다. 십년 전에 발간된 『허튼층쌓기』을 새롭게 들춰보며 시인의 추억을 따라 우리의 젊은 날을 소환해봅니다.

요즘 친구들에겐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만, 예전의 젊은이들에게는 음악다방이 아지트였습니다. 호주머니는 가볍고 마땅히 갈 곳은 없는 대학생, 사회초년생들의 유일한 공간이었지요. 음악실을 올려다보는 구조의 옛 음악다방은 두 시간마다 교체되는 디제이가 뛰어난 재담으로 신청곡을 받으며 진행했는데, 몇몇은 인기가 연예인 못지않았습니다. 주말에는 거의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석이라 신청곡 듣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지요.

가요 〈진정 난 몰랐네〉가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던 시절을 시인도 건너오셨군요. ‘그토록 믿어왔던 그 사람 돌아ㅡ설ㅡ줄이야…’ 그렇습니다. 돌아서야 오래도록 사무치는 사랑의 자리를 차지하지요.

‘마음의 오랜 상처를 더듬어/울어대는 것’처럼 ‘낡아빠진 LP판’이 ‘마음의 패인 골’을 후벼 팝니다. ‘추억의 서글픈 잡음들’이 ‘가슴을 찢어놓’고 ‘숨통을 막’을지라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재생되는 것들은 왜 그리 어여쁘던가요. 세월의 이쯤에서 바라보는 건너 쪽 먼 날의 풍경은 왜 눈물겹도록 영롱하게 매달릴까요.

시인의 다른 시편이 떠오릅니다. ‘완도 끝 밤 바닷가, 자갈 쓸리는 소리 듣는다/ 차라리… 차라리… 끝없이 되뇌이는’ ㅡ〈정도리에서〉일부

파도에 자갈이 쓸리는 소리가 ‘차라리’라니… 그 이후의 말은 마음에나 부립니다.

겨울은 깊이 와있고 우리 젊은 날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 .

하늘이 낮게 내려오더니 지금 눈발이 희뜩거리며 재생 모드를 돌리네요, 장안의 멋진 이들이 모이던 문화와 유행의 1번지로. 꽃다방, 본전다방, 쉘부르, 무아, 쎄시봉, 대학로의 학림,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은 벌써 그때 그 자리로 달려갑니다.

 

 


이승은 1958년 서울 출생. 1979년 문공부·KBS 주최 전국민족시대회로 등단. 시집으로 『첫, 이라는 쓸쓸이 내게도 왔다』 『어머니, 尹庭蘭』 『얼음동백』 『넬라 판타지아』 『환한 적막』 외 5권, 태학사100인시선집 『술패랭이꽃』 등이 있다. 백수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이영도시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쿨투라》 2024년 1월호(통권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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