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변화의 요구에 응답하다: 혁신의 장을 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변화의 요구에 응답하다: 혁신의 장을 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 설재원 에디터
  • 승인 2024.01.30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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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시즌의 포문을 여는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지난 1월 8일 오전 10시(LA 현지 시간 1월 7일 오후 5시) 할리우드 베버리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전례 없는 두 번의 파업을 거친 뒤 펼쳐진 올해의 시상식에는 한 해를 빛낸 스타들이 총출동하며 할리우드의 귀환을 전 세계에 알렸다.

 

영화 부문의 최고작 〈오펜하이머〉와 〈가여운 것들〉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영화 부문은 작품을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로 구분하여 진행한다. 먼저 드라마 부문에서 올해를 빛낸 작품은 단연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이다. 〈오펜하이머〉는 드라마 부문 작품상과 남우주연상(킬리언 머피)을 차지했으며, 이외에도 감독상(크리스토퍼 놀란)과 남우조연상(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음악상(루드비히 고란손)까지 휩쓸었다. 〈오펜하이머〉는 〈바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노미네이션(8개 부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각본상, 음악상, 시네마틱·박스오피스 성취상)을 기록하며 시상식 전부터 올해의 최고작으로 주목받아왔는데, 5관왕 수상으로 그동안의 ‘이유있는 관심’을 증명해 냈다.

시상식 레이스에서 〈오펜하이머〉의 가장 큰 강점은 밸런스이다. 〈오펜하이머〉는 어느 한 분야도 빠지는 데 없이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이 덕분에 〈오펜하이머〉가 올해 시상식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고, 할리우드에서 유독 상복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도 마침내 감독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드라마 부문에서 〈오펜하이머〉의 독주를 막은 이는 〈플라워 킬링 문〉의 릴리 글래드스턴이다. 글래드스턴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페르소나인 두 베테랑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로버트 드 니로 사이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내뿜으며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아메리카 원주민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Yorgos Lanthimos Emma Stone Mark Ruffalo Willem Dafoe Ramy Youssef Tony McNamara ⓒVirisa Yong.

뮤지컬·코미디 부문의 최고작은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가여운 것들〉이다. 〈가여운 것들〉은 뮤지컬·코미디 부문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엠마 스톤)을 차지했다. 시상식 전 이 부문의 유력작으로 〈바비〉를 뽑았던 미디어의 예측은 보란듯이 비껴갔다.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내부의 분위기는 꽤나 〈가여운 것들〉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베니스에서 압도적 찬사를 받은 〈가여운 것들〉은 할리우드 파업으로 인한 공백을 말끔히 지웠다. 개봉은 12월로 미뤄졌지만, 〈가여운 것들〉은 11월부터 공격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며 유권자voter 그룹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특히 엠마스톤의 여우주연상 수상으로 이번 시상식 시즌 최대의 관전 포인트는 엠마 스톤과 릴리 글래드스턴이 경합하는 여우주연상 부문이 될 듯하다. 당초 여름까지는 칸에서 호평받은 릴리 글래드스턴의 여우주연상 싹쓸이가 확실시 되었지만, 9월 이후 급부상한 엠마 스톤의 등장으로 수상자의 행방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번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글래드스턴과 스톤이 각각 드라마와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두 사람의 치열한 경쟁은 3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또다른 배우상을 배출한 작품은 알렉산더 페인의 〈바튼 아카데미〉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폴 지아마티)과 여우조연상(더바인 조이 랜돌프)을 차지했다.가족의 개념에 질문을 던지며 외로움을 다룬 〈바튼 아카데미〉는 영미권 보터에게 큰 지지를 받았다. 다소 심심할 수 있었던 플롯을 빛나게 만든 것은 배우들의 호연이었고, 그 힘이 연기상으로까지 이어졌다.

Justine Triet ⓒAdrienne Raquel.

각본상과 비영어영화상의 주인공은 쥐스틴 트리에의 〈추락의 해부〉이다. 지난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추락의 해부〉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각본(쥐스틴 트리에, 아르튀르 아라리)이다. 두 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추락의 해부〉는, 필자가 칸 현지에서 참여했던 《인디와이어》의 전 세계 5대륙 60인의 전문가 설문에서 홀로 30%를 득표하며 최고의 각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어 작품이 아님에도 〈추락의 해부〉가 각본상을 수상한 데에는 유권자 그룹이 전 세계 언론인으로 확대된 것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지난해 전 세계 골든글로브 보터 그룹의 첫 대면 만남이 칸에서 시작되었고, 그때에도 〈추락의 해부〉는 ‘쫀쫀한’ 각본으로 화제에 중심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또한 〈추락의 해부〉의 비영어영화상(2021년까지 외국어영화상) 수상은 2017년 〈엘르〉 이후 프랑스영화로서 오랜만에 이 부문을 차지한 것이기도 하다.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이 비영어영화상을 수상한 것은 〈기생충〉 이후 4년 만이며, 이로써 칸 출품작은 2010년 이후 4번(〈인 어 베러 월드〉, 〈로마〉, 〈미나리〉, 〈아르헨티나, 1985년〉)을 제외한 모든 해에 비영어영화상을 차지하며 이 부문을 독식하고 있다.

장편애니메이션 부문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번 수상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골든글로브이며, 미야자키 하야오는 2003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이어 두 번째 아카데미 수상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Billie Eilish, Finneas ⓒAdrienne Raquel.

올해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노미네이션을 기록한 〈바비〉는 시네마틱·박스오피스성취상과 주제가상(빌리 아일리시의 〈What Was I Made For?〉)을 거머쥐었다. 시네마틱·박스오피스성취상은 그동안 시상식의 수상 결과와 대중의 선택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비판에 대한 피드백으로 올해 신설되었다. 2023년 북미 흥행 1위와 글로벌 흥행 1위를 동시에 차지한 〈바비〉는 이 부문 초대 수상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주제가상은 후보곡 6곡 중 〈바비〉가 절반을 차지하며 치열한 집안 싸움이 벌어졌는데, 빌리 아일리시의 〈What Was I Made For?〉가 최종 승자가 되었다. 일주일 뒤 치러진 크리틱스초이스 시상식에서는 라이언 고슬링의 〈I’m Just Ken〉이 주제가상을 받았는데, 〈바비〉의 집안싸움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듯하다.

Margot Robbie Greta Gerwig ⓒVirisa Yong.

TV 부문의 최고작 〈석세션〉과 〈더 베어〉, 〈성난 사람들〉

TV 부문으로 눈을 돌리면, 올해에는 유독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드라마 부문에는 〈석세션〉이, 뮤지컬·코미디 부문에는 〈더 베어〉가, 리미티드·앤솔로지 시리즈와 TV 영화 부문에는 〈성난 사람들〉이 각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석세션〉은 미디어재벌 2세들의 상속을 다룬 시리즈로, 지난해 공개된 시즌4를 끝으로 2018년부터 시작된 대여정의 막이 내렸다. 이번 시즌4는 명작을 마무리하는 가장 완벽한 엔딩이라는 평을 받으며 드라마 부문 작품상, 여우주연상(사라 스누크), 남우주연상(키어런 컬린)과 남우조연상(매튜 맥퍼딘)까지 4관왕에 올랐다. 이로써 〈석세션〉은 시즌2부터 시즌4까지 세 시즌 연속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차지했다.

Succession Cast ⓒPMC.

〈더 베어〉는 유능한 셰프 카미(제레미 앨런 화이트분)가 고향으로 돌아와 레스토랑을 오픈하는 고군분투를 담은 이야기로, 이번에 방영된 시즌 2는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아요 에데비리), 남우주연상(제레미 앨런 화이트)을 차지하며 해당 부문을 ‘싹쓸이’했다.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호연이 자연스레 어우러진 〈더 베어〉는 작년보다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로 안방을 사로잡았다. 또한 1년 전 시상식에서 첫 번째 시즌은 〈애봇초등학교〉 시즌1에 작품상을 내주었는데, 올해는 〈더 베어〉가 작품상을 차지한 점이 눈여겨 볼만 하다.

The Bear ⓒAdrienne Raquel.

리미티드·앤솔로지 시리즈와 TV 영화 부문의 승리자는 〈성난 사람들〉이다. 〈성난 사람들〉은 리미티드·앤솔로지 시리즈와 TV 영화 부문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앨리 웡), 남우주연상(스티븐 연)을 모두 차지하였는데, 아시아계가 TV 부문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것은 이번 스티븐 연의 수상이 최초이고 리미티드·앤솔로지 시리즈와 TV 영화 부문에서 아시아계가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것 또한 이번 앨리 웡이 처음이다. 룰루 왕의 〈페어웰〉에서 시작된 아시아계 이민자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는 〈미나리〉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경유하여 〈성난 사람들〉에서 다시금 골든글로브의 새 역사를 썼다.

특히 스티븐 연은 이번 수상으로 ‘아시아인치고는 잘 한다’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바꾸겠다는 꿈을 현실화했다. 스티븐 연은 누가 뭐래도 지금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Steven Yeun Lee Sung Jin Ali Wong PJS4 ⓒPMC.

세 작품이 주요 부문 상을 휩쓰는 가운데 여우조연상을 차지한 이는 〈더 크라운〉에서 다이애나 스펜서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데비키이다. 데비키는 다이애나 스펜서를 연상시키는 놀라운 싱크로율과 안정된 연기로 인기를 모았다. 올해 신설된 스탠드업 코미디 부문의 초대 수상자는 리키 저베이스이다. 국내에서는 골든글로브의 사회자로 더 유명한 리키 저베이스는 인류 종말을 주제로 거침없는 입담을 뽐낸 〈아마겟돈〉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올해 열린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평균 시청자 수는 작년보다 50% 증가한 940만 명으로 이 수치는 2020년 이후 가장 많은 시청자 수이고, 2023년 2월에 방영된 제65회 그래미 시상식 이후 파라마운트+ 및 기타 CBS 플랫폼에서 진행된 라이브 스트리밍 중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기록했다. 또한 모든 미디어 플랫폼에서 2024년의 시작을 지배한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며칠동안 시상식과 관련 콘텐츠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 NetBase에 따르면 시상식 당일 소셜 미디어에서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약 300억 회에 달하는 잠재적 노출을 기록하며 소셜 미디어를 장악했고, 총 상호작용을 기준으로 그날 밤 전체 프로그램 중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올해의 시상식은 파업 이후에 진행되는 첫 ‘할리우드 파티’라는 점과 쟁쟁한 후보 라인업이 겹치며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냈다. 여기에 신설 부문과 보터 구성의 변화 등 크고 작은 변화로 화젯거리를 만든 올해의 골든글로브는 레이스 시즌의 산뜻한 시작을 알렸다. 에미상이 1월 중순으로 미뤄지면서 올해의 시상식 레이스가 유독 더 주목받는 가운데, 영화쪽에서 3월에 웃는 작품은 무엇일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1월의 화제작이 상승세를 이어갈지, 혹은 2월에 새로운 다크호스가 부상할는지, 레이스는 이제 중반에 접어들었다.

 

 


사진제공 Golden Globes 2024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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