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나마스테!] 네 안에 있는 희망이 너의 신神
[조용호의 나마스테!] 네 안에 있는 희망이 너의 신神
  • 조용호(소설가)
  • 승인 2019.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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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손세실리아

 

  “이 공간을 드나들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한 게 아니라 집이 나를 선택했구나 싶어요. 이 집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으니까 나를 불러들인 거구나,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인테리어 걱정 같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시집만 벽에 꽂아놓지 뭐,이렇게 생각했지요.”

  손세실리아(53) 시인이 제주 조천 바닷가 폐가와 만난 건 6년 전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걷는 것을 좋아하는 시인이 제주를 늘 오가면서 이곳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는 게 꿈이었는데 후배가 이 폐가를 소개했다. 처음보는 순간부터 끌려들었다. 족히 8년은 아무도 살지 않아 가을 풀이 키 높이로 자라 있는 마당으로 홀리듯 쑥빨려 들어가는 시인의 모습을 보고 후배는 집이 끌고 들어가는 것 같아 무서웠다고 했다. 그녀는 100년 넘은 이집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고 담장을 낮춰 바다를 시야에 끌어들여 오랫동안 꿈꾸었던 카페 ‘시인의 집’을 열었다.근년 들어서는 서울에도 시집을 파는 전문서점이 두어 군데 문을 열었지만 ‘시식詩食코너’에 시인들의 사인본을 비치하고 책장에는 누구나 꺼내 읽을 수 있는 시집을 가득 채운 이 집은 시를 누리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먼저 자리 잡은 곳이다.

  “여행지 카페에 들러서 소설 한 권 읽기는 쉽지 않지만 시라도 한 편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시작했어요. 시인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사실 시인이 살아서가 아니라 이 폐가를 카페로 만들 때 이런 후미진 곳까지 찾아오는 분들의 마음이야말로 시인이 아닐까싶어서 그렇게 지은 겁니다.”

  마을 쪽으로 바다가 아늑하게 휘어 들어온 곳으로 마중 나오듯 앉아 있는 시인의 집 창가에서 시인은 낮은 음색으로 자분자분 이야기를 시작했다. 창 너머 바다 위로는 여인의 실루엣을 간단한 철선 하나로 휘어서 설치한 조형물이 부드러운 입술로 하늘을 만지고 있었다. 세실리아는 가톨릭 세례명인데 광주대 사회교육원 문예창작과에서 만난 스승 조태일(1941∼1999) 시인이 세실리아, 세실리아라고 불러 굳어진 이름이다. 30대 후반 원치 않는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문창과에 갔고 그곳에서 조태일 시인을 만났다. 자연스럽게 시라는 ‘황홀한 업’을 받아들이게 됐고, 그녀의 첫 시집 『기차를 놓치다』의 표제작처럼 낮은 곳에 시선을 두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골판지 깔고 입주한 지 얼마 안 되는/ 말수 없고 어깨 심히 휜 사내를 향해/ 눈곱이 다층으로 따개비를 이룬/맛이 살짝 간/ 나 어린 계집의 수작이 한창 물올랐다/ 농익은 구애가 사내의 귓불에 가닿자/ 속없는 물건은 불끈 일어서고// 새벽, 영등포역// (…) //살 한 점 섞지 않고도/ 이불이 되어 포개지는/ 완벽한 체위를 훔쳐보다가/ 첫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고단한 이마를 짚고 일어서는/ 희붐한 빛,/ 저 철없는 아침”( 「기차를 놓치다」 )

  영등포역에 이른 시각 누군가를 마중 나왔다가 목격한 노숙인 남녀의 겹친 자세를 보고 쓴 시인데 사람에 대한, 낮은 자리의 생명에 대한 그녀의 연민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문화제에 서시 한 편 낭송해달라는 청을 받고 갔다가 완성한 「시캬」라는 시도 그 전형이다. 그곳에 “마트라는 한글 상호 하단에 siekya라 써넣은 상점”이 있는데 “국적불명의 이 영단어에는/ 이주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이 배어 있다는데/ 말하긴 뭣하지만 이 새끼 저 새끼/ 망할 놈의 새끼… 할때의 영문표기”란다. 손세실리아는 두 번째 시집 『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사)에 수록된 이 시편을 이렇게 맺었다.

“샬롬의 집에 초대 받아 시를 낭송했다/ 손가락세 개를 공장 마당에 묻고/ 방글라데시로 추방당한 씨플루에게/ 폐암 말기로 고국에 돌아가/ 히말라야 끝자락에 묻힌 네팔인 람에게/ 열세 번의 구조요청을 묵살당한 채/ 혜화동 길거리에서 얼어 죽은/
조선족 김원섭 씨에게 사죄하고자 섰다.”

  손세실리아의 시들은 이처럼 낮지만 당당한 시들보다는 타고난 설움이 느껴지는 깊은 정조가 더 지배하는 편이다. 주방에서는 텔레비전 예능 프로에서 가수 윤민수의 아들 '윤후'가 들러 먹고 가는 바람에 이후 북새통이 된 적도 있는 그 피자를 시인의 딸이 만드느라 도마질 소리가 리듬감을 돋우는데, 갑자기 늙은 목청의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이 흘러나왔다. 시인이 휴대전화 벨소리로 설정한 노모의 노래. 기실 시인을 만든 팔할은 그 여인일지 모르겠다. 엄마는 정읍 지주의 씨받이로 들어가 그녀를 낳았다. 늙은 아버지는 그녀를 애지중지하다 일찍 세상을 떴다. 그녀에게 씨 다른 오빠가 둘있었는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핏덩어리 큰 오빠는 엄마가 유부남 생부에게 데려다 주라고 역에서 만난 인삼장수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길로 끝이었는데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올 때마다 ‘늙은 누룩뱀’은 눈물을 그치지 못했다.

  작은 오빠는 다른 생부의 집에서 컸는데 초등학교 때 자신을 ‘버린’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못 견뎌 찾아왔다. 유달리 다정하고 따스했던 그 오빠는 군에 입대해 첫 휴가를 나왔다가 열 살짜리 그녀 앞에서 스스로 죽었다.결혼식 전날에서야 엄마는 살뜰했던 그녀의 아버지도 생부가 아니라고 고백했다. “철들고도 한참을/ 이름 대신 팔삭둥이라 호명되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정읍에 홀로 사는 노모가 근년 들어 통화하다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말해 그녀는 “왜 이런 말을 해? 이러지 않잖아. 왜 이제 와서…”라고 화를 냈다고 했다. 그 시인 딸은 정작 이런 시를 썼다.

“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 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 단골 정육점에 가서 물어보니/ 물어보나마나 암소란다/ …… /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 한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 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곰국 끓이던 날」)

  ‘생불’ 같다고 시에 썼던 시인의 딸이 잘 구운 피자를 가져왔다. 정읍사람 솜씨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이 집 만의 피자인데 유일하게 그 딸이 함께 만든다고 했다. 불면의 밤을 보내고 아침 비행기로 내려온 피로를 가리기 위해 연거푸 마신 와인 기운에 창 너머 조천 바다가 아득하다.

  “바다를 보는 건 신을 읽는 시간 같아요. 신이 있다면 어떻게 저런 끔찍한 것들을 용서할 수 있는가 분노하다가 와인 두어 잔 마시다 바다를 보면 어느새 물이 들어와 반쯤 차올라 있어요. 그 순간 신은 그냥 고요히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 너희가 아무리 부정해도 나는 네 곁에 있다고, 네 안에 있는 희망이야말로 너의 신이라고, 네 희망이 스러지면 신도 함께 죽어가는 것이라고.”

  납작 엎드리는 것만으로도 듣기 어려울 때, 그녀는 무릎걸음으로 다가서서 힘든 시절을 살아가는 대상에게 귀를 기울이고 싶다고 했다. 두 번이나 문이 잠겨 있어 허탕을 쳤다는 늙은 이모와 조카딸 쌍이 시인의 집을 찾는다. 정겹고 촌스럽고 느리고 따뜻하다는 ‘정읍 여자’는 갠지즈강가에서 이렇게 썼다. ‘내 오랜 그늘이여, 눈물이여, 원망이여, 한숨이여, 고질적인 가위눌림이여…….나마스테!’

 

 

* 《쿨투라》 2019년 5월호(통권 5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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