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나마스테!] 사랑은 운명을 발견해 가는 힘
[조용호의 나마스테!] 사랑은 운명을 발견해 가는 힘
  • 조용호(소설가
  • 승인 2019.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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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영은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 목숨을 지킨다고 생각해라.”
  이렇게 말한 사람은 한국문학의 무거운 존재 김동리(1913∼1995)였고, 그가 그토록 묶어두고 싶은 대상은 푸른 20대 서영은이었다. 김동리는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둘째 부인 손소희 소설가와 살고 있던 50대 남자였다. 서영은은 박경리의 소개로 《현대문학》 추천을 받기위해 소설을 들고 가 만났다. 《현대문학》 창작실기 강사였던 박경리는 서영은의 습작 소설을 보고 이대로도 충분히 《현대문학》에 추천될 만하니 김동리에게 이 소설을 들고 가보라고 권했다. 어지러진 거실에서 내의 바람으로 서영은을 맞았던 김동리. 그렇게 처음 만났던 그들이 운명이라는 이름의 드라마를 살기 시작하리라고 첫 눈빛에 서로 알아보았을까.

  그가 오면 물을 데워 발가락 하나하나 샅샅이 씻겨주었다. 서영은이 그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에 대해서는 전혀 무지한 상태였다. 박경리가 김동리에게 찾아가 작품을 보여주라고 했을 때 서영은은 “저는 그분 소설을안 좋아하는데요” 라고 말하자 박경리가 “우리나라 최고작가인데 그분을 안 거치고 어떻게 문학을 하려고 하느냐”고 말했다고 그녀는 술회한다.

  서영은은 스물다섯 살 무렵 김동리를 만났다. 평범한건 싫어하는, 시시포스 신화를 동경했던 고집스럽고 독특한 개성의 서영은은 김동리를 그 나이에 만났다. 만났다는 건, 단순히 얼굴만 대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선생은 명동 중앙극장에서 영화를 보자고 했다. 〈콰이강의 다리〉였던가. 주머니에서 대단히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내 손이 닿을까봐 조심하면서 건네주었다. 초콜릿이었다. 그날 그들은 따뜻해졌다. 그 남자 부인이 누구인지 어떤 조건인지 아무것도 몰랐다. 다만, 그날, 그 남자를 받아들이고 운명을 예감했을 뿐이다.

  “사랑은 운명을 발견해 가는 힘인 것 같아요. 어떠한 관계에서도 경계에만 머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그 관계를 수임할 때 비로소 시간이 흐르면서 본인의 얼굴을 만나게 되는 거지요. 시간 속에서 발자취가 드러나는삶의 서사, 그거야말로 운명 아닐까요. 조금 힘들다고다른 길을 찾고, 다른 데서 다시 찾다가 또 다른 곳을 엿보는 삶이란, 겨처럼 날리는 가벼운 존재이지요. 그렇게 살아서는 자신의 운명을 직면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지식이 아니라 마음이 깊어지는 경지입니다.” 소설가 서영은은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였다. 이 단순한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서영은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거쳐야만 했다. 물론 그 두 남녀가 비밀연애를 했던 세월을 포함하면 행복했던 시간이 더 많았을 테다. 김동리의 두 번째 부인인 소설가 손소희 여사가 1987년 사망한 뒤, 알려지지 않았던 김동리의 연인 서영은은 정식으로 절에서 단출하게 결혼식을 치르고 어두컴컴한 성채같은 김동리의 집에 입성한다. 그 이후부터 전개된 삶의 빛과 어둠을 그가 『꽃들은 어디로 갔나』(해냄)라는 장편 소설로 펴냈다.

  둘째 부인 분향소를 일 년이 넘도록 집에 차려놓고 그녀에게 예를 강요했던 그이. 몰래 만났던 20여 년 세월이 끝나고 그 집에 들어갔을 때 발견한 건 ‘무거운 집을 진 거북이 같은 남자’였다. 그이는 인색했고, 폭군이었고, 이기적인 남자였다. 그리하여도 그 남자는 운명이었고 애틋했다. 김동리라는 문학 천재는 그리 간단치 않았다. 말 한마디 감응이 평범하지 않았다.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젖동냥을 했던 원초적 경험이 결핍감을 돋워 소유에서 내내 자유롭지 못했던, 연인마저 끝내 움켜쥐어야만 했던 배경을 생각하면 더욱 애틋하다고 서영은은 인터뷰와 소설에서 드러냈다.“선생과 나는 꽉 찬 자유였어요. 갇히면 답답하다고하지만 그분과 나는 꽉 찼기 때문에 더 이상 구속되지않는 자유를 느꼈지요. 그렇더라도 한 번은 아무 말 없이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온 뒤 그분에게 심한 폭력을 당했습니다. 살의에 가까운 주먹으로 날 쳤지요.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운명의 확인이었지요. 그의 주먹 안에 가득 차 있는 피투성이 살의 속으로 치마를 뒤집어쓰고 뛰어내렸습니다.” 그 오랜 비밀연애가 과연 행복했을까. 서영은은 과감하게 긍정한다. 사실 뒤돌아보면 그 과정은 빛을 발견하기 위한 어둠의 예비 과정이었을 따름이다. 그는 소설에 “기다림은 그녀에게 얼마나 익숙했던가. 이십오 년 동안그의 전화만 기다리며 살지 않았던가”라고 썼다. 1968년쯤 20대 중반 꽃다운 처녀로 50대 중반 김동리를 만나숨겨진 여인으로 살아온 세월, 그녀는 그 시간들이야말로 행복했다고 술회한다. 그 시절에서 벗어나 그이와 ‘생활’을 나눌 때 발견한 실망감은 이렇게 소설에 묘사된다. “소유한 것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 그의 소유란 젖동냥에서 비롯된 생래적 결핍감을 채우고 또 채워서 쌓이게 된 잡동사니들이었다. 그의 집은 온갖 잡동사니들로 무거워져 침몰하고 있는 배처럼 보였다. 그에겐 아내도 소유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소유당해 줄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오랜 비밀연애는 행복했고, 그 운명을 수임했고, 종국에 그이를 받아들였다. 그이 김동리는 완강하게 강요했다. ‘당신을 사랑한다’고 늘 마지막으로 맹세하라고. 그리고 그이는 전처에서 생산한 다섯 아들을 남기고 아무런 다짐도 없이 덜컥 뇌중풍으로 쓰러진 뒤 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버렸다. 서영은은 미칠 듯한 세월을 살아야만 했다. 슬픔이 극에 달해 사방이 분간되지 않는 세월을 헤쳐 나갔다. 살풀이춤도 배웠고 악다구니를 쓰며 홀로 울어도 보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김동리가 사망한 뒤 전처의 아들은 극단적인 험담까지 퍼부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잠든 머리맡에서 서영은에게 말했다. “너는 우리 아버지 요강에 지나지 않아. 이제 필요 없어.” 왜 그리 험한 말을 기억하고 소설에까지 굳이 기록했느냐고 물었을 때 서영은은 허먼 멜빌의 『백경』을 거론했다. “그만큼 객관화된 거죠. 허먼 멜빌은 흰 고래를 끊임없이 찾아다니다 잠깐 모습을 드러낸 백경에 꽂힌 작살을 보지요. 그건 10여 년 전에 꽂은 작살인데 백경은 시간이 흘러 작살이 녹이 슬어 스스로 빠져나갈 때까지 꽂고 다닐 수밖에 없겠죠. 그 작살을 직시하기 위해, 삶의 진실 앞에 솔직해진 거지요.” 그녀는 이제 본격적으로 어둠의 이야기를 다음 소설로 이어가고자 한다. 김동리와의 사랑과 참혹한 슬픔의 이중주는 예고편에 불과하다. 김동리 사후 서영은이 마주해야 했던 지옥도와 그 깊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해냈던 기적을 그녀는 기필코 독자와 공감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닌 듯하다. 그가 기어이 만난 빛은 소설에 이렇게 서술된다.“모든 어둠은 단순한 캄캄함이 아니다. 이 세상에 텅빈 어둠이란 없다. 캄캄한 밤이라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여전히 별이 반짝이고 있듯이, 모든 어둠 속엔빛의 씨앗들이 파묻혀 있다. 이제부터 나는 그 씨앗에 물을 주고 빛의 나무로 키워가려고 한다.”

 

 

* 《쿨투라》 2019년 4월호(통권 5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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