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다시 부산, 영화가 꽃피는 행복의 나라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다시 부산, 영화가 꽃피는 행복의 나라로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1.11.0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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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올해로 26회째를 맞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10월 6일 오후 6시 부산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개막하여 열흘 간의 축제를 펼쳤다.

  2년 만에 다시 등장한 레드카팻을 통해 안성기·유아인·한소희·최희서·서영희·전여빈·변요한·김혜윤·엄지원·오윤아·김규리·고민시·쇼겐 배우와 이장호, 배창호, 정지영, 봉준호·임상수·하마구치 류스케·전수일·로이스톤 탄 감독이 등장했다.

  한국 모던 포크의 선구자 한대수가 온라인 공연을 통해 개막을 축하하며 개막작과 동명의 곡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했다. 이후 개막식 사회를 맡은 송중기, 박소담과 개막작 〈행복의 나라로〉 주연배우인 최민식과 박해일, 올해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인 크리스티나 노르트, 장준환 감독, 정재은 감독 등도 모습을 드러내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이사장은 “올해 영화제는 코로나를 극복하는 전환기가 됐으면 한다”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동시 진행되는 그런 영화제로써 대단한 실험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권택 감독
임권택 감독

  한국영화를 국제 영화계에 널리 소개하는 데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한국영화공로상’은 한국영화 산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고(故) 이춘연 대표에게 수여됐다. 대리 수상을 한 아들 이용진 씨는 “아버지가 없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며 “앞으로도 영화를 사랑했던 고(故) 이춘연 아버지를 오래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리고 매해 아시아영화 산업과 문화 발전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아시아영화인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는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 임권택 감독에게 돌아갔다. 영화인들의 기립박수 속에서 봉준호·임상수 감독에게 상패와 꽃다발을 받아든 임권택 감독은 60여 년간 102편의 영화를 만든 세월을 겸허히 회고했다.

  뉴커런츠상 심사위원인 크리스티나 노르트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위원장, 장준환 감독, 정재은 감독이 차례로 소개됐고, 참석하지 못한 심사위원장인 디파 메타 감독은 화상을 통해 인사를 전했다.

최민식 배우, 임상수 감독, 박해일 배우

  이어서 개막작 임상수 감독의 〈행복의 나라로〉를 상영했다. 영화 〈행복의 나라로〉는 시간이 없는 탈옥수 ‘203’(최민식)과 돈이 없는 환자 ‘남식’(박해일)이 우연히 거액의 돈을 손에 넣고 인생의 화려한 엔딩을 꿈꾸며 특별한 동행을 하는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인 로드무비다. 제73회 칸영화제 ‘2020 오피셜 셀렉션’에 선정된 바 있는 〈행복의 나라로〉는 임상수 감독이 〈나의 절친 악당들〉(2015)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신작이자 네 번째 칸영화제 초청작이다. 배우 최민식은 교도소 복역 중 인생 마지막 행복을 찾아 뜨거운 일탈을 감행하는 죄수번호 ‘203’, 박해일은 ‘203’의 특별한 여행에 얼떨결에 동참하게 된 ‘남식’으로 열연을 펼친다.

  스크린에 처음으로 함께 출연한 최민식과 박해일은 신선한 에너지와 교감으로 매력을 발산했으며,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의 감초 연기도 특별했다. 조연으로 출연한 조한철, 임성재, 이엘의 연기는 영화의 맛을 더했다. 극한 상황에 몰린 두 사람이 다양한 일을 겪는데 이를 통해 관객의 폭소를 끌어낸다.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시선으로 행복에 관한 따뜻하고도 아름다운 질문을 한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최민식과 딸의 재회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은 다양한 상영작들

  개막식 다음날인 10월 7일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제 일정이 시작되었다. 배창호 감독, 박미경 프로그래머, 손정순 발행인과 조식을 하며 올 영화제에 초청된 화제작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봉준호 X 하마구치 류스케 스페셜 대담, 프랑스 거장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마스터 클래스가 자연스레 오르내렸다. 아침 식사 후 비프힐에서 프레스 배지를 받아 티켓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시인의 창〉으로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은 김전한 감독을 만났다. 그는 배우와 함께 미리 부산을 찾았다. 김전한 감독과의 티타임 이후 본격적인 영화 관람에 돌입했다. 시작은 지난 베를린영화제에 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우연과 상상〉이었다. 본래 이날, 아니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기대했던 프로그램은 〈하마구치 류스케 스페셜(드라이브 마이 카 / 우연과 상상) + 스페셜 대담(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X 봉준호 감독)〉이었는데, 아쉽게도 티케팅에 실패했고, 옆 극장에서 진행된 기자 시사로 아쉬움을 달랬다.

  발표 직후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영화답게 상영관은 평일 낮인데도 기자들로 붐볐다. 세 가지 단편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우연한 계기로 발생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때론 유쾌하게, 때론 비참하게 그려냈다. 상영 이후 객석에서 감탄사가 쏟아졌다. 전찬일 평론가는 〈우연과 상상〉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주말에 류스케 감독의 최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도 보러 부산에 다시 와야겠다고 호평했다.

봉준호 감독
봉준호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온라인 생중계로 함께한 스페셜 대담에서 두 감독은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어 두 시간을 꽉 채울 정도로 환상의 궁합을 자랑했다. “오늘 작정하고 그의 비밀을 캐내보도록 하겠다”는 봉준호 감독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대담은 그들의 영화광적 면모와 연기 연출 및 대화 장면의 방법론, 영화 만들기의 불안과 긴장 등을 다정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풀어내는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2021 부일영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부일영화상은 1958년 출범한 국내 최초의 영화상으로, 올해의 최우수 작품상은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가 선정되었다. 남녀 주연상은 〈소리도 없이〉의 유아인과, 〈콜〉의 전종서가 각각 받았고, 최우수감독상은 〈자산어보〉의 이준익 감독이 수상했다.

  다음날엔 부산영화제의 뿌리 남포동을 찾았다. 이젠 영화제의 중심이 해운대와 센텀시티로 옮겨가며 이곳에서는 ‘롯데 시네마 대영’의 1개 상영관에서 7일(목)부터 11일(월)까지만 운영되지만, 여전히 이곳의 영화 열기는 뜨거웠다. 남포동에서 본 첫 영화는 〈캅 시크릿〉이었다. 현역 아이슬란드 국가대표 골키퍼라는 이색적인 프로필을 가진 한네스 소르 할도르손 감독이 선사하는 코믹 형사 버디물 〈캅 시크릿〉은 극장 스크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압도적 스케일과 사운드로 관객을 매혹했다. 뒤이어 관람한 〈괜찮아, 잘 될 거야〉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신작으로 누구나 마주하는 노화와 죽음의 선택 및 절차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오종 감독의 성숙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앙드레 뒤솔리에, 샤를롯 램플링, 한나 쉬귤라, 소피 마르소 등 유럽 예술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으로 더욱 깊은 울림을 자아냈다. 극장을 나서니 남포동 비프광장에서는 시민들과 함께 커뮤니티 비프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남포동에서 확인한 시민 참여 프로그램은 길었던 팬데믹의 끝을 기대하게 했다. 

"인트로덕션" GV에 참석한(왼쪽부터) 송석호, 박미소, 기주봉, 조윤희 배우
"인트로덕션" GV에 참석한(왼쪽부터) 송석호, 박미소, 기주봉, 조윤희 배우

  저녁에는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홍상수 감독의 〈인트로덕션〉을 보러 다시 센텀시티를 찾았다. 관람 전부터 ‘인트로덕션’이라는 ‘영어’로 된 제목과 홍상수 감독의 조합이 꽤나 어색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은 기존의 홍상수 월드에 미세한 변화를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작품에 참여한 송석호, 박미소, 기주봉, 조윤희 네 명의 배우의 재치있는 입담 속에서 GV가 진행되었다. 특히 기주봉 배우는 이날 극장에서 완성본을 처음 볼 때까지 송석호 배우가 주연인 줄 모르고 있었고, 레드카펫을 밟을 때 자신이 앞장섰던 게 지금 너무 민망하다며 개막식 비화를 전했다.

  개막 4일차인 토요일에는 정말 예년의 영화제처럼 극장에는 시네필로 가득했고 소량의 당일 티켓을 둘러싼 티켓팅 전쟁이 펼쳐졌다. 예매 전쟁은 기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은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화제작 〈아네트〉 기자 시사에서는 관람을 위해 몰린 기자진과 운영상의 혼선이 겹쳐 사전 신청을 한 기자들도 일부 들어가지 못했다. 나는 운 좋게 들어가긴 했는데, 좌석을 배정받지 못해 기술실 옆에서 간격을 두고 서서 보았다. 몸은 좀 불편해도 좋은 영화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것이 영화제만의 매력 아니겠는가? 애덤 드라이버와 마리옹 꼬띠아르는 사랑과 폭력, 아름다움과 추함을 노래하며, 파멸에 다가가는 이의 비극을 보여준다. 이날 영화가 끝난 뒤에는 레오스 카락스의 기자회견이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항공편에 차질이 생겨 다음 날로 미뤄졌다. 아쉬움을 달래며 찾은 다음 작품은 배리어프리 영화 〈피아노 프리즘〉이었다. 오재형 감독 자신의 단독 피아노 연주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감독의 배리어프리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접근법이 돋보였다. 이외에도 〈세이레〉, 〈감독은 부재중〉 등의 영화제에서만 누릴 수 있는 다채로운 영화들을 보며 팬데믹 속에서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한꺼번에 보상받는 느낌이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전당을 비롯해 6개 극장, 29개 스크린에서 아시아 총 70개국 총 223편을 상영하며 해운대구 센텀시티와 남포동 일대에서 열흘간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마감을 위해 폐막작 렁록만(홍콩, 중국) 감독의 <매염방>을 보지 못한 채 올라온 것이 아쉬웠다. 그래도 작품당 1회 상영에 그친 지난해와 달리, 29개 스크린에서 열흘 동안 편당 2-3회식 상영한 덕분에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어 좋았다. 

 


 

* 《쿨투라》 2021년 11월호(통권 8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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