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회 판타지 필름페스트] 가을밤의 강렬한 경험, 제35회 판타지 필름페스트 Fantasy Filmfest
[제35회 판타지 필름페스트] 가을밤의 강렬한 경험, 제35회 판타지 필름페스트 Fantasy Filmfest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1.12.02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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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은 10월의 가을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진행중인 제35회 판타지 필름페스트Fantasy Filmfest를 찾았다. 이름에서 느껴지듯 판타지 필름페스트는 독일 전역의 대도시를 돌며 일반 극장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강렬한” 장르영화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공포, 스릴러, SF 등 주류 영화 시장에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영화들을 모아 상영한다는 점에서 국내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와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다. 국내 영화팬들에게는 2009년 〈박쥐〉로 베를린을 찾은 박찬욱 감독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영화제로도 유명하다.

ⓒ쿨투라
ⓒ쿨투라

  올해 판타지 필름페스트는 베를린, 슈투트가르트, 프랑크푸르트, 뉘른베르크, 함부르크, 쾰른, 뮌헨 총 7개 도시를 돌며 진행한다. 각 도시당 일요일부터 일요일까지 8일씩 머무는데, 이번 영화제에는 장편 영화 37편과 10편의 단편 영화가 초청받았다. 판타지 필름페스트는 독일에 한국 영화를 꾸준히 소개하고 있는데, 올해에는 윤재근 감독의 〈유체이탈자〉와 권오승 감독의 〈미드나이트〉, 김창주 감독의 〈발신제한〉으로 총 세 작품이 초청받았고, 추가로 한국 감독이 참여한 작품으로는 박민선 감독과 Teddy Tenenbaum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단편 영화 〈Koreatown Ghost Story〉이 있다.

  베를린과 슈투트가르트 상영 일정을 마치고 영화제가 프랑크푸르트로 넘어오는 첫날, 아직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은 〈유체이탈자〉가 상영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인강변을 따라 하모니 극장Harmonie Kino으로 향했다. 하모니 극장은 무려 1920년에 문을 연 역사가 긴 극장으로 이름이 몇 번 바뀌긴 했지만 개관 이래 지금까지 프랑크푸르트 중심에서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독립영화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으며, 시네필들로 북적이는 영화광들의 성지이다.

  영화 상영시간보다 1시간 정도 일찍 극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유체이탈자〉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로비는 북적였다. 학생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한 층의 관객이 모여 다들 한 손에 맥주를 쥔 채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며 상영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날부터 한국 영화가 상영되는데도 팬데믹의 여파 때문인지 동양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하기 전 판타지 필름페스트의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고있는 아르투르Artur Brzozowski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르투르 위원장은 오랫동안 한국 영화를 눈여겨 보고 있으며, 판타지 필름페스트를 통해 재밌는 한국 작품을 독일에 소개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만큼 최근 들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컨텐츠의 강세를 기쁜 마음으로 함께 즐기고 있었다.

ⓒ판타지 필름페스트의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고있는 아르투르Artur Brzozowski위원장
ⓒ판타지 필름페스트의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고있는 아르투르Artur Brzozowski 위원장

  아르투르 위원장은 한국 영화의 강점으로 ‘발상’과 ‘영화적 구현’을 꼽았다. 그는 〈유체이탈자〉를 예로 들며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인물들 간의 영혼이 바뀐다는 발상에 매료되었고, 이를 영화적인 재미를 넣어 몰입감있게 풀어내는 과정을 즐긴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오징어 게임〉 열풍 역시 “아이들의 놀이를 어른들이 목숨 걸고 한다는 아이디어를, 시청각적인 재미 요소를 가득 넣어 매력적으로 만든 점이 주효했다”고 강조했다.

  그의 안내를 받아 미리 배정된 좌석에 앉았다. 먼저 온 게스트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상영시간이 눈앞에 다가왔고, 관객으로 가득 찬 극장은 활기를 띠었다. 이곳은 영화관 내 음식물 취식이 가능해 팝콘과 나쵸, 소시지 등을 들고 온 관객도 다수 있었는데,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음식 냄새를 맡다보니 옆 사람이 먹는 나쵸가 그렇게 맛있게 보였다.

  영화제 첫날의 마지막을 장식한 〈유체이탈자〉는 현지 관객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화려한 액션 씬이 나올 때면 객석에서 탄성이 나오기도 하고, 윤재근 감독의 글로벌한 유머 코드에는 호쾌한 웃음으로 화답하기도 했다. 관객 모두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플롯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연에 흠뻑 빠진 채 108분의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극장을 나서니 어느새 11시가 훌쩍 넘었고, 극장을 가득 메웠던 관객들은 불빛 하나 없는 거리로 하나 둘 빠르게 사라졌다. 어둑어둑한 거리를 보며 그제야 오늘이 일요일이었던 게 실감났다. 영화 보러 시간 내기 참 어려운 일요일 저녁인데도 이렇게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은 것을 보면 독일은 팬데믹 이후 일상으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에서도 11월부터 거리두기가 조금씩 완화되고 있는데, 하루 빨리 팬데믹 상황이 종료되어 극장가에 다시 생기가 돌길 소망한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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