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코트다쥐르] 카스테레오를 틀자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카스테레오를 틀자
  • 도희서(시인)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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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은 여행 가방을 챙기고 있다. 처음 가보는 남프랑스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코트다쥐르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무척 설렐 것이다. 하지만 가방에 넣을 걸 뭔가 잊지 않았는지는 불안해하지 말자.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건 여행 가방이 아니다. 꼭 챙겨야 할 것은 따로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남프랑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아름다운 풍광과 온화한 기후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어서 멋진 나라라고들 하지만 사실 “날씨가 너무 좋다!”고 탄성을 지를만한 날은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연중 눈부신 지중해 날씨를 경험할 수 있는 코트다쥐르에 흥분하는 것이다.

나는 처음 니스에 도착했을 때 택시 기사가 해준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손님! 니스가 처음이시라고요? 손님은 이 도시의 최고 보물이 뭔지 알아요?” 나는 순간적으로 미술관이나 작가 등을 떠올렸지만 택시 기사는 생각지도 못한 말을 해주었다. “바로 날씨입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날씨를 일 년 내내 즐기니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하하하” 레이벤 선글라스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그의 눈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생각했다. ‘택시를 몰면서 저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하긴 이렇게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매일 운전하는데 기분이 좋을 수밖에.’ 그때 택시 기사가 해준 말은 마법처럼 나를 이끌었다. 나의 남은 일정을 모두 변경하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택시에서 내려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렌트카를 빌릴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코트다쥐르 해안도로에서는 아이스크림처럼 선명한 흰구름을 볼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코트다쥐르에 가려 한다면 잊지 말아야할 건 옷이나 화장품이 아니라 렌트카를 대여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온라인 렌트카 업체에서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른 후, 그 차를 몰고 코트다쥐르의 꿈결 같은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걸 상상해 보자. 코트다쥐르는 최고의 드라이브 경험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코트다쥐르 해안 절벽위에 화가가 그린 곡선 같은 아름다운 도로가 놓여있다. 만일 당신이 그 길을 천천히 지나간다면 해안도로를 따라 나타나는 소도시들이 진주목걸이의 진주알처럼 반짝거릴 것이다.

이제 당신이 코트다쥐르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여행하기로 결정했다면 다음 두 가지를 고려하면 더 좋다. 먼저 당신의 운전면허가 1종이라면 가능하면 오토매틱이 아니라 스틱 기어 자동차를 연습해보고 가면 좋다. 유럽의 렌트카 업체에는 스틱 기어 차량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리고 혹시 가능하다면 오래된 오픈카를 빌려서 코트다쥐르를 드라이브 해보라는 것이다. 낭만적인 옛날 영화에서 보던 아이보리색 올드카를 빌려서 코트다쥐르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다보면 스스로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겠는가. 당신은 언제 다시 갈지 모르는 코트다쥐르에 가려고 한다. 그렇다면 올드 오픈카를 타고 부드러운 바람에 스카프를 휘날리며 해안도로의 커브를 도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놓치기 싫은 모습 아닐까.

코트다쥐르의 모든 도시 중에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동네 ‘빌프랑슈쉬르메르’.

자, 올드 오픈카를 빌리기로 마음먹었다면 사전에 디테일을 체크해 보는 게 좋다. 렌트카 업체에 연락해서 카스테레오에 어떤 소스를 사용하는지 작동은 잘 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나는 ‘카스테레오’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카오디오’라고 부르고들 있지만 옛날 자동차에 달린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는 그야말로 카스테레오라고 불러야 맛이 난다. 만일 당신이 빌린 올드카에 카스테레오가 달려있다면, 둥근 원통형의 노브가 양쪽에 달려있고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붉은 바늘이 유리판 밑에 있는 납작한 그 장치가 당신의 드라이브를 두 배 만족시켜줄 것이다. 이제 당신이 빌릴 올드카가 오픈카고 카스테레오도 멀쩡히 작동한다는 걸 확인했다면 이제 그 카스테레오로 들을 음악을 준비하자. 음악이란 각자의 취향이 있겠지만 올드카로 코트다쥐르를 드라이브하기 위해서라면 나라면 이탈리아 영화음악 작곡가 Piero Piccioni의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가득 녹음해 갈 것이다. 카스테레오로 ‘Amore mio aiutami’를 들으며 시속 30킬로미터로 천천히 커브를 돌면 해안절벽에 걸린 흰 구름 밑에서 반짝거리는 예쁜 집들이 보일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 당신은 울어버리지 않을까.

니스 옆에는 ‘빌프랑슈쉬르메르’라는 아름다운 작은 항구마을이 있다.

나는 두 번째 코트다쥐르에 갔을 때야 비로소 해안도로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제대로 드라이브를 할 수 있었다. 코트다쥐르의 긴 그림 같은 도로는 마치 환등기 속을 운전하는 것처럼 끝없는 절경의 연속이어서 그 순간 나는 그 온화한 바람결에 실려 날아가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구불구불한 해안 절벽 위를 지나더라도 무섭지 않았고 끝없이 나타나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자꾸만 운전을 멈춰야만 했다. 만일 당신이 코트다쥐르에 간다면 꼭 차를 렌트해서 해안도로를 일주해 보기를 권한다. 각 도시에 들릴 때마다 느끼는 감동도 있겠지만 그 도시 사이를 연결하는 길에서 느끼는 지중해의 바람은 마법의 숨결처럼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 같은 것을 쏟아내게 해준다. 그때 나는 쓰고 있던 선글라스 밑으로 자주 눈물이 흘렀고, 계속 한 숨을 쉬었으며 몇 번이나 크게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사람이 살기 좋다는 지중해성 기후는 무엇보다 그동안 쌓였던 서러움 같은 것들을 위로해주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은퇴 후에 가장 살고 싶은 지역이라고 하는 게 아닐까.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코트다쥐르로 떠난다면 나는 다른 어디에 가는 사람보다 당신을 부러워할 것이다. 클래식한 오픈카를 타고 클러치를 밟으며 카스테레오의 다이얼을 돌리다가 손가락 사이를 지나는 바람을 느끼면, 그 순간 당신도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도희서 시인. 《문학과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저서로 산문집 『그리움, 속도 무제한』, 시집 『외로운 당신이 그리운 사람』, 번역서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독일인의 사랑』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다. 예술과 삶에 대한 레터 매거진 《아벤트》 운영 중이다.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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