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코트다쥐르] 칸 다이어리
[남프랑스 코트다쥐르] 칸 다이어리
  • Vladislav Davidzon(작가, 평론가, 다이어리스트)
  • 승인 202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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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코트다쥐르에서 열리는 가장 큰 축제는 누가 뭐래도 칸영화제이다. 정치와 문화 전반을 다루는 우크라이나계 미국 평론가 Vladislav Davidzon이 올해 칸의 분위기를 다이어리 형식으로 생생하게 전한다.

5월 16일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칸영화제 베테랑이라면 지칠 만도 했지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 역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사실 지난 5년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는 칸에게 잔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칸은 하비 와인스틴의 괴물 같은 악랄함과 영화적 착취에 깊은 연관이 있었고, #미투 운동과 그 이후에 벌어진 끝없는 문화 전쟁을 상징하는 발상지였습니다. 그 결과는 이후 두 차례의 영화제에 영향을 미쳤고, 그게 팬데믹으로 인해 2020년 영화제가 전면 취소되기 전까지의 상황이었습니다. 그 전에 영화제가 취소된 건 나치 장교들이 파리 리츠의 테이블을 점거하고 있던 시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021년 영화제는 여름으로 미뤄졌고, 칸은 강력한 코로나19 정책의 선봉에 섰습니다. 당시에는 아시아 및 북미 여권 소지자의 프랑스 입국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화제를 찾은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성지를 찾은 저 같은 사람들은 거의 매일, 그것도 대부분은 과음한 상태로 위양성脘陽性이 종종 나오는 굴욕적인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해 선정작은 훌륭했고, “전염병 시대의 축제”라는 불평 섞인 농담을 견딜 수 있는 비사교적인 영화인에게는 다른 관객에게 방해받지 않고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영광스러운 시간으로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작년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두 달 만에 영화제가 개막했습니다. 유럽 사회는 1945년 이후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가장 무자비한, 그리고 다시는 경험해서는 안 될 전쟁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러시아군은 키이우 전투에서 막 패배하여 우크라이나-벨라루스 국경을 따라 후퇴한 상태였고, 우크라이나군은 탈환한 영토에서 발견한 대규모 무덤에서 시신을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은 비정치적인 칸에 엄청난 정치적·도덕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러시아 영화에 대한 피켓 시위가 일어났고, 러시아인들은 영화제에서 문명 활동, 즉 좋은 파티에 초대받고 국제 영화 공동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친구들과 저는 레드카펫 행사가 끝난 후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들었습니다. 막심 나코네치니의 〈버터플라이 비전BUTTERFLY VISION〉 프리미어 상영이 끝난 후 팔레 데 페스티벌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던 것도 영화제 주최 측에게는 유감이었겠죠. 프랑스 전투기가 새로 나온 〈탑건〉을 홍보하기 위해 곡예 비행을 했을 때, 우크라이나 영화계의 절반(군인 연령의 남성은 출국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여성)은 러시아의 키이우 폭격에 대한 트라우마를 떠올렸습니다.(우아한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크루아제트거리 상공에서 공중 기동을 허용하기로 한 결정은 주최 측의 상당히 무모한 결정이었죠.)

1년 후, 전쟁은 계속되고 우크라이나 영화 산업이 대부분 중단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는 칸, 베니스, 베를린 경쟁 부문에 단 한 편의 영화도 출품하지 못했습니다. 개막식에서 전설적인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우크라이나 국민 시인 레샤 우크라인카의 시를 낭송했는데, 올해에도 작년과 같은 연대와 저항이 실제로 나타날지 걱정됩니다. 그래도 희망은 가득하고 작년 이맘때보다는 덜 암울한 상황입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막 이틀 전 파리에 도착해 키이우 반격에 필요한 프랑스 무기 확보를 위해 마크롱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했습니다.

5월 17일

칸의 저속함과 여흥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칸은 중간 크기의 도시인데, 국제 영화제가 열리면 도시 전체가 들썩이며 평온하고 우아한 해변 도시에 광란과 광기에 가까운 폭력적인 분위기가 감돌지요. 베를린, 베니스, 토론토와 같은 다른 A급 영화제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베니스 영화제는 (제가 결혼한) 호텔 엑셀시오 주변의 작은 공간에만 갇혀서 진행되고, 영화 관계자 외에는 사실상 출입이 통제됩니다. 토론토는 섹시하기에는 너무 캐나다적이고, 베를린 영화제는 웅장하지만 번잡한 독일의 수도 한복판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하지만 칸에서는 유럽 전역에서 쾌락주의자hedonists, 졸부nouveau riches 유로트래쉬eurotrash, 프로 파티 피플이 뻔뻔한 밤문화를 즐기기 위해 모여듭니다. 영화제에서 볼 수 없는 모든 종류의 사람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어요. 이들은 제작자 미팅이나, 업계 갈라, 심지어 영화관에도 발을 들여놓지 않고, 해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파티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는 정말 중요한 파티부터 아주 추잡한 파티까지 다양하게 열립니다. 저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여는 전설적인 파티에 10년째 초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방탕한 축제의 절정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칸에는 부드러움과 우아함, 그리고 고결함이 있지만, 그 중심에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함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 영화는 집에서 혼자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칸에 오는 건 사교적인 이유 때문이죠. 영화관, 나이트클럽, 카페, 국가별 부스나 비치 클럽에서 열리는 업계 행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던 인물들과 마주칠 수 있습니다. 이곳의 모든 평론가, 작가, 감독, 프로듀서에게는 영화제에서만 함께 술을 마시고, 파티를 즐기고, 또 논쟁을 벌이는 ‘영화제 친구’가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첫날 밤이 끝나고 저는 여러 오랜 동지들과 둘러 앉았습니다.

개막작에 출연한 조니 뎁의 연기에 대해 6명의 사람들이 의견을 나눕니다. 한 30대 프랑스계 미국 여성이 독일 남성 배급자와 보톡스 루틴에 대해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습니다. 독일인들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옆 테이블에서는 20년 동안 들어본 적 없는 벤슨허스트 억양을 가진 유대인 남성이 LA에서 온 동료와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그럼 영화계에서 완전히 손 떼는 거야?” 뉴요커가 동료에게 회의적으로 묻자, 그의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죠. “누구도 영화계를 영영 떠나지는 않지.”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 ⓒEl Desco

5월 18일-20일

올해 가장 귀한 티켓은 인디아나 존스 속편이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퀴어를 주제로 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31분짜리 서부극 〈스트레인지 웨이 오브 라이프Strange Way of Life〉였습니다. 비에 젖은 둘째 날, 티켓을 구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대기 줄에 모여들었습니다. 이해할만 해요. 에단 호크와 페드로 파스칼이 주연한 게이 카우보이 영화를 누가 보고 싶지 않겠어요? 기적적으로 표를 구해 들어간 제 정보원은 파스칼이 탄탄한 뒤태를 뽐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알모도바르, 서부극, 에단 호크의 팬인 저는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었습니다.

호크는 정말 상남자mensch이고 따듯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4월, 즉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처음 침공해 제 친구와 가족을 위협한 지 두 달 후, 우리는 모두 우크라이나 군대를 위해 기금을 모금하고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연설에 참여한 뉴욕에서 열린 모금 행사에 예의 있고 상냥한 호크가 참석했습니다. 연설이 끝난 후 호크는 다정하게 다가와 우크라이나 정치에 관한 제 에세이집인 『From Odessa With Love』에 사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호크 씨!

다행히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우크라이나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우크라이나 전통의상의 이름을 딴 비시방카의 날Vyshyvanka's Day을 맞아 아메리칸 파빌리온에서는 우크라이나 영화계의 리더들과 미국 배우 겸 프로듀서인 빌리 스미스가 한자리에 모여 우크라이나 영화 산업의 미래에 관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숀 펜과 절친한 사이인 빌리 스미스는, 숀 펜이 아론 카우프만과 공동 연출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젤렌스키 대통령에 관한 다큐멘터리 〈슈퍼파워〉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칸을 찾았습니다. 스미스는 이 영화를 제작한 뒤 우크라이나 동부의 최전선에 참전했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협력프로듀서로 참여했습니다. 작품에 토킹헤드로 등장하며, 전쟁이 시작될 때 펜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만나는 장면을 통역하고 그가 폴란드 총리를 만나게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 Antonin Thuiller / AFP

칸영화제가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표는, 올해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영화 중 하나가 마틴 에이미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 형식주의 홀로코스트 영화였다는 점입니다. 아우슈비츠 주변 지역에 대한 독일식 표기에서 따온 조나단 글레이저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요즘 트렌드의 아방가르드적이고 구상적인 홀로코스트 실험 영화입니다. 이 작품은 아우슈비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여러 기술적 ‘혁신’을 담당했던 나치 친위대 사령관 루돌프 헤스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영화는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수용소 문 바로 밖에 있는 한 집에서 지휘관이 아내와 다섯 명의 나치 모범생 자녀들과 함께 사는 모습만 계속 보여줍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길고 지루한 회의로 이루어져 있는데, 참석자들은 가장 끔찍한 문제를 가장 담담한 태도로 논의합니다. 나치 친위대 장성 수십 명이 모여 홀로코스트를 논의하는 장면은 수송 계획에 대한 다섯 가지 소주제 중 하나를 읽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10년 전에 제가 마틴 에이미스 작품 중 졸작이라고 생각했던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 아닙니다. 〈쉰들러 리스트〉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크루아제트거리를 배경으로 평론가들 사이에서 흥분을 일으키기 시작할 무렵, 73세의 아미스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작품의 서늘한 형식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지만, 아미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올해 상을 받는다면 그를 기리는 매우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고백하건데 예술작품으로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미학을 평가하는 게 저로서는 너무 어렵습니다. 이 작품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감정적인 충격이나 도덕적인 논쟁은 분명 전달하지 않습니다. 함께 영화를 본 유대계 프랑스 영화평론가도 저만큼이나 당황스러워했어요. 그는 영화를 본 후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며 제게 “방금 본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극장을 떠난 후에도 제가 무감각해진 것인지 아니면 그저 감동받지 못한 건지 제 감정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 ⓒA24

5월 23일

미학적으로 섬세하고 감정적으로 냉혹한 홀로코스트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영화제에서 가장 많은 화제와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오늘까지 영화 평론가들의 평점을 종합한 결과 가장 높은 평점을 받았습니다. 수십 명의 평론가들이 모여 글을 쓰는 프레스룸에서 저는 몇 달에 한 번씩 영화제 시즌에 만나는 두 명의 평론가 친구(한국인과 이집트인)에게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정서적 무감함에 대한 제 개인적인 실망감을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제가 불만을 늘어놓자마자 곱슬거리는 금발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키 큰 독일 신사가 제 말을 가로막으며 영화에 대한 뜨거운 옹호를 펼쳤습니다. 프레스룸 안에 있던 기자 절반이 우리의 말다툼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이에른 텔레비전의 저널리스트인 그레고르 보실루스Gregor Wossilus는 “이 영화는 수용소를 운영하며 많은 사람을 죽인 이들이 어떻게 죄책감에서 벗어나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제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고 열정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는 수용소 밖에서 전원 생활을 즐기는 가족이 불과 몇 피트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고통에 완전히 무감각한 모습을 묘사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언제든 옳고 그름은 뒷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에게는 그저 일이었을 뿐입니다. 보세요! 그들은 총통에게 멋진 집을 받았어요.”

저는 이 영화가 다른 관객에서 그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영화는 감동을 전달했습니다. 테이블 반대편에서 칠레의 한 기자는 글레이저가 들려준 이야기는 보편적인 이야기이며, 영화가 자국의 군부 통치 17년을 떠올리게 한다고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열정적이고 고집 센 영화인들 사이에서 시끌벅적한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이 칸입니다!

올해 프로그램은 매우 강력하며, 이전에 여러 편의 영화를 경쟁부문에 선보였던 영화계의 거장들이 돌아왔습니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스코세이지와 토드 헤인즈 외에도 2011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로 그랑프리를 수상한 튀르키예 감독 누리 빌게 제일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누리 빌게 제일란은 올해 아홉 번째 장편인 〈건초에 대하여About Dry Grasses〉로 다시 한 번 흥분을 불러일으켰는데, 지난 수상작과 마찬가지로 3시간 30분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작품입니다.

〈괴물> ⓒGaga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은 지난 10년 동안 칸 경쟁부문에 오른 그의 다섯 번째 작품입니다. 그리고 2018년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 이후 그의 최고작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형적인 작품인 이 영화는, 교사의 학대에 반항하기 시작하는 영재 아들을 키우는 미망인 어머니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그녀는 학교 시스템에 맞서 아들을 때린 교사를 해임시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곤 영화는 잠시 멈췄다가 고통받는 숭고한 교사의 관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소년과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사이의 우정은 아주 사랑스럽게 그려졌고, 이런 게 사람들이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이마무라 쇼헤이 이후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받을 일본감독으로 지목하는 이유입니다.

올해 상을 받지 못할 것 같은 거장은 제가 사랑하는 웨스 앤더슨입니다. 그의 작품에 출연해 보는 것이 평생의 꿈인 저는 지금 신성 모독을 저지르려고 합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속의 영화, 영화 속의 연극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아마도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떨어지는 작품일 겁니다. 그의 영화를 뒷받침해 온 기교와 감정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 여기서는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앤더슨 영화처럼 보이지만 내러티브는 일관성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2년 전의 〈프렌치 디스패치〉가 정말 훌륭했으니 안타까운 일이죠.

〈추락의 해부> ⓒLe Pacte

5월 27일

지난 10년간 최고의 칸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출품한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대한 개인적인 실망감을 제외하면, (웨스,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나도 파리에 살고 있고 저녁 식사 초대를 기다리고 있어!) 올해 선정작은 정말 훌륭했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올해는 선정작이 너무 좋아서 화제의 영화를 모두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동시에 코로나 병목 현상이 여전히 영화제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금도 제작이 늦춰지는 작품이 많고, 몇몇 감독들은 영화제 출품을 미루고 있습니다.

황금종려상은 법정 드라마 〈추락의 해부Anatomy of a Fall〉의 프랑스 감독 쥐스틴 트리에에게 수여됐습니다.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유일한 경쟁작이었는데 의외의 결과였습니다. 열흘 동안 60편이 넘는 영화를 모두 볼 수는 없으므로 모든 영화제 관객은 예측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저는 볼만한 영화를 잘 고르는 편인데 올해는 베팅에 크게 실패해 경쟁부문 우승자를 놓쳤습니다.

2014년 마틴 에이미스의 홀로코스트 소설을 세밀하게 각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 나름의 의견과는 별개로 수상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고, 그대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이 영화는 심사위원대상(그랑프리)을 수상함으로써 작가가 사망한 지 일주일 만에 위대한 원작자의 업적을 기리는 한편, 재능 있는 감독인 조나단 글레이저가 앞으로 원하는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받아낼 동력을 마련했습니다. 글레이저 감독이 다음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또다시 10년이 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지휘관의 밉상 아내를 연기했고 〈추락의 해부〉에도 출연한 독일 여배우 산드라 휠러에게도 좋은 한 주였습니다. 자신이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황금종려상과 심사위원대상을 모두 석권한 산드라 휠러도 분명 영화제의 기록일 겁니다.

〈퍼펙트 데이즈〉 ⓒMaster Mind

남우주연상은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에서 시심詩心을 지닌 화장실 청소부 역을 맡은 야쿠쇼 코지가 차지했습니다. 《르몽드》는 리뷰 제목으로 “화장실 시인의 일상을 쫓는” 영화라고 표현하기도 했지요. 올해 상영된 카우보이 영화는 게이 영화나 해체주의 영화 모두 빈 손으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감독상은 베트남 출신 프랑스 신사 쩐 아인 훙Trân Anh Hùng의 달콤한 사극 〈도당 부팡의 열정The Pot Au Feu〉에게 돌아갔습니다. 마르셀 루프의 『미식가 도당 부팡의 삶과 열정La vie et la passion de Dodin-Bouffant, gourmet』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요리사 쥘리엣 비노슈와 미식가 브누아 마지멜의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자 군침이 도는 고전입니다.

〈도당 부팡의 열정〉 ⓒGAUMONTVladislav

퇴폐적인decadent 음식을 함께 만드는 비노슈와 마지멜은 한때 함께 살아서인지 영화에서 놀라운 케미를 선보입니다. 아름다운 프랑스 음식이 시골의 부엌에서 황금빛 조명 아래서 정성스럽게 천천히 조리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배가 너무 고파서 영화 속 프랑스 셰프의 요리를 먹기 위해 상영이 끝난 후 마제스틱 호텔로 달려갔습니다. 함께 식사한 억만장자를 부드럽게 설득해서 비노슈와 마지멜이 스크린에서 함께 마셨던 바타르 몽라셰 그랑 크뤼Bâtard Montrachet Grand Cru 한 병을 주문했고 점심으로 1,800유로가 나왔습니다. 영화를 사랑하는 미식가 여러분, 주변에서 이 영화가 상영된다면 친구들과 꼭 보러 가세요!

그럼 내년까지 Au revoir. 2024년 레드카펫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 이 글은 《Tablet》의 기사 일부를 동의 하에 발췌한 것이며, 글의 원문은 tabletmag.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Vladislav Davidzon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예술가, 작가, 다이어리스트, 번역가, 평론가. 《Tablet》의 유럽 문화 특파원으로 활동중이며, Atlantic Council의 비거주 펠로우이고, 《The Odessa Review》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다.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으며 현재 파리에서 거주 중이다. 첫 번째 에세이 집 『From Odessa With Love』가 있고, 그의 다이어리 전시가 곧 키이우에서 열릴 예정이다.

 

* 《쿨투라》 2023년 6월호(통권 10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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