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바캉스] 대립이야말로 진정한 우정이다 - 〈성난 사람들〉
[드라마 바캉스] 대립이야말로 진정한 우정이다 - 〈성난 사람들〉
  • 이호섭(서양고대철학 연구자)
  • 승인 2023.06.29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정이 여하간 진실된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관계를 의미한다면, 아주 특이한 종류의 우정을 상상해볼 수 있다. 공감과 즐거움을 나누고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사이가 아니라 격렬한 분노와 오래된 원한을 나누는 관계. 마음 깊이 응어리진 불안을 쏟아내는 한편으로, 그 불안에 맞서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강제하는 관계. 안락하고 피상적인 만족이 아니라 삶을 뿌리째 흔드는 환희를, 매끈하고 반짝이는 것들로 덮을 수 있는 불편이 아니라 마음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서 솟아나오는 증오를 뒤섞는 관계. 그러나 기쁨도 미움도, 승리도 패배도 그들이 함께 한다는 조건에서만 가능하여, 그들은 서로의 더블double이요, 도플갱어다. 따라서 두 사람 중 하나는 죽어야 할 텐데, 두 사람은 너무나 닮아서 피 한 방울 섞지 않은 가족이기도 하다. 가족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죽이지도 못하겠고 내버려두자니 창자가 꼬인다. 눈을 감아도 얼굴이 선명히 떠올라 환장할 노릇이다. 한국어에는 이 관계를 표현하는 훌륭한 단어가 있다. 웬수. 이것이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의 두 주인공, 에이미와 대니의 관계다.

겉보기에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다. 에이미는 자수성가한 커리어우먼으로, 유명한 예술가 남편과 귀여운 딸아이를 두고, ‘좋은 사람bon homme’이라는 이름의 부촌에서 살아간다. 대니는 그다지 유능하지 못한 도급업자로, 계속되는 실패로 가족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며 얄팍한 자존심만 붙들고 있다. 하지만 《성난 사람들》은 이 ‘겉보기’가 기분 좋게 찢어지고 불타서 없어져버리는 이야기다. 두 사람을 묶는 것은 유사한 압박감이다. 에이미는 힘들게 키워온 사업을 거래하는 데에 실패할까봐 거래의 키를 쥐고 있는 백인 여성 CEO의 너스레를 견뎌야 한다. 대니는 끈끈한 동업자를 자처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주도권을 가져가려 하는 사촌 아이작의 은밀한 독선을 참아내야 한다. 그들은 또한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점, 그러나 그들이 지키려는 이들은 그들에게 낙담과 자책을 안겨준다는점에서도 닮았다. 에이미의 남편 조지는 에이미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순진하고 선량한 미소를 지으면서, 에이미를 만나 ‘가정 주부’가 된 자신을 연민한다. 대니의 동생 폴은 실패를 거듭하는 형을 신뢰하지못하고 언제나 독립을 꿈꾸지만, 대니가 보기에 그의 인생 계획이란 허무맹랑할 뿐이다. 그럼에도 에이미와 대니는 그들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감춘다. 그렇게 저마다 자신의 삶과, 가족과 씨름하고 있던 에이미와 대니는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고, 그 만남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뒤얽히며 두 사람을 단단히 엮는다. 두 사람은 싸우고, 욕하고, 거짓말하고, 거래하고, 거래를 파기하고, 서로를 쫓는다. 그들은 완벽한 적이며, 완벽한 팀이다.

두 사람을 엮는 또 하나의 요소는 그들이 아시안계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성난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을 벗기고 그들의 삶에 드리운 그늘을 충실히 묘사한다. 에이미는 베트남 난민이었던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를 두고 있지만, 부부의 관계에는,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는 억압된 반목이 있다. 대니는 한때 미국에서 살았던 부모님을 다시 데려오려 하지만, 대니의 ‘효성’을 칭찬하고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두 사람 주변의 공기는 잔잔하고 은근한 인종차별의 백색 소음으로 물들어 있다. 그 소음은 속삭인다. “분노는 일시적인 심리 상태일 뿐이야.” “중국에서는 이렇게 거래를 하죠. 사람 대 사람으로요.” 하지만 에이미는 말한다. “미국식 심리 치료는 나한테는 맞지 않아.”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치료가 아니라 분노를 표출할 상대다. 그러므로 그들이 서로에게 화풀이를 하고 극적인 방식으로 보복에 성공할 때 그들의 표정이 해방감과 환희로 물들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올바른 상대를 찾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의 분노를 이해하기에, 위선의 미소가 아니라 진실된 분노로 서로를 대하기에, 분노를 사연과 내력으로 흐물거리게 만드는 대신 하나의 공처럼, 뜨거운 불처럼, 번뜩이는 칼날처럼, 단단한 힘으로 받아넘기기에, 증오와 격분 속에서 진정한 우정을 맺는다. 그들은 조화가 아닌 승리를 원하는 정복자이자, 무리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가진 외로운 리더다. 그들의 ‘우정’은 그들에게 활력을, 살아 있다는 감각을, 그들이 애써 억누르고 있던 진실을 해방시킬 용기를 준다.

그러므로 결말부의 ‘화해’가 급작스럽게 느껴졌다는 일각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에이미와 대니는 언제나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약간의 화학적 보조가 필요했던) 결말부의 ‘영적인’ 대화는 그 이해를 완성하고 더욱 단단하게 결속하기 위한 매듭이었을 뿐이다. 《성난 사람들》이 보여주는 진실은,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하듯 대립이야말로 진정한 우정이며, 그 우정 속에서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식이 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모든 거짓을 벗어던지고 해방감을 나눈 그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함께 발견한 그 진실을 가지고서, 다시금 거짓된 세상 속으로 걸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물론 세상은 언제나 그랬듯 오해의 방아쇠를 당기고, 그들이 찾아낸 우정과 진실이 끝내 살아남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에이미와 대니가 나눈 우정이란, 삶에서 한 번쯤은 찾아내고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되는 무언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딱 한 번 정도는 말이다.

 


이호섭 서양고대철학 연구자. 서울대 철학과 박사과정 재학중. 서양 고전과 동시대 문화의 연관성 및 단절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 《쿨투라》 2023년 7월호(통권 109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