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월평] 전통과 현대가 한자리에 모여 만찬으로 이어지다!
[공연 월평] 전통과 현대가 한자리에 모여 만찬으로 이어지다!
  • 최교익(연극연출가, 신한대 교수)
  • 승인 2020.02.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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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궁 자라, 째즈 만나 토끼에게 청혼하다

과학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 산업의 주체가 되고 있는 융복합. 특히, 공연계는 융복합 장르로 인해 무수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간단한 예로, 전통 공연에 더해지는 화려하거나 몽환적인 영상 기법! 과학의 발전이 더할수록 예술가의 창의적 사고는 그를 바탕으로 배가 되는 것이다. 관객은 더 이상 어제의 예술을 논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과 호흡에 앞서가는 시·청각적 자극. 낯설음으로 얻어지는 정서의 카타르시스를 원한다.

필자가 국립극장 연출부로 있었던 2006년~2009년 까지만 하더라도 과학이 가미된 과학적 융복합에 대한 화두는 수면 아래에서 논의되었고 상상력은 미처 과학을 따라가지 못했다. (과학이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고, 현실성 없는 상상력을 관객에게 보이는 것 또한 졸작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위험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한 장소에서 하나의 공연으로 묶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실험들이 있었다. 한 자리에 머물며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취하는 것. 혀끝으로 느껴지는 황홀한 전율. 그리고 만찬! 관객은 뷔페에 온 것과 같은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연극의 주 요소인 관객이 반가워하는 예술. 그것은 여러 장르의 예술을 하나의 공연으로 묶는 다원예술이다. 공연에서의 융복합은 곧 다원예술의 초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수궁자라, 째즈 만나 토끼에게 청혼하다>는 수궁가를 바탕으로 국악과 서양음악 및 클래식·현대예술을 대결구도로 펼치는 복합장르의 시·청각 퍼포먼스 극이다. 음악이 어색한 관객에게 국악은 물론 현대음악에 대한 징검다리를 놓아주며, 서양음악, 무용, 타악 등에 구분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 그리고 관심을 목적으로 연령에 자유롭고 다채로운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공연은 옴니버스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의 주된 스토리로 개연성 있는 흐름을 갖고 공연된다. 공연제작자 박현진 대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의 SNS 영상에 길들여진 아이들과 청소년 및 현대인들의 짧은 집중력을 파악했고 공연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매순간 흥미로운 구성이 집중의 느슨함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수궁자라, 째즈 만나 토끼에게 청혼하다>는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육지로 나서는 자라와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고래아가씨. (고래아가씨는 풍파로 인해 헤어진 코끼리에게 편지를 전해달라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고래아가씨의 도움으로 육지에 나온 자라는 고래아가씨의 첫 사랑인 코끼리를 만나게 되지만 오해로 인해 코끼리와 내기를 하게 된다. 내기는 바로 코끼리가 살고 있는 육지의 육지음악과 자라가 살고 있는 수궁의 수궁음악 대결. 수궁음악은 국악으로 결을 만들었고 육지음악은 서양음악으로 이루어진다.

공연은 한국무용에 신디. 그리고 25현 가야금과 피리로 이루어져 동서양의 신비함을 마주하며 시작된다. 프롤로그에 이어지는 ‘비나리’와 수궁가의 눈대목인 ‘고고천변’, ‘범내려온다’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수궁가> 중 손꼽히는 대목이다. 이어지는 아쟁독주와 첼로독주의 대결에서 갈등을 부추기고 극의 정점에는 신디, 첼로, 퍼커션의 <A. Piazzolla. Libertango>와 가야금병창, 25현 가야금, 타악의 <새타령>의 대결이 있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박수를 절로 치며 동서양 콜라보에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이하는 비밀!

공연을 제작한 <자연가락 소리나눔>의 박현진 대표는 공연에 대해 “무분별하게 들어온 서양의 문화예술은 우리나라의 우수한 전통예술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마당놀이와 창극, 판소리 등의 공연이 점점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본 공연은 현대 아이들과 현대인들에게 전통공연의 우수성과 재미를 일깨워 주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째즈와 현대무용을 공연에 융합하여 전통예술과 서양예술의 비교분석을 통해 예술적인 가치를 바라보는 눈을 키워주는 것에 두 번째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라며 공연 제작에 대한 뜻을 밝혔다.

다원예술은 자칫 여러 가지를 보여주기 위해 전문성이 떨어지거나 극 전개의 개연성을 상실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연가락 소리나눔>의 구성원 모두는 전통예술뿐만 아니라 공연예술의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는 창작단체이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 현대인에게 가장 접근성이 뛰어난 ‘수궁가’를 택하여 한국무용, 현대무용, 판소리, 풍물, 현악, 째즈, 전통놀이가 어우러져 한편의 장관을 보여준다.

 

 

* 《쿨투라》 2020년 1월호(통권 6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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