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환의 시조안테나 11] 풀어진 실밥 물고 안간힘 쓰는 며느리, 엎어지는 마음 한 사발의 노래!
[이정환의 시조안테나 11] 풀어진 실밥 물고 안간힘 쓰는 며느리, 엎어지는 마음 한 사발의 노래!
  • 이정환(시인, 정음시조문학상 운영위원장)
  • 승인 2020.07.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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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갔다 푸는 일이 풀고 다시 잠그는 일이 항다반 널려있는 예사로운 일이라지만 단추를 채울라치면 느닷없는 이 긴장감,

  어쩌다 올이 뜯긴 단춧구멍 사이로 몸 건너 난처함이 몸 안으로 안겨들 때 풀어진 실밥을 물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는,

  - 이승은, 「고부」 전문

 

  이승은은 인천 출생으로 1979년 문공부·KBS 주최 전국민족시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 『얼음동백』 『넬라판티지아』 『꽃밥』 『어머니, 윤정란』과 시조선집 『술패랭이꽃』 등이 있다.

  『어머니, 윤정란』은 시력 40년을 넘어선 시인의 역량이 총 집결된 시조집으로서 어머니에 대한 헌사이자 사모곡이다. 그의 능숙한 말 부림과 남다른 언어 감각에 진정성을 더한 밀도 높은 시조집이다. 일평생 오직 한 길을 묵묵히 걸었기에 얻을 수 있는 귀한 주옥편이다. 「고부」는 미묘하다. 잠갔다 푸는 일이 풀고 다시 잠그는 일이 항다반 널려 있는 예사로운 일이라지만 단추를 채울라치면 느닷없는 이 긴장감이라는 첫수는 둘째수와 더불어 끝에 반점 처리를 함으로써 미완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그런 까닭에 ‘단추를 채울라치면’이라는 표현이 특별한 의미를 내포한다. 둘째 수 ‘어쩌다 올이 뜯긴 단춧구멍 사이로 몸 건너 난처함이 몸 안으로 안겨들 때 풀어진 실밥을 물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는,’은 더욱 세밀하게 고부간의 정황을 형상화하고 있다. 둘째 수의 미학적 충일함은 고요하고도 은은한 정서적 깊은 파장을 오래도록 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제 이승은의 시조세계는 여기에까지 이르렀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경을 보여줄 것이다. 독자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끝까지 가는 이에게 이처럼 빛 부신 예술세계는 열리게 마련이다.

 

누구고,
인기척에 엄마는 내다본다
밤새 통증으로 잠도 못 이루신
아, 그건
마음 한 사발
엎어지는 소리였다
- 김병락, 「독거」 전문

  김병락 시인은 2010년 《시조시학》 신인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수필집으로 『매호동 연가』가 있고, 존재론적 사유와 성찰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이다.

  「독거」를 읽으면서 누구나 ‘독거’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숙연해진다. 생로병사의 흐름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혼자 지내는 이는 늘 문밖에 눈길이 간다. 누군가 찾아올 수 있다는 바람 같은 것이 있어, ‘누구고,’하면서 ‘인기척에 엄마는 내다’본다. 그는 ‘밤새 통증으로 잠도 못 이루’었다. 밖에 누가 온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화자는 ‘아, 그건/ 마음 한 사발/ 엎어지는 소리였다’라고 해석한다. 누군가 찾아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 소리만 이따금 들려올 뿐 정작 찾는 이가 없다. 몸은 아프고 심히 고적하다. 인기척을 두고 오죽하면 ‘마음 한 사발/ 엎어지는 소리였다’고 표현했을까?

  우리 모두 나이가 들면서 늙어간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절감하는 이즈음 요양원을 가끔 방문해서 입원해 있는 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무거워질 때가 많다. 머지않은 날의 우리 모습이기 때문이다.

  생각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진다면 그것이 곧 희망이라고 얼마 전 친병 중인 이어령은 말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떠나도 죽지 않는 것이 있다, 라고 하면서 땅을 남기는 것, 돈을 남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죽음 후에도 내 생각이 끝없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지는 것에 대한 희망을 말했다. 즉 순간이지만 영원한 것, 시간을 이기고 환란을 견디며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궁구다. 시조쓰기가 바로 그러한 길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쏟아 부어 최후의 한 편을 남기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곧 영원히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 《쿨투라》 2020년 7월호(통권 7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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