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월평] 새로운 챔버 팝의 시도, 위저의 《OK Human》
[음악 월평] 새로운 챔버 팝의 시도, 위저의 《OK Human》
  • 서영호(음악가)
  • 승인 2021.03.2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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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뮤직이 현대 팝에서 차지하는 지분은 막강하다. 백인적 성향이 짙은 포크나 록은 알앤비, 소울, 힙합 등과 시장을 양분하고 있지 않다. 이전까지 대중음악과 대중문화의 주요 담론을 주도했던 록은 2000년대 초중반 이후 그 지위를 상실하고 주변으로 밀려났으며 오늘날 창법과 비트 등 블랙뮤직의 태도는 다른모든 음악 장르에서 차용되고 있다. 블루스와 소울, 알앤비가 품고 있는 끈적이는 그루브와 필, 유연함 등 블랙뮤직의 원초적 모조mojo는 이 시대 가장 주요한 대중음악의 수사법이다. 특히 소울적인 창법은 장르에 관계없이 활용되고 있는데 이제 블랙뮤직에 익숙해진 그 누군가에게는 간드러지는 꺾기나 음의 벤딩, 소울풀한 애드립이나 추임새 하나 없이는 노래가 밋밋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정도다. 또 당김음이나 스윙필 없는 리듬 구사나 디지털 드럼 사운드가 만들어 내는 도시적 비트 없이는 그루비하지 못하고 촌스러운 것으로 손쉽게 치부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포크나 록의 우직하고 담백한 스트레이트함은 오히려 그런 면에서 오늘날의 청자들로부터 그 음악들이 외면받게 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2021년 2월의 빌보드 앨범차트 역시 2010년대 이후 더욱 강화된 이러한 음악지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올곧은 스트레이트함 위에 간드러지는 기교없이 담백하고 정직한(?) 보컬을 구사하는 음악의 비율은 현저히 작다. 설사 있다 한들 그것은 21세기 이후 저 레트로 열기의 호출에 차트로 다시 불려나와 떠나지못하고 떠돌고 있는 과거의 전설들이 대부분이다. 밴드 퀸과 플릿우드 맥의 《Greatest Hits》 앨범이나 그레이트풀 데드의 선곡집, 메탈리카의 《Metallica》 앨범 등이 그 경우다.

  이러한 가운데 41위로 빌보드 200 차트에 진입한 위저Weezer의 신보 《OK Human》은 몇 가지 면에서 반가운 앨범이다. 먼저 《OK Human》은 앞서 언급한 리이슈성격의 앨범들을 제외하면 차트 50위권 내의 유일한록 음반이라는 점만으로도 신선하다. 상업성에 쉬이굴복하는 대중문화의 트렌드 추종은 그간 온갖 장르의 음악에 블랙뮤직적 요소를 버무리는 현상들을 야기해 왔고 이 중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던 시도들로 범벅된 많은 주류 음악에 대한 피로감이 쌓여왔기 때문이다. 대중의 귀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는다. 그리고 이제는 그 새로움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기보다는 한동안 잊혔던 것들은 오늘에 맞게 소환하는 형태가 대부분임을 우리는 안다. 짱짱한 기타 스트로크에, 화성진행에 딱 맞아 떨어지는 멜로디를 뽑아내 주고 여기에 리듬파트가 단단하고 거칠게 곧장 내달려 줄 때 느끼는 그 청량함과 짜릿함, 그게 바로 록이라는 장르가 주는 미덕이었음을 우리는 잠시 잊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물론 90년대 록 씬의 중요한 결실로 꼽히는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를 패러디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OK Human》이라는 앨범명도 눈을 끌기에 충분하다. 라디오헤드가 물질문명에 대한 디스토피아적 우려를 ‘OK Computer’라는 문구를 통해 반어적으로 뒤틀었다면 위저는 우리가 다시 인간에 집중해야 함을 ‘OK Human’이라는 결의적 태도로 나타낸다.

  그런데 무엇보다 《OK Human》이 특별한 것은 이 밴드가 그간 해오던 펑크록을 전자기타 대신 현악기로 구현하는 챔버 팝 사운드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트링을 중심으로 피아노가 거들고 거기에 섬세하게 양념 쳐진 혼과 오르간 등, 기타가 없이 완전히 아날로그하고 어쿠스틱한 사운드로만 채워진 록 음반은 글쎄, 대략 벤 폴즈의 음반들 이후로 간만이다(실제로 피아노가 비중 있게 등장하는 몇몇 곡들의 사운드는 데자뷰처럼 벤 폴즈의 음악들은 상기시킨다). 그러므로 《OK Human》은 우아하고 섬세한 터치를 더하기 위해 50, 60년대의 전형적인 챔버 팝들이 구사하던 음악들과는 또 다른 형태의 스트링 활용을 시도한다 .

  펑크밴드로서 위저의 사운드에서 전자기타가 차지하던 역할을 스트링으로 대체해보려는 이 시도가 어떻게 음악에 반영되고 있는지는 첫 트랙 〈All My Favorite Things〉에서 화자가 ‘I don’t know what’s wrong with me’를 외치며 후렴으로 도입하는 부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기존의 경우에서라면 드럼의 본격적인 리듬 개시와 함께 전자기타의 거친 다운 스트로크가 공간에 흩뿌려져야 하는 그 순간에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현악기들로 짜인 힘찬 리프이다. 이러한 현악기 활용의 의도는 좀 더 미디엄 업 한 템포로 진행되는 〈Aloo Gobi〉나 〈Grapes of Wrath〉와 같은 트랙들을 통해 비로소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물론 〈Numbers〉, 〈MirrorImage〉, 〈Bird with Broken Wing〉과 같은 발라드 곡들에서 서정성을 고양시키는 스트링의 선율들이 훌륭하게 매칭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또 〈Screens〉와 같은 곡에서 기존에는 통통 튀는 기타주법으로 표현했을 법한 리프는 피치카토를 활용한 첼로 사운드와 피아노의 제창으로 표현함으로써 캐치한 여느 어쿠스틱팝 록들의 흥겨움을 안긴다.

  《OK Human》이 고전적인 챔버 팝 음반들과 다른 지점을 지향하고 있음은 드럼의 음향처리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비치 보이즈나 비틀즈, 사이먼 앤 가펑클 등의 챔버 팝 음악에서 드럼은 오케스트라의 섬세함을 폭력적으로 뭉개버리지 않도록 그 무게감을 가볍게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OK Human》에서, 비록 몇몇 곡에서는 눈치 없는 드럼이 너무 앞으로 나서는 바람에 스트링의 섬세한 얼개를 즐기는데 꽤 방해되기도 하지만, 확실히 〈Screens〉와 같은 곡에서는 팍팍 꽂히는 드럼 비트의 즐거움을 함께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스트링을 쓰되 록의 다이내믹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운드 구성의 의도를 엿볼 수 있으며 그 결과물에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팬데믹이 야기한 락다운 체제가 제공한 이례적 환경은 밴드에게 뜻밖의 기획을 구상하게 하였고 《OK Human》은 그 결과물이다. 그리고 경력 30년을 앞두고 있는 밴드의 노련함은 그 일탈을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성과물로 연결지으며 우리의 플레이리스트를 환기시킨다.


서영호
음악가, ‘원펀치’와 ‘오지은서영호’에서 활동.《쿨투라》 신인상 공모에 ‘영화음악평론’으로 당선. 주요 앨범으로
Punch Drunk Love, 작은 마음 등이 있다.

 

* 《쿨투라》 2021년 3월호(통권 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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