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나마스테!] 내 안에 흐르는 유목遊牧의 피
[조용호의 나마스테!] 내 안에 흐르는 유목遊牧의 피
  • 조용호(소설가)
  • 승인 2019.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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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강석경

  그날 소설가 강석경(63)은 몽골 초원 게르에서 이른 아침에 나와 소젖을 짜다 급히 마중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초원의 빛을 닮은 털스웨터에 긴 꽃무늬 스카프를 걸쳤다. 목소리가 높고 맑다. 그가 안내한 곳은 경주 삼릉 소나무 숲 인근 식당이었다. 통유리 바깥으로 진홍의 맨드라미들이 피어 있고 그 너머 소나무들이 원경으로 보이는, 빛이 좋은 공간에 그녀가 앉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싱싱한 느낌이었고 얼굴도 촉촉해 보였다. 몽골에서 돌아온 지 겨우 열흘 남짓이어서인가. 그는 ‘어스름이 깔리는 초원에서 초로의 여인이 사명인 듯 소젖 짜는 광경은 밀레의 만종에 그려진 기도하는 농부보다 더 성스러웠다’고 잡지 연재 글을 쓰고 나온 터였다. 문화예술위원회 해외작가 레지던시 지원 프로그램 일환으로 3개월간 몽골에 체류하다 지난달 말 귀국했다. 

  강석경에게 몽골은 유목민의 본향으로 언젠가는 꼭 가봐야 할 영혼의 뿌리 같은 곳이었다. 그는 신라의 고도 경주에 정착한 뒤 비로소 자신에게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했다. 그 이전까지 그는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세월을 살았다. 외국에 나갔다가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바로 돌아서서 다시 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이 땅의 공기에 미만한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국사회 곳곳에 배치돼 있는 정신적 독재자들, 완고한 가부장제, 여성들조차 한 몫하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으로 왜곡된 가족주의’가 숨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그가 경주에 정착한 지 20년이고, 등단시점으로 따지면 40년째다.
  “경주가 주는 환상은 작가인 내게 영감의 원천이고 흑백 같은 유적지들은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나는 능을 오가며 삶을 해독했고 그 결실인 산문집 『능으로 가는 길』을 알처럼 나를 품어준 경주에 바쳤다. 내 속에도 목초 냄새 나는 자유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신라 고도 경주에 와서야 알았다. 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은 근원으로의 회귀이다.”

  강석경은 처음으로 인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이 땅에서 가장 인도와 비슷한 공간이 어디인지 탐색하다 경주를 떠올렸고 1994년 내려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가 처음 경주를 느낀 것은 그보다 10년 전 토우를 만드는 고 윤경렬 선생을 인터뷰하러 내려왔다가 도심 속 높은 무덤들을 접하면서였다. 삶과 죽음이 어우러진 인류학적 근원이 그녀의 가슴에 깊이 스며들었다. 이후 그는 이곳을 배경으로 『내 안의 깊은 계단』, 『미불』 같은 장편을 썼고 『능으로 가는 길』, 『경주 산책』 같은 에세이집도 펴냈다. 그의 경주 사랑은 오롯하고 깊다. 최근 그가 펴낸 『이 고도를 사랑한다』(난다)는 그 사랑의 결정판인 아름다운 책이다. 화가 김성호의 깊은 유화와 더불어 음악같은 에세이에 실용적인 정보도 곁들여 만든 책이다. 맨드라미 꽃밭 너머 ‘소나무 정원’ 유리창으로 비껴드는 빛속에서 그녀가 말했다.

“인도에 다녀온 이후로 많은 곳을 떠돌았습니다. 인도 여행에서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만큼 많은 걸 깨달았어요. 대부분 인도는 영적 스승을 찾아서 가지만 나는 인도의 자연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인도 다음으로 그리스와 이곳 경주가 내 안의 스승입니다. 제우스가 구름으로 변신해 흘러가는 듯한 그리스에서는 가는 곳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주는 인도, 그리스와 닮은 내 영혼의 정착지인 셈이죠.”

  그녀가 책에도 소개한 식당 ‘소나무 정원’에서 나와 삼릉 소나무 숲속을 걷기 시작했다. 짙은 녹색 이끼가 곰팡이처럼 피어 있는 돌다리를 지나 숲으로 접어들자 가느다란 몸피를 다양하게 비트는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다. 사진작가 배병우의 그 유명한 소나무숲 사진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과연 찬탄할 만한 잘 버틴 생명의 깊은 숨결이 싱싱하게 배어있는 호젓한 숲길이었다. 파인더 속에서 젊은 시절 『숲속의 방』으로 장안의 지가를 올렸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디에도 속하기 힘들었던 청춘 ‘소영’이라는 여대생은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다 자살하고 만다. 공교롭게도 1986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이 소설이 출간된 지 두 달 후쯤 서울대 국문과 4학년 여학생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심경을 유서처럼 남기고 한강 다리에서 투신하면서 이 소설은 급격한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라 베스트셀러는 물론 연극 영화 무용으로까지 화려한 각광을 받았다. 강석경이라는 이름을 문단은 물론 대중에까지 깊이 각인한 출세작이었다. 

  『숲속의 방』이나 『내 안의 깊은 계단』 같은 강석경의 대표작들에는 죽음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성장기 그녀의 여동생과 언니의 죽음이 트라우마로 작용했던 듯하다. 그가 좋아하는 인도의 ‘바라나시’라는 도시도 갠지스 강가에서 화장을 하는 죽음의 장소이고, 사실 경주 또한 천오백년 세월 동안 이즈러진 무덤의 곡선으로 아늑하긴 해도 죽음이 연상되는 곳이다.

  소나무숲의 행복한 피톤치드 세례에서 아쉽게 빠져나와 빈 들판에 거대한 능이 솟아 있는 황남동으로 나왔다. 그가 책에서 소개한 커피숍 ‘프리 쉐이드’에서 메타세쿼이아와 능들이 펼쳐진 하오의 흐린, 먼 죽음의 인류학적 죽음의 풍경을 지켜보다가 다시 길을 떠났다. 강석경의 벗이 몰고 나온 작은 승용차로 빗방울 뿌리는 붉은 단풍 국도를 달려 ‘기림사’로 갔다. 예전에는 불국사가 이 사찰의 말사였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고요한 『삼국유사』 속 유서깊은 절이었는데, 지금은 불국사의 말사라고 했다. 오히려 더 깊은 영성이 깃든, 쓸쓸한 단풍의 마지막 배웅지처럼 아늑했다. 차 안에서 강석경에게 “혹 천년 전쯤 이곳 신라의 공주였을까” 물었다. 그녀는 “공주의 시녀였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여자로 태어나고 싶지는 않다”면서 “그 시절 내가 어느 화랑이었을지 아느냐”고 덧붙였다. 강석경은 다시 태어난다면 북구에서 거기 스웨덴 금발 여자들, 서양 남자들의 판타지라는 그 미녀들과 세 번쯤 연애하고 한국에 와서 출가하고 싶다고 했다.

  “내 속에 흐르는 유목의 피가 신라와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행운이었어요. 나는 경주 시민이라기보다 신라인이라는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신라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방황하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았을겁니다.”

  강석경은 경주가 ‘문화재’는 많지만 ‘문화’가 결핍된 게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경주가 아니라 서울에 살았어도 서울시민이라는 정체성은 쉬 지니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 자주 사표를 던졌듯이 『숲속의 방』 여주인공처럼 그녀는 어디든지 깊이 스며들지 못하는 경계를 살았다고 했다. 신라의 고도인 만큼 경주 공무원들은 진부한 마인드로부터 벗어나 문화까지 살리는 고감도 역량을 발휘해주기를 그녀가 바라는 건 무망할까.

  기림사에서 돌아오는 길은 해가 떨어져 어두웠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으로 지친 붉은 단풍나무 가로수들만 환하게 살아났다. 경주 시내로 다시 들어왔을 때 김유신과 무열왕과 황남동을 가리키는 사거리의 표지판이 첨성대 야경을 배경으로 반사됐다. 지구의 독생자처럼 헤맸으나 경주에 와서 비로소 신라라는 정신의 고향을 찾았다는 강석경. 그녀에게 이제 『숲속의 방』은 사라진 지 오래다.

 

 

* 《쿨투라》 2019년 6월호(통권 6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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