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오늘의 문화예술과 네오르네상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 대담
[2018 오늘의 문화예술과 네오르네상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 대담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8.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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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있는 소재·주제에 나문희 선생의 인생 연기 돋보여
평론적으로 천시 받는 경향이 있어도, 로맨틱 코미디가 좋아
김현석 감독

  전찬일(이하 전): 『2018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최고의 한국영화로 선정된 <아이 캔 스피크>의 김현석 감독을 모셨습니다. 일단,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 축하도 드립니다. 당사자는 별 감흥 없을지 모르지만 전년도에 선보인 수백편의 한국영화, 외국영화들 중 각 10편이 선정됐고, 영화 평론가, 영화기자, 그리고 문학 쪽 등등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의해 선택됐다는 점에서 꽤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또, 그 인원이 거의 백 명에 달하기 때문에 사실 선정이 상징적이며 대표적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택시운전사>, <남한산성>, <1987> 등 쟁쟁한 경쟁작들을 물리치고 <아이 캔 스피크>가 2017년 최고 한국영화로 뽑혔다는 것은 저한테도 굉장히 특별하고 남다르게 다가왔어요. 어때요? 그 소식을 저랑 인터뷰 일정 잡으며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너무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웃음)

  김현석(이하 김): 아, 제가 말투가 그래요. 말투가 시큰둥하다고 할까요. 지금 언급하신 작품들 다 저도 좋게 봤고요. 사실 감독인 제게도 <아이 캔 스피크>는 약간 역부족인 듯한 결함이 있어요. 완성도 측면에서. 공교롭게 앞에 언급하신 작품들이 다 100억대 이상의 영화잖아요? 저희 영화는 30억대예요. 요즘 기준으로 ‘작은 영화’라 감독으로서는 아쉬운 점이 있죠. 기술적 완성도라든지 이런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어요. 지금 다시 봐도 결함들이 보이지만 그런 것을 덮어주는 장점을, 미덕을 봐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남한산성>, <1987> 같은 경우는 영화적으로 훌륭하잖아요. 연출적 측면에서 보면 더 꼼꼼하고 세련됐다고 생각해요. 사실 부럽죠. 제 작품은 영화의 소재든 주제든 의미도 있고 나문희 선생님의 인생연기도 있고, 복합적으로 봐주신 듯하네요.

  <아이 캔 스피크>는 30억대 후반, 저예산 영화

  전: 김감독께서 인터뷰의 결론을 다 말해주셨네요. (웃음) 지금 말씀하신 것들을 하나하나 깊이 있게 짚어 가면 아주 멋진 인터뷰가 될 것 같네요. 사실 감독으로서 자기 영화의 어떤 결함, 부족함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제가 영화평론을 이십 수 년 간 해왔습니다만, 그렇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경우는 별로 없었죠. 상대적인 저예산, 예로 든 다른 영화들이 100억대 영화들이었다면, 이 영화는 30억대, 제가 알기로는 순제작비가 39억인가 그런데?

  김: 30억대 후반이에요. 시작은 35억으로 했는데 조금 오버했죠. 

  전: 자료를 보니 39억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러면 영화의 결함들이, 감독으로서의 역량 부족 같은 것들이 상대적 저예산 같은 요인으로 인한 결과라고 느끼는 겁니까?

  김: 복합적입니다. 일단 <아이 캔 스피크>는 명필름이 공동제작사고요, 영화사 ‘시선’이라는 데서 개발을 했고, 이런 얘기를 지금 해도 되는지 모르겠으나, 저 이전에 다른 감독이 있었어요. 

  전: 그런 얘기 뭐, 나쁜 얘기는 아니니까…

  김: 표류하던 프로젝트였던가 봐요. 3년 정도. 그러다가 명필름이 공동제작으로 붙으면서, 패키지로 다시 만들어 저한테 의뢰를 한 거죠. 저는 원래 다른 회사 시나리오를 잘 안 받거든요. 제가 직접 쓰기 때문에 잘 안 받는데, 명필름과는 친분도 있고 해 거절하다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봤더니 공동제작이더라고요. 지금 2월인데, 제가 시나리오를 받은 게 2016년 12월이었어요. 1년 3개월 전이죠. 그리고 2017년 1월 2일에 첫 출근을 했어요. 근 1년 전에. 1월 2일에 첫 출근을 했고, 지금 1년여가 지났는데 영화가 개봉된 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네요. 영화는 3월 말에 크랭크인했어요. 1월, 2월, 3월…그러니까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죠, 크랭크인하는데. 두 달 반정도 각색한 거고요. 애초에 저한테 명필름으로부터 이 영화는 무조건 3월에 촬영이 들어가야 하고 예산은 처음에 34억인가 정해져 있고, 결과적으로 추석 연휴에 맞춰 9월에 개봉됐지만 8월 광복절에 상영할 수 있게 납기일을 맞춰 달라는 요구가 있었어요. 제 영화 중에는 <쎄시봉>(2015)이 순제 65억이 들어가 가장 큰 영화였지만, 요즘 기준으로 블록버스터 급은 아니죠.

  <광식이 동생 광태>(2005)나 <시라노: 연애 조작단>(2010)은 작은 영화들이었고요. 20억대 정도 들어간. 그래 <아이 캔 스피크>의 규모는 마음이 편했고, 나름 의욕이 있었죠.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또 제가 재작년에 중국영화 준비하다가 허송세월해서 현장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두 달 반 각색하고 빨리 촬영에 들어가니까 그런 재미는 있었는데 참 힘들더라고요. 그래서일까 제가 앞서 말씀드린 내러티브적인 결함이 있어요. 제가 최대한 제 방식으로 바꾸기는 했는데, 애초에 다소 관성적인 면, 예를 들어 용팔이 철거 시퀀스라든지 그런 것들이 좀 쉽게 풀려 있더라고요. 결국 그것은 못 바꿨는데, 철거나 재건축 같은 문제를 바꾸려고 하면 영화의 큰 틀을 바꾸는 거라 무리겠더라고요. 시간이 있었다면 그것을 드러내고 다른 부품을 넣었을 텐데 주어진 기간에는 힘들었죠.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저랑 안 맞는 것들을 들어내고 제 식으로 만드는 거였죠. 가령 위안부 소재를 코미디로 푸는 것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이 매력을 못 느낄까봐 좀 두려웠었죠. “괜찮긴 한데, 이걸 코미디로 풀어도 되겠어?” 등 소재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죠. 그래도, 저는 <스카우트>(2007) 같은 영화도 해봤고 해서 자신이 있었어요. 근데 막상 각색을 하다보니까 최대한 짧은 시간 내에 제 색을 입혀야 되는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은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 것들은 인정하고 나중에 장점으로 덮자는 생각을 했어요. 또한 코미디 코드를 최대한 제 식으로 바꾸려고 했고, 영화 70분 지점에서 갑자기 영화가 다른 느낌으로 가니까 그 변곡점에 최대한 이물감 들지 않게 하는 것, 그게 되게 어렵다고 생각했던 건데, 거기에 승부를 걸었어요. 한국영화 되게 뻔하다는 공식, 즉 초반에는 웃기다가 나중에 감동 주겠지, 하는 것이 관객들의 선입관이잖아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 있었지만, 그 관성적인 느낌을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마침 이 영화도 그렇고 다른 영화에서 썼던 코드들이 살짝 1차원적이라기보다는 약간 느슨하고 반 템포 느리고, 제 식의 코미디 호흡이 있는 거 같아요. 제 코드를 입히면서 앞부분을 톤다운 시키는 효과도 있었고요. 결과적으로 보면 아재 개그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무리수일 수도 있었는데, 잘 넘어가서 나중에 결과를 보고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런 내러티브 상 성긴 구조 같은 거는 어떻게 해볼 수는 없겠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렸지만 ”결함들을 최대한 장점으로 덮자“, 그랬던 것 같아요.

  프로덕션적인 것은 예산의 한계가 있죠. 요새는 뭐, 100억 짜리 영화도 큰 영화라는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한 200억은 돼야 큰 영화라고 할까요. 게다가 저희 영화엔 해외 프로덕션도 있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기특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미국 촬영 때는 너무 힘들었거든요. 감독들이라면 내러티브나 시나리오적으로는 비용이 덜 들어가게 어떻게든 해결을 할 수 있는데,
화면에 나오는 기술적인 거는, 블록버스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잘 해내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죠. 예산이 크면, 특히 미술이나 촬영은 정말 예산이랑 직결이 되잖아요, 블록버스터의 세계관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모든 감독들이 비슷할 거예요, 쓸 데 없는 돈이 아니라 필요한 돈은 쓰고 싶다는 생각은 할 거에요.

  전: 만약에 예산이 넉넉했더라면, 그래 이 영화를 보완 내지 보강한다고 하면 미국에서의 로케이션 부분입니까? 제가 볼 때 미국 의회 시퀀스는 정말이지 예산 부족 같은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멋지게 다가왔거든요, 개인적으로.

  김: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미쳤나 봐요. 그 때는, 콘티대로는 못 찍었어요. 정말 다행이었던 게 미국의 실제 배우들이 훌륭했어요. 예산이 작아, 미국 가서 최소한으로 워싱턴 외부는 하루 정도 찍고, 내부는 그냥 한국에서 한국에 있는 외국배우들 최대한 끌어 모아 해볼까 그런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그렇게 되면 서프라이즈 식의 영화가 될까봐, 그리고 국내의 내부 세트에서 구현할 수 없는 묘한 워싱턴만의 분위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어요. 그래 무리해서라도 생생한 현장감을 위해, 워싱턴 의회를 섭외하고자 했어요. 하지만 그곳은 공간적으로 너무 좁은 등 치명적 문제점이 있어 워싱턴 의회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장소를 물색했죠. 그러던 중, 시나리오를 좋게 본 미국 버지니아주 영상위원회가 적극 나서줬고,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200년 된 실제 의회에서 촬영을 할 수 있었죠.

  헌데 영화의 맛을 제대로 재현하려면 돈이 많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잘 풀렸지만, 미국 프로덕션 쪽은 정말 문제가 많았어요, 프로덕션적으로. 그래서 그냥 정말 한국식으로 해결했어요. 영화를 잘 보면 미국 측 움직임이 없어요, 화면의 움직임이. 트랙을 못 썼어요. 트랙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트랙으로 했으면 시간 안에 못 찍으니까, 정말로 카메라 두대를 등지고 찍었다니까요. 조명 무시하고, 없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 근데 미국 현지의 실제 배우들의 연기가, 비록 짧게 나오긴 하나 그 분들의 연기가 깊은 맛이 있고 좋았어요. 그래도 돈이 더 있었으면 조금 더 프로덕션이 여유 있게 진행되었을 텐데…현장이 힘들었던 거죠.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아니긴 하지만, 예산이 그런 거랑 관련 있잖아요. 저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그렇고, 테이크를 많이 가는 편은 아니긴 하나, 이번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정말 다행인 게, 역시 천하의 나문희 선생님이었다는 거죠. 만약에 좀 부족한 연기자였으면 정말 힘들었겠죠. 그리고 연륜이 많으신 선생님들이 촬영 횟수 많은 걸 싫어하시잖아요.

  전: 네, 사실 나문희 선생님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깊이 있게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조금 있다 다시 말하기로 하고…인터뷰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매우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웠던 게, 김감독께서 말씀하신 그런 점들 때문이에요. 변곡점 얘기를 하셨는데, <쎄시봉>도 그렇고 김현석 감독이 드라마를 투 파트 구성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 감독이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오늘 <아이 캔 스피크>와 <쎄시봉> 중심으로 인터뷰를 할 텐데, <쎄시봉>도 보면 20대의 이야기와 40대 이야기가 맞물리죠. 영화 70분 이전에 나문희 캐릭터 즉 옥분이 사실은 위안부라는 것을 일찌감치 알려주고 전개되었더라면, 영화가 훨씬 더 강한 임팩트를 줬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손숙 선생이 연기한 정심 할머니를 통해 어렴풋이 짐작을 하게는 되지만, 그런데 너무 시치미 뚝 떼고 그저 도깨비 할머니로 그렇게 몰아가다가 반전식으로 급작스러운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이 영화 전문가인 나한테는 다소 촌스럽게 다가왔던 거예요. 그래 그 두 파트가 좀 어색하다,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차라리 전반부부터 언더 톤으로 그 사실을 깔아주면서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모르더라도 관객들은 그걸 미리 알고 가슴 졸이면서 언제 저 사실이 드러날까, 그렇게 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죠. 그래 이 영화를 좋아는 하면서도 계속 고민을 했어요. 평론가로서 내게 2017년 최고 한국영화는 뭐냐를 계속 고민한 거죠. <1987>을 보기 전까지는, 그 후보작들은 <아이 캔 스피크>, <택시운전사>, <남한산성>이었는데, 이 세 편 중 어느 걸 고를까, 고민하다 영화적 완성도, 기술적 완성도로는 아무래도 <남한산성>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김: <남한산성>이 최고죠. 

  전: 그런데 영화적 의의를 보면 <택시운전사>와 <아이 캔 스피크> 중 하나이고…그래 왔다 갔다 한 거예요. 그러다 어떤 영화가 더 길이 남을 영화냐를 봤을 때,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가 조금 더 오래가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 두 비극적 사건 중에서 광주항쟁보다는 위안부 이야기가 더 관심을 끌어야 마땅한 게 아닐까, 싶었던 거랄까요. 마침 2년 전에 선보인 <귀향>도 있고. 그래서 <아이 캔 스피크> 쪽으로 최종 선택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어느 날은 <아이 캔스피크>, 어느 날은 <택시운전사>, 어느 날은 <남한산성> 그러면서 왔다 갔다 한 거죠. 그러다 <1987>을 보게 됐고, 최종적으로는 <1987>이 제겐 2017년 최고 한국영화로 귀결됐죠. 그런데 ‘오늘의 영화’ 기획위원들의 최종 회의에서 득표수도 그렇고 종합적으로 봤을 때 <아이 캔 스피크>가 최고작으로 가는 게 더 큰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이 나왔고, 최종 <아이 캔 스피크>로 결론난 거죠.

  요즘 저는 소위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 적잖은 의문을 품고 있어요. 영화평론가로 25년을 지내왔고 82년부터 영화 스터디를 해왔으니, 그 누구보다도 영화적 완성도를 중요시하긴 하나 최근 몇 년 새 그 놈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 근본적 회의를 품고 있다고 할까요. 그게 과연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영화적 완성도라는 것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때깔’이 좋은 게 영화적 완성도냐가 높은 것이냐는 거죠. 그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아이 캔 스피크>는 가슴을 움직이면서 머리 쪽으로까지

  김: <1987>은 사실 거의 완벽한 영화인데, 2017년을 4일 남겨두고 개봉했으니까 그 맛이 더 있을 거예요. 정말 만장일치의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2018년 올해의 영화로 넘어가는 느낌도 있고요. <남한산성>은 감독으로서 정말 부러워요. 김윤석 선배가 감독으로서 하고 싶은 걸 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튼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서 늘 생각을 해보는데, 저도 감독을 한지 15년이나 됐지만, 스스로 제 영화를 판단하자면 영화적 완성도를 충분히 실현하지는 못한 것 같아요. <쎄시봉>도 그래요. 영화적 완성도면에서 보면 기술적 완성도도 그렇고 내러티브도 약간 성긴 구조가 있는 것 같고, <아이 캔 스피크>도 알고도 못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을 떠나서 미덕으로 덮자는 면이 있어요. 야구로 예를 들면 일본 야구랑 미국 야구의 차이가 있는데, 일본 야구는 일본 사회의 결함을 되게 보완을 해요. 너는 그걸 그렇게 하면 안 돼. 그걸 고치라고! 결함을 고치는 쪽이 일본 야구고, 미국 메이저리그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며 장점을 그냥 크게 키우는 쪽인 거죠. 아무튼 완성도가 완벽한 것은 좋은 거더라고요. 이를테면 저도 <남한산성>을 되게 좋게 봤고, 결함이 없는 영화더라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미덕을 위해서 결함을 방관한 것은 아니에요. 영화라면 큰 자본이 투자되고 여러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있고, 더더구나 지금은 한국영화의 시스템이 합리화되는 과정 중에 제약이 심해지니까,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 선택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근데 저는 결함을 1% 줄이는 데 드는 시간보다는 그 시간에 장점을 강화하는 것이, 같은 시간 속에서도 전체적으로 효과적이더라고요.

  전: 그런 게 작금의 심리학 흐름이죠. 이른바 긍정 심리학이 21세기에 들어서 급부상했잖아요. 예전에는 심리학에서 부족한 것들, 개인이든 사회든, 부족한 걸 찾아내서 그것들을 개선시키려고 애썼다면, 오늘날은 결점보다는 장점, SS 즉 시그니처 스트랭스Signature Strength라고 해서, ‘대표 강점’을 찾아 밀어주잖아요. 그 흐름을 상징·대변하는 진술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일 테고요. 그러니까 아무리 완벽하게 하려고 해도 인간은 완벽하게 무엇을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까 그 결함들에 집착하느니 오히려 장점들을 살려서 그런 방향으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 걸 테고, 저도 그 놈의 영화적 완성도에 대해서 계속 고민을 하게 돼는 거예요. <1987> 이전까지는, 2017년 개인 최고작으로 <남한산성>을 꼽을까도 싶었는데, 결국에는 아니었죠. 이윤즉슨 <남한산성> 관련 특강도 하고, 그 특강을 준비하면서 명지대 사학과 한명기 교수가 쓴 역저 『병자호란 1 - 역사평설』과 『병자호란 2 - 역사평설』 두 권을 정독했는데 그 책들을 읽고 보니 영화 <남한산성>에서 인조에 대한 묘사가 너무 단선적이고 문제가 많더군요. 공부를 하며 영화를 보니, 보이지 않던 영화의 결함들이 많이 보인 거죠. 영화 <남한산성>이 영화의 기술적인 테크닉, 완성도 면에서 최고라는 것에 대해 부인할 생각은 없어요. 한국영화평론협회에서 2017년 그 영화에 영평상 감독상과 작품상을 다 몰아줬잖아요. 그게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싶었는데,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감독 본인도 인정했듯, <남한산성>에 비해 떨어진다고 평가돼온 <아이 캔 스피크>가 최종적으로 2018 오늘의 영화 최고 한국영화로 뽑혔어요. 그것은 여러 질문들을 던지게 하죠. 완성도보다 더 중요한 것을 우리가 놓친 건 아니었을까? 머리 즉 지적인 판단 외에 가슴을 움직인다는 면에서 봤을 때, 정서적 측면에서 봤을 때 <남한산성>이 가슴을 후벼 파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머리에 어떤 자극을 주는데 그쳤다면, 이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가슴을 움직이면서 머리 쪽으로까지 간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음악이건 영화건 때로는 기술적 완성도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수용자의 가슴에 다다른다면 그것이 그렇게 큰 흠이 될까,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 거죠.

  김: 당연한 고민일 수 있는데, 비용이나 시간적 제약 등 때문에 그렇지 의도적으로 기술적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싶은 감독은 단 한 명도 없을 거예요. 그런 제약에 상대적으로 덜 좌지우지 되는 게 예산이 작은 영화들이잖아요. 2017 오늘의 영화 최고 한국영화가 <동주>였다면서요? 이준익 감독님이 어떻게 보면, 저랑 비슷하실 거예요. 미술 같은 거 설렁설렁, 배우 위주로 빨리 빨리 찍으시죠. 얼마 전에 배우 엄지원를 만났는데 저랑 이준익 감독님이 비슷하대요. 우스개로 설렁설렁 찍는다고. 아무튼 근데 모든 감독들이 완성도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리고 좀 전에 머리와 가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나는 가슴 포기할래”, 그런 감독 있겠냐고요? 둘 다 만족시키고 싶은데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거겠죠. 또 그런 영화가 없지는 않잖아요, 머리와 가슴을 다 만족시키는 영화? 개인적으로 저는 <1987>이 머리와 가슴을 다 울리는 그런 영화인 것 같아요…

  좋은 영화가 무엇이냐

 
 전: 그래서 저는 영화 평론가로서 좋은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며, 여러 가지 답변이 가능은 하겠지만, 인간이 크게 머리, 가슴, 몸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구체적으로 말초적인 반응까지 포함해 감각적 자극을, 가슴으로 정서적 감흥을, 그리고 머리로 지적인 고양을 종합적으로 두루 안겨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말하고 쓰곤 하죠. 사실 서구의 정통적 영화 비평은 주로 머리를 때리는 영화를 높이 평가해왔죠. 대표적인 게 오손 웰즈 감독의 <시민 케인>(1941)일 텐데, 지난 수십 년 간 1960년대 이후로 영국의 영화 전문 월간지 《사이트 사운드Sight and Sound》가 선정해온 역대 최고 영화라고는 하나, 저는 그렇게 여기질 않죠. 그 영화는 지나치게 머리로만 자극을 주지, 가슴을 움직이거나 몸에 안겨주는 게 별로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죠. 저는 그 영화보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라든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1999)이나 <그녀에게>(2002)를 더 좋아하죠.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은 정말이지 몸을 전율 시키면서도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큰 감동과 지적 자극을 선사하죠. 그의 영화들은 도발 그 자체이면서도, 묘한 깊은 감동을 안겨주죠.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제 내 생애의 감독 중 한명인데, 저는 일찌감치 그렇게 영화에 접근을 해왔죠. 그런 식으로 접근을 하면 <아이 캔 스피크>도 그런 영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끊임없이 위안부 이슈를 상기시키면서 “아, 위안부 이슈를 이렇게 접근할 수도 있구나.”하는 게 가장 높은 평가를 받게 한 요인이라고 보는데, 그러면서도 또 볼거리도 적잖고 가슴을 움직이는 지점들도 많죠. 막 웃게도 되고 눈물 흘리게도 되고…그런 점에서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데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죠. <1987>을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지만, <아이 캔 스피크>가 최종적으로 2017년 최고 우리영화로 뽑혔을 때, 어떻게 보면 베스트 초이스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했죠. 김감독과는 15년여 전에 <YMCA 야구단>(2002) 때 만나고 그 이후 한 번 정도 더 만나긴 했으나 무척 오랜만에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영화평론가인 전찬일과 감독인 김현석의 고민이 상당히 닮은 데가 있어 더 반갑네요.

  김: 저도 데뷔 작품을 할 시기에는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꼼꼼하게 했는데, 사람은 기질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냥 내가 제일 편한 걸 하자. 왜냐하면 제가 꼼꼼하지 않으니, 영화도 그리 꼼꼼히 찍지는 않더라고요. 인생도 막 살고…(웃음) 제가 수학과 연관된다는 좌뇌를 잘 안 써요. (웃음) 입봉하기 전이나 감독 초반에는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그런 영화를 해야지 마음먹었죠. 폼 나는 거, 멋있는 거, 그런 거. 박찬욱 감독님의 영화는 정말 멋있잖아요. 그러다가 그런 영화들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구나! 그냥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 영화를 찍자, 이렇게 방향 전환을 했죠.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지금 오히려 더 편해요.

  김: 그리고 장선우 감독과 박광수 감독은 90년대 한국을 대표했던 쌍벽이었죠. 헌데 박광수 감독은 영화적 완성도를 너무 따진 나머지 <칠수와 만수> (1988) 외에는 가슴을 움직인 영화가 없었어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경우는 영화를 보고 마구 화가 났어요. “아니, 그 시대의 남루함을 멋진 미장센으로 포장해버리면 어떡한다는 거지?” 같은 게, 제 화의 요지였죠. 아마 서울대 미대를 다니며 형성된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드라마와 조화를 잘 이루지 못한 것 아닐까, 싶더군요. 그러고 보니 박광수 감독님은 지금 뭐하며 지내시는지 모르겠네요.

  전: 지금은 교수를 하며 바쁘게 지내고 계실 텐데, 어떤 영화가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50대 때 이미 퇴장의 분위기 만들어버렸어요. 1990년대를 한국영화계를 대표했던 감독이, 2000년대에는 몇 편 만들었어도 기억에 남는 영화 한 편 제대로 없다는 것이 참 안타까운 일이죠. 또 생각나는 감독이 윤제균 감독인데, 본인이 직접 말하길, 자기는 연출이건 기획·제작이건 공히 성공률이 90%라고 하더군요.

  김: <낭만자객>(2003)은 빼고요.

  전: 그렇죠. <낭만자객> 빼고는 거의 다 크고 작은 성공을 거뒀는데, <낭만자객>의 실패가 그 이후의 윤제균 감독을 만들어 준 거라고 할 수 있죠. 제가 그 영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평론을 썼었는데, 그해 칸영화제에서 윤감독을 우연히 만났을 때, 인사를 꾸벅 하더니 그러더군요. 윤감독 본인도 저의 <낭만자객>에 대한 비판을 수긍하긴 하나, 자신은 ‘쌈마이 영화’가 좋고, 그것 밖에 못 만든다고요. 그 영화에 대해 너무 센 비판을 해서인지 약간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그 때부터 윤감독을 인정하게 됐고, 친해지기도 했죠. 결국 감독은 자신이 잘하는 영화를 하게 되는 거란 말이죠. 그래서 질문하고 싶은 것이, <YMCA야구단>과 <아이 캔 스피크> 사이의 영화들이, 나쁘고 좋고를 떠나, 너무 가벼운 것이 아닌가, 그래 영화평론가로서 관심이 덜 가는 영화들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떤가요? 더구나 <아이 캔 스피크>의 감독이란 것을 생각하면 연결이 더더욱 안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결국 질문은 이겁니다. 코미디로 풀고싶어 하는 영화적인 지향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었나요?

  저는 원래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요.

  김: 살아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저는 원래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요. <아이 캔 스피크> 이전의 대표작이 <광식이 동생 광태>와 <시라노;연애조작단>인데, 둘 다 ‘중박’은 했고, 그 영화들에 자부심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평론적으로는 관심 밖이고 천시 받는 경향이 있지만, 저는 로맨틱 코미디가 좋아요.

  전: 1990년대 한때는 <결혼 이야기>(1992)를 계기로 로맨틱 코미디의 시대가 있었는데, 그 흐름이 약해지고 거의 사라진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김: 관객층이 젊어지고 세대교체도 이루어진데다, TV에서 이미 로맨틱 코미디가 넘쳐나기 때문에 굳이 극장에 가서까지 그것을 볼 필요를 못 느껴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미 예전부터 로맨틱 코미디 자체가 작은 예산이 들어가고 기획 자체가 작다 보니 캐스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죠. 좋은 배우들은 작은 영화, 로맨틱 코미디를 안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헌데 로맨틱 코미디의 진정한 대가는 홍상수 감독님이죠.

  전: 로맨틱 코미디가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유감이라든지, 다시 살려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나요?

  김: 저는 쓸데없이 진지하게 되는 것을 싫어해요. 하지만 농담을 하고 유머를 한다고 그 사람이 진지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아이 캔 스피크>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코미디로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제가 제일 잘 하는 방식을 택한 거고, 그럴 거예요. 로맨틱 코미디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아쉽긴 하죠. <열한시>(2013)를 찍었을 때는 멜로 감정도 잘 안 나오고, 스릴러가 유행할 때 나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인데, 그 경험을 통해 “시류를 따라가지는 말자, 잘하는 것을 하자”고 확신을 하게 됐죠. 저는 1,000만 관객 영화를 위해 100억짜리 예산의 영화를 하며, 제가 하고 싶지 않은 코드를 잡고 싶진 않아요. 중간 예산 정도의 영화라도 제 코드의 영화를 하고 싶어요. 그리고 산업적으로는 천만 영화가 2편 나오는 것보다 2~300만 영화가 5편 나오는 시장이 바람직하다는 말이 있는데, <아이 캔 스피크>가 그런 영화의 성공에 일조를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해요.

  전: 우리나라에서 전통적 장르로는 코미디, 액션, 멜로 이 세 개가 있는데, 지금 한국 영화 시장에서는 코미디와 멜로가 힘을 못 쓰고 있어요. 그것을 의식을 했든 안 했든, <열한시> 같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김감독은 줄곧 그 장르의 영화들을 연출해왔으니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거예요. <아이 캔 스피크>도 큰 의미에서는 멜로드라마틱한 영화로 볼 수 있는데, 코믹하게 풀어내면서 300만이 넘는, 의미 있는 ‘중박’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였다고 할 수 있죠. 본인의 장기를 잘 살려서 더 큰 성공을 얻어내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은 아닐 듯하고, 그 길을 계속 걷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 코미디의 생명은 페이소스라고 여기는바, 웃으면서도 눈물이 나는 영화, 예를 들면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 같은 영화가 그런 경우인데, 대중적 성공의 기준을 500만 관객이라고 잡으면, 1,000만 관객은 얻어내기 힘든 스코어죠. 특히 한국에서 코미디 쪽은 더요. 그래 이 장르에서 큰 흥행을 하려면 코믹에 더해 큰 감동도 안겨주는 영화가 되어야 할 것이고, 이런 영화를 언젠가 김감독이 만들어낼 것이라 개인적으로 기대를 해봅니다. 다음 준비하는 영화는 어떤가요? 계속 걸어온 길을 가겠죠? 아니면 변신을 할 생각인가요?

  김: 변신하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잘하는 것, 즐거운 것을 계속 할 겁니다.

  전: 어떤 영화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너무 서둘러서, 영화에서 급하게 한 흔적이 보이는 것도 있어요. 대표적으로 연상호 감독의 <염력>(2018)인데, 이 영화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너무 서두른 흔적이 역력했고, 특히 <신과함께-죄와 벌>(2018)의 CG(컴퓨터 그래픽)와 너무나도 비교가 되어 비판을 모질게 받았죠. 그렇게까지 비판을 받을 영화는 아닐 텐데, <부산행>(2016) 감독의 차기작이 이 정도라는 것을 관객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기대치를 배반한 것에 관객들이 비난을 퍼붓게 되고, 100만 관객에도 못 미치며 영화는 막을 내렸죠. 그래서 그 때 저는, 한국 관객들 정말 잔인하다, <부산행> 감독의 영화를, 2~300만도 아니고 100만 관객도 채 보지 않다니, 라고 생각했죠. (웃음) 그에 반해 <아이 캔 스피크>는 서두르며 찍었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어요. 헌데 인터뷰하며 들어보니 서두르며 찍었다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 서두른 것이 아니라, 납기일이 정해져있어서 오히려 의욕적으로 찍었어요. 여건의 한계가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해요. 왜냐하면 주구장창 긴 작업은 창작자를 지치게 하니까요.

  전: 8.15 광복절에 개봉할 수도 있었다는 말을 앞에서 했었죠. 요즘은 영화평론가로서 평론보다는 기획에 관심이 가는데, 결국 영화의 흥행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타이밍과 기획이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저는 <아이 캔 스피크>가 만약 더 빨리 만들어져서 광복절에 개봉했다면 500만은 물론이고 6~700만 관객도 달성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 영화감독은 구두 장인이라 생각해요. 나는 만들었으니 유통사에 넘긴다. 그럼 알아서 잘 팔 것으로 생각하며,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거죠. 그런 것을 생각한다고 더 잘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하는 쪽이 마음이 더 편해요. 15년간 영화를 하다 보니 이런 면에선 성숙하게 된 것 같네요. 그리고 어차피 요즘엔 감독에게 개봉 날짜를 물어보지도 않아요.

  위안부 소재에 대해

  전: 위안부 소재가 쉽게 다룰 수 있는 건 아닌데,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위안부 이슈에 대한 부담은 없었습니까? 명필름과 여러 편을 같이 작업하다보니 그냥 받아들인 건가요? 아니면 평상시에 위안부 이슈를 자신의 방식으로 다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나요?

  김: 위안부 문제에 관한 관심이 처음부터 있었다기보다, 이런 문제를 이런 식으로 돌려서 얘기할 수 있다는 것에 의욕이 생겼습니다. <귀향>처럼 정공법으로 다룬 영화 제안이 들어왔으면 흥미를 느끼지 못했을 거예요.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할지라도 말이죠. 저는 원래 직설화법을 싫어하는데, 물론 주구장창 농담만 하는 사람은 실없는 사람이지만, 농담처럼 얘기하지만 진심이 들어있는 걸 좋아해요. 즉 화술로써 농담을 활용하는 것을 좋아하므로 <아이 캔 스피크>의 방식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전: 화술로써 농담을 이용한다? 사실 한국영화 뿐 아니라 한국예술계에서 부족한 것이 그런 거고, 소설가 박민규가 그런 식의 엉뚱한 방식을 쓰는데, 한국 관객, 독자들이 그런 걸 못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긴 하죠. 그런 점에서 한국관객들의 수용의 외연을 넓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고 봐요. 흥미로운 점은,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 둘 다 위안부 이슈를 다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뤘다는 거죠. 헌데 만약 <귀향>이 없이 코미디 분위기의 <아이 캔 스피크>가 나왔다면 지금과 같은 호평을 받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귀향>은 상당히 무겁고 진지한 방식으로 갔는데 360만에 달하는 관객을, <아이 캔 스피크>도 330만 가까운 관객을 얻었는데, 위안부 이슈를 다룬 두 영화가 2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300만이 넘는 중박을 터뜨렸다는 사실은, 관객들이 위안부 소재들 다룬 무거운 영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함축하죠. <화려한 휴가>(2007)가 나오고 10년이란 세월 후에 나온 <택시운전사>가 1,200여 만 관객을 얻은 것처럼, 위안부 이슈를 잘 다룬 또 다른 영화가 나온다면 1,000만 고지를 넘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봅니다.

  평론가로서 수치를 따지는 것은 비판 받을 수도 있겠으나, 감독이 대중들과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꾸 흥행 스코어를 언급하게 되는 걸, 양해 구합니다. 1,000만 관객 영화가 독과점의 산물이기에 큰 비판을 받곤 하나, 저는 천만 영화의 의미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죠. 그런 점에서 <귀향>, <아이 캔 스피크>에 이어 다른 영화가 또 나와서 더 큰 성공을 거두며 위안부 이슈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다면, 그 때는 <귀향>과 <아이 캔 스피크>의 의미가 더 커지지 않을까싶어요.

  김: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 중 민규동 감독님의 작품(<허스토리>, 가제)은 촬영이 끝났고, 류승완 감독님도 관련 영화를 준비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접은 건지 보류인 건지 소식이 없네요. <군함도>(2017)로 충격이 큰 것 같습니다.

  전: <군함도>로 액땜을 한 거죠. 큰 성공을 하다 보면 뭔가 걸립니다. <베를린>(2013)의 성공 이후 <베테랑>(2015)으로는 더 큰 대성공을 일궈냈고, 2016 ‘작가’ 선정 최고 한국영화로 뽑히기도 했는데, 잠깐 쉬어가는 거랄까요. 660만 명이면 실패라고 할 수는 없지만, <베테랑> 차기작인데다 워낙 큰 성공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로 여겨졌던 거죠. 이제 배우 얘기로 넘어가 나문희 선생님과 이제훈 배우에 대해 말해볼까요. 윤여정, 김혜자, 김수미 선생님 등을 제치고 나문희 선생님과 같이 작품을 하게 된 이유를 말해주시죠. 그리고 혹시 와중에 약간은 아쉬웠던 점이랄 게 있었는지요?

  나문희 선생님의 서민적 카리스마!

  김: 처음에는 비밀을 감추고 살다가 과거가 드러나고 앞으로 꿋꿋이 직진하는 캐릭터가 등장하죠. 정말 친근한 할머니 같은 이미지가 나문희 선생님에겐 다른 분들에 비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더 많이 친근하게 다가올수록 나중에 더 큰 슬픔이 부각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문희 선생님을 모시게 됐고요.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연기에서 ‘벽’이 느껴지는데, 나문희 선생님의 연기에는 그런 벽이 없어요. 

  전: 보통 사람, 가장 서민적인 느낌?

  김: 그렇죠. 하지만 서민적이라 하면 김영옥 선생님도 있어요. 나문희 선생님은 서민적이면서도 카리스마가 있어요.

  전: 서민적 카리스마, 카피가 나왔네요. 나문희 선생님의 서민적 카리스마!

  김: 나문희 선생님의 고유한 ‘쪼’랄까, 그런 게 있어요. 연기를, 스테레오타입한 사람들과 다르게, 아주 자유분방하게 하세요. 대본을 리딩할 때, 심재명 대표님이 말하길, 선생님께는 결례가 될 수 있지만 “송강호의 여자판이다!”라고 말했어요. 여배우 중에 그렇게 자유롭게 하는 경우를 못 봤으므로, 이렇게나마 표현하게 되네요. 이제훈 배우는 잔기술을 안 부리고 클래식하게 연기해요. “저게 대본이 아니고 애드리브였다고?” 같은 생활 연기를 잘하는 것도 좋은 연기지만, 요즘은 정통적인 연기가 사라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제훈은 잔재주나 개인적 연기가 아니라 정통적 연기를 펼쳐요. 나문희 선생님의 자유로운 연기와 이제훈의 정통적인 연기가 충돌하는 케미가 생긴 거죠.

  전: 평상시 삶이 그렇지 않은 다른 배우가 9급 공무원을 연기했으면 어색했을 법한데, 이제훈의 품성과 반듯한 9급 공무원의 이미지가 기가 막히게 들어맞은 거겠죠. <수상한 그녀>(2014)에서는 심은경이라는, 좋지만 튀는 배우가 있었는데 관객 수가 8,660,000명으로 <아이 캔 스피크>보다 2.5배 가량의 더 큰 성적을 거두고, 나문희 선생님도 기가 막힌 연기를 펼쳤는데도 연기 측면에서는 이번만큼 좋은 평가를 얻진 못했죠. 반대로 <아이 캔 스피크>는 나문희 선생님의 영화처럼 되어 버리고, 연기 생활 56년 만에 제37회 영평상 여우주연상 수상 등 70대 중반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계시죠. 나문희 선생님은 요즘 행복해하실 것 같아요.

  김: 어제 통화해봤는데 연말에 시상식 다니느라 몸져누우셨다고, 너무 바빴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이제훈은 삶에 대한 태도가 되게 진중해요. 어떻게 보면 재미없죠(하하). 재미없을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지금도 대중적인 스타인데 그전까지는 <파수꾼>(2010)의 영향 때문이지 영화인들이 더 좋아하는 배우였잖아요. 제가 같이 작업을 해보니까 이제훈은 작품 선택도 아주 신중하게 하더라고요. 크게 후진 영화가 없어요. 자기 관리 차원인지 작품 선택까지도 휘둘리지 않고, 연기 스타일도 클래식하고 본인이 자기 자신을 제일 잘 알고 자신에게 잘 맞는 걸 찾아가는 것 같아요. 개인기 같은 게 없어요, 실제로. 말도 재미없게 해요. 진화의 과정에서 요즘 트렌드와는 판이하게 달라요. 이를테면 조정석은 개인기가 뛰어난 친구죠. 만약 민재 역을 조정석이 연기했다면 나문희와 따닥따닥하는 맛은 더 재밌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훈은 본인 스스로의 진화 과정에서, 애초에 이런 것에 욕심을 두지말자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실제로 그런 거에 욕심도 없어요. 애드리브도 잘 안 해요.

  <아이 캔 스피크>의 캐릭터

  전: 조성희 감독의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5)에서 홍길동 같은 캐릭터는 웬만한 젊은 배우가 소화하기 힘든 캐릭터인데, 이제훈의 연기 폭이 꽤 넓어요. 영화 선택에서 그 점이 아주 잘 나타나죠. 나중에는 송강호까진 아니어도 이제훈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30대 중반의 젊은 배우라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런 점에서 가장 기대가 되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김수현도 좋은 배우지만, <리얼>(2017)의 대참패 이후 군대에서 쉬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인기에 편승한다는 것이 덧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점에서 송강호가 ‘지존’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송강호도 실패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복수는 나의 것>(2002)은 전국적으로 40만도 동원 못했어요. 당시 제가 대학로에서 송강호, 박찬욱 감독 등과 술 한 잔 한 적 있었는데, 그때 송강호가 한숨을 내쉬며 그러더군요. 자기가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의 배우인데, 삼십 몇 만밖에 관객이 들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는 기죽지 않았죠. 그 이후로도 몇 차례를 흥행 실패를 맛봤는데도, 기죽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제는 천만 영화를 가장 많이 터뜨린 주연 배우로, 연기의 지존으로 간주·평가되고 있죠. 몇 년전까지만 해도 최민식, 황정민 등과 자웅을 겨뤘는데, 지금은 완전히 송강호가 대세가 되어버렸죠. 자기 관리라는 게 의지적인 게 있고, 관리 차원에서 하는 게 있고, 품성과 연관된 게 있어요. 혼자 있을 때도 조심해야 된다고 얘기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렇지 않잖아요. 송강호 같은 경우는 20년 전에 <초록 물고기>(1997) 때 인사하는 거와 20년여가 지난 지금 대한민국 최고 스타 배우로서 인사하는 거와 큰 차이가 없어요. 저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고,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어떻게 2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럴 수 있을까? 2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저 같은 영화평론가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한결같이 인사하는 걸 보면서 자기 관리를 참 잘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이제훈에게 기대를 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이제훈은 술도 안 마셔요. 

  전: 술 안 마시는 건 별로네요. 술은 좀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웃음) <아이 캔 스피크>가 나문희/옥분, 이제훈/민재 투톱으로 가는 영화라 양적 비중은 작아도 굉장히 중요한 캐릭터가 손숙 선생님이 연기한 문정심 캐릭터일 거예요. 우여곡절 끝에 <귀향>이 투자, 제작이 가능했던 게 손숙 선생님 덕분이라고 조정래 감독이 그러던데, 조감독과 친분이 있어서 노 개런티로 참여하시고, 또 나중에 받으신 개런티도 기부하셨다더군요. 손숙 선생님을 캐스팅하면서 <귀향>과의 관련성을 의식했나요?

  김: 사실 저는 <귀향>을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어요. 영화를 준비하며 <귀향>을 보게 됐는데, 그때는 이미 손숙 선생님이 후보에 들어있었죠. 정심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영어 회화를 좀 더 잘 해야 했고, 조금 더 세련된 할머니 같은 느낌이어야 해 손선생님께서 리스트 업이 되어 있는 상태였었죠. 준비 차원에서 <귀향>을 봤더니 주인공이고, 옷 수선 집을 하시더군요. 

  전: 영화에서 돌아가실 때 두 분이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아요. 친구 정심의 죽음이 결국에 옥분으로 하여금 위안부라는 정체성을 세상에 천명하게끔 결심을 하게 하는 결정적 상황이 됐는데, 그 점이 참 가슴에 와 닿아서, 손숙 선생님처럼 큰 분의 역할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어요. 정말 잠깐이었는데 강렬한 인상을 확실히 심어주었니까요. 그리고 주변 조연 및 단역들도 좋은 배우들이어서 연기의 합이 잘 맞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 <아이 캔 스피크>는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아니라, 배우들 믿고 가자라는 생각이었어요. 믿을 게 배우밖에 없었어요. 진실하게, 장난치지 말고 가자라는 생각이었어요. 남배우들도 있지만, 특히 여배우들이 훌륭해요. 금주역의 김소진, 진주댁 염혜란, 아영 역 정연주, 혜정 역 이상희 등 이런 친구들은 다 독립 영화에서 눈여겨봤던 친구들이었는데, 이 훌륭한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어요. 우리나라 영화, 조연 남자 배우들 정말 잘 나가잖아요? 김의성, 배성우 등등 다 훌륭한 배우들이고요. 반면 훌륭한 여배우들도 많은데 여배우들의 쓰임새가 적잖아요, 남자 배우들에 비해. 그래서 그 여배우들과 같이 작품하면서 되게 행복했어요.

  전: 저는, 연출가로서 그런 의식적인 노력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류죠. 영화를 보면 제일 나쁜 감독이 자기만 살고 연기자들은 죽이는 감독이죠. 누구라고 말하진 않겠어요. 잘나가는 감독들, 세계적인 감독들 중에서 자기만 살고 배우는 하나도 살리지 못하거나 않는 감독들이 있어요. 일찍이 <너는 내 운명>(2005)의 박진표 감독이 그랬죠 제게. “선배님, 감독인 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황정민, 전도연 연기자들 팍팍 좀 밀어 주세요!”라고. 전도연이 그해 영평상 여우주연상 받았는데, 그때 박진표 감독의 그 말을 들으면서 위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된 거죠. 저는 영화를 볼 때 감독들이 배우들의 장점을 얼마나 극대화시키고, 어떻게 살려주는가를 유심히 보는 편이죠. 무명이었던 배우들을 스포트라이트 받게 해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범죄도시>에서 2017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안은 진선규 그 친구, 감동적 수상 소감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잖아요. <암살>(2015)의 최덕문이라는 배우도 그렇고요. 전 영화평론가이건만 최덕문이란 이름을 <암살>을 통해 비로소 기억하게 됐죠. 한국영화가 그 동안 고생한 배우들을 주인공을 만들어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빈익빈 부익부, 독과점등으로 인해 한국영화가 목하 이러저런 욕을 많이 먹고는 있으나, 다른 분야에서 하지 못하는 순기능을 하고 있는 거죠. 멀티캐스팅을 통해 예전에는 관심을 끌지 못했던 배우들도 주연 자리에 오르곤 하죠. 감독으로서 그런 기능을 의식하며, 여배우들에게 좀 더 좋은 비중을 두는 행보를 걷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일 거예요. 제2의, 제3의 나문희가 나오지 말라는 법 없지 않겠어요? 그런 영화들이 좀 더 많이 나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쎄시봉>에 대해

  전: 이제 <쎄시봉>으로 넘어가볼까요? <쎄시봉>은 개인적으로 꽤 흥미롭고 좋은 영화로 다가왔어요. 상대적으로 영화가 불러일으킨 화제에 비해 그러나, 200만을 넘지 못하고 170만을 갓 넘는데 그쳤지요. 2015년 2월에 개봉됐는데, 그 화제작의 흥행이 상대적으로 덜 된 이유가 무엇일까 계속 궁금했어요. 뭔가 영화적 문제일까요? 저는 개봉 당시 보지 못해 이번 인터뷰에맞춰 봤는데, 꽤 재밌게 봤어요. 플롯에서 <아이 캔 스피크>와 흡사한데, 앞서 초반에 말했던 투 파트 구성이,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급반전되는 2부적 구성이 흥행에 악재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어요. <아이 캔 스피크>의 경우는 같은 시간대의 연속적 사건인데 반해, <쎄시봉>은 20년의 시차를 두고 벌어지잖아요. 한국 관객들은 쭉 이어지는 플롯이 아닌 에피소드 구성의 스토리를 싫어하거든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에피소드 형 플롯 영화들은 잘 안 돼왔죠. <쎄시봉>을 만든 주된 이유가 그 20년 뒤의 순애보였을지언정, 아예 복고 분위기로 60년대 말과 70년대 초로 이어지는 시대적 흐름을 이용해서 과거의 이야기로 계속 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야말로 ‘쎄시봉’에 초점을 맞춰 갔으면 훨씬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그나저나 코믹 순애보는 본인의 떨칠 수 없는 욕망인가요? 왜 순애보에 방점을 찍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거든요.

  김: <쎄시봉> 제작자가 명필름에 있던 사람인데, 바로 <1987> 제작자예요. 그 제작자와 술 마시다 ‘쎄시봉’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순애보 부분이었어요. 개봉하고 나서 20대 얘기가 재밌는데 왜 갑자기 40대의 김윤석 캐릭터가 나와 후일담을 얘기하느냐 말이 나오긴 했으나, 기획 단계로 가면 출발이 그 후일담이었기에, 쎄시봉 당시를 재현하는 창작적인 의욕이 별로 안 났어요. 그 분들에 대해 자서전 에세이 식의 새로운 해석을 하고 싶었어요. 제3의 멤버가 실존인물이긴 하나 그렇다고 그 분에 대한 얘기는 아니거든요. 3년 전 개봉 당시에는 객관화가 덜 됐었는데, 이제는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김윤석, 김희애가 되게 조금 나오잖아요. 그때 당시에 김윤석이 어울리느냐, 왜 교차편집을 안 했느냐 등의 의문이 있었는데, 김윤석과 어울리느냐는 별개로 하고 교차편집을 안했던 것은 <써니>(2011)와 <건축학개론>(2013)이 있었던 터라, 창작자로서 교차편집은 애초에 피하고 싶었어요. 제작자, 투자사, 배급사 등 우리 내부에서도 객관화가 안 되었던 거죠. 지금 생각해보면 교차편집이 있었으면 이물감이 다소나마 보완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순애보는 제가 좋아서 한 거라…

  전: 아까 말했듯 영화는 타이밍이죠. 2015년에 천만 영화가 <암살>, <베테랑> 두 편 나왔고, 그해 12월에 나온 영화가 <내부자들>이예요. <내부자들>을 정점으로 2016년부터 한국영화의 분위기가 바뀌는데, 정확하게는 한국 영화 관객들의 영화보기 성향이 바뀌죠. 만약 2016년이나 2017년에 <쎄시봉>이 개봉됐더라면, 300만에서 500만까지 충분히 갔을 텐데, 2015년은 멜로나 코믹이 영 먹히지 않는 해였죠. 2015년 그때는 그런 식의 말랑말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적인 메시지를 재미나게 풀어주는 영화들이 흥행했어요. 만약 지금 <내부자들>이 선보인다면, 300만도 못 넘을 거예요. 너무 부담스러워서. 2016년 이후 <공조>, <럭키>, <청년경찰>, <범죄도시> 등의 영화가 잘 됐는데, 그 영화들이 2016년 이전에 선보였더라면 잘 안 됐을 거예요. <1987>이 2015년 12월 이전에 개봉했으면 훨씬 더 잘 돼 아마 천만 고지를 넘지 않았을까, 싶고요. 이 땅의 대중 관객들이 이제 <내부자들>처럼 센 영화를 보는 게 너무 힘든 거에요. 그런 분위기 탓에 500만 선은 돌파했지만, <더 킹>도 상대적으로 덜 됐다는 게 제 판단이예요. <아수라>는 김성수 감독이 흥행은 아예 포기하고 말 그대로 아수라처럼 마음대로 찍은 영화고요. 출연한 모든 캐릭터들이 다 막판에 죽는 영화는 제 경험상 <아수라>가 유일해요. 그 동안 살아오면서 몇 편의 영화들을 봤는지는 모르나, 만약 제가 1만편 내지 2만 편을 봤다고 해도, <아수라> 같은 영화는 없었어요. 따라서 큰 흥행은 애당초 무리인 영화였죠. <더 킹>이나 <아수라> 같은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잘 안 되면서, 비교적 가벼운 영화들이 더 잘 된 거라고 볼 수 있죠.

  <쎄시봉>에서는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같은 실제 인물들을 활용하지 않아요. 물론 그러기 힘든 분들이고요. 만약 기획적으로 할 수만 있다면, 저는 <쎄시봉>을 한 번 더 만들어보고 싶어요. 너무 아까워요. 복고 분위기가 굉장히 재밌는데, 20년 뒤로 넘어가면서 다른 영화와 비슷해지는 게 안타까워요. 연기는 대체로 잘들 했어요. 송창식은 대체불가라, 조복래가 못한 게 아니라 불가능한 캐릭터를 연기한 거죠. 조복래가 제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봤자 송창식 노래의 맛을 낼 수 있겠어요? 조복래가 부르는 것과 송창식이 부르는 것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죠. 강하늘과 윤형주는 잘 어울려요. 한효주도 매혹적이예요. 개인적으로는 <쎄시봉>에서만큼 매력적인 걸 기억하지 못할 정도예요. <해어화>(2016)에서보다 훨씬 더 좋았어요. 그녀가 비록 메인이 아니라도 정말 돋보였어요. 잠깐 나왔지만 김희애도 매력을 넘어, 압도적이었어요. 헌데 김윤석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더군요. 김윤석이 핵심이건만요. 그런 것들이 맞물리면서, 실패라고 볼 수는 없지만, 영화가 당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은 기술력 특히 CG가 뛰어나서 그런지, 세트가 기가 막히던데 어디서 찍은 것인지요?

  김: 대전에서 세트 짓고 촬영했어요. 

  전: 오근태 캐릭터는 실존 인물을 극화한 것인가요? 아니면 새롭게 만든 가상 인물인가요?

  김: 실제로 제3의 멤버가 있긴 하나 오해하지 말라고 영화에 자막을 넣은거고요. 실제 삶은 다르고, 다 허구죠. 실제 인물은 아주 짧게 활동하다가 군대 가면서 끝났어요.

  전: 드라마의 반전은 흥미로웠어요. 여자를 살리기 위해서 친구들을 배신했다는 설정이. 평론가로서 비판을 하자면, 후반부 순애보가 목적이었다면 극적 드라마를 확실히 더 부각시키면서 전반부를 확 줄이든가 했어야 했는데, 영화 제목이 ‘쎄시봉’이니 그럴 수도 없고 전반부를 살리지 않을 수 없는데 마음은 순애보니, 그로 인한 불일치 탓에 관객과의 교감이 덜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영화를 만들고 개봉할 당시 ‘쎄시봉’이 워낙 핫해 그 분위기가 영화로 이어질 걸로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아 당황하기도 했죠. 만약에 영화에 손을 대게 된다면 손을 볼 건지요? 아니면 지금 그대로 갈 겁니까?

  김: 교차 편집은 해볼 것 같아요.

  전: 아까우니까 시도 한번 해보시죠. 저보다 다들 선배지만 송창식의 「사랑이야」는 한때 제가 노래방에서 즐겨 부르곤 했던 노래죠. 저는 송창식을 좋아했고, 윤형주는 별로였어요. 엄친아는 그다지 좋아하질 않거든요 지금도요. 한효주가 분한 민자영이라는 이름은, 명성황후의 이름과 같은데 그 이름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요?

  김: 모델은 윤여정 선생님이에요. 실제로 윤여정 선생님을 다 좋아했다고 해요. 윤선생님에게 자문도 받았고 이름을 써도 좋다는 허락도 받았어요. 민자영이라는 이름이 느낌이 좋았고, 명성왕후 이름도 실제로 그 당시 되게 자주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전: 감독은 이장호 감독으로 해석이 되는데, 이장호 감독이 모델 아닌가요?

  김: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이장호 감독과 많이 어울리신 것 같네요. 

  전: 그 때 그런 분은 이장호 감독밖에 없었어요. 의식을 했든 안 했든 이장호 감독 이야기일 거예요. 당시 그렇게 큰 성공을 거둔 감독은 이장호 감독밖에 없었어요. 물론 다소의 시차는 있을 수 있지만요. 그래 영화를 보며 이장호 감독 이야기구나 했는데 의식을 한 건 아니네요. 개인적으로 또 아쉬웠던 건 이장희를 시종 주변 인물로 놔뒀다는 거예요. 이장희에게 극 중에서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나 「그건 너」 같은 곡들을 직접 부르게 하거나 하면서 그 캐릭터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용을 했더라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요? 의식적으로 그런 건지요? 아니면 아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은 건지요?

  김: 이장희 캐릭터가 화자잖아요. 실제 인물 중에서는 이장희가 가장 비중이 크죠. 실제로 그 분들을 보면 다들 개성이 강하세요. 이장희 선생님이 보스 같고, 송창식은 존 레논, 윤형주는 폴 메카트니 같아요. 김세환은 후기 멤버고. 저는 정작 ‘쎄시봉’ 캐릭터가 영화에서 주연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전: 이장희 캐릭터가 화자로 나오긴 하나, 두 노래가 어차피 나오니까 드라마로 녹였더라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영화 후반부에 오근태가 미국에서 이장희를 만나, 이장희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이장희가 “내가 불러 히트시킨 노래들”이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잖아요. 그러니 그 노래들을 이장희가 부르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면 한층 더 극적 효과가 컸으리라는 거죠. 그리고 다큐는 아니더라도, 실제 쎄시봉 멤버들이 노래하는 장면도 한두 컷 정도는 넣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허락을 못 받은 건지요?

  김: 실제로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어요. 사진 자료도 몇 컷 없어요. 쓸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라 실제로 쎄시봉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나와 있는 게 거의 없어요. 전경도 없고, 몇 컷 남아 있는 것을 추정해서 만들어낸 거죠. 실제보다 좀 더 크게 찍긴 했는데, 정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전: 윤형주-송창식 두 사람의 사이가 좋지 않아서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닐까요. 송창식이 등장했을 때의 놀라움을 직접 체험한 사람으로서 하는 말인데, 이 영화의 상대적으로 흥행에 부진했던 가장 큰 이유는 송창식 변수 때문이라고 봐요. 송창식은 말했듯 대체불가 캐릭터이기 때문에, 어떤 누가 연기해도 무리라는 거죠. 거기서 오는 실망감까지는 아니어도, 그 대체불가성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불러일으킨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영화에서 제일 아쉬웠던 점이었는데,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어요.

  김: 송창식 선생님이 자기 노래에 대한 자부심이 워낙 커서, 조복래더러 “너 어차피 나 따라 해도 못 따라오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하셨지요.

  전: 한국 대중문화에 천재는 많이 있지만 송창식 같은 천재는 없었죠. 그 이후에 서태지 등이 나왔으나, 송창식은 그야말로 대체불가였죠. 그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거예요. 뭘 해보려고 해도 자료가 없다는 것은, 정말 아쉽네요.

  김: 자료 화면은 컷으로 쳐도 10컷이 안 돼요. ‘쎄시봉’ 관련 책들이 몇 권 나왔으나, 쓰인 사진들이 많이 겹치죠. 그만큼 자료들이 부족한 거죠. 

  전: 사실 전 송창식 같은 분에게 그 분 삶의 일부나마 영화화되는 것을 허락받은 건 대단한 성취라고 봐요. 영화계에서 가수들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인물이 몇몇 있는데, 김추자, 나미 등이죠. 개인적으로도 그 분들 이야기라면 영화로 기획하고 싶고요. 하지만 그 분들이 영화화를 허락해주지 않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송창식 이야기는 유의미한 성과라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에 <쎄시봉>의 상대적 흥행 부진이 계속 아쉬워요. 정말이지 위대한 한국 음악인의 삶이, 비록 단독 주연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 밖에 흥행되지 않은 데 대한 안타까움이 있는 거죠. <쎄시봉>이한 계기가 되어 한국 대중문화 아티스트들을 극화한 영화들이 나오는데 영화가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쪽에 관심이 많죠. 혹시 나중에 김감독이 그런 도전을 또 하게 된다면, “<쎄시봉> 감독이라고? OK!”, 그럴 수도 있잖겠어요. 

  이제 마무리해야겠네요. <아이 캔 스피크>와 <쎄시봉>을 중심으로 2시간 가량에 걸쳐 대담을 나눴는데, 그 동안의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큰 배움과 자극을 받은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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