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오늘의 영화 - 마션] 과학기술에서 인간의 얼굴을 느끼다
[2016 오늘의 영화 - 마션] 과학기술에서 인간의 얼굴을 느끼다
  • 이채원
  • 승인 2016.02.2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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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가장 영화적인 소재

우주는 인류에게 호기심과 동경과 두려움의 대상이다. 오랫동안 인류는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탐사해 왔다. 영화 매체의 기술과 상상력은 우주의 모습을 다양하게 형상화하며 인류의 노력을 점점 더 정교하게 스크린에 재현한다. 최근 3년 동안 거장들이 스펙터클로 완성한 우주는 시간과 공간, 인간 존재의 근원적 고독과 삶에 대한 열망, 그리고 휴머니티를 온몸의 감각으로 체험하는 가상 현실이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Gravity〉(2013)는 먹먹할 정도로 거대하게 다가오는 우주 공간의 적막과 고독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테크놀로지의 절정을 보여주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Interstellar〉(2014)는 가족애와 인류 구원이라는 동기에서 시작된 우주 여행에서 공간과 시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물리학의 향연을 펼친다. 반면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마션The Martian〉(2015, 리들리 스콧 감독)은 우주에서의 재난을 묘사한 다른 영화들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마션〉의 특이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은 러닝 타임의 거의 절반을 일인극으로 이끌어 가는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의 놀라울 만큼 낙천적인 캐릭터와 천재들의 팀워크이다. 〈마션〉의 서사를 진행시키는 구심점은 과학기술에 대한 신뢰이며, 합리적이고도 인간적인 시스템이 이루어 내는 기적이 관객들을 몰입하게 한다.

화성에서도 매력적인 지구인

화성 탐사선 ‘아레스3’의 대원들은 화성 탐사 도중 모래 폭풍을 만난다. 사고를 당한 마크 와트니에게서 생체 반응을 느낄 수 없자 대원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화성을 떠난다. 와트니는 극적으로 살아났고 자신의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한다. 어떻게든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자신의 생존 사실을 알려야 하고, 나사에서 구조대를 파견해도 화성까지는 4년의 시간이 걸리므로 그때까지 스스로 생존해야 한다. 그가 생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그의 지식과 낙천성이다. 와트니는 1997년에 미국에서 발사한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를 찾아 나사와 교신에 성공한다. 태양 패널들을 연결시켜 충전지를 만들고, 방사능 플루토늄을 이용하여 혹독한 추위를 견딘다. 또한 산소와 수소를 결합시킨 후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물을 만들어 감자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와트니는 의기소침해지지 않는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것을 인식한 순간 아주 잠시 망연자실했던 와트니는 곧 “난 여기서 죽지 않아.”라는 독백을 발화한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당면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간다. 그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유머 감각은 관객까지 유쾌하게 만들고 삶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한다. 

그에게도 물론 좌절의 순간은 있었다. 급격한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폭발이 일어나 감자밭을 잃고, 나사에서 보낸 보급품을 실은 로켓은 발사 직후에 폭발한다. 와트니는 그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휘관인 루이스 대장(제시카 차스테인)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자신이 죽는다면 자신의 부모님에게 “나의 일을 사랑했고, 나 자신보다 아름답고 위대한 것을 위해 죽었다.”고 전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곧 이어서 그는 매일 저녁 화성의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렇게 할 수 있으니까요.”라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과 함께 화면 가득히 화성의 지평선이 펼쳐진다.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에서 촬영된 화성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와트니의 모습도 카메라에 조명된다.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배경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인물의 시점 쇼트만으로도 그의 심경이 응축되어 전달되며 살아 있음이 처연할 정도로 아름다운 것임을 느끼게 하는 압도적인 장면이다. 적어도 그 순간 와트니는 분명 살아 있고 화성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일은 와트니가 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와트니도 관객도 느끼게 된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와트니의 의연한 모습은 인간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 존재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감탄할 만큼 뛰어난 낙천성의 근원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한다. 그 근원에는 동료애와, 나사의 집단 지성이 보여준 과학기술의 힘과 합리적인 시스템 그리고 자국민을 버리지 않는 미국의 자존심이 있었다.

부러운 집단 지성과 합리적인 시스템

우주선 헤르메스호에 승선한 채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을 앞두고 있던 동료들은 와트니를 구조하기 위해 항로를 변경하기로 한다. 헤르메스호가 지구의 중력을 이용하여 가속하면서 방향을 바꿔 화성으로 향하는 방식은 실제로 우주 탐사선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지만 여러 단계 중 한 가지만 어긋나도 대원들이 모두 죽을 수 있다. 책임감과 냉철함과 인간미가 어우러져 신뢰할 수 있는 리더의 전형을 보여주는 총지휘관 루이스 대장은, 나사의 반대와 상관없이 대원들에게 결정을 맡긴다. 그들이 만장일치로 와트니의 구조를 결정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쓴 결정이지만 도박은 아니다. 그들이 와트니에게 향할 경우 모두 죽을 수 있는 확률도 작지 않지만 그들이 와트니에게 가지 않는다면 와트니는 백퍼센트 죽을 수밖에 없다. 대원들이 결단하고 행동에 옮기자 헤르메스호의 항로 변경을 허락하지 않았던 나사도 그들을 지원하기에 이른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위험을 감수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하며 사회 시스템의 구성원 전체가 한 마음이 되어 구조를 기원하고 결국 성공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며 부러운 광경이고, 화성에서 감자 재배에 성공한 것보다 더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지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사회 시스템은 한 사람의 생명을 그다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무책임한 선동적 명분으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리더도, 관료들도, 전문가 집단도 자국민을 지켜 주기에 무능하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례로 ‘세월호 사건’에서 우리는 정부와 사회 시스템의 무능과 무책임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우주선을 타고 몇 년을 날아가야 하는 거리가 아닌 대한민국 영토 안, 그것도 해경이 충분히 출동할 수 있는 가까운 바다에서 침몰한 배에서 어린 생명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게만 만든 무능함과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는 제아무리 과학 지식이 풍부한 천재라도 긍정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냉소와 비관에 빠질 필요는 없다. 한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여 애쓰는 영화 속 장면과 유사한 상황을 우리의 현실에서도 분명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SBS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을 보면서 감동하게 되는 부분인데, 하수구에 고립된 고양이 한 마리를 구조하기 위해 온갖 전문가들이 동원되고 교통까지 통제할 때도 있다. 그 상황에서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위험에 빠진 한 생명을 구조한다. 누구도 그 한 생명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구조에 성공했을 때 모두 같은 마음으로 기뻐한다. 선한 에너지의 집결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불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경직되어 무능한 관료 시스템이 합리적인 융통성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가진 집단 지성도 놀라운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어느 사회에서든 누군가는 살리고 누군가는 죽인다. 두말할 필요 없이 죽이는 삶보다는 살리는 삶이 가치 있다. 과학기술 역시 생명을 살리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마션〉은 와트니가 보여준 낙천성과 예술적이라고까지 느껴지는 팀워크가 어디서 꽃피울 수 있는지 그 토양이 무엇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영화이다. 〈마션〉을 보면서 관객들은 과학의 세계에 매료되고 과학기술에서 인간의 얼굴을 느끼게 된다. 무조건적으로 긍정의 힘을 강요할 수는 없다. 과학기술이 생명을 죽이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데 사용될 때, 뜨거운 심장과 더불어 냉철함을 가진 지휘관을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을 때, 국가가 자국민을 지켜 줄 수 있을 때, 인류애를 발휘하는 것이 자국에도 이익이 됨을 깨닫게 될 때, 하나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문화적 환경이 조성될 때 긍정의 힘이 발현된다. 〈마션〉은 과학기술에 선한 의지를 부여할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이 인류의 밝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유쾌한 긍정의 영화이다. 화성을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 원고는 2015년 11월 14일 《매일경제신문》에 게재된 본인의 칼럼을 수정하고 확장한 것입니다.


이채원 영화평론가. 나사렛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서강대학교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201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화평론 당선. 저서로 『소설과 영화, 매체의 수사학』『영화 속 젠더 지평』 등이 있음. dike97@hanmail.net

 

 

 

 

*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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