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오늘의 영화 - 위플래쉬Whiplash] 천재와 광기 사이의 텐션
[2016 오늘의 영화 - 위플래쉬Whiplash] 천재와 광기 사이의 텐션
  • 손정순(본지 발행인)
  • 승인 2016.03.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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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언가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 소위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 분야가 아닐지라도 당신은 한번이라도 좋아하는 일에 목숨을 내건 광기를 발휘해 본 적이 있는가? 인생에 단 한번이라도 그런 황홀한 체험의 순간을 맛보았다면, 당신은 스스로에게 거는 강한 자부심을 넘어 자존감까지 갖게 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보기를 갈망한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잘 포착하고 반영한 영화가 바로 〈위플래쉬Whiplash〉다. 다미엔 차젤레 감독 본인의 고교시절 체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이 영화는 2013년에 18분짜리 단편영화로 먼저 제작되었고 그후 투자를 받아 장편영화로 빛을 보았다. 

명문 음악학교에 입학한 드러머 앤드류(마일즈 텔러)와 전설의 괴물 교사 플렛처(J.K. 시몬스)가 펼치는 광기어린 레슨과 그 행방을 다룬 이 영화는 제30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토론토 영화제에서도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어찌 보면 잔혹하다고까지 할 수 있는 ‘미친 학생’과 ‘폭군 선생’의 학대극에 사람들은 왜 열광할까? 

환호 속에 숨겨진 채찍보다 잔혹한 현대 자본사회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위플래쉬〉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로 돌아가 보자. 마지막 10분은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관객들이 영화에 빨려들어 집중한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엔딩 자막이 올라가자 관객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치며 함성을 질렀다. 드럼은 스크린 속 앤드류가 치는데 내 몸속에서 하나, 둘 진액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개봉관에서 다시 영화를 관람했을 때도,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몇 차례 봤을 때도 그들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 된 듯 천재 탄생에 열광했다. 모두가 어떤 특별한 경지, 인간이 혹독한 수련과정을 통해서만 다다를 수 있는, 한계를 초월한 그 순간을 끊임없이 동경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반 관객뿐만 아니다. 류승완 감독도 “지난해 질투를 느꼈던 영화 두 편 중 한 편이 〈위플래쉬〉였다”고 고백했으며, 이동진 영화평론가도 “J.K. 시몬즈의 탁월한 연기조차 〈위플래쉬〉가 거둔 빼어난 성취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늘 사회의 타자에게 굴복당하고 자기 자신을 꺾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자아가 무한히 확대되는 황홀경을 동경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른다. 극기를 통해 새로운 경지에 발을 디딘 드러머에 대한 흠모와 동경은 무모할 정도의 열정과 도전, 그리고 거대 자본사회에서 최고가 되고 싶은 동경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은 물론 건강과 인간관계까지 파괴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열광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되묻기도 전에.

사제 간의 팽팽한 텐션

그래서일까? 영화평은 양극으로 나뉜다. 미래의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용기를 얻었다는 입장과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잔인함에 경기를 토했다는 입장이다. 모두 일리가 있는 평이다. 

찰리 파커와 같은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을 발굴하려는 지도자, 천재가 되고 싶은 새내기 제자, 두 사람 사이의 텐션은 팽팽하고 탄력적이다. 플렛처 선생은 세상에서 가장 쓸 데 없는 말이 ‘잘 했어, 그만하면 됐어Good job’라며 학생들을 몰아붙인다. 그는 ‘대충’과 ‘적당히’를 결코 봐주지 않는다. 앤드류는 천재적인 드럼연주를 통해 자신의 모든 명예를 회복하고 진짜 가치를 인정받아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플렛처 교수의 무시무시한 교육방법이 그에겐 오히려 오기와 집념으로 불타게 했으며, 연인에게도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하고 오로지 드럼에만 미친듯이 몰두하게 한다. 한 마디로 그는 일상생활에서의 무능함과 보잘것없음을 오직 예술적인 영역을 통해 보상받고자 한 것이다. 그런 그의 야망이 플렛처의 광기와 부딪혀 음악 스릴러라고 해도 좋을만큼 긴장미를 연출한다. 앤드류가 〈위플래쉬〉를 연주하기 위해 주법인 ‘더블 타임 스윙’을 플렛처 앞에서 연습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살인마에게 쫓기는 것만큼 스릴이 넘친다.

또한 플렛처 교수의 폭언을 이용한 지도는 좌절과 오기를 넘어서 지독한 광기를 이끌어낸다. 앤드류는 당근과 채찍질whiplash을 적절한 때에 적절한 방법으로 활용하는 플렛처 교수에게 길들여지고, 자기도 모르게 최고를 향한 집착으로 치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겪는 고통은 어떤 이에게는 한계를 뛰어넘게 하는 윤활유로, 또 어떤 이에게는 자기 파멸로 이끄는 필로폰이 될지는 엔딩 순간까지 예측불허다. 

보통 스승과 제자 간의 이야기라고 하면 삐긋거려도 결국엔 훈훈한 사제간의 모습을 연출하는 해피엔딩이 일반적인데, 〈위플래쉬〉는 이런 선입견을 한방에 뒤집어버린다. 플렛처 교수의 교육 방식은 학생들의 잠재력을 일깨우는데 탁월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러한 교육방식이 모든 학생들에게 적합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뺨을 후려쳐 박자를 맞추게 하고, 온갖 욕설과 치욕을 퍼붓는 교수에게 앤드류처럼 오기를 뿜어대는 학생이 있는 반면 반감을 갖거나 절망하는 학생들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앤드류와 플렛처 교수는 사회적으로 보면 모난 인간들이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집착 때문이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결국 앤드류와 플렛처는 서로에게 있어 더할나위 없는 적이지만, 동시에 그 누구보다도 서로의 세계관을 잘 이해하는 동지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틀을 깨는 역설적인 사제관계는 〈위플래쉬〉만의 특별한 새로움이다.

둘의 연기 또한 명품이다. 마일즈 텔러는 손에서 피가 터질 정도로 드러머 앤드류와 혼연일체가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관객들에게 각인시켜주었으며,  J.K. 시몬스는 관객의 뒷통수를 망치로 한 대 때린 것 같은 충격적인 ‘플렛처 교수’ 역을 자연스럽다 못해 뻔뻔스럽게까지 토해낸다. “영어로 된 제일 몹쓸 말이 뭔 줄 알아? 바로 굿 잡!(good job! 그만하면 됐어)이란 거야. 이 말 때문에 오늘날 재즈가 죽어가고 있는 거야.” 플렛처 교수가 스크린 속에서 튀어나와 내게도 막 소리치는 것 같았다. 

광기, 천재의 뒷모습, 그리고 엔딩

앤드류는 자신이 동경한 천재들, 즉 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드럼에 몰입한다. 그러한 노력과 열정이 도를 넘어 광기에 다다랐을 때 그것이 곧 천재적 재능이 되는 모습은 어떤 것 하나에 미쳐야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광기에 가까운 몰입으로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 할지라도, 그것이 꼭 세상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를 이 영화가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짧지만 신의 경지를 맛 보았고, 그것은 어떠한 ‘성공’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그들은 지상 최고의 우정을 연출한 것이다. 이것이 관객들을 스크린 속으로 몰입시킨 〈위플래쉬〉의 위대한 힘이다. 그래서일까? 앤드류와 플렛처는 연주가 끝나고서야 미소 짓는다.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직감한 관객들도 기립박수를 치며 〈위플래쉬〉의 엔딩에 동참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앤드류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위플래쉬〉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천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인간의 과도한 열정과 집념이 광기와 집착으로 변질되어가는 현대 자본사회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플래쉬〉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열정과 그 성과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은 그 이면의 불행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극한으로 치닫으면서까지 동경해마지 않는 ‘성공이란, 진정한 행복이란 대체 무엇인가’를 관객들에게 자꾸만 되묻는 것이다. 그것들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거대한 채찍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손정순 고려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졸업.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동해와 만나는 여섯 번째 길』, 저서로 『흰 그늘의 미학, 김지하 서정시』 『목월의 현대성』등이 있음. 쿨투라 편집인, 숭의여대 겸임교수. more-son@hanmail.net

 

 

 

*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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