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오늘의 영화’ 수상작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인터뷰] "항상 시간을 이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2016 오늘의 영화’ 수상작 〈베테랑〉의 류승완 감독 인터뷰] "항상 시간을 이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 쿨투라 cultura
  • 승인 2016.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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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전찬일(영화평론가, ‘오늘의 영화’ 기획위원)
인터뷰어와 함께한 사람: 윤성은(영화평론가), 손정순(시인)
일시: 2016년 3월 26일 오후 2시    
장소: 영화제작사 외유내강
사진: 설재원  
녹취 정리: 김은영       
​​​​​​​녹취 수정·완성: 윤성은 & 전찬일

프롤로그

전찬일(이하 전): 잘 지냈지? 〈군함도〉 준비는 잘 돼가고? 아, 늦었지만 축하해! 〈베를린〉도 그렇고 〈베테랑〉은 더 큰 성공을 거뒀으니, 대중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말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지. 돌이켜보면 류 감독도 잘 버텨냈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생각하게 되는 게 산다는 건 결국 버텨내는 게, 아닌가 싶어.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자기가 왜 영화감독을 했나 후회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 어찌나 버티기 힘든지 거의 포기할 뻔 했는데, 그러다가 영화가 터진 거지. 그 인터뷰를 보니 마음이 짠하더군…

류승완(이하 류): 우민호 감독도 〈간첩〉(2012) 때까지는 그렇게까지는 심하진 않았는데, 절박해지니까 정신을 바짝 차린 거죠. 잘 됐죠 뭐. 여러 사람 살린 영화잖아요 그 영화가? 

: 그런 거 보면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들어서 성공을 하면 여러 사람이 행복해지니까 좋은 일 하는 거야. 

: 증오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많아지지만… 

손정순(이하 손): 얼마 전 이장호 감독님을 뵀는데, 〈동주〉 어떻게 봤냐고 물으시더라고요. 당신이 오래 전부터 윤동주 이야기를 영화로 찍고 싶어 벼르고 있었는데. 이준익 감독한테 뺏겨 버렸다고….

: 이장호 감독이 했으면 좀 달라졌겠죠? 그렇게 안 나왔겠죠?

: 전 〈동주〉를 괜찮게 봤는데 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를 재발견 해주었기 때문에 나름 의미는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근데 이 감독님은 그 부분이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느껴지시나 봐요. 저는 미처 몰랐던 몽규의 삶을 통해 윤동주라는 시인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어 좋았어요. 그런데 시를 쓰는 입장에서 봤을 때는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어요. 시라는 게 이유 없이 그냥 탄생하지는 않거든요.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겠죠? 한편의 시가 시인에게 다가올 때의 그 묘한 환희, 또 그 뒤의 숨겨진 고뇌라든가 한이라든가 그런 과정이 섬세하게 표현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그게 시각적으로 표현하기가 진짜 힘들죠.

: 그래서 저는 영상을 흑백으로 처리하다가도 시나 창작의 탄생 때는 한번쯤 컬러 처리를 해서 한 생명 탄생의 고귀함 같은 것들을 살려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당신이 연출했으면 시 내레이션 부분은 다르게 표현하셨을 거라고…. 이 감독님께서 기독교인이다 보니 윤동주 시인을 특별히 생각하셨나 봐요. 이장호 감독님이 북아현동 태생이잖아요. 당신께서 시인을 좋아하고 윤동주랑 같은 동네에 살았고, 윤동주가 그 북아현동에서 정지용 시인을 만나러 오가고 하숙도 하고 그랬으니까 자기 나름의 특별함 같은 게 있어서 꼭 영화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셨나 봐요. 그래서인지 놓쳤다고 아쉬워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다른 시인을 하면 되지 않냐고 했더니 그만한 장점을 가진 시인이 없다고 해서 제가 박목월 시인을 영화로 만들어보라고 제안했어요. 

: 기형도는 안 맞겠고(웃음).

: 기형도는 힘들 거예요. 시를 공부하는 젊은이들은 기형도 시인을 많이 좋아하는데, 대중성이나 이장호 감독의 마인드로는 차라리 목월이 나을 것 같아요. 목월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다 아는 시인이고 기독교인이고, 목월의 캐릭터나 러브스토리도 재밌으니까 한번 해보라고 추천해드렸어요. 그랬더니 동규 형(목월 시인의 장남 박동규 교수)한테 전화해서 미리 찜해놔야겠다고(웃음)…

: 그런데 〈동주〉도 신연식 감독(〈배우는 배우다〉, 〈러시안 소설〉, 〈페어 러브〉)이 밀어붙이니까 그게 된 거죠. 

:  신연식 감독은 그러던데, 〈동주〉는 이준익 감독이 불러 제작을 맡으라고 해 맡게 된 거라고?

: 아니 그게, KTX에서 둘이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신연식 감독이 워낙 대본도 빨리 쓰고 자기만의 체계가 있는 사람인데 〈동주〉얘기를 하니까 이준익 감독이 맞장구를 친 거죠. 네가 하면 되겠다고. 또 신연식 감독이 추진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된 거죠.

: 잘 됐어. 대본도 잘 썼고, 잘했어. 나는 보고 깜짝 놀랐어.

: 잘 했죠. 그게 5억 가지고 만든 영환데, 4억 5천인가 그런데, 이준익 감독이 자기 스태프들 아무도 안 데려가고 신연식 감독이 짜주는 대로 한 거죠. 둘 다 대단한 거죠. 

: 이준익 감독님을 〈사도〉 개봉하고 나서 충무로 사무실에서 뵀는데 바로 다음 영화 〈동주〉 들어갔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분도 굉장히 추진력 있어요.

: 저희 둘째하고 셋째가 중학교 1학년이고 초등학교 5학년인데 얘네 데리고 가서 봤더니 애들도 〈동주〉를 되게 좋아하더군요. 자기들은 어떻게 시로 싸우는지 그런 게 궁금했데요. 남자애들이라 전쟁, 2차 세계대전 이런 거에 꽂힐 나이라…

: 요즘은 이데올로기 같은 게 아예 무너졌으니까. 어린 친구들은 예술로써 싸울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동주〉가 정말 의미가 있지요.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최고 한국영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

: 자,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이렇게 시간을 내주신 류승완 감독님, 고맙습니다. 혹시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에 대해서 이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 아니, 갑자기 왜 말은 높이세요(웃음)? 네, 제 영화가 항상 꼽힌다는 얘기를 들어서, 또 책을 보내주셔서 알고는 있었습니다. 

: 이번에 〈베테랑〉이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최고 한국영화로 뽑혔습니다. 올해는 동률이 있어 한국영화건 외국영화건 공히 11편씩 뽑혔는데 한국영화에선 〈베테랑〉이 그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었죠. 영화 평론가와 영화 기자만이 아니라 문학 평론가 등 타 분야 전문가까지 포함해 100명 가까운 영화·문화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후 선정한 것이죠. 그동안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10편 안에 뽑힌 적은 있지만, 최고작 선정은 이번이 처음인데, 1,300만 명이 넘는 대 흥행과 더불어 전문가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와는 또 다른 의미의, 폭넓은 전문가들의 투표에서 1위가 되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결과로 여겨집니다. 참고로 작년에는 김한민 감독의 〈명량〉이, 그 전년도에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최고작으로 선정됐었죠. 2006년,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가 첫 선정작이었고요. 

근자의 선정작은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비평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면에서, 최근 흥행과 비평 사이의 간극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긍정적 견해가 모두 존재합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대중들과 전문가들의 영화를 보는 시선의 간극이 줄어든다는 의미 등이 있고, 부정적으로 보면 전문가들이 지나치게 대중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냐?, 달리 말하면 비대중적인 영화, 상대적으로 노출이 덜 되는 영화는 덜 찾아보는 것이 아니냐? 라는 등의 문제제기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올해 뽑힌 11편의 리스트를 보면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들이 다수를 이루고, 저예산 독립영화의 수는 서 너 편 정도라 이런 의문이 증폭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평가가 이루어 질 수 있겠죠.  어쨌든 이번 최고작 선정은 충분히 축하할 일이기에,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일단 뽑히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겠죠? 좋고, 신나고, 기분 좋고. 저도 매번 ‘오늘의 영화’가 뽑힐 때 “내 영화가 있나?”싶어서 찾아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올해 아닌 작년에 이런 인터뷰를 했다면 조금 달랐을 것 같아요. 지금 시점은 제가 이미 새로운 영화를 준비하고 있고 제가 만든 영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거리가 생기는 상황이기 때문에, 저 스스로에게 냉정할 수 있어요. 일단 무엇보다 이 영화를 지지해주시고 선택해 주신 분들에게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영화에 대한 비판적인 비평도 많이 나오고 있고 이 영화가 내가 여태까지 만든 영화  중에 최고로 좋은 영화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항상 시간을 이기는 영화를 만들고 싶잖아요? 시간이 흘러도 좋은 영화, 시간을 버텨내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어쩌면 〈베테랑〉의 흥행은 2015년의 시대적 배경이 만들어낸 현상 같기도 해요. 

이건 좀 다른 얘긴데, 제가 최근 몇 달간 본 영화 중 저를 가장 흔들어놨던 영화는 〈룸〉과 〈스포트라이트〉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룸〉을 보면서 이번 오스카의 선택이 약간 이상하더라고요. 최우수작품상을 〈스포트라이트〉가 수상했는데, 〈룸〉이 받았어야 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사울의 아들〉이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는데, 저는 그것도 할리우드 유태인 파워의 영향이라고 보거든요. 그러니까 많은 한국 영화인들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에 한국영화들을 출품할 때마다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싶어 하는데, 저는 투표권을 가진 한국인들의 인구가 많아지거나 아니면 우리나라가 일본이나 중국에 필적할만한 경제력이 없다면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조차 올라갈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뭔가 상을 받는다거나 하는 게 되게 좋은 일이지만. 지금 제가 스스로 영화에 대해 냉정해진 이 시점에서는 마냥 들뜨게 되지만은 않는 것 같아요. 약간 부끄러운 것도 있어요. 저한테만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실수한 것들도 있고 잘못된 것들이 있는데, “이 영화가 그렇게 박수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라는 의문도 들어요. 그리고 애초에 출발 자체가 이런 걸 노리고 출발한 영화가 아니었거든요. 저 스스로 가볍게 해보자고 출발한 영화인데, 이렇게 좋게 뽑아주시니까…〈동주〉에 나오잖아요, 부끄러움에 대해서. 그래서 부끄러워요(웃음). 그게 제일 솔직한 심정이에요. 작년 같았으면 “받을만한 영화였죠.” 뭐 이랬을 거 같은데(웃음)…

: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가 만든 영화에 대한 애정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모든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베테랑〉은 절대로 부끄러울 영화는 아니지만,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오늘 인터뷰를 같이 진행하는 전찬일이나 윤성은도 〈베테랑〉을 좋아하고 지지는 했지만, 아마 ‘베스트 1’으로 뽑지는 않았을 수도 있을 거예요. 윤성은 선생은 한국영화 3편 안에 〈베테랑〉을 넣은 것으로 기억하고, 저도 3위나 4위 정도라고 여겼죠. 어쨌든 이 영화를 좋아하지만 최고작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베테랑〉은 올해 꼽을 만한 영화다, 추천할 만한 영화다”라고 생각해서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한 거고, 이게 무슨 가산점이 붙는 게 아니고 선정 수가 많은 작품이 최고작이다 보니 〈베테랑〉이 선정된 거죠. 2위와 약 10표 가까이 득표수에서 차이 나는데, 압도적 득표라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득표수 차이를 보며 “〈베테랑〉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고요. 감독이 부끄럽다고 했는데, 그거는 뭐 겸손한 말이라고 보고, 〈베테랑〉이 이렇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평론가로서 한마디 해줄래요, 윤성은 선생이?  

윤성은(이하 윤): 〈암살〉이 나오고 〈베테랑〉이 2주 후에 개봉했는데, 일찍이 전 선생님께도 말씀드린 적 있듯 저는 그때 상황에서 〈베테랑〉이 〈암살〉의 관객 수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을 했던 몇 안 되는 평론가 중에 한명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줄곧 〈베테랑〉을 응원하면서 지켜봤었죠. 전찬일 선생님도 보시기 전에는 잘 모르겠다고 하셨지만, 보시고 나서는 좋다고 하셨어요. 

: 저는 영화를 보기 전에 이미, 〈베테랑〉이 천만 넘을 거라고 류승완 감독에게 문자를 보냈죠. 

: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저는 〈베테랑〉은 〈베를린〉과 〈부당거래〉의 장점만을 뽑아서 만든 영화가 아닌가, 싶어요. 저는 감독님이 말씀하신 그 부분, 뭐 대단한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영화 만들어보겠다는, 어깨에 힘을 뺀 그 자세가 오히려 좋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던 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중견 감독들의 경우, 신작에 너무나 많은 부담과 자의식을 느끼다 대중들과 소통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하고. 역효과를 내기도 하죠. 그에 반해 〈부당거래〉를 만드시면서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 중에 못 들어갔던 것들을 모아 〈베테랑〉이라는 작품이 나오게 되었다는 인터뷰를 본적이 있었는데요, 그런 시작점이 신선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다수의 팬을 확보하고 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충무로 감독 중의 한분으로서 힘을 빼고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 오히려 그것이 동력이 되었기 때문에, 저는 부끄러워하시지 않아도 될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류승완 감독의 열 번째 영화 〈군함도〉

: 〈부당거래〉와 〈베를린〉의 장점을 결합했다는 것은 굉장히 적확한 평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당거래〉는 류승완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터닝 포인트를 이루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부당거래〉의 사회성 내지는 사회적 문제의식이, 〈베를린〉에서 보다 강조된 오락적인 재미, 액션과 적절하게 결합되면서 〈베테랑〉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거죠. 류승완 감독 뿐 아니고 지금 한국영화가 잘되는 이유를 한 마디로 풀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기 때문이라고 늘 말하는데, 그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암살〉과 〈베테랑〉을 꼽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류승완 감독이 앞서 많은 문제제기를 해주었어요. 시대적 배경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라고. 작금의 한국영화에서 시대성, 시대적 문제의식이 중요한데, 이걸 너무 진지하게 풀면 무겁고, 오락적으로 잘 포장해서 잘 전달하니까 관객들이 환호하면서 보지 않나, 싶은 거죠. 그러면서 〈베테랑〉이 더러는 지나치게 오락적으로 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일각에서는 할 수도 있겠죠. 

〈베테랑〉이 장편으로는 아홉 번째 영화더라고요. 준비 중인 〈군함도〉가 열 번째 영화인데, 열 번째 영화를 만든 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거죠. 아홉 번째 영화에서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로 열 번째 영화 준비를 하면서 많이 부담스러울 텐데, 류 감독 캐릭터를 보면 부담 많이 안 느끼고 툴툴 털어버리고 잘 할 것 같은데 어떠세요, 열 번째 영화 준비는? 

: 그러니까 숫자 자체가 의미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열 번째 영화. 그 사실은 그냥 숫자일 뿐인데도 의미가 생기잖아요. 저는 보기보다 제가 만든 결과물에 대해서 괴로워해요. 저 스스로 하는 행위들에 대해서 아주 괴로워하는 사람이에요. 일단 〈군함도〉를 다음 영화로 선택한 이유는…〈군함도〉는 사실 〈베테랑〉 촬영하기 전에 기획이 결정이 되어있던 작품이고, 〈베테랑〉을 작업하는 동안 이미 초고가 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베테랑〉을 촬영하기 전에 초안을 쓰던 작가와 방향성을 정했고, 제가 그 전에 얼개만 잡아놓고, 제 성에 안차서 다시 쭉 만지다가 〈베테랑〉 후반 작업하면서 지금까지 계속 해오고 있는 건데, 규모나 제작 환경이 제가 지금까지 영화 하면서 한 번도 안 해봤던 방식이에요. 섬 전체 세트를 만들어서 찍어야하는 거고, 스케일이 어마어마해요. 또, 제가 촬영하는 방식도 지금까지 했던 것들과는 아마 아주 다를 것 같고요. 저 스스로도 이게 처음해보는 거라서 재밌다가도 돌아서면 무섭고, 완전히 안 가본 길이라 무섭고, 이거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러면서 하고 있어요. 하지만 〈베테랑〉이 흥행을 했기 때문에 ‘이때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도전을 해보냐’는 생각이 있는 거죠. 그리고 열 번째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항상 새로운 영화를 만들 때는 ‘이전 영화보다는 잘 만들어야지’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지금도 영화를 잘 만들고 싶어요. 항상 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와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했지?’ 이런 게 있잖아요. 

저는 〈룸〉을 좀 늦게 봤어요. 〈룸〉을 보면 애가 탈출하고 아무 것도 아닌 하늘과 전봇대 선이 나오는데 어마어마해요. 애한테 닿는 빛줄기 하나가 주는 그 감정이 그 어떤 스펙터클보다 거대하고, ‘우와 어떻게 저런 센 이야기를 저렇게 풀었지’, 라는 생각이 들죠. 제가 〈룸〉 이야기를 계속 하는 이유가 뭐냐면, 제가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들은 너무 자극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사람을 화나게 하고, 열 받게 하고, 살살 긁어내고. 이건 되게 쉬운 방식인데 〈룸〉은 달라요. 제가 나이가 드니까 한 발짝 나아가서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룸〉 감독의 태도와 시선이 저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박찬욱 감독님, 이준익 감독님한테 다 연락해서 “〈룸〉 봤냐고, 나는 지금 개 쓰레기 같다고, 이게 뭐냐고” 그랬어요. 

결국 열 번째 영화라는 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열 번째 영화라고 하지만 제가 선택한 다음 영화는 언제나 저에게 첫 영화인 거니까. 〈베테랑〉 속편을 만들어도 그 영화는 저한테 첫 영화잖아요? 관객들은 다를 수 있겠죠. 누구의 다음 영화라는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만드는 사람한테는 사실 모든 게 첫 걸음이거든요. 그런데 〈군함도〉는 이게 예산 규모가 워낙 크니까 손익분기점이 워낙 높아서 잘 만들어야겠다는 부담은 있어요. 

: 제작비가 어느 정도인지는 말해줄 수 있나요? 

: 제작비가 완전히 확정되지는 않아서 말할 수 없지만, 한국영화 사상 거의 최고 수준일 거예요. 〈베테랑〉 같은 경우는 제작비가 60억이 되지 않은 영화거든요. 물론 제가 초기에 만들던 영화들에 비하면 〈베테랑〉도 엄청나게 큰 영화지만, 지금 같은 시장 사이즈에서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손익분기점에 대한 부담이 그렇게 크지 않은 영화였는데, 〈군함도〉는 부담이 크죠. 자본의 거대한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하니까. 그래서 그런 생각이 있어요. ‘이 영화 끝나면 난 무조건 작은 규모 예산의 영화를 할 거야, 지금 너무 힘들어, 언제까지 이런 악순환을 계속할 수 없어…’

: 나온 김에 〈군함도〉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하면, 여태까지 만든 아홉 편의 영화는 현대물이에요. 반면 〈군함도〉는 시대물인데, 시대물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신 건가요? 하다보니까 시대물인 건가요?  

: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된 것 같아요. 제가 2006년도에 〈야차〉라는 시대물을 준비했었는데 무산됐어요. 그런데 예전부터 일제 강점기 시절이 저한테 다루고 싶었죠… 아, 〈군함도〉가 첫 시대물은 아니네요.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극장판이 있으니까(웃음). 〈군함도〉는 제 두 번째 시대물이네요. 정극으로 다루는 건 처음이지만요. 헌데 일제 강점기 때가…제가 백범일지에 나온 몇몇 묘사들을 아주 좋아하는데, 윤봉길 의사가 의거 가기 직전에 백범과 대화할 때 자기 시계를 풀어주는 장면이 있어요. 백범한테 윤봉길 의사가 본인이 가장 아끼는 시계를 풀어주니까 백범이 “아니 이건 자네가 가장 아끼는 시계가 아닌가?”라고 하자, 윤봉길 의사가 “선생님 제게는 이제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좀 더 필요한 선생님께서 이 시계를 가지시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제 마음을 울려요. 정말 진정한 사나이들의 세계 같고. 신념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시대, 그러면서도 관계에서 신념이 인간성을 완전히 찍어 누른 것도 아닌 흔적들이 보이고. 예를 들면 의혈단이 거사를 치르기 전에 항상 사진을 찍잖아요. 자신들의 가장 좋았던 모습을 남기는 사진을. 저는 그런 순간들에 휴머니티가 살아있다고 봐요. 항상 그런 모습들이 되게 매력적이라 그 시대에 대한 로망이 좀 있어요. 

그런데 지금 그 시절, 그 세계를 다루려고 하는 저는 조금 달라졌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를 “헬조선”이라고 부르잖아요. 이게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생각해보면, 우리나라가 기본적으로 제대로 된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이 없는 상태에서 근대를 지나 현대를 맞이한 거잖아요. 예기치 않던 외세 침략에 의해서 엉망이 되고, 이 과정에서 내부의, 소위 사회지도층들이 혼란을 야기했고요. 어쨌건 이 근·현대사에서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지금의 현재를 만들어놨다고 보거든요.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요. 그래서 〈군함도〉 준비를 하면서 더 확신이 들었어요. 1944~45년까지의 기간을 다루고 있는데, 이것이 지금 현재의 이야기이기를 바라고 있어요.  

: 개인적으로 〈동주〉를 보면서 가슴 아팠던 게, 〈동주〉를 통해서 이준익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청산되지 않은 어떤 식민의식, 일본이 그토록 식민화시키려고 애썼던 한국인의 무의식이라고 보고 있어요. 윤동주의 시는 일종의 영화적 장치였다고 보고. 결국에 〈동주〉를 통해서 감독이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그거였고, 그걸 나타내는 핵심적 인물이 바로 “고등형사”였던 거죠. 그래서 저는 고등형사를 중시하면서 영화를 봤고, 리뷰도 그런 식으로 썼었는데, 꼭 일제만이 아니고 많은 것이 청산되지 못한 지금, 그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가 짚어야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군함도〉가 매우 기대가 되는데, 자연스럽게 말하다보니까 자꾸 〈부당거래〉 이야기가 나오네요. 류승완 감독은 개인적으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 때부터 워낙 친하게 지내면서 쭉 지켜봐왔고, 계속 성원하면서 십 수 년이 흘러왔는데, 류승완 하면 한국 장르영화의 귀재이고, 장르적 쾌감을 누구보다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걸 액션이라는 대중이 가장 좋아하는 툴을 가져다가 잘 전달해왔는데 〈부당거래〉에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서, ‘류승완 감독이 달라지고 있구나’를 보여주었죠. 그 이후의 영화들은 아까 말했듯이 사회적 의식을 재미있게 풀었고, 그것이 성공을 거두면서 〈베테랑〉까지 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때요? 〈부당거래〉를 만들게 된 계기, 지금 존재하는 류승완의 분기점이라고 생각되는데… 

〈부당거래〉의 출발

: 〈부당거래〉라는 영화가 저 스스로에게 어떤 분기점을 만들어 내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아마 그게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왜 같은 온도의 열탕에 들어갈 때 미지근한 물에 샤워하고 들어갈 때랑 차가운 물이랑은 차이가 확 나잖아요. 그렇듯 바로 전작이 〈다찌마와 리〉 극장판이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때 저는 영화 시장에서 고꾸라져 있었거든요. 사실 그때 굉장히 심각한 상태였고, 암사동에 터를 잡기 시작한 것도 강남에서 밀려나서였어요. 실제로 이직을 심각하게 고민했었고요. 그거 되게 널리 알려진 얘긴데, 그때 사무실도 다 접고, 그 시점, 〈다찌마와 리〉 극장판을 끝내고 〈부당거래〉를 하기 전에 상업 단편과 CF, 뮤직비디오 이런 걸 많이 만들었는데, 먹고살려고 만든 거예요. 있던 사무실을 정리하고, 직원들 퇴직금 만들어주고 하느라고. 그리고 실제로 투자사 사람들이 저를 안 만나줬어요. 

2003〜4년도에 갑자기 영화계가 성장하며 과도한 투자들이 생겼잖아요? 영화사들이 엄청 생기고, 주식열풍 불고. 그러다가 그 거품이 꺼지는 시점, 2007〜8년에 혹한기가 와요. 그때가 메인 투자사들의 인력들이 교체가 되는 시점이에요. 그러니까 그때 영화 투자를 담당하던 사람들이 와서 보니까 류승완 얘기는 하는데, 자기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것 같고, 심지어 어린데 경력은 또 있고, 그렇다고 300만 넘은 영화는 없고, 그러니까 너무 상대하기 불편한 거에요. 그리고 무슨 칸에서 상 받은 애는 아닌데,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고 애매한 거죠. 뭔가 돈을 벌어다 줄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시하기는 애매하고… 그래서 항상 연락하면 바빠서 연락이 안됐어요. 그리고 그때 저도 장인어른 돌아가시고 해서 시골에 들어가서 살았어요. 퇴촌 산속에서 살았는데, 그때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진짜로 영화 다 접고 완전히 다른 일 찾으려고 준비를 했었어요. 그 결정적인 계기를 준 게, 저희 애가 시민체육센터에서 농구를 배웠는데 어떤 달에 농구 강습비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이러면 안 되겠다, 가락시장에 가서라도 뭐라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을 때, 〈부당거래〉 대본이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까 그 시점에 영화를 만드는 방식 같은 것들이 바뀌어서 그런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짝패〉도 지방의 부동산 거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얘기란 말이죠. 그리고 〈주먹이 운다〉는 이 사회에서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 이야기죠. 〈아라한 장풍대작전〉도 사실 막 까부는 얘기지만 사실은 더 이상 가치가 없어진 가치를 붙잡고 살아가는 얘기라는 측면에서 제 처음 관심사에서 아예 바뀐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스킬이 바뀐 거겠죠. 〈부당거래〉를 하면서 제 스스로가 저의 흔적을 최대한 지워보고, 내가 다루려는 세계의 사실 관계만 집중해서 해보려고 했어요. 그때부터 약간 영화를 만드는 태도가 조금씩 바뀐 것 같아요. 뭔가 저 스스로 내세우고 싶어 하던 방식에서 제가 먼저 나서는 게 아니라 영화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태도로. 〈부당거래〉도 사실은 그게 저한테 처음 들어왔던 대본이 아니었고, 다른 감독들 세 분 정도 거쳐 들어온 대본이었어요. 제가 그때 약간 심취해있던 것이 TV 드라마 〈하얀 거탑〉이었는데, 우리 사회,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 어디에나 존재하는 정치 구도가 흥미로웠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던 시기에 그게 들어온 거예요. 헌데 그때 강혜정 대표나 승범(류승범)이나 한재덕 대표 등이 다 말리는 거예요. 이게 무슨 얘긴지 알아볼 수가 없다, 복잡하고 이상하고. 사실 저한테 들어왔었던 버전은 완성된 버전하고 완전 다르거든요. 그리고 그때는 제작자 구본한 대표가 자기가 쓴 대본이라고 줬어요. 그래서 저는 박훈정 감독(〈신세계〉, 〈대호〉)이 썼다는 대본을 본적이 없어요. 그래서 박훈정이 원작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아마 박훈정 원작을 엄청나게 손을 보고 줬나 봐요. 저는 거기서 주요 골자인 검경의 대립, 경찰 안에서의 권력구도, 자본가들의 역할, 이런 삼각 꼭지점을 가지고 이렇게 만들어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완전히 시나리오를 다 뜯어고친다는 자유를 주면 하겠다는 조건으로 만났죠. 그렇게 만났다가 무산되고, 시나리오가 돌다가 몇 달 후에 다시 들어온 거예요. 그래서 각색에 대한 자율권을 보장받고 다 뜯어 고친 거죠. 그리고 캐스팅도 그때 황정민 선배도 그렇고, 류승범도 좋을 때가 아니었어요. 흥행이 계속 안 되고. 그런데 저는 황정민, 류승범을 해야겠어서 둘을 고집하고, 결국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게 잘 안되면 다른 일 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대신에 그 영화 만들면서, 그 이전에도 영화 만들 때면 취재를 정말 열심히 했는데, 그때는 진짜 엄청나게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 덕에 〈베테랑〉까지 도움을 주고 있는 형사들, 주진우 기자 같은 사람들… 이전에는 취재를 할 때 연출부가 취재해온 걸 가지고 하고 그랬는데 그때는 제가 직접 무지하게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각본을 고치는데 굉장히 공을 들였고, 투자도 되게 힘들게 됐어요. 그게 30억에 만든 영환데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이를테면 세트를 지을 수가 없어서 좁은 공간에서 대화 장면을 찍는데, 오버 더 숄더 쇼트를 찍고 싶은데, 공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거울을 가져다가 거울 반사로, 40년대 할리우드처럼 그렇게 찍었거든요. 그때 제가 사람들한테 너무 감사했던 게, 너무 어려울 때 어렵게 들어가니까 스태프들이 모두 자기가 받는 개런티보다 훨씬 낮게 계약을 해줘서, 정말 사람 하나 살리고 보자 이런 느낌으로 말이죠,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 중 현장이 가장 기분 좋게 돌아간 영화였어요. 현장이 기분 좋은 영화가 몇 편 안되거든요. 다 지옥인데 〈베테랑〉과 〈부당거래〉가 좋았어요. 지금도 〈부당거래〉 팀은 만나면 되게 반가운 동창생을 만나는 기분이라 자주 만나요. 정정훈 촬영감독도 제가 원하던 쇼트를 잘 만들어주었고. 하여튼 그때 모든 합이 되게 잘 맞았어요. 결과적으로 황정민 선배도 그 영화 이후로 잘 풀리고, 한재덕 대표도 그때부터 잘 풀리고, 저도 그렇고. 그리고 얼마 안 되서 제가 마흔을 맞이했는데, 새로운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영화에요.  

: 사실 류 감독의 필모를 쭉 보면, 아까 내가 장르 쾌감이라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다 어느 정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장르 쾌감을 추구한 것인데, 〈부당거래〉가 유독 다르게 비쳐줬던 게 본인이 말했지만, 그 동안은 감독으로서의 어떤 자의식으로 장르 쾌감 쪽에 무게를 실었다면, 자기가 뒤로 물러나면서 영화를 내세우는 즉, 영화 속 인물이나 사건에 충실하려 했다는 점이 더 강한 전달력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도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니라 페이소스와 문제의식이 있는 액션 영화였는데 그 동안은 우리가 장르로 류승완을 풀었다는 거죠. 그런데 〈부당거래〉부터는 장르를 싹 줄이면서 ‘아 류승완이 어른이 되는구나, 그 이전에는 영화적 치기 이런 게 더 강했다면 이제는 성숙해지면서 뭔가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되며 신뢰가 더 생긴 것 같아요. 〈부당거래〉가 베를린영화제에 초청을 받았고, 그때 베를린에서 류 감독이 내게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를 보니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감독으로서 의도했던 바가 100 프로 보인다면서 감탄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때의 경험이 차기작 〈베를린〉을 기획, 연출하게 된 계기가 된 걸로 알고 있고요. 결국 〈부당거래〉가 류 감독에겐 터닝 포인트적 의미가 된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거예요.   

: 오늘 얘기하다 보니까 그건 있었던 것 같아요. 항상 저의 과욕이 저를 이끌었던 것 같아요. 제가 영화를 만들 때 제가 다룬 인물들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완성도에 차이가 나거든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같은 경우 거기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서 다 알고, 그 세계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아는데, 지금 보면 영화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를 때였어요. 영화를 만드는 스킬이나 이런 게 아무 것도 없었고, 죽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과욕만 넘쳤던 거죠. 그래서 이번에 그 영화를 다시 보는데 도저히 못 보겠더군요. 편집을 다시 하지 않으면 공개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순식간에 8분을 잘라냈어요. 내가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 그러면서…

: 그렇지만 그때 그 영화는 굉장히 새로운 영화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 그렇죠. 그때 스물일곱이었는데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거예요. 지금 보면 너무 부끄럽죠.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주먹이 운다〉, 〈짝패〉, 〈부당거래〉, 〈베테랑〉 이 영화들은 제가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세계에 대해서 다 설명할 수 있어요. 조연들까지. 제가 취향으로 만든 영화들, 〈아라한 장풍대작전〉도 거기 있는 아저씨들은 다 설명할 수 있어요. 판타지 캐릭터들을 빼면요. 〈피도 눈물도 없이〉나 〈다찌마와 리〉도 마찬가지죠. 실은 〈다찌마와 리〉는 제 취향의 끝이죠. 

그런데 〈베를린〉은 제가 계속 봐도 알 수가 없는 세계여서, 그 영화를 만들 때 되게 힘들었고, 혼란스러웠죠. 그 영화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리가 안 되거든요. 헌데 〈베테랑〉을 보실 때 편안하게 보시고 많은 분들이 지지해주시는 것은 그 두 개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가 아는 세계와 아는 인물과 아는 이야기를 만드는데, 그것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서 책상에서 머리로 만든 게 아니라 몸에 익힌 걸로 하니까…이를테면 거기에서 중요한 건 태도 같아요.  

태도로 봤을 때 제가 아까 부끄럽다고 한 건, 제가 너무 편안하게 있으니까, 너무 안일한 순간도 있었고 오버한 순간도 있었다는 거죠. 〈베테랑〉에서 많이 공격 받았던 게 여성에 대한 시각이었어요. 처음에는 “왜들 이렇게 난리지?”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시간이 지나보니까 “이런 비판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제 태도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바라보는 것을 어떻게 찍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이런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베테랑〉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욕심을 부린, 거기서 놀았기 때문에 이게 전달이 편안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 말씀을 듣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감독님들이 계속해서 부지런히 다음 영화를 준비할 수 있는 추동력 중 하나가 아까 말씀하신, 지금 내가 찍었던 영화의 부족한 점을 보고, 그런 것들을 계속 채워나가고 싶은 욕구라고 하더군요. 다음 영화에서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임권택 감독님도, 최동훈 감독님도 그런 말씀 하셨고요. 류승완 감독님도 〈베테랑〉에 그런 욕심들을 반영하셨던 만큼, 앞으로의 영화들에도 스스로 보완하고 싶은 점들을 채워 넣으시겠죠. 

: 저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2000년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영화를 많이 만들었잖아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15년에 9편이면 저랑 같이 시작한 다른 감독들에 비하면 많이 만든 편이거든요. 임권택 감독님에 비할 건 아니지만. 제가 이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계속 다음 영화를 준비해서였던 것 같아요. 초기에는 제가 계속 이것도 만들고 싶고, 저것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어느 정도 지나가서는 감독으로서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음 걸 준비하는데, 제가 약간 일중독이 있는데 쉬지를 못 해요. 쉬고 있으면 불안해서 계속 뭘 하고 있어야 해요. 이게 어쩌면 중독의 현상일 수도 있고 불안함 때문일 수도 있어요. 저한테 행운은 항상 제가 완전히 고꾸라지지 않을 만큼의 채찍질을 받고 너무 날아다니지 않을 만큼 당근을 먹었기 때문 같아요. 〈부당거래〉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 그 영화가 그렇게 흥행이 잘 된 영화가 아니에요. 270만을 조금 더 넘은 정도였죠. 저는 항상 흥행이 엄청 잘 된 건 아니지만 엄청 망한 것도 아니고, 스페인 어디에서 상은 받아오고, 칸에서 상은 받았는데, 큰 상은 아니고, 그러니까 띄우기도 뭐하고. 그렇게 저 자체가 긴장과 이완의 상태가 적절한 수준을 유지하며 왔던 것 같아요. 만약에 제가 초기작 중에 두 번째 영화나 세 번째 영화에서 확 떴으면 어쩌면 제가 더 확 뻗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고만고만하게 와서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 수 있었어요. ‘다음에는 더 잘해야지’라는 다짐으로. 그러니까 시나리오를 쓸 때, 내가 지금까지 만든 걸 다 무너뜨리고 죽이는 걸 만들 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한계에 부딪히는 게 있단 말이죠. 그러면 콘티 할 때 해결되고, 또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서 해결되고, 또 뭐가 생기면 편집에서 해결되고, 음악으로 해결되고…그렇게 생각을 해요.

: 그럼 〈부당거래〉가 박훈정 감독님 원작에서 엄청나게 많이 고쳐진 작품이었나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류: 위에서 말했듯 박훈정 감독 원작은 본적이 없어요. 제가 받았을 때는 그 대본과는 이미 멀리 떨어져 있었고 거기서도 많이 고쳤죠. 저를 아는 분들은 그게 제가 쓰는 말투인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썼다는 걸 잘 알아요. 박훈정 감독을 〈부당거래〉 끝나서야 만났어요. 그때 당시 제가 감독 조합 일도 하고 있었고, 그래서 각본가들을 세워줘야 하니까 일부러 박훈정 원작으로 말하고 다녔어요. 하지만 실제로 작업할 때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오히려 한재덕 대표의 영향력이 컸죠. 그 사람이 쓰던 말투 같은 걸 많이 가져다 썼고. 〈신세계〉도 한재덕이라는 프로듀서의 공이 되게 커요. 그리고 그 〈신세계〉 팀들, 다 〈부당거래〉 팀들이 가서 만든 거거든요. 〈범죄와의 전쟁〉도 그렇고… 

〈베테랑〉의 장윤주 캐스팅

: 다시 〈베테랑〉 얘기로 돌아가, 아까 〈베테랑〉에서의 여성들에 대한 시각을 말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장윤주 캐스팅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결과는 좋았지만요. 영화의 캐스팅이 기본적으로 절묘했습니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 좀 해주시죠.   

: 캐스팅 얘기에 앞서서 그 역할 이름이 미스봉이었는데, “미스봉이 왜 미스봉이냐?”라는 공격이 되게 많았어요. 여성 관객들한테. 그런데 형사들이 원래 이름 잘 안 부르고 별명을 부르거든요. 오히려 저는 여성들만 열외 시키는 게 더 차별적이라고 생각해서 남자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별명을 미스봉이라고 했는데, 왜 남자들은 미스터라고 안하면서 여자만 미스라고 하냐는 비판이 있었어요. 저는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시대가 많이 바뀌었구나, 내가 빨리 적응을 해야겠다’라는 걸 느꼈죠. 그리고 진경씨가 연기했던, 서도철 아내 주연이 마지막에 자기도 명품 백보고 흔들렸다, 자기도 사람이고 여자라고 하는데, 그걸 불편해 하는 여성 관객도 있었거든요. 약간 성향의 차이도 있겠지만, 처음에는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알겠더라고요. 어쨌거나 그런 부분들은 제가 좀 균형 잡힌 시선으로 개선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캐스팅 얘기로 넘어가면, 미스봉은 오디션을 많이 봤었어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배우들도 정말 많이 봤어요. 예쁜 배우도 있었고, 연기 잘 하는 배우도 있었고, 되게 웃기는 배우도 있었고, 다 있었는데, 이게 역할을 잘못 배치하면 미스봉이 아니라 그냥 연기하는 여배우로 보일 것 같았어요. 여자들이 많이 나오지도 않는데, 어느 하나가 톡 튀어서 극을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 고민하다가 제가 〈신 시티〉의 미호 캐릭터를 되게 좋아하는데, 장윤주가 약간 그런 느낌이 있거든요. 장윤주에 대해서 리서치를 좀 해보니까 무한도전 발연기가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봤더니 제 눈에는 그 친구가 발연기를 연기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대단히 머리가 좋은 친구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장윤주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어보니까 발음도 좋고 음색도 안정적이고, 조사를 하다 보니까 서울예대 영화 연출 전공이었어요. 그런데 처음에는 장윤주 얘기 꺼내니까 사람들이 다들 뜨악해 했었죠. 헌데 저는 의외의 캐스팅을 하는 걸 좋아해요. 이게 정말 중요한 캐릭터라서 오디션 볼 때 황정민 선배가 직접 들어와서 대사를 쳐줬어요. 배우 하나하나. 그래서 오디션을 보는데, 장윤주가 사무실을 들어오는데, 되게 좋은 기운 하나가 훅 들어오는 거예요. 그리고 일단 장윤주라는 배우가 연기만 한 게 아니라 무대에서 어떤 식으로든 무엇인가를 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기운이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좋았던 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태도가 되게 좋았어요. 그러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어, 나 류승완 감독이 누군가 한번 보려고 왔어요. 내가 승범이하고도 친구고.” 이러고 와서 “황정민 배우 어떻게 생겼나 보려고” 왔다고, 빵을 이만큼 사가지고 왔는데 뭐랄까 배역을 절실히 원하는 사람한테서 오는 에너지도 있지만 해도 안 해도 그만이라는 여유의 에너지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 여유의 에너지가 제가 받던 절실함의 에너지를 다 덮는 거예요. 일종의 ‘밀당’ 같은 건데, 너무 막 좋다고 달려들면 좀 피하게 되는데, 음 나 뭐, 이러면 오히려 사람을 끌어들이는 거죠.  

그리고 오디션을 보는데 오디션 봤던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대사를 칠 때 하는 패턴들이 있는데, 그 패턴들이 없었어요. 이 배우가, 잘 한다 못 한다를 떠나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대사를 쳐서, 어, 가장 다르다, 오디션 봤던 사람들하고. 그리고 돌아와서 황정민 선배와 이야기를 하는데 저 배우가 우리가 뽑는 배우 중에 베스트가 될지는 자기도 모르겠지만 분명 우리에게 손해를 입힐 사람은 아닐 것 같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고 하더군요. 그렇게 캐스팅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저는 대단히 만족해요. 왜냐면, 정말 열심히 하고 현장에서 사람 자체의 분위기가 매우 좋은 이미지를 풍겨서, 현장을 기분 좋게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장윤주가 나오는 날 다들 기분좋아하고, 배려도 잘하고, 영화에서도 자기의 역할을 십분 발휘하고… 

개봉하고 나서 그런 건 있었어요. 선입견이라는 게 대단히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일반인 리뷰를 보면 장윤주 발 연기에 대한 말이 있거든요. 근데 실제로 해외에서 상영을 하면, 미스 봉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아요. 시원하게 나쁜 놈들 발로 차고. 딱 필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  

: 황정민과 오달수의 조합에 장윤주가 잘 어울리죠. 그 두 사람의 캐릭터 자체가 붕 뜨는데 같이 떠줘야 하니까요. 그걸 못 맞춰주면 좀 어색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 그리고 장윤주의 음색이 저음이고 되게 좋아요. 그래서 아무리 떠있어도 자기의 목소리 톤이 딱 잡혀있으니까, 이게 귀에 거슬리지 않아요. 제 예상보다 훨씬 더 잘해준 배우였어요.

부산국제영화제와의 인연, 유아인 캐스팅

: 애당초 황정민은 정해져 있었고, 그럼 유아인의 경우는?

: 애를 많이 먹었어요. 유아인이 애를 먹인 게 아니라, 그 역할이 유명 배우들한테 다 돌았는데, 다 까였어요. 일단 청춘스타들은 광고와 한류 시장에 영향을 받을까봐 까이고, 그래서 조금 에이지를 올려서 접근을 해보면 영화가 서도철 중심으로 가니까 자기가 묻힐 것 같아서 까이고, 기억도 안날 만큼 꽤 많이 까였어요. 승범이한테도 줘봤더니, 형 우리가 이렇게 하면 〈부당거래〉 재판이잖아, 그러면서 까였어요. 

유아인과의 인연은, 유아인의 초기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제가 좋아해서 시네코아가  있을 때, 폐관하기 전에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는데 그거 보고 뒤풀이에서 유아인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유아인하고 작업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었죠. 그 이후 《아레나》라는 남성 잡지에서 하는 시상식에서 저는 〈부당거래〉로 상을 받고 유아인은 그때 〈완득이〉로 상 받아서 만났죠. 그렇게 두 번 만났어요. 그리고 나중에 같은 시상식에서 〈베테랑〉으로 둘 다 상을 받았죠.

〈부당거래〉와 〈완득이〉로 상을 받은 뒤 몇 년 후 부산영화제에서 만나, 다음 작품 뭐해요,  그런 얘기 하다가 자연스럽게, 물론 사심은 있었지만, 제 다음 영화 얘기를 해주니까 유아인이 그 자리에서 대본 보고 싶다고, 자기 이 메일 주소를 알려주면서 보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로 보내고, 그때 단편 〈유령〉을 찍고 있을 때였는데, 전화가 온 거예요. 자기가 하겠다고, 되게 재밌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유아인한테 대본을 보낼 때는, 그 간 하도 까였으니까 인물에 대해서 조태오가 나빠야 하는 이유들이 있어야 할 듯해, 애가 사실 외로운 애고 등등, 그런 걸 추가해서 보냈는데 유아인이 먼저 걔 그냥 나쁜 놈이면 안 돼요? 뭐 이렇게 사연이 많아,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네가 깔까봐 그랬지, 네가 그렇게 해주면 좋지.” 이렇게 캐스팅이 된 거예요. 그나저나 부산국제영화제가 사태가 심상치 않은데, 만의 하나 부산영화제가 잘못되면 그런 캐스팅도 없을 텐데, 해외 프로젝트들 관련 논의도 부산영화제에서 많이 이루어지는데, 염려 되네요.  

: 유아인이 하지 않았으면 조태오 캐릭터의 임팩트가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조태오 역을 퇴짜 놓은 사람들은 〈베테랑〉을 통해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거죠. 사실 연기자로서 유아인이 훌륭한 게 그런 적극성일 텐데, 〈완득이〉 때도, 이한 감독한테 들으니까 처음에는 이한 감독이 유아인을 내켜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유아인이 먼저 〈완득이〉를 하겠다고 세 번이나 찾아와서 결국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헌데 유아인이 〈완득이〉를 안 했으면 〈완득이〉도 성공 못했을 거고, 오늘 날의 유아인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이죠. 유아인은 〈밀회〉 같은 TV 드라마도 있긴 하나, 영화에서는 〈완득이〉로 강한 인상을 주는데 성공했고, 〈베테랑〉으로 정점을 찍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게 〈사도〉로 이어졌고요. 

: 유아인의 행보가 다른 배우들에게도 영향을 줬어요. 이번 〈군함도〉를 준비하면서 송중기를 만났는데, 〈베테랑〉 대본이 송중기한테는 간 적이 없지만, 군대에 있으면서 직접 구해서 봤나 봐요. 군대에서는 뭘 많이 읽으니까요. 송중기가 〈베테랑〉 대본을 읽었는데, 만약에 〈베테랑〉 대본이 자기한테 왔으면 자기는 안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조태오라는 인물이 밑도 끝도 없고 그러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아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유아인의 선택과 행보가 주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악역 유아인의 매력, 감독이 캐릭터에 부여한 것 아냐

: 실제로 영화를 보면서, 유아인 캐릭터가 분명히 악당이지만 전적으로 악당이라기보다는 상당히 매력적인 악당인데, 그게 유아인의 매력인지, 아니면 감독으로서 캐릭터에 부여한 매력인지 궁금했어요. 

:  저는 유아인의 매력인 것 같아요. 실제로 저도 영화가 성공하고, 나이가 드니까 제가 이전에 못 만나 봤던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 진짜로 저런 쓰레기가 있구나, 이런 게 보여요. 제가 최근에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하대하는 사람을 만났어요. 헬스클럽에서 만난 사람인데, 트레이너들한테 일단 다 반말이고, 진짜 막 대해요. 거기 있는 여직원한테 열쇠도 집어 던지고, 자기 말을 하면 듣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고, 다른 사람 운동할 때는 매트에서 운동할 때 신발 벗으라고 뭐라 그러고, 자기는 실내 골프할 때 거기 바닥에 침 뱉고 그러더라고요. 하도 이상해서 알아보니까, 그 사람이 부산지검장 출신에 지금 김 앤 장 변호사에요. 근데 법조인이라는 사람이 그 작은 사회 안에서 최소한의 룰도 안 지키고, 자기 뜻대로 안될 때 화를 내는데, 스물일곱 먹은 자기 아들도 똑같아요. 진짜 있구나, 저런 사람이. 그런데 보면 하버드 출신이예요. 그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그게 거슬러 올라가보면 친일청산이 안 되서 그런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예순 셋 먹은 사람이 그때 하버드까지 갔다 올 정도면 좋은 집안이라는 건데,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아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진짜 실제로 조태오를 봤다고 생각하면 정말 짜증날 것 같아요. 그런 캐릭터를 체육관에서 봤을 때, 언젠가 그 행동을 영화에 써먹을 건데, 그걸 화면에서 보면 어떤 역할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예를 들면 〈범죄와의 전쟁〉 최민식 캐릭터를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캐릭터잖아요? 경찰서 가서 “내가 느그 서장하고 임마 밥도 먹고 임마”, 그런 걸 보면 웃기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보면 이건 굉장히 큰 사회 질서를 해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인데, 영화적으로는 매력이 생긴단 말이죠. 그러니까 저는 배우에게 어떤 매력을 주려고 했던 게 아니지만 유아인 자체가 캐릭터에 숨결을 불어넣어서 매력을 만든 것이죠. 그래서 저 역할은 누가 하냐에 따라 굉장히 달랐을 것 같아요. 우리가 40년대 필름 누아르 악당들을 보면 누가 하냐에 따라 다르잖아요. 제임스 케그니가 하는 방식, 애드워드 로빈슨이 하는 방식이  다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관객들이 봤을 때 호감을 만들어준 건 유아인의 공이 굉장히 큰 거죠. 

: 유아인은 그런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하겠다고 한 거겠죠.  

: 초반에는 유아인도 되게 힘들어 했어요. 왜냐하면 그때 〈밀회〉와 겹치기 촬영을 하고 있었거든요. 낮에는 순수 청년의 결정체를 연기하고 밤에 오면 수트 갈아입고 나쁜 역할을 하려니 적응이 안 된 거죠. 유아인이 그런 수트 입고 연기한 게 처음이었대요. 또 〈베테랑〉이 되게 자극적인 게 외국 관객들 보면 반응이 되게 세게 오거든요. 검열에서 금기시 하는 세 개를 다 건드려요. 여성을 학대하고, 아동을 학대하고, 동물을 학대해요. 그러니까 여성과 아동과 동물을 학대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거예요. 그러니 유아인을 보면서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상할 정도죠. 하여튼 그런 행동을 하는데도 설득력 있게 뭔가를 보여주고 관객으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한다는 건 그 친구의 재능인 거죠.    

: 그러니까 그 캐릭터의 매력이 아니라 그걸 너무 훌륭하게 소화해 낸 유아인 씨의 매력인거죠. 

: 캐릭터는 매력 있는 게 아니죠. 그건 그냥 악당이죠. 

: 그래서 세 번째 촬영까지는 되게 힘들어했어요. 저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다가 배기사 폭행하는 장면을 찍고 나서부터 확 왔어요. 배기사 폭행하면서 배기사 아들 목을 잡고 똑바로 보라고 하고 낄낄거리고 웃고 그러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 장면을 찍고 스태프들의 분위기도 확 달라졌어요. 그 전까지는 여자 스태프들이 유아인 오면 좋아했는데, 그런 게 사라졌죠. 스태프 중에 한 명은 저기 들어가서 유아인 때리고 싶다고 화내고 그랬어요. 참 순진하죠. 영화인데(웃음). 하여튼 유아인 본인도 그걸 하고 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더라고요. 그래서 그 장면 이후로는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 됐어요. 저도 그냥 딱 맡기고 구경만 하면 됐어요. 

그리고 〈밀회〉가 호응이 좋았잖아요. 조태오가 체포 되서 법원에 출두하는 장면을 영화 중간에 실제 법원에서 찍었어요. 주말이라 법원에서 결혼식을 하더라고요. 유아인이 버스에서 내리니까 거기 아줌마들이 “아휴, 쟤 결국 잡혀 들어가는 구나”, 이러는 거예요. 〈밀회〉에서 잡혀가는 줄 알고. 그래서 나중에 조태오는 결국 간통으로 들어간 거야, 그러면서 웃었어요(웃음).

황정민 캐릭터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 아니냐

: 캐스팅 이야기는 이 정도하면 될 것 같고, 사실 보면 황정민 캐릭터가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많이 나왔는데, 그런 점에서 감독의 욕망, 판타지가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거지요? 

: 저는 그 지점에서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요. 명확하게 그 모델이 있어요. 서도철의 모델. 물론 그건 사실이죠. 제가 VIP 시사회 때 꼭 모셔서 연출하고 싶었던 광경이 있었는데, 강우석, 안성기, 박중훈, 설경구 네 분을 모두 한 자리에 모셔놓고, 그리고 무대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형사 영화’의 기초를 닦아준 분들이었기에. 물론 다 스케줄이 바쁘셔서 안됐죠. 어쨌든 80년대 미국 형사 영화들, 80년대 형사 영화들의 액션 영웅들, 80년대 홍콩의 재키 찬 등 영웅들, 한국 90년대 이후에 형사 영웅들, 강철중 등의 영향이 있죠. 심지어는 처음에 투자사 CJ에서 아주 진지하게 이 영화를 〈공공의 적 4〉편으로 가자라는 말도 있었어요. 그렇게 4편으로 가면 무조건 500만은 깔고 시작한다, 고. 저는 “그러면 당신들이 공공의 적이 된다”, 고 말했었는데(웃음), 그들은 정말 진지했어요. 어쨌든 많은 관객들이 강철중의 영향 아래 있다고 했고, 저도 그걸 부인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강철중하고 다른 건 뭐냐면, 강철중은 되게 센 사람이고, 눈이 딱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는데, 서도철은 눈치를 되게 많이 보는 캐릭터거든요.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강철중은 진급에 신경을 안 쓰는데, 서도철은 진급에 굉장히 신경 쓰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강철중은 가정에 대한 얘기는 하지만 그 가정이 거의 안 나와요. 그런데 저는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가장이라는 게 되게 중요했거든요. 한 집안의 가장이면서,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 〈리썰 웨폰〉의 데니 글로버도 또 다른 주연 멜 깁슨의 파트너죠. 그 영화도 가족을 잃어버렸던 사람이 가족을 회복하는 과정이잖아요. 그렇게 치자면 〈베테랑〉은 되게 보수적인 가치관을 지닌 영화에요. 자기의 가치관을 지키려고 하고, 자기의 가족을 지키려고 하고, 자기 공동체를 지키고 싶어 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고. 그런데 강철중은 사실 아나키스트죠. 소속은 있는데 조직의 규범에서 마구 엇나가죠. 서도철은 한 번도 경찰 규정에서 벗어나지는 않아요. 그 규정 안에서 움직여요. 그러니까 많은 재벌들과 여담꾼들이 불편해 할 필요가 없는 영화에요.  

: 〈베테랑〉 개봉하고 몇 주 뒤에 경찰청 인권영화제에 가서 청장님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는데, 그 전날 〈베테랑〉을 보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픽션이기 때문에 과장된 점도 있지만, 영화가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경찰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 그건 자기들이 멋있게 나와서 그런 거고, 저는 오히려 형사들보다 제가 모델로 삼은 사람은 주진우 기자예요. 그 다음에 형사들 중에 도움 준 사람 중에서 자기 이름 올리지 말라 그런 사람이 있는데, 그 둘이 이 영화에 영향을 제일 많이 줬어요. 주진우 기자는 자기가 위험해질 상황에 처할 걸 알면서 밀어붙이고 하는 걸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아요. 저는 영화감독과 형사와 기자가 약간 비슷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제로 저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형사들 중에서도 예전에 한화사건 있을 때, 그걸 파고 들어가다가 좌천된 경찰들이 있거든요. 남대문 경찰서에. 

: 그러니까 사실 어떤 사회가, 정의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정의로우려면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런 사람 수가 늘어나야 하는데, 현실은 그런 사람을 제거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겠죠.  

: 그게 없으니까 판타지로 보인다는 거죠. 

: 사실 나도 서도철처럼 살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인데, 그런 지향을 가지고 계속 살아왔는데, 실제로 현실에서는 그러기가 너무 힘들긴 하죠.   

: 잘 안되죠. 저도 장담하기는 힘든데, 저는 항상 제 세대나 제 앞 세대한테 이야기하는 방식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베테랑〉은 내 다음 세대들과 소통하는 영화를 만든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이를테면 어렸을 때 서부 영화를 보면서 여자와 아이들은 보호해야한다는 개념을 배웠단 말이죠. 영화를 통해서. 그래서 나중에라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건, 어려운 상황에서 누군가를 구한 경찰이 인터뷰를 하면서 〈베테랑〉을 보고 형사의 꿈을 키웠다는 사람을, 10대 중 누군가가 〈베테랑〉을 보면서 저런 쿨한 형사가 되고 싶다는 사람을,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반성하고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업가들도 저 만나면 자기 안 그런다고 그러고, 재벌가에서는 화내는 사람들도 많았데요. 다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까. 그런데 아직 성장하는 친구들은 다르잖아요. 어떤 한사람만이라도, 괜찮은 친구들을 세상에 나오게 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요.

: 영화가 주는 사회적 파급력을 생각하면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거예요. 그런 사람 자체가 “내가 〈베테랑〉을 보고 영향을 받아서 형사가 되려고 한다”, 이런 말을 하지는 않아도, 꽤  많을 거예요. 그래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다는 게 의미 있는 걸테고요.   

: 〈부당거래〉 같은 영화를 보고 부끄러움을 느낄 만한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서도철 같은 사람들이 절대로 잘 살 수는 없겠죠? 그러니까 저는 〈베테랑〉의 속편을 만들게 되면 어떤 과정이 되든지, 서도철 팀은 다 깨져있을 거예요. 그래서 이런 걸로 시작하고 싶어요. 다 흩어진 서도철 팀의 이야기.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겠죠. 그런 사람들을 응원하고 “당신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더 심각할 것이다”,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대사의 비하인드 스토리

: 시간상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 영화를 통해서 유명해진 대사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이 대사는 어떻게 사용하게 된 것인가요?

: 제가 몇 년 전에 김동호 위원장님 사진전 할 때 갔다가 강수연 선배를 봤어요. 그 선배가 뒤풀이에서 일어나서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마셔!” 이러는데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써놓고 “어디다 써먹어야지”, 벼르다가 여기다 썼어요. 그래서 시사회 때 강수연 선배를 모셨는데 영화를 보면서 계속 “어머 이거 내 대사야”, 그러셨죠. 나중에 연락해서 저작권 어떻게 할 거냐고, 변호사랑 연락하라고 그러고. “우리가 사법적으로 만나는 거보다는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요?” 그랬더니 “소맥으로 해결할까?” 이러셨는데(웃음). 결국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맥락을 잘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강수연 선배한테서 그 말을 들었다고 하니까, 강수연 개인이 하기에는 돈도 많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해, 그러시는데 사실은 강수연 선배가 하는 대사에 의미가 있어요. 같은 영화인으로서 저의 추측인데, 강수연 선배가 아역부터 시작하신 분이잖아요. 7〜80년대 영화 현장이라는 것은 직업적으로는 완전히 천대 받던 현장이었는데, 방송국 사람들은 현장에서 밥을 같이 안 먹잖아요. 근데 영화하는 사람들은 밥을 같이 먹는 전통이 있죠. 이게 옛날에 개런티를 제대로 못 주니까 밥은 꼭 먹여서 보내주는 거예요, 사무실에 오면. 술자리에서 술 먹고 이러면 좋은 안주가 뭐가 있겠어요? 그렇게 강수연 선배가 성인 배우가 되고 나서는 제작사에서 회식 자리 같은 거 제대로 안 만들어주면 배우들이 술을 샀는데, 거기서 스태프들이 위축되어 있으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에게 강수연 선배의 성격상 이렇게 말을 하는 거죠. 그 정확한 대사는 “우리 영화인들이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이거였어요. 그러니까 스태프들이 힘들 때 “영화하는 게 죄인가?” 이런 생각이 들까봐,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봐요. 

: 한국영화 중에 이렇게 뜬 대사가 있나요? 말장난 식으로 하는 거 말고, 우리의 상황과 마음가짐을 잘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그런 마음 없으면 못 버티잖아요. 나는 류 감독이 그렇게까지 마음 고생한지 오늘 알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고생하면서 힘들게 버틸지? 〈부당거래〉, 〈베를린〉, 〈베테랑〉 이게 불과 4?5년 동안 나온 작품들인데, 그동안 버텼으니까 지금 이런 순간이 온 거겠죠?    

: 제가 〈짝패〉에서도 썼던 게,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다”라는 말, 그건 이건 제가 복싱하면서 배운 말이에요. 평소에도 잘 쓰는 말인데 챔피언 되는 사람들이 절대 펀치만으로는 챔피언이 못되거든요. 맷집이 없으면 안 되거든요. 때리는 것만큼 잘 맞아야 되는데 때리는 것만 아는 사람들은, 맞는 연습이 안 된 사람들은, 옆구리 한 데 맞으면 주저앉아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때리는 것만큼 맞는 게 연습이 되어야 해요. 복싱을 하려면요. 그런데 저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맞으면서 컸어요. 그래서 괜찮았어요. 그런데 가족이 생기고 나이가 드니까 겁이 많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주진우 같은 사람들은 겁이 없으니까, 제가 아직도 “와 대단하다”라고 하는 거죠. 

: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잘 견디는 거겠죠?  

: 배우들도 그렇고 우리영화 스태프들 모두가 놀랐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 영화는 작년 여름 그렇게 핫한 영화가 아니었어요. 시사회하기 전까지도. 그냥 뭐. “액션 영화 하나, 그 사람이 만들었네” 이거였죠. 〈미션 임파서블〉도 있었고, 〈암살〉도 있었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가 선두에 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었어요. 

: 원래 봄에 개봉하려고 하시다가 내부 시사회에서 반응이 좋아서 여름으로 돌리자고 했다던데 맞나요? 

: 원래는 재작년 추석 개봉을 하고 싶었어요. 명절 개봉을 하려고 했었는데 우리가 작업이 늦여름에 끝나서 도저히 못 맞추고 겨울 개봉으로 가자고 했는데, 〈국제시장〉이라는 큰 영화가 턱하니 버티고 있으니까, 〈국제시장〉 피해서 설에 개봉하려니 황정민 오달수가 너무 떠서 안 됐고, 5월은 〈어벤져스 2〉 때문에 안 되고, “내년에 개봉해?” 그랬거든요. 그러다가 그럼 “6월로 가자” 그랬어요. 그런데 그 때 배급팀장이 한여름에 개봉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그랬죠. 사실 감독들에게 흥행 안 되는 거보다 더 무서운 게 아예 언급이 안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신이 없는 거예요. “톰 크루즈도 한국 온다는데, 우리 완전히 묻힌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랬더니 배급팀장이 되게 자신 있어 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얘기냐고, 쟤 누군데 자꾸 와서 저런 소리 하냐”고 그랬었는데, 제가 나중에 배급팀장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그랬죠. 재밌었던 게 뭐냐면 5월 달에 블라인드 시사회가 있었는데 그 점수가 기록적으로 나온 거예요. 무슨 일이지 알아보니 그 날이 땅콩회항사건이 터진 날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해봐야 한다, 그랬어요. 그런데 그 다음에 했는데도 반응이 비슷했어요. 그러니까 그때 사람들이 자신감을 얻어서 이 생각만 있었죠, ‘아, 이게 손해는 안 보겠구나’….   

완전 다른 세계의 영화 잘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죠.

: 인터뷰 시작할 때 최근 〈룸〉과 〈스포트라이트〉를 좋게 보셨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두 작품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영화에서 여태까지 보여주지 못했던 것들을 성취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작품 다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와는 성격이 다르죠. 한국영화들은 지레 만든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렇게 흥분하면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고, 화가 나게 하는 만드는 그런 느낌이잖아요. 근데 〈스포트라이트〉는 사건 자체를 파고 들어가는 그 과정에 집중하고 있고, 〈룸〉이라는 영화는 아예 사회적 이슈로서의 성격은 거의 덮고 그런 사건을 당한 두 인물의 감정에 집중하고 있죠. 

〈베테랑〉은 물론 한국영화들의 계보 안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오락성으로 아주 무거운 이야기를 조금은 보기 수월하게 만들어주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판타지도 있고요. 〈내부자들〉도 오리지널이 아닌 버전에서는 똑같이 그런 판타지로 결말을 가져갔잖아요? 영화가 관객들을 분노시키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할 뿐 아니라 이런 얘기도 얼마든지 오락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즐겁게 다가왔기 때문에 성공을 거둔 것이 아닐까요. 여태까지 감독님은 장르영화를 찍어오셨고 〈부당거래〉부터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계시는데, 이제 열 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류승완이 뛰어넘어야할 것은 류승완인 것 같거든요. 

: 제가 맨 처음에 소감에서 부끄럽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은 겸손이 아니라 영화제를 하고 순위를 매겨서 발표하고 이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였거든요. 저는 21세기 들어 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경쟁영화들이 굉장히 의미 없어 보여요. 마카오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예전에 정보들이 국가별로 통제되고 국가들이 멀리 있고 서로 문화들이 못 섞일 때야 이런 영화제에 영화들이 한데로 모인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부산영화제에서도 그렇게 영화들의 장, 이렇게 장이 펼쳐서 있는 게 중요하지, 순위는 그렇게 의미가 없어 보여요. 사람들의 기본 욕망 자체가 이런 순위를 재미있어 하기 때문에 순위를 뽑기는 하지만, 이렇게 뽑혔다고 해서 〈베테랑〉이 지난해 진짜 최고의 영화는 또 아니잖아요? 그래서 이 순위가 착시를 일으켜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싫어요. 그래서 제가 자꾸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도 있어요. 물론 이렇게 해놓고 다른 영화가 1등이면 저도 물론 그렇겠죠, 다른 영화에 대해서. 오히려 그거보다 ‘누군가를 넘어서야한다’, 그런 강박을 갖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고, 옛날 영화 팸플릿 같은 거 보면 “이전까지 나의 영화는 습작이었다”, 이런 것도 싫고, 그냥 다음 영화 만드는 거예요. 완전 다른 세계의 영화를 잘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죠. 그런데 그런 건 있죠. 경험상 제가 완전히 알고 있던 세계를 다루면 결과도 좋고 만족스러워요. 〈주먹이 운다〉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짝패〉같은 경우 시간이 흘러도 계속 언급되는 영화거든요. 〈주먹이 운다〉가 손익분기점을 못 넘겼어요. 아마 최근에 넘겼을 거예요. 〈짝패〉도 손익분기점을 재작년인가에 넘겼어요. 그런데 그 영화들은 지금도 당당해요. 내가 아는 세계를 그냥 솔직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여서. 

헌데 〈군함도〉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세계고, 그 세계를 알려고 노력해야 하죠. 제가 알고 완전히 육화 되서 만들어야 공감을 시키건 감동을 주건 하잖아요. 그러니까 ‘나를 뛰어 넘어야겠다’ 이런 게 아니라, 〈군함도〉의 사람들과 그 섬을 아는 게 지금 저한테는 더 중요해요.

: 당사자하고 평가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죠. 예를 들면, 순위 매기고 이런 거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냐 싶다가도, 또 한편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타인이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부합할 수도 있는데, 인정이라는 것의 객관적 지수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이런 평가가 있군” 정도인 거죠. 아까 이야기 했듯이 어떤 영화의 평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고. 천만 영화가 나오면 제일 많이 하는 소리가 “이게 무슨 천만 영화냐?” 이 말인데, 그렇게 따지면 한편도 천만 영화 나오면 안 되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가 동의하지 않는 영화가 천만 넘는다고 해서 핏대 세워 욕할 것도 없죠. 

: 그런데 그게 숫자놀음으로 변해 버리니까…

: 그런 숫자놀음 따위에 본인이 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겠죠. 또 어떤 사람은 순위를 즐기는 사람도 있기도 하죠. 그걸 건방지다고 욕할 수도 없을 거예요. 분야와 관계없이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한편, 그런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살면서 굉장히 노력하는 게, 뭘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 그에 대해 너무 잘난 척하거나 그걸 너무 즐기려고 하면 안 되겠구나, 그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죠. 그런데 그러다 보니 오해를 받기도 하더라고요. “너는 왜 이렇게 자꾸 마이너니?”라고 말을 듣는 거예요. 하지만 저는 마이너지향적인 삶을 사는 게, 힘이 없는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게 내 삶의 목표니까 좋아하죠. 2015년 한국영화 중 〈베테랑〉이 1위라는 것은 하나의 상징이죠. 물론 “〈베테랑〉이 무슨 1위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 지지하는 영화를 보면 또 더 많은 사람이 “에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순위가 아예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 의미 없는 것은 아니죠. 저는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그 해 나온 영화들을 쭉 정리하면서 여러 가지 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화들에 전하는, 수고 많았다는 표현인 것 같아요. 즐거움을 선사해주셔서. 

: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도 좋죠. 예를 들면 그런 거죠. 지금 〈베테랑〉도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낸 반응이라고 한다면 몇 년만 지나도 이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가 나올 거라는 거죠. 그런 비판이 나올까봐 한편으로 두려움이 있는 거죠. “이게 진짜 반응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 처음에 〈사울의 아들〉 이야기했지만, 저도 〈사울의 아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는 오늘의 외국영화 중 최고작으로 뽑힌 〈매드 맥스〉와 〈사울의 아들〉 중에 〈사울의 아들〉을 어떤 곳에 추천하기는 했지만요. 지향 상 〈매드맥스〉보다는 〈사울의 아들〉이 더 끌리니까요. 그런데 그 영화를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보며 그렇게 놀라지도 않고 큰 감명을 받지도 않았어요. 그러나 〈사울의 아들〉에 대한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영화가 그렇게 가치 없는 영화라는 건 아니죠.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영화일 거예요. 이제 마쳐야겠네요.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 『2016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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