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오늘의 영화 - 카트] 상업영화와 사회적 메시지의 컬래버레이션
[2015 오늘의 영화 - 카트] 상업영화와 사회적 메시지의 컬래버레이션
  • 정지욱
  • 승인 2015.04.01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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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7일,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영화의 전당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영화 〈카트〉가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선을 보이는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영화에 출연한 도경수(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인 DO)를 좋은 좌석에서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수고로움을 개의치 않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이윽고 오후가 되자 야외 상영관 입구에서 시작된 줄은 영화의 전당을 한 바퀴 휘돌아 감게 됐고, 입장이 시작되자 질서정연하게 객석으로 입장하는 장관이 연출됐다. 이날 티켓은 완전히 매진됐으며, 4,000여 석의 객석은 빼곡히 가득 찼다. 부산국제영화제의 개폐막식을 제외하곤 영화의 전당이 생긴 이래 〈늑대 소년〉에 이어 두 번째 펼쳐진 장관이었다. 비록 아이돌 출신의 배우를 보기 위한 목적의 여성들이 많은 수를 차지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 영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이벤트의 하나라고 감히 얘기하겠다.

ⓒ리틀빅픽쳐스
ⓒ리틀빅픽쳐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해 열흘 가량의 일정을 모두 소화하다 보면 영화의 전당 인근의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이나 이마트 등의 대형 쇼핑몰이나 대형 할인 마트를 곧잘 이용하곤 한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항상 귓가에서 함께하는 소리가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고객님!”이며, 나의 눈은 매일 매일 감정 노동을 하는 그분들의 미소 가득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대형 할인 매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 〈카트〉를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영화의 전당에서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영화적 우연이겠지만, 이것은 분명 현실적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규직 전환을 얼마 남기지 않은 ‘선희(염정아 분)’는 대형 할인 매장 ‘더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급작스레 연장 근무를 하라면 군소리 없이 따르고, 동료가 억울하게 인격적인 모독을 당해도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선희는 정규직 전환이 되면 먼저 아들 태영(도경수 분)의 휴대전화부터 바꿔 주겠다는 약속도 얼른 지켜 줘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악착같이 일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가난이 창피한 태영은 수학 여행비를 스스로 벌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 억울함을 느끼며 엄마의 심정을 조금씩 이해해 간다.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혜미(문정희 분)’, 이십년 동안 청소밥을 먹으면서도 아무 소리 안 했던 ‘순례(김영애 분)’, 후덕하고 입심 좋은 계산원 ‘옥순(황정민 분)’, 대학을 졸업하고 50번 넘게 면접을 치르며 취업 준비에 지친 미진(천우희 분)도 정규직에 대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곁의 엄마, 아내, 딸이며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이웃들이다. 그랬던 이들이 오늘 해고됐다. “내가 열심히 하면 회사도 좋고, 나도 좋다.”는 생각으로 일했건만, 급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아무도 몰랐던 뜨거운 투쟁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리틀빅픽쳐스
ⓒ리틀빅픽쳐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에서의 여성 파워를 실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를 통해 염정아는 부당함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낼 줄 아는 엄마이자 비정규직 노동자를 연기했다. 나에게도 ‘한국에서 가장 예쁜 엄마’로 새롭게 각인될 만큼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 이미 존재감만으로 많은 관객들에게 깊이를 더해 줬던 김영애는 ‘한국의 강인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고, 삶을 위해 투쟁하는 여자들을 대변한 문정희 역시 큰 지지를 얻었다. 이외에도 황정민, 천우희, 지우 등 제 몫을 다하는 여성 연기자들의 하나가 된 호흡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다. 물론 이 영화를 통해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보여준 도경수와 김강우, 이승준 등 남성 연기자들도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줬음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꼭 이 시대에 있어야 하는,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라는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연출의 변을 밝힌 부지영 감독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 감독이다. 여성과 노동자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결국 이 영화를 통해 그녀의 특별한 연출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했다고 하겠다.

또 특별한 두 사람을 살펴야 할 것이다. 영화를 제작한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부제작을 맡은 김균희 PD다. 심재명 대표는 굳이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한국 영화계에서 중요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여성 영화인이다. 여러 언론이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작자 또는 영화인을 뽑을 때마다 어김없이 선정되는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임이 틀림없다. 또한 부제작으로 참여한 김균희 PD는 명필름에서 오랜 기간 동안 해외 마케팅을 담당하며 제작에 대한 꿈을 차곡차곡 쌓아 온 재능 있는 프로듀서다. 〈안녕, 형아〉의 연출부를 시작으로 제작에 직접 참여한 그녀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건축학 개론〉의 연이은 성공으로 프로듀서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재원이다. 앞으로도 이 두 여성의 시너지와 활약을 기대해 보며, 이 작품을 통해 한국 여성 영화인의 파워와 함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과 자리매김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틀빅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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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마트의 비정규직 직원들이 부당해고를 당한 이후 이에 맞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카트〉는 우리나라의 상업 영화 최초로 비정규직을 다룬 작품이다.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을 담은 〈도가니〉, 대기업에서 일어난 산업재해에 따른 노동자의 죽음과 원인 규명을 담은 〈또 하나의 약속〉, 불합리한 법의 잣대를 비판한 〈부러진 화살〉, 기자의 취재 윤리와 과학자의 도덕성을 비판한 〈제보자〉에 이어 상업 영화로 제작된 우리 현실의 사회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작품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도 특별함이 담겨 있다. 2003년 〈바람난 가족〉을 ‘네티즌 펀딩’이라는 당시 독특한 투자 방식으로 제작했던 명필름이 〈카트〉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했다. ‘크라우드 펀딩’이란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를 위해 금융기관 없이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불특정 다수[Crowd]가 온라인을 통해 자금을 모으는 활동으로 이 작품은 1, 2차에 걸쳐 두 차례로 나눠 진행됐다.

본격적인 촬영 돌입과 함께 시작된 1차 펀딩은 ‘응원 장터’라는 이름으로 후원자가 직접 원하는 물품을 선택해서 리워드 받게 하는 ‘자선 바자회’ 방식을 도입해 목표액이던 5,000만 원을 초과해 총 8,700만 원을 투자받았다, 이어 후반 작업과 개봉을 위한 ‘개봉 두레’를 진행해 1억 1,800만 원을 투자받았다. 이 작품의 크라우드 펀딩에는 오천 명의 후원자가 참여해 약 2억 원이 모아져 일반인들이 영화제작에 참여하고 투자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2014년은 한국 영화 산업에서 몇 가지 중요한 흔적을 남긴다. 단일 영화 관객 1,700만 명 돌파의 기록과 함께 대기업의 횡포와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불합리한 배급 환경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앞서 C, L, M, N사로 대표되는 대기업 배급사의 전횡에 의한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하고 공정한 영화 시장을 조성하기 위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리얼라이즈픽처스, 명필름, 삼거리픽쳐스, 영화사 청어람, 외유내강, 주피터필름, 케이퍼필름, 씨네21, 더컨텐츠콤 등 10여 개 회사는 분연히 일어났다.

이들이 뜻을 모아 주주로 참여해 제작사의 창작성과 권리를 존중하고 좀 더 합리적인 계약과 공정한 수익을 위해 노력하자는 목표로 ‘리틀빅픽처스’라는 배급사를 설립한다. 그리고 오인천 감독의 〈소녀 괴담〉에 이어 두 번째로 〈카트〉의 배급을 맡게 된다. 하지만 대기업이 중심이 된 철옹성 같은 한국 영화 시장에서 결국 스크린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원활한 상영관과 좌석 수를 확보하지 못한 나머지 대한극장과 인디스페이스를 대관해 12월 8일부터 장기 상영에 돌입했고, 2015년 1월 7일과 15일에 종영하게 된다. 작품에 담긴 메시지처럼 상영도 산업의 불합리한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형식으로 관객들과 만남을 이어간 것이다.

ⓒ리틀빅픽쳐스
ⓒ리틀빅픽쳐스

영화 〈카트〉는 2014년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 곁에서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며 그 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생활을 오롯이 담고 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가족 이야기라는 점이다.

실제 노동계와 시민 단체 사람들이 참여해 사실감 넘치게 만들어 낸 촛불 시위 장면 등 결의에 찬 구호와 거친 몸싸움이 스크린에 펼쳐지지만 그 모든 것이 가족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조용히 하지만 뜨겁게 들려주고 있다. ‘주류’에서 ‘노동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며, 영화산업에서 대기업의 쌓아 놓은 장벽을 뚫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손수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 〈카트〉는 찰떡궁합처럼 잘 빚어진 상업 영화와 사회적 메시지의 컬래버레이션이랄까? 이런 저런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 일본《Re:WORKS》 서울사무소 편집장, 일본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 역임. nadesiko0318@gmail.com, nadesiko0318@naver.com

 

* 『2015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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