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탐방] 소나무 고을에 내려앉은 White house: 강릉 솔올미술관
[미술관 탐방] 소나무 고을에 내려앉은 White house: 강릉 솔올미술관
  • 김명해(화가, 객원기자)
  • 승인 2024.04.01 16: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원도 강릉에 새로운 공공미술관이 개관을 했다. 지난 2월 14일 개관한 솔올미술관이다. 언덕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화이트 하우스 사진에 이끌려 강릉으로 달려갔다. 전날 내린 눈으로 강릉은 온통 하얀 세상이다. 강릉시내에서 미술관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면 해발 62m 높이에 백색건물이 등장한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통행로를 오르면 강릉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가까이 갈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미술관은 하얀 눈에 반사되어 더욱 밝음을 발산하고 단순한 구성은 주변경관과도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솔올’은 현재 미술관이 자리한 지역의 옛 이름이다. 미술관은 지상 2층 지하 1층, 연면적 3221.76㎡ 규모의 마이어 파트너스Meier Partners의 건축 작품으로, 자연의 빛을 활용한 흰색의 독특한 건물 건축가로 알려진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1934- )1의 건축 디자인과 철학을 보여주며 미술과 건축이 하나로 구상된 미술관이다.

솔올미술관 외관 ©솔올미술관.

또한 미술관 건축 디자인은 한국의 유교적 예술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형태와 재료, 구성의 단순함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로 표현되었다. 사방 트인 유리와 백색 마감 구조, 각기 다른 기하학적 모양을 지닌 세 개의 입방체 건물들이 중앙의 정원을 에워싸고 있는 형상이다. 즉 주출입구와 카페가 위치한 중앙의 투명 파빌리온, 메인 전시실이 있는 캔틸레버Cantilever2, 전시실과 사무실로 활용하는 큐브Cube로 구성되어 있다.

중앙 투명 파빌리온에 들어서면 카페와 안내데스크가 마주하고 있는 로비이다. 2층까지 트인 로비는 커다란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자연스럽게 내부에 확산되어 환하며 뒤쪽도 통유리로 되어있어 눈 덮인 중앙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개 들어 로비 천장을 바라보면 기묘한 형태의 네온이 조명기구 구조물처럼 매달려있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작품은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1899-1968)의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1951) 작품을 재제작한 작품이다. 우아한 부정형의 곡선을 그리면서 관람객이 보는 위치마다 공간과 어울려 서로 다른 이미지를 빚어내는 네온 조형물은 백색 공간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제9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네온 구조〉(Struttura al neon per la IX Triennale di Milano)

카페, 로비, 전시실, 복도통로로 이어지는 이동경로는 공간과 공간 사이 명확한 경계가 없다. 자연스러운 발걸음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불편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유리너머 바깥 정원과 주변 경관을 둘러볼 수 있어 좋다. 그런 만큼 이것저것 구석구석 구경하려다보면 우왕좌왕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안내데스크 뒤편이 메인 전시실이 있는 캔틸레버 건물로 1·2전시실이 위 아래층으로 있다. 현재 1·2전시실에는 미술관 개관특별전으로 《루치오 폰타나: 공간·기다림Lucio Fontana: Spatial Concept》전이 진행 중이다. 현대미술의 거장 루치오 폰타나는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하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동한 예술가이다. 그는 1940년대 캔버스를 뚫거나 찢어 ‘공간주의Spatialism’를 주창하며,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 몰입형 미술 등 현대미술의 혁신적인 움직임을 조형적으로 실험한 예술가이다.

“예술은 영원하지만 불멸할 수 없다. (…) 예술은 행위gesture로서 영원하지만 물질적으로는 수명을 다할 것이다. (…) 우리는 영원이라는 감각을 불멸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 미술을 물질로부터 분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수행된 하나의 행위가 한순간에 불과하든 천 년 동안 생명을 이어가든 그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행위가 수행됐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원하다는 것을 확신한다.”3

솔올 1전시장.

1층 1전시실 초입,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을 더욱 견고히 드러낸 폰타나의 ‘공간주의 선언문’을 시작으로 그의 회화 12점과 조각 9점이 전시되어 있다. 작품들은 공간주의 선언 이후 1949년에서 1965년에 제작된 것들이다. 캔버스를 칼로 베어 전통 회화의 평면성에서 벗어나 물리적 공간을 작품에 끌어들인 ‘Tagli’ 연작과 캔버스에 구멍을 뚫은 ‘Buchi’ 연작, 그리고 돌과 비슷한 형태의 금속을 베거나 뚫어 ‘Natura’라고 이름 붙인 조각에서 작가는 당시 기성 예술에서 나아가 예술의 발전을 지속하고자 한 자신의 〈공간개념Concetto spaziale〉을 보여준다.

〈공간 개념, 기다림〉(Concetto spaziale, Attese), 1964, 캔버스에 수성 페인트, 베기, 81x100cm. 루치오 폰타나 재단, 밀라노.

하얀 캔버스를 칼로 단번에 찢고, 파랗고 노란 캔버스를 앞에서 뒤로 혹은 뒤에서 앞으로 구멍을 뚫고, 검은 돌덩이 같은 조형물에 홈을 파낸 작품들은 무수한 점들로 가득한 우주 같다. 위아래, 앞뒤 구분이 없고 막힘없는 ‘트임’으로 다가와 무한의 경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막혔던 것이 트이고, 시야가 트이고, 생각이 트이고, 마음이 트이고, 숨통이 트이는 그런 기분이랄까! 〈공간개념〉은 그 이전에는 없었던 예술의 새로운 발견이자 미학으로, 르네상스 이후 이어온 전통적 회화를 탈피한 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간 개념, 기다림〉(Concetto spaziale, Attese), 1959, 캔버스에 아닐린, 베기, 100x100cm. 루치오 폰타나 재단, 밀라노.
〈공간 개념, 자연〉 (Concetto spaziale, Natura), 1959-1960, 청동, 53x66x69cm. 루치오 폰타나 재단, 밀라노.

바로 위층 2전시실에는 폰타나의 〈공간개념〉을 더 확장시킨 〈공간환경Ambiente spaziale〉설치작품이 있다. 19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소개되었던 ‘공간’ 주제작품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 여섯 작품들은 형태와 색, 소리의 조형성을 공간에 담아내고, 거기에 감상자의 움직임을 더해 작품을 4차원으로 확장하려는 작가의 시도이다.

캄캄하고 긴 공간에 작은 전구들이 관람객의 눈높이 맞춰 유연하게 이어지고 있는 작품 〈제13회 밀라노 트리엔날레를 위한 공간환경/ 유토피아, 1964/2024〉, 강렬한 핑크빛 방에는 짧은 순간에 획을 그은 것 같은 네온작품 〈네온이 있는 공간환경, 1967/2024〉이 환상적이다. 그런가하면 다음 방은 작품 〈붉은 빛의 공간환경, 1967/2024〉으로 붉은 공간에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규칙적인 통로를 만들어 관람객들이 요리조리 지나가게끔 한다. 갑자기 정육점 붉은 네온 안에 매달려 있는 돼지가 생각나면서 도망가는 돼지처럼 후다닥 뛰어봤다. 마지막 방은 작품 〈제4회 카셀 도큐멘타를 위한 공간환경, 1968/2024〉으로 하얀 공간에 불규칙하게 연결되어 있는 넓고 좁은 미로다. 어디가 출구인지를 모르고 지나가고 싶은 방향으로 움직이다 보면 폰타나의 ‘Tagli’가 한쪽 벽면에 나타나고 또다시 미로를 따라 헤매다보면 마침내 출구가 나온다. 가장 재미있는 공간이다. 각기 다른 다섯 방들은 크기, 모양, 색깔이 모두 다르다. 물질성을 넘어 빛과 공간으로 확장된 폰타나의 〈공간환경〉은 환상적 공간을 거닐며 다양한 감정을 느낀 감상자도 작품의 일부가 되는 특별한 경험이다.

〈네온이 있는 공간 환경〉
(Ambiente spaziale con neon), 1967. 2024.

2층 전시실에는 《In Dialog: 곽인식》전이 전시중이다. 이 전시는 한국미술과 세계미술의 미술사적 맥락을 조명하고자 기획된 프로젝트 전시로, 한국과 세계의 현대미술을 함께 소개함으로서 이들이 발산하는 조형적인 아름다움과 그 안에 내재된 미학적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곽인식Quac Insik(1919-1988)은 한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활동했던 미술가이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작품은 먹과 채색으로 무수히 많은 색점을 찍어 종이 표면 위에 공간감을 형성한 회화작품이다. 하지만 곽인식은 주변 사물의 ‘물성’을 탐구해 이를 미술로 적용시킨 물성 탐구의 선구자로 더 유명한 예술가이다. 1960년대 초부터 표현 재료(캔버스 천, 종이, 석고, 물감)의 성질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 소재의 물성을 회화의 존재 방식으로 정의하려는 모노크롬 회화를 시작으로 깨진 유리, 놋쇠, 철, 돌, 점토 등 표면에 흔적을 남겨 각 사물이 가진 물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하였다.

“우주 속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물이 존재한다. 이토록 많은 사물들에게 무언가를 말하게끔 하고 그 무수한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면, 현재의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사물이 꺼내는 말은 틀림없이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낼 것이다. (…) 나는 일체의 어떤 표현행위를 멈추고 사물이 꺼내놓는 말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4

솔올 3전시장.

정방형의 3전시실에는 곽인식의 색점회화 2점과 조각 18점이 일렬로 전시되어 있다. 캔버스에 부착된 유리 파편, 폰타나처럼 구멍 난 종이, 자연석 그 자체, 조각낸 자연물을 다른 자연석과 결합한 조형물, 손자국을 남긴 점토와 도기 작업 등 평면이나 조각이 아닌 물질 그 자체의 오브제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균열된 철판위에 빠르고 강렬하게 휘갈긴 낙서, 찢은 동판을 다시 철사로 봉합한 작품들은 작품제작 과정에서 드러난 지울 수 없는 흔적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돌맹이나 깨진 유리, 찢어진 종이나 긁힌 동판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 곽인식은 사물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이를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1970년대 일본의 모노하もの派, 物派5를 견인한 작가들과 한국미술계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솔올 3전시장 《In Dialog: 곽인식》전.

폰타나와 곽인식. 두 예술가의 작품에서 비슷한 점이 있지만 다른 점도 발견할 수 있다. 폰타나가 평면성을 벗어나 시공간으로 작품을 확장시키고자 캔버스를 찢었다면, 곽인식은 공간성 보다는 물질성에 집중하여 유리판을 깨뜨리거나 동판을 찢고 뚫고 다시 봉합했다. 즉 접근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다. 폰타나가 기존 예술의 한계를 뛰어넘어 공간과 빛, 경험 자체로 작품을 확장시킨 반면, 곽인식은 재료 자체에 여러 방법적 행위를 가하면서 드러나는 물성 고유의 깊이를 탐구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세계미술의 미학적 연결성을 찾아내어 기획한 미술관 개막전은 신선하고 성공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폰타나 작품과 업적에 비해 과소평가되었던 곽인식의 위상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 앞으로도 세계적인 수준의 미술전시를 마련함으로서 품격 있는 미술관, 강릉의 새로운 문화예술 랜드마크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해 본다.

 

 


1 미국의 건축가로 애틀랜타의 하이 뮤지엄, 프랑크푸르트의 응용미술관,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로스앤젤레스의 게티 센터, 산호세 시청을 포함한 여러 상징적 건물들을 설계함.

2 한쪽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않은 상태로 되어 있는 보로, 주로 건물의 처마끝, 현관의 차양, 발코니 등에 많이 사용.

3 루치오 폰타나의 「공간주의–제1차 공간주의선언문」 중에서

4 곽인식, 《미술수첩》(1969. 7.) 중에서

5 1970년대 초 ‘사물物, もの’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물질의 존재, 인식, 주변과의 관계성 등에 주목하며 나타난 일본의 미술경향. 세키네 노부오와 이우환이 중심적 역할을 함.


참고자료 솔올미술관 https://sorolartmuseum.org/

 

* 《쿨투라》 2024년 4월호(통권 118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