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Theme] 〈기생충〉 번역
[7월의 Theme] 〈기생충〉 번역
  • 달시 파켓(영화평론가, 부산아시아영화학교 교수)
  • 승인 2019.07.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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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내게 연락이 오기를 바랐던 게 사실이다. 2018년 말, 영화 <기생충>은 촬영 후 편집작업 중이었고, 내가 알기로 자막작업은 2019년 초에는 마무리 되어야 했다. 12월 어느 날 오후 친구들과 카페에 있 는데 내 휴대폰이 울렸고, 나는 “네, 제가 영어 자막을 맡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부모님 방문차 미국에 있던 중에 1차 편집이 끝났고 첫번째 ADR이 완성되어 번역할 대본이 준비 되었다. 그 전에 영화 시나리오를 받아 놓은 게 있어서 비메오 링크(Vimeo link;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받기에 앞서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어떤 의미에서 그건 최고의 스포일러였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 플롯을 세세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역시나 스릴과 충격에 휩싸였다. 모든 장면을 정확하게 시각화하는 봉준호 감독의 능력이나 배우들의 연기에는 시나리오만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과 미묘함이 너무도 많았다.

  이런 훌륭한 영화를 번역하는 건 신나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거운 책임감에 한편으로 두렵기도 하다.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영화는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킬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 스쳐간 생각, 한국영화 최초로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자막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봉감독은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와 구절(‘학익진’이나 ‘산수경석’ 등)에 대해 길게 코멘트를 달아 나에게 보냈다. 또 인물들이 서로에게 사용하는 말 속에 그 관계의 특징이 나타나길 원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송강호가 이선균(박 사장)과 대화하는 장면에서 그가 공손하게 말하기는 하지만 지위의 차이를 살짝 무시하는 태도가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것에 유의하며 번역을 시작했다. 부모님집 식탁에 앉아 랩탑으로 한국어 대본을 열어 열흘 동안 천천히 심혈을 기울여 번역 초안을 완성했다. 대화를 한 줄씩 듣고 해당 장면을 여러 번 보면서 번역해 나갔다. 그렇게 끝까지 가고 나서 영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보면서 초안을 수정했고 제작사에 보내기 전에 한 번 더 쭉 훑어보았다.

  자막 번역도 다른 종류의 글쓰기와 똑같다. 초안은 약간 부실하지만, 수정을 거듭할수록 더 나아진다. 제작사는 이메일로 몇 가지 코멘트를 보내왔고 나는 제작사의 제안을 바탕으로 또 수정했다. 2019년 2월 말 내가 한국에 돌아온 후 감독과 제작자, CJ E&M의 국제부 직원들이 함께한 가운데 이틀 동안 회의를 했고, 한 줄씩 짚어가며 최종수정을 거쳤다. 그 회의는 봉준호 감독이 자막 작업을 하는 과정과 미묘함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는지 깨닫게 해준 강렬한 경험이었다. 마침내 자막이 완성되었다.

  몇 달 뒤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았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뛸 듯이 놀라지는 않았다. 영화제 기간 내내 나는 계속 트위터에서 칸의 반응을 살피며 내가 좋아하는 평론가들의 비평을 찾아보았다. <기생충>이 한국에서 개봉과 함께 폭발적인 흥행몰이를 할 때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대화의 주제를 독점할 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은 사회적 주제와 혁신적인 영화 제작, 흥행 성적 이 세 가지를 조합하는 데 거장이라는 걸 이미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주었으니까.

  내가 놀란 건 한국 언론이 갑자기 자막 번역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다양한 영화의 자막 번역을 수년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국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처음이다. 어느날부터인가 내 휴대폰은 쉴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고 2주 동안 30건이 넘는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그런 큰 관심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자막 번역 작업을 인정받게 된 건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여러 인터뷰를 하면서 대화의 방향이 내 의도와 다르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훌륭한 자막 번역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은 몇 문장으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도 어렵고 복잡하다. 언론은 ‘짜파구리’처럼 번역하기 까다로운 용어를 내가 어떻게 옮겼는지를 제일 궁금해 했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번역 과정의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며, 자막을 번역하는 데는 보다 중요한 다른 사안들이 있다.

  수년간 나는 어떻게 훌륭한 자막을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단연코 가장 큰 어려움은 원작에서의 의미와 감정을 압축된 형태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막은 스크린에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기 때문에 관객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짧아야 한다. 이 때문에 이상적인 번역과 충분히 짧은 번 역 사이에서 끊임없이 타협하는 과정이 있게 된다. 자막 번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술을 하나 꼽는다 면, 그것은 의미와 감정을 간결하고 압축된 형태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때로는 “나는 그만 하려고 해.”를 “ 나 그만 할래.”로, “내 생각엔 그 사람 괜찮아질 것 같아.”를 “그 사람 괜찮을 거야.”로 간단하게 바꾸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좀 더 복잡하게 해결하기도 한다.

  자막 번역에서 내가 정말 집착하는 부분은 대화의 에너지다. 어떤 의미에서 영화 자막 번역은 소설이나 시를 번역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번역된 소설을 읽을 때 소설 원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문학 작품 번역은 원작의 에너지를 재창조하고 대체하는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하지만 자막으로 영화를 볼 때는 원문이 항상 함께 존재한다. 바로 배우들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것 이다.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배우의 목소리가 오르내리면서 표현되는 감정, 몸짓, 표정 등 으로 나타나는 감정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자막을 만들면서 그런 걸 무시할 수는 없다.

  번역을 할 때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비유가 하나 있는데, 자막은 영화의 대화가 전하는 에너지를 담는 ‘그릇’과 같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타난 표현 강도는 실제 배우가 전하는 강도와 맞아야 한다. 자막이라는 그릇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원작의 대화가 전하는 감정을 담지 못한다면 관객은 뭔가 균형이 맞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릇의 ‘모양’ 또한 중요하다. 만약 배우의 목소리에서 문장의 끝 단어에 보다 강한 감정이 실린다면, 번역된 자막에서도 문장 끝에 더 강하고 표현력 있는 단어가 와야 한다. 물론 완벽하게 맞추는 건 불가능하지만 자막이 대화의 에너지를 반영하도록 만들어진다면, 그 단어들도 관객에게 보다 강한 느낌을 남길 거라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은 강렬하고 표현력 있는 대화를 만드는 데 거장이기에 그의 영화 자막을 번역하는 일은 언제나 힘들면서도 굉장히 기쁜 일이다. 자막까지 입혀진 완성된 영화를 볼 때는 특히 전율을 느낀다. 스크린에 뜨는 단어는 내가 쓴 것이지만 거기에 영화 제작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파워가 더해져 있기 때문이다.

 

 

* 《쿨투라》 2019년 7월호(통권 6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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