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에세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갤러리 에세이]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
  • 손정순(시인, 본지 편집인)
  • 승인 2019.08.01 0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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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화가’의 꿈을 접어야했던 나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자마자 다시 미대입시를 시도했다. 서양화가 김용철 교수님의 소개를 받아 그의 제자가 운영하는 홍대 앞 입시학원을 다녔다. 첫 회는 준비를 하지 못했기에 보기 좋게 낙방하였고, 두 번째 해는 열심히 준비 했지만 나의 데생 실력이 역부족이었다. 그 해 함께 입시를 준비했던 동료가 육수를 하여 목표한 대학에 합격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힘을 내어 삼수에 도전했다. 하지만 입시를 코앞에 두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육수를 하여 미대에 합격한 그 친구가 선생님으로 다시 학원에 왔는데 그가 나의 데생을 바로 잡아주면 신기하게도 나의 엉성한 데생이 완전히 새로운 그림이 되었다. 그는 손때가 묻어 누릇해져가는 피카소의 아트북에서 말년의 아이처럼 그린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저런 것쯤 나도 그리겠다. 싶지? 피카소의 행로를 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이야. 그는 라파엘로와 같은 고전적인 그림들을 이미 어린 시절에 섭렵했고, 그 위에 새로운 양식인 큐비즘을 탄생시킨 천재 화가거든. 데생의 기본 없이 탄생한 게 절대 아니라고!”

  그는 피카소를 유독 좋아해서 피카소의 작품집을 항상 끼고 살았다. 그는 피카소 또한 어려서부터 미술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수없는 데생의 기본을 배워 지금의 위대한 큐비즘을 연 것이라고 내게 강조했다. 다시 말하면 천재도 노력이 기본이고, 천재도 아닌 내가 데생 연습을 게을리 한다는 것이다. 그 친구 또한 천재는 아니었을 텐데 그의 손을 통하면 ‘그림’이 환상적인 ‘마술’로 변하였다. 순간, 얼마나 노력해서 이 경지에 올랐을까? 그 경이로운 순간도 잠깐, 나는 이번에도 또 틀림없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좌절감이 뇌리를 스쳤다. 입시 원장님은 내게 합격할 수 있는 점수의 대학으로 진학을 권유하셨지만 나는 쓸쓸히 웃으며, 화가의 길을 접어야만 했다. 그동안 에디터 일을 하면서 계속 끄적거렸던 삽화도 다시는 그리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고, 나는 문학전공으로 다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용철 교수님의 목소리였다. 이제 데생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니 대학원에 원서를 내보라는 거였다.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는 교수님의 배려가 감사했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다 버리지 못하고 내 안에서 이는 가는 떨림이 있었다. 완전히 포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2003년부터 나는 스스로 ‘나를 찾아가는 해외 미술관 기행’을 시작했다. 수많은 도시를 찾아 위대한 화가를 대면하면서 그때서야 나는 포기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중 스페인 태생의 입체파 화가인 피카소(Pablo Ruiz y Picasso.1881-1973)의 대표적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을 만난 것은 10년 전 2009년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였다. 큐비 즘의 전조를 연 강렬한 그 그림을 마주한 순간 다시 입시 시절의 친구가 떠올랐다. 이거였을까? 피카소는 원근법을 없앴다. 소실점을 중심으로 원근을 나타내는 표현은 오랜 시간 그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세잔이 나타났고, 이후로 그림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는 것은 의미를 잃었다. 사물이 보이는 각도에 따라 보이는 단면을 분석해 평면적으로 캔버스에 펼쳐 놓고, 여러 개의 시점을 한 화면에 구성했다. 초현실주의가 무의식의 표현이라면 큐비즘은 있는 사물을 해체하고 해체한 단면을 분석, 재구성했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표현을 창조한다는 것은 그 친구의 말대로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영역을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 친구가 왜 “피카소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이란 수식어를 꼭 붙여야 한다”고 얘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큐비즘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작품이 바로 <아비뇽의 여인들>인 것이다. 이 그림을 완성한 당시 피카소의 나이가 26살이었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그 후 2010년과 2011년 두 차례 더 뉴욕의 모마미술관을 방문하였고, 교과서에서만 보던 명화를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감동에 전율했다.

  <아비뇽의 여인들>은 1907년 7월, 마티스와 드랭을 비롯한 동료 화가들과의 컬렉션에 첫 선을 보였는데 당시에는 반응이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피카소는 거의 10년 동안 이 그림을 대중 앞에 전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카소는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 4년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고 회고했다. 피카소의 독창적 화풍인 큐비즘Cubism, 즉 입체 주의의 첫 작품인 <아비뇽의 여인들(1907)에는 조각난 얼굴과 신체의 다섯 여인이 있다. 어떤 여인의 눈은 앞 모습이지만 코는 옆에서 본 것처럼 비뚤하다. 피카소는 ‘옆으로 그린 코’, 그것은 의도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원시주의적 요소를 차용하여 인물의 형태를 왜곡시키기도 한다. 아프리카 가면조각에서 힌트를 얻은 얼굴을 오른쪽의 두 인물에 적용시키고, 아래에 앉아 있는 여인의 왜곡은 다른 인물보다 더 심하다. 가면 같은 형상을 한 그녀의 얼굴은 분명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그녀의 몸통은 등을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봐도 예사롭지 않은 구성이다. 여성들의 인체, 천, 커튼, 그리고 배경이 원근법에 구애되지 않고 하나의 면 위에서 뒤섞여 처리되었다. 발가벗은 다섯 명의 여인들은 아주 도발적인 모습으로 캔버스 밖을 응시한다. 그래서인지 모마에서 작품을 대면한 세계의 수맣은 독자들은 그들의 불편한 눈빛에 포박당해 버린다. 피카소는 우리에게 하나의 시각적인 도전을 선포한 것이다. 현재 이 그림은 뉴욕 현대 미술관의 소장품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처럼 매우 독특한 구성으로 그려진 피카소 누드화의 제목인 ‘아비뇽’은 피카소가 유년을 보냈던 바르셀로나의 매춘 거리이다. 즉 바르셀로나의 선원들을 상대하는 매춘부들이 몰려있는 홍등가 아비뇽 거리Carrer d'Avinyo에서 실제의 창녀들을 모델로 그린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찾았다. 가우디, 피카소, 마리스칼, 에바알머슨 호안미로 같은 많은 스페인의 예술가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작업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 중심에 피카소가 있다.

  피카소가 즐겨 찾았었고 메뉴판을 직접 디자인해서 주었다는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 골목으로 들어서면 중세분위기를 짙게 풍기는 거리가 있다. 몬카다 거리Calle de Montcada다. 현대의 웅장함과 세련됨보다는 고대의 소박함과 옛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 거리에 피카소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파리 피카소미술 관musée Picasso이 대가大家가 된 이후의 작품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면, 바르셀로나에서는 초기 작품을 통하여 완성되어가는 거장의 면모를 살필 수 있다. 4000여 점의 소장품은 색채화와 데생, 판화와 도자기 등 생전에 작가가 직접 골라 기증한 것들과 사후 그의 부인이 기증한 것이다. 소년기, 청년기를 거치며 남긴 드로잉 등의 습작과 피카소가 존경하는 화가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작품 <시녀들Las Meninas>을 응용한 연작 등을 전시하고 있다. 열다섯 살 때 그린 <자화상Autoretrat>, <집Casa>, <프라도 살롱Salón del Prado>을 볼 수 있으며, 마드리드 미술대전에서 호평을 받게 한 <과학과 자비Ciencia i Caritat>(1897년) 도 감상할 수 있다.

  바르셀로나의 아비뇽의 거리는 위대한 피카소를 키운 도시답게 곳곳에 그림들이 먼저 눈에 보인다. 책이나 지도를 들고 골목 투어에 나선 사람들도 보인다. 예전에 홍등가였던 이곳은 옷가게, 기념품숍 등 다양한 가게들로 탈바꿈하였다. 거리의 이정표만이 이곳이 피카소가 <아비뇽의 여인들>을 그렸던 현장임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피카소가 <나의 매춘골>이라 불렀던 <아비뇽의 여인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큰 찬사와 악명을 동시에 얻은 이 그림은 바르셀로나 아비뇽 거리에 위치한 매음굴에 대한 피카소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다. 이 기억이야 말로 예술가로서 혁명적 걸음을 디디려는 피카소에게 기존의 관습을 뛰어넘는 새로운 주제를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화가 피카소를 깊게 느끼고 싶다면 바르셀로나의 아비뇽 거리로 한번 떠나보면 어떨까?

 

 

* 《쿨투라》 2019년 8월호(통권 6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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