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외로운 싸움에서 주먹을 휘둘러 간신히 통과한 시간
[북리뷰] 외로운 싸움에서 주먹을 휘둘러 간신히 통과한 시간
  • 박영민(본지 기자)
  • 승인 2020.04.03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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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우 첫 소설집 『윈드벨, 기억의 문을 열면』

 200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면역기」로 등단한 작가 김신우가 19년 만에 첫 번째 소설집 『윈드벨, 기억의 문을 열면』(도서출판 강)을 세상에 내놓았다.

 김신우의 첫 소설집은 장 폴 사르트르 희곡 「닫힌 방」 중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야”로 말해지는, 현대 일상의 ‘관계’ 또는 ‘사이’의 문제를 파고든다.

 작가는 책에서 인간관계의 딜레마와 딜레마를 넘어서는 관계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불어 무엇이 사람의 사이를 훼손시키는가에 대해 탐구한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에는 ‘사람과 사람의 사이間’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작가는 이 사이 영역은 어떤 권력 관계에 의해 기울어지거나 경직되기 쉽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그 순간들을 일상어를 현미경 삼아 들여다본다. 작품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가 늘상 마주하게 되는 일방적으로 한쪽으로만 기울어지거나 한쪽만 상처받는 인간 사이의 문제를 뼈아프게 마주하게 될 것이다.

 수록작 중 「이사」는 한 사람의 삶이 그의 일상을 장악한 미시적 권력에 의해 어떻게 변해가는지 드러내주는 작품이다. 국회의원 비서관인 남편 영호의 곁에서 미진은 ‘비서관의 아내다움’을 매 순간 강요당한다. ‘—다워야 한다’는 말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특히 타인으로부터 흘러드는 명령어가 될 때 그것은 미시 권력의 스위치가 된다. ‘—답다’는 것의 기준은 다분히 그 말을 꺼낸 사람의 상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영호 무리의 기준에 의하면 미진은 경제적으로도, 사회성의 측면에서도 ‘비서관 아내’의 잣대에 미달된 존재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친절과 배려를 가장하여 타인의 일상에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지적하고 나서”고, 미진은 가없는 피로감을 느낀다. 그들 사이에 수직 관계, 즉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굳어져가는 ‘사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무례한 공동체 안에서 환멸을 느끼는 인물의 모습은 김신우 소설의 한 시그니처라 할 만하다.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장만한 후에도 편향적이고 억압적인 관계의 공포는 계속되고, 마음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으며(「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남편으로 인해 오래된 꿈들을 폐기해야 할 처지에 놓여도 항변하지 못한다(「이사」).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거나, 대항할 수 없다. 강력하되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거나, 그에 관해 알아차려도 저항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아주 보통의 사람’의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물들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을 겹쳐놓고 오래, 들여다보게 된다.

 한편 「소녀의 기도」에는 상실의 자국과 징후가 더 진하게 드러난다. 집단 따돌림으로 인해 오래전 스스로 목숨을 거둔 소녀, 직접 가해자를 찾아내겠다는 “집요한 소망”(114쪽)으로 전도사가 된 소녀의 언니, 그리고 남편에게 학대당하는 아내인 여민이 있다. 이들의 상처는 공적으로 잘 발화되지 않는 현실의 균열들이다. 가난이나 배제, 소외에서 파생된 문제들은 그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려는 분위기 속에서 더러 개인의 문제로 축소되거나 심상한 것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소녀의 기도는 이 희미해진 상처들의 선명한 판화인 것이다.

 김종광 소설가는 “여기, 참신한 캐릭터가 있다. 현모양처 화장에 관심 없다. 사랑 따위에 목매달지 않는다. 악녀도 마녀도 팜므파탈도 거부한다. 우울한 언어로 전전할 시간도 없다. 소영웅도 아니다. 소설에서는 거의 만난 적이 없지만, 현실에서는 수도 없이 마주치는 굳센 생활 전사. 그네들은 진솔하고 투명하게 살아간다. 말수는 적고 반성에 익숙하다. 상식과 양심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자주 시리다. 시선은 예리해서 그늘진 곳을 잘도 찾는다. 마음씨는 다감해서 보듬으려고 전전긍긍한다. 애써 웃으며 건투한다. 좌충우돌, 박진감이 넘치는데 아리아리하다. 씩씩하게 살아줘서 고맙고 소중한 이 시대 젊은 엄마들을 대변하는 실록 같은 이야기들, 별스럽게 싱그럽다. 여기, 깜찍한 캐릭터가 있다. 21세기에 뚝 떨어진 허난설헌, 혹은 김신우 소설가를 빼닮은 달리는 엄마 하니”라고 평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그 이야기에 전력을 다해 ‘응답’해주는 것. 전도사는 여민이 마음을 열도록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필요할 때는 적당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듣지 않는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고 그것을 실현하려 했다. 끝내 그는 동생을 자살로 내몰고 여민을 살해한 범인을 밝혀낸다. 소녀의 기도와 여민의 바람이 전도사의 소망과 맞물려 서로에게 ‘응답’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듣고, 답하는 행위가 지닌 어떤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진다는 것은, 적어도 듣는 이가 말하는 이를 외면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연대의 징표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윈드벨, 기억의 문을 열면』은 사람이 사람을 기억할 때, 그리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들으려 할 때 인간의 ‘사이’에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슬프고 다감하게 확인시켜준다. 그 끝에는 「밤」과 「윈드벨, 기억의 문을 열면」이 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통을 아이와 함께 끌어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엄마 유령의 목소리를 복원해낸 「밤」. 세월호를 비롯한 세계의 폭력에 희생된 아이의 유령과 상실 이후 유령처럼 살아가는 부모의 목소리를 참혹하되 애틋하게 교차시킨 「윈드벨, 기억의 문을 열면」. 금세 휘발되어버리는 이 유령들의 음성을 영원으로 복원시킨 두 편의 소설이 이 소설집에서 가장 빛난다는 것을, 구태여 힘주어 설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신춘문예 등단 당시 습작기를 많이 거치지 못했기에 슬럼프가 꽤 길었다. 손에서 글을 놓지 않고자 육아를 하면서도 조금씩이나마 글을 써내려갔다. 자신감을 갖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외로운 싸움에서 주먹을 휘둘러 간신히 통과한 시간”의 결실이라고 고백하는 김신우 작가의 첫 소설집 『윈드벨, 기억의 문을 열면』을 주목해보자.

 

 

* 《쿨투라》 2020년 3월호(통권 6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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