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뉴미디어 시대와 탈중심성
[미디어 비평] 뉴미디어 시대와 탈중심성
  • 김세연(미디어비평가)
  • 승인 2020.04.22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 뉴미디어란 올드미디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신문, TV 같은 기존 대중매체가 아닌 유튜브, SNS, 포털사이트 등의 새로운 통신망을 의미한다. 뉴미디어의 특징 중 하나는 상호소통성에 있다. 일방향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올드미디어와 달리 뉴미디어에서 수용자는 소통의 주체가 된다. 사람들은 이제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뿐 아니라 의견을 개진하고 뉴스를 재생산한다. 이러한 뉴미디어의 특성은 흔히 민주적 가능성과 결부되어 우리 사회의 지형 변화를 예견한다. 오래 지나지 않아 올드미디어는 뉴미디어로 대체되고, 미디어 권력이 분산되어 탈중심적인 사회를 맞게 될 것으로 사람들은 예측해왔다.

<최고의 요리비결>ⒸEBS1

  올드미디어의 뉴미디어화

  뉴미디어의 약진은 심지어 올드미디어 속에서도 발견된다. 올드미디어 예능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나영석·김태호PD의 작품을 살펴보자. 나영석PD가 기획한 <라끼남>(Olive, TvN)은 대놓고 뉴미디어 예능을 표방한다. 프로그램을 6분짜리 ‘숏폼’ 형식으로 편집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이러한 파격 편성은 유튜브 업로드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라끼남>은 말하자면 강호동의 ‘1인 먹방’인데 파채삼겹살 라면, 오리구이 라면 등 매회 새로운 토핑을 얹은 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카메라와 직접 소통하는 듯한 화면 구도나 ASMR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부분 등 전형적인 인터넷 방송 스타일을 차용한다.

  김태호PD의 <놀면 뭐하니>(MBC)는 무정형성을 컨셉으로 한다. 정해진 것은 유재석이 중심에 있다는 것 뿐이고, 각본이 없는 채로 즉흥적인 시도들을 한다. 출연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는 ‘릴레이 카메라’가 ‘브이로그’(비디오+블로그)와 유사하다는 점도 그렇지만, 최근 인기를 끌고있는 ‘인생라면’ 프로젝트 역시 뉴미디어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식당 주인장으로 변신한 유재석이 손님들에게 ‘유산슬 라면’을 대접하는 컨셉인데, 특별한 진행 순서가 없으며 장르 혼종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일반 토크쇼와의 차이다. ‘맛있는 녀석들’(comedy TV), ‘최고의 요리비결’(EBS) ‘자이언트 펭TV’(EBS) 등 다른 프로그램과의 콜라보는 인터넷 방송 BJ들 간의 ‘합방’(합동방송)을 떠올리게 한다.

<라끼남>ⓒtvN

  탈중심화는 가능한가

  그런데 이러한 올드미디어의 뉴미디어화 현상을 단순히 ‘권력 이동’ 혹은 ‘탈중심화’와 같은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앞서 올드미디어의 몰락과 그로 인한 미디어 민주화를 예견한 바 있다. 누구나 담론의 주체가 되는 탈중심 사회에서는 정보문화의 독점 세력이 존재하기 어렵고, 매체의 춘추전국시대에서 기성 미디어 권력이 위축될 거라는 게 우리의 전망이었다. 이때 기성 미디어 권력이란 신문사, 방송국 등 제작사와 그에 속한 PD, 언론인, 연예인 등을 망라해서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최근 방송가의 흐름을 보면 이러한 현상을 어느 한쪽의 성패로 따질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올드미디어는 정말 몰락하고 있는 중인가. 어떤 면에서 그들은 오히려 세를 확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라끼남> 제작사인 TvN은 유튜브 채널 ‘십오야’를 운영한다. 채널 ‘십오야’에서는 <라끼남> 풀버전 영상을 제공하는데 구독자 수가 무려 151만 명에 다다른다. JTBC는 아예 ‘스튜디오 룰루랄라’라는 크로스미디어 스튜디오를 만들어 TV·OTT 등 플랫폼 경계를 넘나드는 콘텐츠를 제작한다. 최근 유튜브 강자로 떠오른 장성규의 <워크맨>, 박준형의 <와썹맨> 등이 대표적인 콘텐츠다. 그 외에도 뉴미디어에 진출한 올드미디어의 예로 ‘펭수’ 신드롬의 주인공 <자이언트 펭TV>(EBS)가 있고, MBC 김태호PD 역시 인기 유튜버에게 주어지는 ‘골드버튼’을 언급함으로써 유튜브와 관련한 새로운 시도를 예견한 바 있다.

  이들이 제작하는 영상은 기존 인터넷 방송과 비교해 퀄리티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다. 깔끔한 화면과 음질, 프로 방송인의 진행으로 완성된 콘텐츠는 개인 유튜브 채널들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올드미디어가 뉴미디어에 압사당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형태와전달방식이 달라질 뿐 미디어를 주도하는 세력은 그대로다. 나영석·강호동, 김태호·유재석 같은 스타 제작자/방송인을 기용할 수 있고 장비와 시스템을 갖춘 쪽. 대형 제작사와 자본의 중요성은 오히려 더 심화된다.

<라끼남>ⓒtvN

  시스템 속으로 편입되는 크리에이터

  이러한 흐름은 ‘MCN(Multi Channel Network)’ 산업의 확산과도 맞물린다. ‘다중 채널 네트워크’라는 뜻을 지닌 ‘MCN’은 쉽게 말하면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소속사다. 유튜브 시장의 성장과 함께 1인 방송 제작자를 지원해줄 업체가 필요해지면서 이와 같은 산업이 등장했다. 이들은 JYP, SM 같은 연예 기획사와 마찬가지로 크리에이터들을 발굴·육성하며, 편집자 섭외부터 광고 유치까지 콘텐츠 제작과 관련된 제반 업무들을 담당한다. 유명 크리에이터 상당수는 이와 같은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상태다.

  국내 MCN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것은 ‘CJE&M’ 브랜드인 ‘다이아TV’라고 볼 수 있다. ‘다이아TV’는 감스트, 대도서관, 박막례 등 1400명에 달하는 크리에이터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으며 총 구독자 수가 2억 명이 넘는다. 박미선, 전효성 같은 기성 방송인들까지 이곳과 계약을 맺었다고 하니 업계 전망이 밝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제 혼자서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고 그 시스템은 역시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미디어는 ‘탈중심’화하는 게 아니라 자본‘중심’화한다.

  유튜브에서 ‘라면 먹방’을 검색해보자. 라면 20봉지 먹기, 캠핑장에서 라면 먹기, 엄마 몰래 라면 먹기, 물구나무서서 라면 먹기……. 값싸고 대중적인 음식인 라면은 먹방 BJ들의 인기 아이템이었다. 그러나 이제 ‘라면 먹방’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이곳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라끼남>을 보자. 구독자 수 151만의 위용이 새삼스럽지 않은가. 이들의 라면이 특별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파채삼겹살’을 끼얹어서? 아니, 강호동·나영석을 끼얹어서. 뉴미디어 시대에도 이들은 계속 활약할 것이다. 매체가 바뀌어도 자본은 영원하다.

 

 

* 《쿨투라》 2020년 4월호(통권 70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