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선 시인의 시로 만난 별들] 배우 하석진
[장재선 시인의 시로 만난 별들] 배우 하석진
  • 장재선
  • 승인 2019.02.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니지먼트 구
ⓒ매니지먼트 구

두 차원

장재선

연기에 몰입하면서도
13년째 공대생이었지

극중 차가운 남자지만
스태프들에 점퍼 선물

예의 차리는 청년인데
칭찬은 사양 모드였어

현실과 판타지 보듬고
세상 사람과 두루 통해

두 차원 열심히 오가며
30년 후 기다리게 하네.
 

  “배우들이 가장 인정하는 동료 배우 중의 한 사람인데, 대중 스타로서는 이름이 확 뜨지 못했다. 유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압박감은 없나.”

  배우를 앞에 두고 이렇게 직설적으로 묻는 것은 결례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질문을 들은 상대방은 수굿이 경청한 후에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제가 최선을 다한다고 했으나 100%의 열정을 다 발휘하지 못한 듯 합니다. 지금부터 내공을 착실히 쌓아 나간다면 저에게도 최고의 배우로 사랑받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배우 하석진. 그가 만 30세 때였다. 연예계에서 왜 그를‘개념 청년’이라고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단정한 인상의 그는 어떤 질문에도 차분하고 조리있게 답을 했다. 이렇게 반듯한 언행 때문에 그에게는 허물없이 대하기 힘든 이미지가 있었다. 그것이 대중 스타로서 부각되는데 장애가 되는 건 아닐까.

  “저 스스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예의 있게 대하고 신뢰를 받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바탕으로 나중에 악역도 하고, 코믹한 연기도 하면 보는 분들이 유쾌하게 신선하게 여기지 않을까요. ”

  하석진을 만난 후 이전보다 더 호감이 생겼다. 드라마 등에서 그를 볼 때마다 전화 문자를 넣어서 격려를 해 줬다. 그는 꼭 감사 답문을 했는데, 그 내용은 언제나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다.

  하석진은 서울에서 태어나 배명 중·고교를 졸업한 후 한양대 공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연예계 데뷔 전까지 성적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촉망받는 공학도였다. 연기자를 꿈꿔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

  “우연히 모델 사진을 한 장 찍자는 제안을 받아 아르바이트 비슷하게 일을 시작했는데, 스케일이 커져서 잡지, 광고, 뮤직비디오 등에 나가게 됐어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한 후에 1년간 열심히 공부하다가 연기 생활로 들어서게 됐습니다.”

  2005년 대한항공의 광고(중국 황산 편)를 찍었던 그는 같은 해 MBC <슬픈 연가>에서 김희선의 매니저 역할로 드라마에 데뷔했다. 이후 영화 <방과 후 옥상>(2006), <누가 그녀와 잤을까>(2006), <못 말리는 결혼>(2007) 등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며 촉망받는 신인으로 떠올랐다.

  SBS 주말극장 <행복합니다>(2008) 등에서의 활약으로 그해에 한효주, 문채원 등과 함께 SBS 연기대상 뉴스타상을 받기도 했다. 2010년 KBS 대하드라마 <거상 김만덕>을 통해 처음으로 사극에 등장했다. 같은 해 방영한 tvN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생초리>는 그가 주인공으로 이끌어 가는 드라마였다. 평론가들의 호평을 얻었으나 당시만 해도 케이블 TV를 많이 보지 않던 시절이라 시청률은 낮았다.

  이후 SBS <내일이 오면>(2011~2012), JTBC <무자식 상팔자>(2012~2013), SBS <세 번 결혼하는 여자>(2013~2014), MBC <전설의 마녀>(2014~2015) 등 화제 드라마에 빠짐없이 출연하며 당대의 주요 남성 연기자라는 이미지를 심었다. 2018년 KBS 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에서는 원톱 주인공으로 살림 고수 훈남 역을 했다. 드라마 자체는 큰 반향을 얻지 못했으나 하석진은 연기 폭을 넓히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 직전에 출연했던 tvN의 <아이언 레이디>(2016), <혼술남녀>(2016)와 MBC <자체발광 오피스>(2017)는 코믹 멜로 쪽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됐다. 다소 무거워 보였던 그의 이미지가 조금 풀어지며 시청자들에게 친근감을 선사했다.

  하석진이 코믹·멜로 쪽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간간이 출연했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똑똑하지만 빈 구석도 있는 공대 오빠’ 이미지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특히 2015년부터 출연한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는 드라마 속에 있었던 그를 현실 세계로 끄집어냈다. 이 프로그 램에서 그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어 내는 공학도 출신임을 과시하는가 하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희로애락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보는 이에게 웃음을 선물한다.

  나는 그가 이런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과성으로 소비되지 않고, 사람 살이의 다양한 모습을 익히는 계기로 삼을 것을 믿는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큰 연기자로 성장해서 30년 후에 더 존경과 사랑을 받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과 소망은, 그가 성실할 뿐만 아니라 사람 세상에 대해 따스한 시선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연전에 내가 그를 만나기 전날, 그는 드라마 스태프들에게 패딩 점퍼 100벌을 선물하며 따뜻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인터뷰 때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의 선행은 제작진에 의해 훨씬 나중에 알려졌다.

 

 

* 《쿨투라》 2019년 2월호(통권 56호) *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