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월평] 영화를 무너뜨리는 감독의 역량에 차가운 비웃음을 보내게 되는 이유: 클로이 자오 〈이터널스〉
[영화 월평] 영화를 무너뜨리는 감독의 역량에 차가운 비웃음을 보내게 되는 이유: 클로이 자오 〈이터널스〉
  • 라이너(영화 유튜버·영화 칼럼니스트)
  • 승인 2021.12.02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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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터널스" 스틸컷
ⓒ〈이터널스〉 스틸컷

  2010년대 할리우드 영화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장르는 물론 ‘슈퍼히어로 영화’일 것이다. 70년대에는 리처드 도너의 〈슈퍼맨〉(1978)이 있었고, 이후 90년대에는 팀 버튼의 〈배트맨〉(1989)이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갔지만, 이후 21세기 들어 과도기에 빠지더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트릴로지〉를 기점으로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어벤져스〉(2012)가 있다. 마블은 여러 슈퍼히어로들의 개별 영화에서 서사를 진행하고, 하나의 ‘팀업 무비’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MCU,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그것이다. 그리고 26번째 영화가 나왔다. 〈이터널스〉가 그 주인공이다. 

  줄곧 영광의 길을 걸어온 것 같지만, MCU는 현재 방황의 늪으로 빠져들어 허우적대고 있다. 〈아이언맨〉 (2008)을 시작으로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에 이르기까지 23편의 영화의 뼈대를 이루었던 하나의 이야기, ‘인피니티 사가’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최대의 적이었던 ‘타노스’와의 대결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와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으로 끝났고, MCU는 그동안 이야기를 이끌어왔던 두 명의 주인공과 이별을 고했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이제 MCU를 떠났고, MCU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다.

  새롭게 시작하는 페이즈 4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매는 듯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블랙 위도우〉(2021)는 ‘인피니티 사가’와 페이즈 4 사이에서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고, 기대를 모았던 첫 아시안 히어로를 내세운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은 완성도와 흥행에서 아쉬움을 노출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온 〈이터널스〉는 매우 중요했다. 새로운 인물들과 설정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페이즈 4의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해낼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얼추 적중했다. 〈이터널스〉는 ‘셀레스티얼’이라는 우주적 존재의 설정과 지구의 역사를 방관하는 ‘이터널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오히려 ‘인피니티 사가’보다도 크고 웅장한 설정을 공개하며 MCU의 우주관을 확장해냈다.

  디즈니 마블은 이 영화의 감독으로 중국계인 클로이 자오를 선택했다. 〈노매드랜드〉(2020)로 아카데미에 서아시아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클로이 자오가 〈이터널스〉를 맡은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조스 웨던, 루소 형제와는 사뭇 다른 스타일을 지닌 이 감독이 슈퍼히어로 영화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블의 선택은 치명적인 자충수였다. 클로이 자오는 마블의 슈퍼히어로 영화와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고, 이런 영화를 연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역량을 노출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우주적 존재인 셀레스티얼은 우주의 질서를 위해 새로운 셀레스티얼 ‘티아무트’를 깨우고자 한다. 셀레스티얼의 탄생을 위해서는 많은 지적 생명체가 필요한데, ‘데비안츠’는 인류의 발전을 방해하니 ‘이터널스’를 보내 데비안츠를 무찌르고 인류를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들은 6,500년에 거쳐 데비안츠를 정리하고 500년간 귀환 대기 상태로 있다가, 갑작스레 활동을 재개한 데비안츠에 맞서 다시금 모인다는 이야기다. 그 안에는 갈등과 반목, 분열과 협력, 진실의 발견 등 익숙한 장치들이 즐비하다.

"이터널스" 스틸컷
ⓒ"이터널스" 스틸컷

  문제는 클로이 자오의 연출 방식에 있다. 클로이 자오는 〈노매드랜드〉에서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하는 진행과 아름다운 영상미를 선보여 크게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터널스〉에서는 그러한 평가가 무색하게도 형편없는 장면을 나열하다 끝낼 뿐이었다. 그 수려한 영상, 자연의 풍경을 담아내는 특유의 연출방식은 〈이터널스〉의 그래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액션 연출에 있어서는 어린이용 TV 만화 시리즈 〈마이티 몰핀 파워레인저〉 수준에서 머무는 미숙한 모습을 노출했다.

  열 명이나 되는 인물의 서사를 전부 담으려다 보니 영화는 절로 늘어지고, 시도 때도 없는 과거 회상 때문에 플래시백을 남발하는 우를 범한다.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치밀하게 엮어낼지에 대한 고민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각 히어로들의 능력을 표현하고 그들의 능력을 전투와 생활 양면에서 활용하는 상상력에서는 처참할 정도로 부족했다. 이터널스 멤버들이 벌이는 전투는 긴장감도 장엄함도 없었고, 결말에서 인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는 차가운 조소만 흘러나올 뿐, 아무런 공감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이카리스가 태양으로 돌진해서 자진하는 장면에서는 지구와 태양 간의 거리를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 그 안일함에 고개를 흔들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클로이 자오의 역량 문제다. 그는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또 한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낸 이 장르에 대한 존중도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연출한 영화의 인물들은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고민을 거듭하고, 어린이용 만화에서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유치한 대사와 순진한 해결법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클로이 자오는 이 이야기를 다루는 방법을 알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엉터리 작업물이 툭 떨어진 것이다. 원작 만화를 읽어봤는지, 슈퍼히어로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 멋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노매드랜드〉의 성공을 폄하할 필요는 없겠지만, 클로이 자오라는 감독은 〈이터널스〉같은 장르의 영화를 만들기에는 실력도, 애정도, 지식도 전무했다. 〈다크 나이트〉(2008),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2014) 등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비록 만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갈등과 고민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를 다루는 태도 역시 문제 삼기에 충분하다. 히로시마 원폭 장면을 두고 죄책감을 느끼며 눈물을 쏟아내는 파스토스(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분)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히로시마 원폭을 바라보는 일본의 입장, 즉 ‘피해자’라는 주장을 반영하는 것처럼 비칠 여지가 있다. 이 대목에 대한 비판을 우리는, 우리만큼은 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 저의가 무엇인지 따져 물어야만 하지 않을까?

 

 


라이너
영화 유튜버·영화 칼럼니스트. 《매경 ECONOMY》에 영화 칼럼 연재 중. MBC 〈섹션TV 연예통신〉, KBS Cool FM 〈사랑하기 좋은날 이금희입니다〉, KBS 1Radio 〈주진우 라이브〉, 인기 팟캐스트 〈정영진 최욱의 매불쇼〉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앞으로 디지털 시대의 글쟁이로서 계속 글에 파묻혀 살며 양질의 콘텐츠를 선보이고자 한다.

 

* 《쿨투라》 2021년 12월호(통권 9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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