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오늘의 영화 - 국가대표] 소외된 영혼이 부르는 희망의 찬가
[2010 오늘의 영화 - 국가대표] 소외된 영혼이 부르는 희망의 찬가
  • 김진성
  • 승인 2010.09.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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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외모지상주의 풍자극 〈미녀는 괴로워〉로 대중과 소통에 성공한 감독 김용화는 바로 이 영화, 〈국가대표〉에서 이 시대 ‘루저Loser’들을 위한 희망의 찬가를 울렸다. 그야말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향한 “패자들의 역습”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성과를 누르는, 850만 명 이상의 구름관중이 극장으로 몰려들어 스크린을 통해 위안을 받았다. 도약대를 미끄러져 새처럼 날아오르는 젊음의 생동감에 접속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 신파적이지만 눈물겨운 인간승리의 드라마, 그리고 두 손을 움켜잡고 가슴을 졸이게 만드는 스포츠의 쾌감, 궁극적으로 이 모든 영화의 요소들을 기술적으로 완성한 영상과 감동의 음악이 국민적 공감을 산 셈이다.

〈오! 브라더스〉와 함께 ‘휴먼 3부작의 완결판’임을 모토motto로 내건 영화는 특히 실제 대한민국 스키점프선수들의 실화에 근거한 점에서 더욱 주효했다. 프로라기보다 아마추어 같고, 가식적이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맹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배우들의 진심어린 호연도 분명 한몫 했지만 그들의 그러한 연기가 사실에 기초했기에 감동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었다고 본다. 배우들의 연기 뒤로 실제 스키점프선수들이 땀으로 빚은 영광의 순간들이 자연스레 겹치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기술력적인 성취도에 의한 뛰어난 현장감과 실감나는 점프장면 등의 경기 박진감도 대단했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도 그 장면들이 오롯이 머리와 마음속에 남아 쉽게 잊히지 않을 감동으로 연결되는 원천이 온전히 실제 선수들에게서 비롯되었기 때문. 그러한 리얼 스토리에 묵묵히 현재를 살아가는 보통관중들의 마음이 동動했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계올림픽 비인기종목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감동의 쾌거를 일궈낸 여자핸드볼선수단이야기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7)을 위시해, 역도를 다룬 〈킹콩을 들다〉(2009) 그리고 야구를 소재로 한 〈슈퍼스타 감사용〉(2004)까지 각본 없는 드라마를 연출해내는 스포츠의 감동은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불러내기도 하지만 일상에 치어 사는 보통사람들에게 가슴 벅찬 감동과 희망을 안겨준다. 비록 1등,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땀과 눈물로 빚어낸 결과는 그만큼 값지고 보편적 정서를 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대표〉도 전술한 영화들과 같이 운동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는 동일선상에 놓인다. 실제 등록된 국내선수가 7명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관심 밖의 스포츠종목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리고 메달이나 순위보다는 일반적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휴먼드라마에 무게가 실린다는 면에서 그렇다. 단지 여름이 아닌 겨울운동, 그 가운데서도 동계올림픽종목 중 그 존재감마저도 희미한 스키점프선수들의 위대한 도전을 다뤘다는 것만 다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쪽에 중력을 뒀으면 응당 쇼트트랙을 다루는 게 정상이다.

ⓒ쇼박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단지 동계올림픽개최지 선정을 위한 선전용 자격을 갖추는 차원에서 급조된 별 볼일 없는 팀원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준다. 어느 누구 하나 변변찮은 국가대표구성원들에게 기대를 걸지 않는 건 일견 당연하다. 어릴 적 여동생과 함께 자기를 버린 친모를 찾겠다고 변변히 갖춘 것 없이 되돌아온 입양아 밥(하정우 분), 귀먹은 할머니와 모자란 동생 봉구(이재응 분)를 돌보는 소년가장 칠구(김지석분), 양아치 근성이 몸에 밴 나이트클럽 웨이터 흥철(김동욱 분), “너는 니 인생도 대표가 안 되는 놈이여”라며 호통 치는 아버지 마사장(이한위분)의 그늘에 가려 사는 파파보이 재석(최재환 분), 그리고 스키장에서 애들의 코 묻은 돈이나 빨아먹고 살던 방코치(성동일 분)가 그 면면들이다. 〈추격자〉의 하정우가 그나마 눈에 띄는 정도랄까. 감초 같은 조연 성동일을 위시해 전혀 국대급으로 보이지 않는 지진 나는 인생들의 집합. 붙박이가 아닌 뜨내기들의 어설픈 조합이다.

사회적 낙오자 집단이 따로 없다. 소외된 약자와 하층민 등 성공과는 도통 거리가 먼 이들이 모여 국가대표랍시고 뭘 보여줄 건지 애당초 기대할 게 없으니 실망할 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관심과 괄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도약 상승한 스키점프 국가대표선수들의 상징성은 지극히 영화적이다. 〈국가대표〉는 스키점프를 소재로 삼았으되 무엇보다 아래와 뒷자리의, 소외된 영혼이 부르는 희망의 찬가다. 희망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절망을 환희로 바꿔주는 요술램프 같은 것. 영화의 스토리가 주는 메시지와 마찬가지로 음악도 무관심의 영역에 방치된 선수들 개개인의 어두운 현실과 환경을 대변하는 색조의 소리가 공존하는 반면 하늘을 향해 두 손을 치켜들게 하는 희망의 노래가 연계되는 패턴으로 반복 전개된다.

시각적 감동을 뒤받쳐주는 소리와 음악으로 인해 영화적 감흥은 배가 된다. 현장감을 강화하는 음향효과와 이미지보다 먼저 심적 동요를 일으키는 사운드스코어링.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 합작을 일궈낸 김용화 감독과 다시 의기투합한 작곡가 이재학의 감각과 감성의 사운드가 있었기에 영화의 완성도는 더욱 탄탄해졌다. 이재학은 영화음악을 구성함에 있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배경음악 즉 스코어는 전반적으로 국가적인 느낌을 강하게 내면서 캐릭터마다 한 가지 테마를 가지고 가는 것. 그 음악들이 요소요소에서 잘 어우러져 배치되어 나오도록 했고 대신 삽입곡에서 희망을 강력하게 표출한 것이다. 그 완급과 강약을 번갈아 사용해 관객의 감동을 불러내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스내어 드럼과 고전적인 어쿠스틱기타를 특징으로 전자배음을 깔고 후반에서 혼horn과 팀파니, 공gong을 폭발시켜 애잔하고 사색적인 한편 비장미와 웅대한 기상의 분위기를 주입한 것을 비롯해 마림바, 봉고드럼, 패드계열의 현악, 피아노가 더해져 웅장함 속에 코믹함을 곁들여내고 〈킬 빌Kill Bill〉의 느낌이 묻어나는 현악을 특징으로 펑키funky한 베이스와 피아노 리듬 등 다양한 소리를 결합해 장면의 인상을 강화했다. 또한 피치카토 스트링과 마림바를 통한 희극적 곡조에 만돌린과 밴조, 기타를 특징적으로 편성해 목가적인 느낌을 가함으로써 극의 전개에 적절한 리듬감을 실어줬다.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스키점프 2차 시기 대부분의 하이라이트 장면에 사용한 강렬한 록 기타연주는 영상 못지않게 찡한 감동을 준다.

ⓒ쇼박스

삽입곡으로는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를 필두로 누드 ’애플스Nud’ apples의 〈I can fly〉, 힘찬 반주에 이재학이 직접 노래한 〈샴페인을 위하여〉, 윈터플레이의 〈Scandalizing me〉, 클래지콰이의 크리스티나가 부른 〈Raining〉을 토종음악으로 사용했다. 외국 곡은 Robert Randolph & The Family Band의 〈Ain’t nothing wrong with that〉과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 〈Pokarekareana〉(포카레카레아나)를 골랐다.

간이연습장에서 대표선수들이 연습에 돌입할 때 흥겹고 강력한 힙합과 록의 리듬을 쳐줌과 함께 일본 나가노 올림픽 입장 장면에 울리면서 한 번 더 강한 인상을 주는 〈Ain’t nothing wrong with that〉, 봉구의 캐릭터상향을 강화하는 〈Pokarekareana〉(영원한 밤의 우정), 아바ABBA와 비치보이스Beach Boys를 환기하는 풍성한 하모니로 날아오르는 희망의 메시지를 벅차고 행복하게 전하는 〈Butterfly〉 등의 다양한 노래들이 때론 내러티브적으로 때론 외삽적 배경음악으로 매력적 분위기를 더한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의미, 장면의 분위기에 부합하고 곡 자체로도 뛰어나다는 점에서 멋진 선택이다.

드라마적 감동과 잘 만들어진 시각적 마법이 영화감독의 몫이었다면 거기에 덧붙여 영화의 만듦새에 방점을 찍은 또 하나의 절대적 요소는 이재학의 음악임을 지나쳐선 안 된다. 상쾌하고 희망적인 그리고 비상하는 장면에 적확히 조응해 폭발하고 대기를 감도는 사운드는 그 강력한 소리의 증폭만큼이나 잊히지 않을 감동의 순간을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주제가 〈버터플라이〉와 함께 나비처럼 새로운 희망을 쏜 대표선수들의‘도약, 비상, 극복’의 테마가 종막을 선언하는 최후의 순간, 우리는 모두‘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는 희열을 맛본다. 사실에 근거한 범국민적 테마, 시각을 사로잡은 영상기술, 웃고 울리는 연기, 그리고 감흥의 출력을 높이는 음악으로 똘똘 뭉친 쾌작.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세대적 공감을 일궈낸 〈국가대표〉는 곧 2009년을 대표하는 영화로 우뚝 섰다. 웰메이드 스포츠영화의 가능성을 확증하고 미래를 연 수작!

 


김진성 대중음악 칼럼니스트. MBC방송아카데미 방송음악과정 수료. 음악웹진 이즘(www.izm.co.kr) 멤버로서 2001년부터 OST(영화음악)를 전문으로 담당해 글을 싣고 있음. saintopia07@hanmail.net

 

*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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