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llery] 서울, 아시아 미술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다: 성황리에 끝마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Gallery] 서울, 아시아 미술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다: 성황리에 끝마친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 설재원(본지 에디터)
  • 승인 2022.10.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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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재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9월 초 세계 미술계의 시선은 서울을 향하고 있었다. 세계 양대 아트페어의 한 축을 담당하는 《프리즈FRIEZE》와 국내 최대 아트페어 《키아프KIAF(한국국제아트페어)》가 공동개최된 서울에 모인 빛나는 재능들을 전 세계가 주목했다. 9월 2일(금)부터 5일(월)까지 나흘간 열린 《프리즈》와 3일(토)부터 6일(화)까지 열린 《키아프》는 영국 테이트미술관장, 미국 구겐하임미술관장, 로스엔젤레스카운티미술관장, 뉴욕현대미술관장 등을 비롯한 세계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과 국내외 관객들로 전시장을 가득 메웠다. 《키아프》를 주최하는 한국화랑협회의 황달성 회장이 “관객이 너무 몰려 공동티켓을 운용하는 《프리즈》 측과 협의해 매표를 중단했다”고 밝힐 정도로 전시는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 장재선
ⓒ 장재선

《프리즈》는 “예술은 백만장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신진작가들의 ‘신선한 미술’을 소개하며 성장한 근·현대 미술의 세계 최고 플랫폼이다. 21개국 119개의 화랑들이 참여한 이번 《프리즈 서울》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100년 전통의 뉴욕을 대표하는 아쿠아벨라 갤러리는 파블로 피카소의 〈방울 달린 빨간 베레모 여인〉(1937)을 들고 서울을 찾았다. 4,500만 달러의 가격을 책정한 이 작품은 올해 《프리즈》 최고가 작품으로 600억 원에 달하는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기나긴 줄을 서 있었다. 에곤 쉴레의 작품을 전문으로 수집하는 런던의 리차드 내기 갤러리는 무려 40여 점의 작품을 가지고 왔으며, 뉴욕 가고시안은 데미안 허스트의 약상자 작품과 미니멀리즘 작가 리처드 세라의 회화, 도널드 저드의 조각을 선보이는 등 서울 한복판에서 서양 현대미술의 정수가 펼쳐졌다.

이배, 불로부터(Issu du feu white Line), 2022, Charcoal on Canvas, 73×60 cm, 조현 갤러리 제공.
이배, 불로부터(Issu du feu white Line), 2022, Charcoal on Canvas, 73×60 cm, 조현 갤러리 제공.

가고시안(미국), 하우저앤드워스(스위스), 화이트큐브(영국) 등 세계 최고 갤러리들의 참여하는 것은 물론, 앤디 워홀과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데미안 허스트 등 미술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알만한 세계적 작가들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프리즈》는 첫날부터 억 소리 나는 작품들이 속속 팔리며 말 그대로 ‘대박’이 터졌다. 40대 미국 회화 작가 조엘 메슬러의 개인전으로 개막일 부스를 꾸민 LGDR은 그의 신작 회화 12점을 당일 모두 판매했으며, 국내 단색화 거장 하종현과 일본 작가들을 내세운 블럼앤포와 미국의 설치미술가 스털링 루비의 작품을 가져온 자비에 위프켄도 개막일 완판을 기록했다.

《프리즈 서울》을 유치한 사이먼 폭스 최고경영자는 “수익 규모 면에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를 제쳤다”며 “올해 처음 열린 《프리즈 서울》은 본고장인 영국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프리즈 아트페어가 됐다”며 놀라운 기색을 내비쳤다. 정확한 판매액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프리즈 서울》에선 대략 6,500억원 규모의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박서보, 에 크리처 No.070512, 2007, 캔버스에 한자 종이와 혼합 미디어, 130×195 cm, 도쿄 갤러리 제공
박서보, 에 크리처 No.070512, 2007, 캔버스에 한자 종이와 혼합 미디어, 130×195 cm, 도쿄 갤러리 제공

동시대 한국미술의 활력 넘치는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 이번 《프리즈 서울》과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한 생 로랑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이배와 함께 새로운 ‘붓질 시리즈’를 선보였다. 붓질을 통해 꾸준히 창조적 해방을 표현해 내는 숯의 작가 이배의 작품은 조현갤러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가들의 작품부터 20세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한 데 모은 ‘프리즈 마스터즈’ 섹션에서는 하인두, 박현기, 박서보 등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한국현대미술협회의 창립멤버이자 한국에서 추상미술분야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는 하인두(학고재 갤러리)는 불교 개념을 명상하는 컬러 필드 페인팅을 선보였다. 우주를 상징하는 원과 파란색 섬광으로 제작된 〈만다라〉(1984)는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상으로 동양의 단청과 서양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박현기, 무제, 1988 (2021 년에 부분적으로 재현), 단일 채널 비디오, 색상, 침묵; 모니터, 돌, 갤러리 현대, 박현기 에스테이트 제공
박현기, 무제, 1988 (2021 년에 부분적으로 재현), 단일 채널 비디오, 색상, 침묵; 모니터, 돌, 갤러리 현대, 박현기 에스테이트 제공

자연과 비디오 매체를 접목한 박현기(갤러리 현대)의 설치미술은 그가 구축한 정신적이며 명상적인 세상을 비디오 아트 작업을 통해 드러내고 있으며,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도쿄 갤러리)는 서양 모더니즘을 한국식으로 수용한 모노크롬 회화를 선보인다. 또한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를 설치 작업으로 풀어내며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있는 양혜규(국제 갤러리)의 예술세계도 만날 수 있다.

주말에 시작한 《키아프》는 17개국 화랑 164곳이 참여했다. 지난해 역대급 인기를 끌었던 《키아프》는 올해 아낫 엡기(미국), 안네 모세리-말리오 갤러리(스위스), 악셀 베르포트(벨기에) 등의 해외 화랑과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등의 굵직한 국내 갤러리들의 참가로 더욱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양혜규, Sonic Rotating Whatever Running on Hemisphere #19, 2022, Powder-coated stainless steel frame, powder-coated mesh, ball bearing, stainless steel balls, split rings, water taps. 작가 및 국제갤러리 제공.
양혜규, Sonic Rotating Whatever Running on Hemisphere #19, 2022, Powder-coated stainless steel frame, powder-coated mesh, ball bearing, stainless steel balls, split rings, water taps. 작가 및 국제갤러리 제공.

가나아트 부스에 걸린 김구림의 〈음과 양〉(2009)은 올해 《키아프》가 내세운 대표작으로 4억여 원에 판매되었으며, 학고재 갤러리는 백남준의 〈구-일렉트로닉 포인트〉(1990)와 김현식의 〈현을 보다〉(2022) 연작 9점 등을 선보였다. 세련된 전시 디스플레이로 유명한 벨기에의 악셀베르보트는 〈보따리〉 연작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 김수자의 작품으로만 부스를 꾸미면서도 전시장 안팎의 서로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받았다.

또한 젊은 작가군의 경쟁력이 돋보였다. 갤러리 현대에서 내세운 이슬기, 이강승, 김성윤 등 젊은 작가 작품이 첫날 모두 팔렸으며, 조현 갤러리의 젊은 작가 안지산의 작품 10여 점과 조종성, 이강우의 작품이 빠르게 팔렸다.

배혜윰, Resolute Tracker, 2022, 캔버스에 오일, 162.2×145.5×3cm, 작가 및 휘슬 갤러리 제공
배혜윰, Resolute Tracker, 2022, 캔버스에 오일, 162.2×145.5×3cm, 작가 및 휘슬 갤러리 제공

《키아프》에 참여한 박여숙화랑의 박여숙 대표는 “《키아프》와 《프리즈》 공동 개최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부스 현장에서 절감했다”며 박서보 화백의 고가 그림이 이번에 팔렸음을 전했다. 두 전시에 모두 참가한 학고재 갤러리의 우찬규 회장 역시 “《프리즈》에 온 해외 컬렉터들이 《키아프》에도 들르면서 국내 우수 작가들을 눈여겨 보았다”며 외국 미술관 관계자들이 《키아프》 부스에 있던 박종규 작가의 작품을 주목하며 구매를 위한 자료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함께 열리는 《프리즈 서울》에 참가한 쟁쟁한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워낙 많다 보니 《키아프》의 위상도 같이 높아졌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동시에 《키아프》에 대한 관객의 관심도는 우선순위에서 밀린 점은 고민이 더 필요한 부분이다.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프리즈》와 성장하고 있는 《키아프》가 당장 어깨를 견주기에는 분명한 체급 차이가 존재하기에 어느정도 타깃을 구분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키아프》에 참가한 우리 화랑의 작품들은 ‘단색화’ 유행을 따르는 추상화들과 비슷비슷한 달동네 풍경, 예쁘고 단조로운 소재를 이용한 꽃 그림이나 달항아리 등에 집중되는 느낌이 있어 천편일률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것 또한 과감하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프리즈》와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두 전시를 참관한 마리아 발쇼 영국 테이트 미술관장은 “폭이 넓어야 오래 간다”며 “한국 미술시장의 규모가 확대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가 다양성과 이를 받아줄 수 있는 여건에 더욱 힘쓸 것을 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하인두, 만다라, 1984, 캔버스에 기름, 116.5×91cm, 학고재 갤러리 제공
하인두, 만다라, 1984, 캔버스에 기름, 116.5×91cm, 학고재 갤러리 제공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의 공동 개최는 새로운 시장으로서의 한국이 지닌 가능성을 증명하는 무대였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트페어인 《아트바젤 홍콩》이 홍콩의 정치적 상황으로 불안해진 지금, 《프리즈》의 선택은 K-팝과 한국영화, 한국드라마 등을 통해 소프트파워를 여실히 증명한 한국이었다. 그리고 이번 행사 기간 동안 엄청난 흥행몰이에 성공한 한국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다녀간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발 디딜 틈 없는 전시 현장을 둘러보며 내년에도 우수한 한국작가와 작품이 세계적으로 알려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천명했다. 특히 오세훈 시장은 “이건희미술관 건립지로 선정한 서울 송현동 부지를 내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의 개최지로 빌려줄 의향이 있다”고 발언하며 앞으로 4년간 더 지속될 행사에 더욱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의 공동 개최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한국 미술시장의 앞날을 주목해보자.

 


 

 

* 《쿨투라》 2022년 10월호(통권 100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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