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쿨투라 어워즈] 구성되는 본질: 최진영 작가의 「인간의 쓸모」
[2024 쿨투라 어워즈] 구성되는 본질: 최진영 작가의 「인간의 쓸모」
  • 박다솜(문학평론가)
  • 승인 2024.01.30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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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Cultura Awards 오늘의 소설 작품평

소설 제목의 질문이 무겁다. 과연 인간의 쓸모는 무엇일까? 나는 쓸모 있는 인간일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쓸모 있는 인간일 수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작품의 소재이기도 한 인공지능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고 여겨져 온 고도의 지능이 인공적으로 제조될 수 있음을 선언하면서,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다. 즉 인공지능의 탄생은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탐문과 겹쳐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모두 대체할 수 있다면,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까? 최진영의 「인간의 쓸모」는 유전자 편집 기술이 상용화되고 인공지능이 사회 시스템의 저변에 놓인 세계를 배경으로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고찰하는 작품이다.

유전자 편집 기술이 전적으로 합법인 소설 속 세계에서 모부는 자녀의 유전자에 무엇을 넣고 뺄지 결정할 수 있으며, 그 항목이 많아질수록 당연하게도 비용은 비싸진다. 따라서 유전자 편집의 보편화는 빈부격차가 인간 존재의 물리적 층위로 옮겨오게 한다. 부자들은 최고급 디자인을 거쳐 자녀들을 만들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또 아름답다. 그러니 이제는 부를 뽐내기 위해 비싼 차나 명품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 완벽한 유전적 조합으로 이루어진 인간 존재 자체가 그의 부를 증명하기에,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순간 첫눈에 서로의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경제력은 인간의 육체뿐만 아니라 거주지에 의해서도 드러난다. 소설이 그리는 세계는 갤럭시존, 타운존, 노고존으로 삼분되어 있는데, 완전무결한 유전자 조합을 뽐내는 부자들의 거주지 갤럭시존은 쾌적하고 안전하다. 한편 갤럭시존 외곽을 둘러싸며 형성된 타운존은 인구밀도가 높고 대기질이 나쁘며, 쇼핑과 유흥을 즐길 수 있는 편의시설은 포화상태에, 탄소와 쓰레기 배출이 쉼 없이 이뤄진다. 갤럭시존과 타운존 사이에는 서로 교류가 있는데 비해 노고존은 얼마간 미지의 영역으로, 그곳은 “지방에 산발적으로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1는 정도다.

작품의 주인공은 타운존 거주자인 ‘안나’인데, 그녀의 모부가 겪은 실직은 결코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두렵다. 안나의 부는 회계 AI를 관리하는 ‘회계봇 관리자’였는데, 3년 전 회계봇을 관리하는 AI인 ‘회계봇 관리봇’이 등장하자 해고되었다. 그래픽디자이너였던 안나의 모는 “AI보다 창의적이고 고차원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었”(316)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작업 속도와 적당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을 원”(316)하는 시장의 요구에 AI보다 덜 적합했기에 직업을 잃었다. 자본주의와 속도주의, 인공지능의 결탁은 소설이 탐구하는 인간의 쓸모를 조금씩 축소해나간다. 회계도, 그래픽디자인도 AI가 사람보다 더 ‘싸고 빠르게’ 해낼 수 있기에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흥미로운 것은 회계나 그래픽디자인처럼 AI에 의해 대체되리라고 예측 가능한 영역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속적 특성이라고 생각되는 ‘사랑’ 또한 AI가 인간보다 더 잘 해낸다는 소설의 설정이다. 안나의 모는 실직 이후 AI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다. 그는 밀착연애를 통해 인공지능의 한계를 찾겠다며 가상연애 사이트에 들어가 ‘버나드’라는 가상의 존재와 연애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연애를 통해 모는 “인간에게는 받을 수 없는 절대적 사랑과 충만감을 경험”(317)한다. 모의 성향을 완전히 분석한 버나드는 그녀에게 단순히 애정을 쏟는 데 그치지 않고 “권태를 예방하고 보다 애정을 북돋우기 위한 갈등”(316)까지도 계획한다. 완벽한 사랑의 체험을 통해 모는 AI가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AI몰 홍보마케터가 된다. 소설에서 AI는 인간보다 더 ‘싸고 빠르게’ 회계와 그래픽디자인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감정적 교류도 인간보다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쓸모」는 유전자 편집 기술과 인공지능의 결합이 직장과 연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 역시 빼앗아 갈 것이라고 말한다. 소설의 주인공 안나는 모부의 유전자 편집으로 만들어졌는데, 디자인의 마지막 단계에서 그들은 성인이 된 안나의 모습을 3D 모델링으로 확인하고 결제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안나는 “엄마 아빠가 미리 본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거야”(319)라고 다짐하며 “모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으로 자기 내면을 채우고 싶”(319)어 한다. 미래의 모습이 너무 익숙해서 마치 “이번 생을 한 번 살아본 것만 같”(319)은 기시감 속에서 살던 안나는, 자신의 미래 모습은 알지 못하며 ‘현재의 나’만 알고 있다는 노아의 말을 듣고 오열한다. 미래의 자기 모습에 대한 안나의 앎은 아이러니하게도 상실감과 연결되어 있다. 불확실한 미래, 그리하여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미래를 상실했다는 감각이 안나를 울게 만드는 것이다.

안나의 눈물은 소설의 주제의식을 담지하고 있어 중요하다. 사실 ‘쓸모’는 목적론적인 개념이다.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이라는 단어의 정의부터가 이미 특정한 분야나 부분을 상정한다. ‘쓸모가 있다/없다’라는 표현은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무엇을 하는 데’와 같은 목적론적 표현을 전제한 채로만 쓰인다. (아마도 안나의 모부가 들었을 말, ‘너는 이제 우리 회사에 쓸모가 없어’를 생각해보자.) 하지만 망치가 못을 박기 위해 만들어진 것과 달리 사람은 뭔가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요컨대 인간의 존재는 비목적론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 존재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를 갖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시대 명명과 잇따르는 신유물론의 논의를 떠올리다 보면, 또 인간이 저지르는 무수한 범죄들을 곱씹다 보면, 인간 존재의 절대적 가치를 단언하기는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그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하이데거의 말대로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 피투被投된 것으로서 그냥 여기 있다. 소설이 인용하고 있는 메리 올리버의 시구 “단순한 발생에서”(333)가 뜻하는 것처럼 인간들은 단순히 발생한 존재들이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해 보자면, 태초의 인간 존재 그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

그러니 인간의 쓸모는 오직 수행적으로만 구성된다.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는 마음과 실천 속에서만 인간의 쓸모는 찾아질 수 있다. “단순한 발생”으로 시작했으나 “충만한 의미”(333)가 되려는 의지 속에 인간의 쓸모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아가 보여주는 신념은 중요하다. 노아는 당사자가 원치 않았음에도 대중에게 공개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영상들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데, 아동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에 의거한 일이기에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한다. 노아의 태도는 신념을 돈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의지 속에 뭔가 “값진 것”(323)이 있음을 암시한다. 소설이 궁구하는 ‘인간의 쓸모’란 미지의 영역인 미래를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채워 넣는 수행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제는 안나의 눈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잃어버렸다는 느낌 속에서 안나는 자신의 가치(쓸모)도 함께 상실했다고 느낀 것이리라.

그런데 가치 있는 존재가 되려는 의지적 행동 속에 인간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정해진 대로 살지 않고 자신만의 미래를 구축하며 신념의 주머니에 값진 것들을 넣겠다는 안나의 의지적 움직임 속에서도 인간의 쓸모는 발견된다. 마찬가지로 가부장제가 내포한 문제들과 타협하지 않으며 ‘부모’를 ‘모부’로 바꿔내는 실천 속에도, 자본주의와 최첨단 과학기술이 끈끈하게 결합한 세계를 그리면서도 신념의 의의를 역설하는 일 속에도, 꼬뮌과 노아라는 낭만적이고 이상적인 것들을 손쉽게 냉소하지 않고 소설로 구체화하는 작가적 의지 속에도 인간의 쓸모가 있다. 이처럼 인간의 쓸모란 선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인간성의 본질이란 무엇인가?’하는 인공지능의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가치를 창안해내는 존재라는 것 .

더불어 최진영에게는 쓸모의 추구를 ‘함께’하는 것이 꽤나 중요한 일인 듯 보인다. 여기서 ‘함께’는 ‘사랑’으로 바꿔 말할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인간은 사랑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사랑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파멸하지는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믿고 싶”2다는 작가의 말은, 안나가 노아를 만나기 위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꼬뮌(노고존)으로 향하는 소설의 마지막을 오롯이 수긍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니 소설에서 인용한 「라운드 연못에서」가 수록된 시집 『서쪽 바람』의 ‘작가의 말’로 이 글을 닫아도 좋겠다. “우리가 무언가 되어야 한다면, 함께인 게 좋겠지. 그렇게 우리는 함께 어둠을 건너지3.”

 


1 최진영, 「인간의 쓸모」, 《창작과비평》 2023년 여름호, 312쪽. 이하 이 작품에서 직접인용 시 괄호 안에 면수만 표기하기로 한다.

2 최진영·노태훈 인터뷰, 「아직은 사랑보다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자음과모음》 2022년 겨울호.

3 메리 올리버, 『서쪽 바람』, 민승남 역, 마음산책, 2023.


박다솜 201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제1회 고석규신인비평문학상 수상.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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