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영화 수상자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2024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영화 수상자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 강유정(영화평론가, 강남대 교수)
  • 승인 2024.01.3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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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오늘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인터뷰

인터뷰어 강유정(문학평론가, 강남대 교수)
일시 2024년 1월 18일
사진 김한솔
장소 커피볶는 홍소

 

"제 안의 화두는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지 질문하는 것 같아요"

 

강유정 감독님 안녕하세요. 이번 ‘2024 쿨투라 어워즈’ 오늘의 영화에 감독님의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선정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엄태화라는 이름을 제대로 인지한 건 〈잉투기〉(2013)때이고 〈가려진 시간〉(2016)을 무척 좋아하는데, 단편영화까지 따지자면 작업한 작품이 상당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인급의 젊은 감독으로 분류되는 듯 해요. 아마 감독님께서 박찬욱 감독님 조감독 출신이기도 하고, 지난해 봉준호 감독님 조감독 출신인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 〈잠〉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면서 감독님을 작년에 데뷔한 신인감독이라 착각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구요. 어쩌면, 한국영화의 세대 교체가 늦다는 반응과 연동된 착시효과일 듯 한데, 어떠세요?

엄태화 전체적으로 예전 선배 감독님 세대에 비해서 실제로도 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박찬욱 감독님이 20대 후반 30대 초반일 때 〈정은임의 영화 음악〉에 나와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지금과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으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우리 세대 제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과연 그 나이 때 저런 생각을 했을까?’ 싶기도 해요. 솔직히 지금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희 세대여서 더 어리게 느낄 수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예를 들면 지금 활발하게 활동하는 30대 후반 배우들을 볼 때 아직도 청년같다는 생각이 들고, 실제로 이분들이 고등학생 역할을 맡기도 하더라고요. 배우분들도 우스갯 소리로 아직도 고등학생 같다고 얘기하는데, 그 전 세대 배우분들과 비교하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저랑 연배가 비슷한 조승우 배우는 〈타짜〉 찍을 때 26살이었다는데 제가 뒷 세대여서 그런지 앞 세대분들은 더 어른처럼 느껴지고 저희는 아직도 어리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선배 제작자분들을 만나면 “아유 아유 우리 아기” 약간 이런 느낌이 아직도 있으시거든요. 이런 정서적인 것들이 깔려있다보니 어쩔 수 없이 신인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해요.

또 워낙 대단한 업적을 많이 이룬 세대이기도 하잖아요. 저희는 따라가는 입장에 있다 보니까 “우리 세대는 언제 우리 세대만의 이야기를 하고 발자국 같은 걸 찍을 수 있을까” 이런 얘기도 저희끼리 있으면 하거든요. 예전에 〈올드보이〉를 만드는 제작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올드 데이즈〉를 보고 있으면, 같은 세대끼리 모여서 시너지가 일어나는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단편영화나 학교작품을 만들 때 친구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하면서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치열하게 만들었는데, 마치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 같아요.

〈가려진 시간〉때만 해도 제가 빨리 입봉한 편이었어요. 그때도 나이가 어린 편이 아니었는데 현장에 제 세대 스태프들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선배님들이랑 작업을 했죠. 그런데 한 6년 지나고 〈콘크리트 유토피아〉 할 때는 그 사이에 조형래 촬영감독이나 김해원 음악감독처럼 새로운 피들이 수혈이 돼서 이번에 같이 할 수 있었어요. 한미연 기사님도 본인의 편집실을 차리고 첫 번째 영화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예요. 선배님들의 귀한 경험과 저희 세대만의 신선함(?)같은 게 잘 어우러진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강유정 그렇군요. 그래서 그 리듬이 되게 낯설었군요. 그래서 그 김상범 씨랄지 한국 영화에 늘 등장하는 이름이 아니라서….

엄태화 김상범 감독님은 〈서울의 봄〉 보니까 여전히 대단하시더라고요.

강유정 힘이 있고 굵직굵직하죠.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한미연 감독의 편집은 훨씬 더 정교하고 리드미컬해서, 〈팬텀 스레드〉처럼 이음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조형래 촬영의 새로움과 낯선온도감각이 다른 편집 리듬과 맞아떨어지면서 지금껏 한국 대중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정서적 질감을 얻었습니다. 결국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새로움이라는 게 부분적 결합이 아니라 총체적 시너지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두 사람의 수혈을 통한 새로움의 덧칠이 아니라 하나하나 새로움이 모여 결국 정서적 다름으로 확 다가오는구나 싶었습니다. 음악의 새로움도 아주 컸거든요. 그랬더니 김해원 음악 감독의 이름 역시 새로운 이름이더군요. 무엇보다 조형래 감독 촬영이 무척 훌륭했습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장르적 특성상 조명을 쓰기가 굉장히 어려웠을텐데, 어떻게 그 색온도나 질감을 일관성있게 잡아갔는지, 감독들과 의견 조율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 지 그 논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엄태화 처음부터 “진짜처럼 보이게 하자”라는 얘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모든 걸 다 진짜처럼 보이게 하자. 설정 자체는 만화적이지만, 되게 진짜 같은. 그래서 어두우면 어둡게 찍고, 가공한 느낌도 최대한 없애고, 컷도 최대한 많이 쪼개지 않으려고 했고, 컷을 쪼갤 때는 분명히 이유가 있는 상황에서 쪼개자는 얘기도 많이 했어요. 또 콘티 작업을 할 때 인물들이 많이 나오는 반상회 장면에서는 인물들의 얼굴을 보여주지만 다른 영화에서 많이 보던 리액션 같은 것들을 부자연스럽게 껴놓지 말고,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쓰는 식으로 작업을 하자고 의견을 많이 나누었어요.

어두운데 억지로 밝게 찍기보다는 실제 이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빛을 활용할지를 많이 연구해서 최대한 그런 식으로 광원을 쓰자고 했어요. 예를 들면 페트병에 빛을 넣으면 빛이 져나가니까 그런 걸 활용해서 조금 더 밝게 만든다거나, 전기가 없으면 어디서 전기를 구해올지 생각하다가 자동차 배터리를 다 뜯어와서 전기를 이용해본다든가, 또 초를 쓰는 방법도 있고요. 이런 것들을 미술팀, 조명팀과 얘기해서 여러 세팅을 했고 실제 광원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낮에는, 설정상 직사광선이 없는데 그럼 빛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서 결국 세트장 위를 다 덮는 천장을 만들었어요. 그거 아니면 답이 없어서 아예 돔처럼 만들었어요. 주어진 예산에서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제가 이걸 선택하니까 다들 미쳤다고 했죠. 거기 돈이 되게 많이 들어갔거든요. 덕분에 빛을 다 막고 필요한 순간에만 빛을 조절을 하면서 실내 세트장처럼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강유정 촬영 기간이 언제부터 언제였어요?

엄태화 4월 16일부터 8월 28일이요.

강유정 그럼 빛이 가장 뜨겁고 강한 시기에, 빛도 없고 추운 겨울 장면을 찍은 거군요. 그런데 감독님 말씀 들으니까 굉장히 수평적인 현장이라서 가능했던 전체적인 미장센이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독재적 감독이었으면 불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고, 여러 수평적 토의가 있어서 가능했던 앙상블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태화 제가 중요한 사람을 빼먹었습니다. 변승민 대표가 또 또래거든요. 저와 조형래 촬영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미쳤냐고 하다가도 계속 얘기를 들어줬어요. 그리곤 두 사람 생각이 뭔지 알겠다면서 한번 해보자고 믿어줬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찍을 때는 사우나 같으니까 배우들이 많이 힘들어 했죠. 그래서 컷 하고 뒤돌아서 옷을 벗고 짜면 땀이 물처럼 흐르고 그랬어요.

저희 세트장이 아파트니까 3층까지는 실제로 방들이 좀 있었거든요. 그래서 거기 에어컨 방을 만들어서 물이랑 얼음 다 세팅해놓고, 쉴 때는 다 거기에서 에어컨 쐬고 물 마시고선 다시 또 찍었죠. 겨울에 촬영했다면 추운대로 또 힘들었을 것 같긴해요. 저희가 연천에서 촬영을 해서 아마 엄청 추웠을 거예요.

강유정 영화 오프닝 부분의 자료 몽타주는 KTV나 KBS 영상 활용한 건가요?

엄태화 KBS 〈모던코리아〉 이태웅 PD님한테 부탁을 드렸습니다. 완전히 영상 아카이브 덕후시고, 저도 워낙 그 다큐를 좋아해서 부탁드렸어요. “1분 안에 이 영화 세계관을 다 설명해야 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한 편을, 책 한 권을 여기에 다 옮겨놓고 싶다”고 말씀드려서 되게 재미있게 작업했습니다.

처음 공사하는 장면 나올 때 흑백 화면 중에 인부들이 일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시멘트 받아서? 그게 이병헌 선배님 데뷔작이고, 시멘트 받는 사람이 젊은 시절의 이병헌입니다. TV 데뷔작 〈해뜰날〉인가? 그게 젊은 영탁이 황궁아파트 공사 현장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 집은 내가 지은 집이야.” 이런 얘기를 평소에 했을 것 같고, ‘언젠가는 저기 들어가 살아야지’ 하는 느낌이 나서요. 얼굴이 잘 보이지는 않게 이스터에그처럼 휙 지나가게 넣었습니다.

강유정 아파트에 대한 집착과 과도한 욕망,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제목의 함축한 정서가 캠페인 과정에서 다른 문화권에 잘 번역되고 전달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는데, 실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엄태화 그 걱정은 기우였던 것 같아요. 저희가 서부영화 같은 걸 봐도 초반에 몇 장면 보면 ‘아 이게 저렇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듯이, 모든 게 정확히 다 전달되지는 않았겠지만 다들 각자의 실정에 맞게 이건 이런 느낌이겠거니 하고 보시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대도시 사람들은 이런 정서를 되게 잘 이해하는 것 같아요. 뉴욕이나 홍콩, 도쿄나 이런 데서 살았던 분들은 집값 문제도 똑같고 다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고, 유럽에서는 아예 난민 이슈로 생각하고 보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또 LA에서 어떤 이스라엘 기자분은 영화를 보고 나서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게 자기네 상황이랑 너무 비슷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영화에서 몰아내는 쪽의 묘사가 디테일 하다 보니 혼란스럽기도 하고, 심지어 성경적인 것들을 배치해놔서 더 그렇게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영화는 어디서 찍고 어떻게 만들어도 전 세계 공통 언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스위스에서 재미있었던 게 민성이, 박서준 배우가 마지막 숨어 있는 상태에서 어떤 그림을 보잖아요. 환상 속에 있을 것 같은 언덕 위 하얀 집이 그려진 그림이요. 어떤 관객이 질문을 했는데 왜 마지막에 주인공이 보는 그림이 아파트가 아니라 그런 평범한 집이냐는 거예요. 질문의 의도를 생각해 보니까 이 사람들에게는 그림 속 집이 엄청 흔하고 평범한 집인 거예요. 제가 취리히에 있었는데 취리히 도심 딱 벗어나자마자 그런 집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너무 시골집인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국 사람들은 저런 집에 대한 판타지와 로망이 있다고 설명해 줬어요. 달력에 항상 저런 집이 있다고 했더니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집이라는 걸 가지고 모두 이렇게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참 재미있었습니다.

강유정 그걸 그렇게 보실 줄은 예상하지 못했네요. 한국인에게는 전형적인 판타지 같은 느낌이 있는데 말이지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감독님 영화를 여러 편 다시 보다보니 무엇보다 배우의 잠재력을 끌어내 앙상블로 녹여내는 데 탁월하신 듯 해요. 〈잉투기〉도 그랬고, 어쩌면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영탁은 엄태구 배우가 했어도 훌륭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특성상 워낙 많은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고, 이합집산이 많다 보니 조율이 쉽지 않았을 듯 한데 그래서, 그 많은 배우들 사이에서 감독님의 역량이 더 돋보였습니다. 디렉팅할 때 특별한 노하우나 방식이 있는 건지 궁금하더라구요.

엄태화 일단 저는 현장에서 말이 많은 편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동선이나, 앞뒤 맥락의 감정선을 설명하거나 혹은 제 생각과 완전히 다르게 연기가 나올 경우 말고는 그 순간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디렉팅하는 편이 아닌 것 같아요.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감독이 너무 현장에서 말을 안 해서 “아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 얘기를 배우들이 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얘기를 안 할 때는 연기를 잘해서, 좋아서 넘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리액션이 크지 않거든요. “아 이거 죽여요” 이렇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 하고 그냥 “아 좋네요” 이 정도 하니까요. 배우는 계속 뭔가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되게 불안한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피드백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사람 자체가 그게 잘 안 되는 편인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디렉션을 많이 주기보다는 최대한 이 사람이 편하게 할 수 있게끔 해주려고 하고, 오히려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설정이나 전사를 최대한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그 다음에는 배우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많이 들어요.

이 작품에는 배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배우분들 오디션을 엄청 많이 봤고, 되게 잘 하시는 분들이 오신 거예요. 첫 번째로 사람이 많이 나오는 신이 반상회 장면이었는데 저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작업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이전에 〈잉투기〉에서 체육관 찍을 때 3명, 4명, 5명이 나오는 신이 있었어요. 엄태구 배우가 훈련 받다가 코치님이 오라고 해서 “너 주먹 무서워” 하는데, 한 명이 붙고, 한 명이 돌고 이런 신인데, 엄태구 배우가 늘 살아있는 연기를 하다보니 순간순간에 동물적으로 몰입해서 테이크마다 톤이 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엄태구 배우의 액션이 바뀌면 상대의 리액션도 바뀌고, 또 새로 들어온 사람도 달라져요. 그러면 바뀐 걸 받은 엄태구 배우는 또 조금 달라지다 보니 제가 처음 생각한 그림에서 벗어나기도 하더라고요. 그때의 경험이 40여 명과 함께하는 이번 촬영 현장에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잉투기〉 때는 제가 되게 컨트롤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잘 안 된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서 이분들 얘기를 더 들었습니다. 배우 한 분 한 분께 직업이나 가족 관계랑 몇 호에 사는지, 누가 죽었고, 가족이 재난에서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드리고, 이런 상황이 주어지면 어떻게 하실지 듣는거죠. 대사를 쓸 때 구체적으로 누구의 대사인지 정하지 않은 채로 주민들 대사를 많이 써뒀거든요. 그래서 이야기를 듣고 각 배우분에게 맞는 대사를 드리면서 그분들 입에 맞게 편하게 바꿔서 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또 연극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다보니, 사람이 많은 현장에서는 배우분들끼리 서로 대화하시면서 잘 만드시는 것도 있더라고요. “내가 여기서 이렇게 할 테니까 너는 뭐 하고. 또 내가 여기서 이렇게 할게” 뭐 이런식으로요. 촬영 현장에서 제가 한 것은 연기 톤을 조금 누르거나 올리는 정도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그건 조금 센 것 같으니까 조금 다운시켜 주세요”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준비를 해서 리허설을 하는데 진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기가 막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때 “아 된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거의 순서대로 찍었는데 그분들이 그대로 4개월 동안 황궁아파트 주민이 되어 촬영했습니다. 마지막에 주민들이 영탁을 내보내냐 마냐를 두고 논쟁하고 싸우잖아요. 그때쯤에 다시 한 번 또 전화를 드렸어요. 지금까지 황궁아파트 주민으로 지냈는데 어떻게 하실 것 같냐고 여쭤보니, 어떤 분은 그래도 영탁 대표님을 지지할 것 같다고 하시고, 또 다른 분은 너무 배신감을 느껴서 더는 지지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럼 현장에서도 그렇게 하시면 될 것 같다”고 말씀드렸고 다들 생각하신 대로 하신 거예요. 원래는 대사들이 정해져 있었는데, 반대하기로 되어있는 분께서 지지할 것 같다고 하면 말씀 듣고 바꿔드리는 식으로 했던 것 같아요.

강유정 아까도 느낀 거지만 제작 과정과 현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부문 감독과도 거듭 의논하고, 배우들과도 계속 의견을 나누는게, 엄태화 감독님의 연출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장르적으로 아포칼립스, 재난 혹은 재난 이후를 다루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구의 재현 방식과 한국은 좀 다른 듯 해요. 서구권 재난 서사에선 주로 홀로 살아 남은 자들의 이야기, 〈더 로드〉나 〈나는 전설이다〉같은 이야기가 주류라면, 한국에선 재난에서도 결국 집단이 문제더라구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그런 점을 가장 첨예하게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원작이 된 웹툰의 원제가 ‘유쾌한 이웃’이었는데, 제목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이런 집단 무의식이 훨씬 더 또렷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의 시대상을 드러낸다고 생각을 하셔서 선택을 한 건지 궁금했습니다.

엄태화 원작을 볼 때 〈눈먼 자들의 도시〉나 꼭 아포칼립스가 아니어도 『동물농장』이나 한국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같은 류의 이야기라고 생각을 하면서 봤는데, ‘멸망한 세상에 아파트 한 채’라는 배경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거기에 제가 꽂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얘기를 이 장소에서 하면 진짜 한국 사회를 완전 압축해서 리얼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원래 아파트라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 한국에서 아파트는 재산의 기준 같은 게 됐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자라기도 했고, 그 아파트가 사라지고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지는것을 보다보니, 제게 아파트는 조금 더 집에 가까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아파트가 집보다는 자산에 가까워지는 듯한 생각이 드니까 제 안에서 괴리 같은 게 생긴 것 같아요. 아파트 살 돈은 없지만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약간 쓸쓸하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고, 그러다가 ‘한국 사람들한테 아파트라는 게 뭘까?’라는 데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그때 원작인 웹툰 〈유쾌한 왕따〉를 봤고, 2부인 〈유쾌한 이웃〉을 가지고 쓰던 중에 박해천 작가님의 인문학 저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게 된 거예요. 그 책에 제가 알고 싶었던 게 다 들어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작가님이 쓰신 아파트 관련된 세 권을 다 보고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아파트에 더 집중한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원작인 〈유쾌한 이웃〉은 아파트가 있긴 있지만, 〈국가의 탄생〉에 좀 더 가까운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더 한국의 아파트,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자연스럽게 집단의 이야기로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원작에서는 집으로 오는 살아남은 두 아이, 그러니까 혜원이가 주인공이었던 거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썼는데 이야기가 잘 안 풀렸어요. 계속 고민을 하다가 다시 아파트로 돌아갔어요. 피해자인 동시에 능동적인 주인공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어렵게 영끌해서 아파트에 새로 들어온 신혼부부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 인물이 어느 순간부터 서로 생각하는 게 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 제가 삼각 관계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영탁과 민성, 명화의 이야기를 삼각 관계처럼 풀어보면, 심각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처음부터 재미가 되게 중요했습니다. 아무리 의미를 넣고 주제를 얘기하려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걸 〈가려진 시간〉 때 배웠습니다. 긴장감이 풀리거나 관객이 지루함을 느끼는 포인트가 무엇인지 많이 고민했거든요. 물론 장르적인 특성도 있겠지만 이번 작업에서는 처음부터 스피디하고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한 것 같습니다.

강유정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톤과 매너가 어긋날 때, 아이러니들이 흥미로웠어요. 거주 매뉴얼 설명하는 교차편집 장면에서 조수미의 아리아가 나오는 몽타주 부분이나, 사람들 사이를 분주히 카메라가 오가는 반상회 장면의 정적 역동감의 모순도 흥미로웠습니다. 그런데 한편, 말씀하신 것처럼 민성, 명화 부부가 주인공인데도 보고 나면 이병헌씨가 맡은 영탁이가 너무 강하게 남아버리는데, 결국 영탁이라는 캐릭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중심 욕망과 정서가 집중되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명화의 도덕적 중심성보다는 분노를 폭력으로라도 해소하는 영탁의 방식에 더 공감하는 것 같아요.

엄태화 이 작품에서는 아파트라는 세계관이 아주 중요했습니다. 중심에 있는, 그러니까 중간에 있는 인물을 민성으로 설정해 놓고 양쪽에 명화와 영탁을 두어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영탁이라는 인물이 아파트를 대변하는 인물이다보니 무게 중심이 조금 더 쏠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콘크리트 유토피아〉 시나리오를 보면서 아파트가 가지고 있는 그 핵심적인 정석 테마인 가부장, 4인 가족, 중산층, 또 아파트가 군사 정권 때 세워지기도 했다는 이런 키워드들이 되게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걸 아주 디테일하게 보여줘야 이 세계관 속에서 관객이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주민 대표로서 눈앞에 닥친 일만 보고 선택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영탁한테 조금 더 포커싱이 가는 듯합니다. 민성도 아내를, 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지금 당장을 위한 선택을 하는 거잖아요. 그러지 않는 명화는 원래 어려운 길을 가는 사람인 거고요. 그런 맥락이 있었던 것 같고, 아파트에 대한 애증이 쌓여 있는 한국 사람들 중 일부는 영탁 쪽으로 더 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제게 그런 이야기도 하더라고요. 이 영화가 집값이 상승할 때 개봉했으면 더 잘 됐을 거라고요. (웃음) 집값이 하락해서 다들 화가 많이 난 상태인데 영화가 개봉을 해서, 명화한테 지금 집값이 떨어지고 있는데 지금 남을 돕자고 하는 게 말이 되냐고 더 그랬을 거 같아요. 이런 것도 영향이 있었을 거라는데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강유정 혹시 뭐 최근에 뭐 좀 재미있게 본 영화는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엄태화 최근에 〈서울의 봄〉을 아주 열불 내면서 봤습니다. 저는 그 심박 측정기가 진짜 장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진짜로 막 화가 나서, 집에 돌아와서도 또 찾아봤어요. 이렇게 만드신 게 되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전에는 제가 비행기에서 주로 영화를 많이 봤는데….

강유정 많이 다니셨죠?

엄태화 진짜 많이 다녔어요.

강유정 좀 어떠셨어요? 좀 물어보고 싶었는데 해외에 막 이렇게 다니시는 그 과정들….

엄태화 일단은 다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보겠어요? 오스카 캠페인이라는 것도 처음 해본 건데 진짜 뭐 정치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투표권자들을 모아서 상영하고 QnA 하고 리셉션 하고 사진 찍어주고…. 심지어 PR팀에 전략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제가 뭐 무슨 얘기를 하면 될까요?” 물으면 그냥 웃고 있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할리우드에 가서 거기 실제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서 미팅하고 얘기 나누고 이런 경험이 어떻게 보면 되게 판타지 같은, 비현실적인 경험이었습니다. 할리우드는 저한테 판타지 같은 곳이었는데, 이번 경험으로 되게 현실적인 공간으로 바뀌었어요. 나중에 여기서 하는 게 이제 비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영어 공부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 영화라는 게 내가 많은 설명을 안 해도 다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구나 하는 확신도 얻었습니다. 몸은 좀 힘들었는데, 못 가본 나라들도 너무 많이 가보고, 전부 다 너무 귀하고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강유정 가장 좀 의외의 반응이라던가, ‘여기서 이걸 이렇게까지 내 영화를 좋아해 줄 수 있어?’ 이런 데는 없었나요?

엄태화 뉴욕 콜롬비아대학교에서 학생들 상대로 상영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요청을 했어요. 보터들 말고 학생들, 젊은 사람들이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좀 궁금해서요. 저는 대학교에서 상영하는 게 그렇게 벽이 높다는 생각을 안 했고, 그냥 상영하고 싶다고 말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되게 조그마한 강의실에서 상영하고 QnA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콜롬비아대학교 영화과라는 데가 되게 콧대가 세고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데가 아니더라고요. 배급사에다 얘기해서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알고보니 제 직전에는 지난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추락의 해부〉 쥐스틴 트리에 감독님 오셨고, 그 전에는 알파치노가 왔다 갔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된 거죠. 거기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강유정 황금 종려상 받고 와야 (웃음)

엄태화 그때 한국인 학생 중에 한 분이 소식을 듣고 이거를 한번 성사시켜 보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러니까 “그럼 이때쯤에 상영을 하는 걸로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있으니까요. 그 친구가 이메일을 보내서 사람들을 모집하고 교수한테 말해서 공식적이지 않은 상영회를 하고 싶다고 말을 한 것 같아요.

강유정 야 이거 진짜 콧대 높네요.

엄태화 그래서 DCP로 하지는 못했고, MOV로 상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강의실이 꽉 찼어요. 이메일을 쫙 뿌렸더니 많이 오셨어요. 영화 보고 학생들과 QnA 했던 기억이 되게 좋았어요. 그 전에는 보터들과 되게 거창하게 QnA를 했는데, 여기서는 미래에 같이 작업할 수도 있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니까 실제로 영화 찍는 노하우에 대한 질문 같은 것도 되게 많이 나왔어요. 아까 질문 주셨던 배우 디렉팅 어떻게 하냐 이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 질문을 많이 받아 재미있었어요.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유정 우리나라야 학교에서 상영하는 것 정도는 별거 아닌데 사실 전통은 또 그렇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게 만들어가면 재미있다 되게. 한예종 같은 데서 그렇게 해보면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네요.

제가 한 두 가지 정도만 더 질문하고 좀 정리할게요. 방금 듣다 보니까 넷플릭스나 애플 TV+ 이런 데도 마음이 열렸을 것 같아요. 할리우드 가서 하실 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오퍼가 오면 하실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엄태화 네 원래도 닫혀 있지는 않았어서요. 드라마 시리즈도 해보고 싶어요. 영화는 어쨌든 2시간 안에 다 압축해야 하니까요. 이야기도 많이 압축해야 하고 편집할 때 많이 찍어놓은 거 버려야 하는데 시리즈는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놓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보고 싶습니다. 물론 드라마도 리듬감이 중요하지만요.

또 그런 거 있잖아요. 한 화가 끝날 때마다 다음 화가 궁금하게 만드는 그 지점이 되게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한번 작업하는 게 다시 영화로 돌아왔을 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드라마 한 편을 한 시퀀스라고 쳤을 때 그 시퀀스 다음이 계속 궁금해야 영화를 보잖아요. 그래서 시리즈 작업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또 흥행에 부담 없이 만들어보는 것도 좀 경험해보고 싶어서 OTT 플랫폼 영화도 해보고 싶습니다.

강유정 이제 마지막 질문이기도 한데 뭐 특정 장르에 대해서 막 이렇게 쏠리지는 않으시는 것 같아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으신 것 같기도 하고요. 다음에 하고 싶은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든가 아니면 좀 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던가 좀 다음 작품 계획이 있으신가요?

엄태화 몇 개 같이 준비 중인데 시리즈물도 하나 있고 영화도 2편 정도?

강유정 지금 계획해서 진행 중인 거예요?

엄태화 네 제가 쓰고 있는 거 두 개 있고, 시리즈물은 작가님이 쓰고 계세요. 장르는 영화 쪽에 호러가 하나 있고 하나는 구한말 배경 스파이물인데 장르가 누아르다 보니 브로맨스같은 멜로가 좀 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물은 미스터리 스릴러 준비하고 있어요. 진짜 말씀하신 대로 하나의 장르를 막 파는 것 같지는 않고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럼에도 제가 한 것들을 다시 보면, 저도 답은 모르겠지만 제 안의 화두는 어떻게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산다는 게 뭘까? 오그라들긴 하지만요.

강유정 그럼 그 작품들에도 태구씨가 나오나요? 그 작품들 중 어딘가에?

엄태화 나오지 않을까요? 근데 〈서울의 봄〉 같은 영화를 보면, 그런 거 되게 해보고 싶어요. 그러니까 쉼 없이 그냥 끝까지 내달리는 영화 있잖아요.

강유정 그러게요. 〈서울의 봄〉은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도 있는데 가더라고요.

엄태화 에너지로 끝까지 밀어 붙이는 영화. 감독님이 에너지가 있으시니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다녀와 보니까 영화제에서 외국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그런 게 영화를 찍어야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게 되더라고요. 아까 인상 깊게 본 영화에 대해 물어보셨을 때 바로 생각난 게 〈파벨만스〉였는데, LA 가는 비행기에서 보고 나니까 제가 왜 영화 하고 싶었었는지 조금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강유정 감독님은 진짜 계기가 뭐였어요?

엄태화 저는 미대 나왔으니까 처음 영화라는 걸 해본 게 자연스럽게 미술팀이었습니다. 〈몽정기〉라는 영화 미술팀을 했어요. 그때 현장에서 ‘아 이거 되게 재미있겠다’ 생각한 것 같아요. 더 과거로 되돌아가면, 초등학교 학예회 같은 거 하면 꽁트를 만들잖아요. 그때는 연출이라는 게 뭔지 몰랐는데 제가 항상 연출을 했던 거예요. 그래서 ‘아 내가 재미있어 했던 연출이 이거구나’ 생각했고, 그 두 가지 기억이 만나면서 대학교 복학하면서부터는 3학년 때부터 영화과 수업을 들었어요.

강유정 근데 왜 미대에 가셨어요?

엄태화 미대는 대학교를 가야 하니까…. 그런데 제가 항상 그림 잘 그리는 애라고 얘기를 듣고 살았으니까요. 수학 이런 거 너무 하기 싫었는데 미대에 가면 수학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서요. 다른 친구들 수학1로 넘어갈 때 저는 공통수학만 하면 되니까….

강유정 예고에 가신 건 아니고요?

엄태화 미대 가는 것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정해서 그때부터 준비했어요. 다행히 소질은 조금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유정 그럼에도 홍대 미대를 가셨군요. 남들은 예중 예고 거쳐서도 홍대에 못가서 안타까워 하던데, 재능이 있으셨나 봐요.

엄태화 학교 다닐 때 제가 디자인과였는데 1-2학년 때는 너무 적성에 안 맞는 거예요. 규격화된 거에 딱 맞춰야 하니까요. 과목 이름이 생각 안 나는데, 자 대고 각도 맞추고 이런 거 하는 수업이 있거든요? 아무리 해도 마지막에 안 맞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냥 포기하고 학교도 제대로 안 다니다가 CF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처음으로 영상이라는 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에 개봉하는 〈세기말의 사랑〉의 임선애 감독님이 제 2년 후배 누나인데 그 누나가 그때 강제규필름에서 콘티 작가를 하고 있었어요. 그때 “너 미술팀 할래?” 이래서 제가 미술팀을 하게 됐고, 졸업하면서부터는 연출부로 가서 박찬욱 감독님 연출부를 했죠.

강유정 그럼 콘티 직접 그리시나요?

엄태화 〈잉투기〉 때까지는 계속 작가랑 같이 그리기도 했는데, 〈가려진 시간〉부터는 온전히 작가님이 그리시는 방식으로 해요.

강유정 오늘 인터뷰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새 작품으로 또 뵐 수 있기를 바라요.

 


강유정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2005년 《조선일보》 《경향신문》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등단, 저서로는 『영화 글쓰기 강의』 『타인을 앓다』 등이 있다.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 《쿨투라》 2024년 2월호(통권 1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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